팔정산(八正散)과 정견 (正見)
부처님께서 제시하신 팔정도(八正道)에서 이름을 따온 듯 한 팔정산(八正散)은 아이러니칼하게도 정기를 보중시키는 약은 아니다. 동양의학에서 치료하는 네 가지 법의 주요 글자는 한토하화(汗吐下和) 법인데, 즉 땀내는 법, 구토시키는 법, 설사나 이뇨시키는 법, 화해시키는 법이다.
각각의 쓰임새가 다르지만, 서로 그 질병의 상황과 이 네 가지 법이 어긋나면 건강을 그르친다. 팔정산은 그 중 하제(下劑)인데 주로 이뇨기능을 도와준다. 하기야 바른 기운을 얻기 위해서 꼭 보약을 사용한다고 되는 것만은 아닌 것이, 때로는 사(瀉)하는 것이 보(補)되는 경우도 있다.
삿된 기운이 실(實)한 것은 사법(瀉法)을 쓰는 법인데, 법으로 보더라도 파사현정(破邪顯正)의 경우 그것과 같다. 삿된 열을 제거함으로써 하초(下焦)의 방광이나 대장 자궁 등의 화농성 질환을 다스리는 팔정산은 마치 삼독 번뇌의 열을 식혀주는 불법 (佛法)과 같다. 아무리 급해도 대소변을 먼저 처리하지 않는 이는 없는데, 급하다고 해서 마음의 찌꺼기인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의 삼독을 씻어내지 않고 살고 있지는 않은가? 대소변의 중독은 그 화가 일생의 육신에만 미치거니와, 집착의 뜨거운 화는 세세생생 미친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말이다.
이 세상에 겉으로는 바른 견해라 주장하지만 속으로는 삿된 안목을 지닌 지도자가 너무 많다. 바른 견해[正見]는 곧 팔정도의 주춧돌이니 먼저 바른 견해를 터득하기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바른 견해를 깨닫기 위해서는, 먼저 바른 견해 아닌 삿된 견해를 쳐부셔야 한다. 우리가 사랑이니 자유니 평화니 행복이니 하는 지고한 명제를 추구할 때, 그 지상 최고의 경지를 욕심만 내지 말고, 그것 아닌 조건들을 먼저 제거하면 될 것이다. 역사 이래 건강을 정의내린 의학자는 없다. 어떻게 건강의 상태를 정의할 수 있을 것인가?
병이 없는 상태를 건강이라고 하는데, 병이라는 조건을 제거하고 나면 그냥 드러나는 것이 건강이다. 옛날에 “단지 범인의 정을 쉬어버린 것이지 따로이 성인의 견해가 있지 않다”고 했다. 범인의 정을 쉬어버린 견해가 곧 바른 견해가 드러나는 곳인데 어떤 것이 범인의 정인가?
첫째 성인의 경계와 범인의 경계를 둘로 보고, 열심히 거룩한 경계를 구하는 것이 범인의 정이다. 일차적인 식욕렝玲弱?이차적인 색욕 즉 성욕과, 삼차적인 명예욕려治커葯樗막?꽁꽁 뭉쳐진 중생 세계의 실상을 보면 그 중 제일로 교활하게 무장된 탐욕이 곧 무형에 대한 욕망인데 (無有愛), 곧 명예욕 같은 것이다. 거룩해 지고 싶은 것, 권력을 휘어 잡고 싶은 것, 우월해 지고 싶은 것 둥 인간의 ego의식인 아상(我相)을 확대해 나가는 모양은 참으로 가관이다. 마치 도인이나 성인이 비교에 의한 우월한 존재로 착각하면서 숭배하고 흉내내어 구하고 다닌다. 비교없는 마음은 무엇인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없으므로, 마음을 미래에 두지 않는다. 그러므로 노력함이나 구함이 쉬어버려 심리적으로 시간과 공간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바로 현실을 직시하며 법의 실상을 볼 뿐이다. 바른 견해란 바로 이러한 분리 의식이 없는 마음의 공덕을 일컫는다. 비교럭堧切시기려香塚?열이 쌓이고 쌓여 팔정산의 신세를 진다해도, 그것이 영원한 치료일 수는 없다. 바른 견해를 깨닫는 지혜의 광명이야말로, 필요없는 마찰의 열기를 영원히 진정시켜 줄뿐이다.
둘째로 바른 견해를 다시 똑 바로 말한다면, 보는 놈은 볼 수 없는 이 견해가 곧 바른 견해이니, 비유하면 눈이 눈을 어찌 보겠으며, 혓바닥이 혓바닥 맛을 어찌 보겠는가? 보는 놈은 보여지는 사물이 아니면서 곧 모든 것을 비추는데, 비유컨대 눈이 오색을 분별해 보되 눈자체가 오색이 아님과 같으며, 혓바닥이 맛을 보되 혓바닥 자체가 곧 맛이 아님과 같다. 이 견해야말로 제불조사가 비밀히 인가하여 전한 견해이니 이는 석가부처님도 모르고 가섭존자역시 전할 수도 받을 수도 없는 것이다.
“어떤 것이 정견이오?”
적실한 뜻 여쭈었더니, 스승 혜암 눈 푸른 답
“훈풍절로 남쪽에서 (薰風自南來!)!”
“상(相) 없으며 공(空)도 없고 공이 아님 또한 없도다. (無相無空無非空)”
임종게를 남기신 채 입적하신 혜암 대선사께서는 평소 “훈풍이 저절로 남쪽에서 불어오는 때 나는 간다”고 말씀하셨다. 이 도리를 해석하여 마침 따뜻한 오월에 입적하셨으니 이 때가 마침 훈풍 부는 때라고 오월로 쫓아가 사량분별의 혀끝을 대는 사례를 보았다. 이는 천부당 만부당한 해석이니, 참으로 깊은 선지(禪旨)는 미묘하여 알기가 어렵다.
따뜻한 바람이 남쪽에서 절로 불어오는 이치는 곧 바른 소견을 드러낸 것이어서, 이는 따뜻하니, 바람이니, 남쪽이니의 문구 해석으로 쫓아가면 바른 견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님이향한 그곳이나
바른소견 나온그곳
둘이런가? 하나런가?
훈풍절로 남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