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가까이 저에게 삶의 지혜를 주시고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시는 선생님의
말씀을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세번째 글을 올립니다.
1.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세계관을 크게 둘로 나누면 수평적 세계관과 수직적
세계관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수평적 세계관에 젖어 있다.
수평적 세계관은 많은 것을 흡수한다. 그래서 그런 세계관에 젖어 있는 사람들은
수많은 지식을 쌓고 수많은 재물을 모으려 한다. 그러나 수평적 세계관을 지닌
사람들은 참으로 많은 것을 알고 참으로 많은 것을 지니고 있는 것 같은데 살다보면
자신이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자신이 지닌 것도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와 반대로 수직적 세계관을 지닌 사람은 다 내버린다. 다 버리고 텅비었지만
거기에는 모를 것이 없는 내가 있고, 모든 것을 다 가진 내가 있다.
공자, 석가, 예수 같은 사람들은 모두 수직적 세계관을 지닌 사람들로서 높은 곳에
이른 인물들이다. 높은 곳에 이르면 국경이 없고 귀천이 없다. 그래서 그들은 각기
인간에게 하나의 교훈을 주었다. 공자는 어질게 살라 했고, 예수는 사랑하라 했으며,
석가는 자비를 베풀라 하였다. 이 짧은 한마디 속에는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을 수
있는 힘이 각기 숨어 있다. 그러나 이기심의 노예가 되어버린 인간은 자신들의
이해(利害)로써 성인의 말씀을 이해(理解)하였다.
2.주역에는 기제(旣濟)괘와 미제(未濟)괘가 있다. 기제의 구조는 리하감상(離下坎上)
이다. 즉 물(坎)이 불(離) 위에 있어서 위로 올라가려는 성질을 지닌 火氣와 아래로
내려가려는 성질을 지닌 水氣가 교류하여 증발함으로써 안정하는 형상이다.
반면에 미제의 구조는 감하리상(坎下離上)이다. 불이 물위에 있어서 상승하려는
火氣와 하강하려는 水氣가 서로 교류하지 않으므로 곤경에 빠져 있는 상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을 주역에서는 소우주라 하는데, 주역의 괘로보면 일반인들은 바로 불안정한
형상인 미제에 해당한다. 인간의 신체는 "미제괘" 처럼 배꼽 위는 화기가 지배하고
배꼽 아래는 수기가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이 완전한 존재가 되려면 "기제괘"
처럼 배꼽 위는 수기가 지배해야 되고, 배꼽 아래는 화기가 지배해야 된다. 그래서
예로부터 머리는 차게, 발은 따뜻하게 하라고 했다.
이상의 괘를 상징적으로 해석해 보면, 수화기제(水火氣濟)는 生이라고도 볼수 있고,
화수미제(火水未濟)는 死라고도 볼 수 있는데 道通한 사람은 이를 자유롭게 넘나
드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3. 마음은 크게 보면 두개요, 자세히 보면 수 만개다. 두개로 나눠보면 육신과 함께하는
마음이 있고, 육신이 있기 전에 가지고 있던 마음이 있는데 편의상 전자를 "마음"이라
하고 후자를 "우주의 나" 라고 하자. 마음은 원인과 결과에 의해서 지배당한 채 끝없이
악순환을 거듭한다. 즉 인과(因果)에 의한 윤회의 수레속에 갇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주의 나"는 인과에 의한 걸림이 없으니 생로병사도 없고, 업(業)도 없으며
지옥과 극락도 없다. 무한히 자유로운 절대자이다. "우주의 나"를 흔히들 진아(眞我)니,
나의 주인공이니 하는 말로도 쓰는데 같은 뜻이다.
결국, 구도(求道)란 쉽게 애기하면 "우주의 나"를 찾아 가는 과정이다.
그러면, 우주의 나를 찾기만 하면 신(神)의 경지에 이르는 것인가. 그것은 신의 경지가
아니라 신 그 자체이다. 신의 모든 능력을 "우주의 나"는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우주의 나"는 무형항존 실체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주의 나를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마음이 쥐고 있는 육신의 주도권을 "우주의 나"가 쥐게 해야 한다. 그려려면 일단 자신의
그릇 안에 "우주의 나"를 넣으려 하지 말고, 자신의 그릇부터 깨야 한다.
그런데 인간은 오랜 세월동안 약육강식의 생존논리를 가지고 살아 오다 보니, 탐욕과
잔인성이 인간을 지배하고 말았다.
따라서, "우주의 나"가, 육신의 영역을 하부구조로 배치한다면 이루지 못할 것이 하나도 없고
풀지 못할 의혹이 하나도 없다. 이것이 곧 자기로부터 해방받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