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안길 나루
-인산 김일훈의 구료 일화-
자식과 아버지의 관계는 혈연으로 맺어진 것이어서 아무리 사실을 사실대로 표현한다고 해도 그것은 어느 정도 주관이 작용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자식만큼 아버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아는 타인은 없으리라는 생각과 주위의 권고에 따라 이 글을 쓴다.
이 책의 저자이며 이글의 주인공인 아버지에 대해서는 3~4세 무렵부터 나름대로 보고 듣고 느낀 점을 축적해 오긴 했으나 그것은 지극히 피상적인 것에 불과하다.
지금도 그런 점은 여전히 어쩔 수 없어 필자의 현재로서의 지식과 역량을 가지고 대상을 그릴 수 밖에 없는 딱한 처지이다.
아버지의 피를 받아 30여 년의 세월을 함께 살아왔지만 한 인생의 편린이나마 그려본다는 것이 이토록 어렵고 힘겹고 두려우리라고는 미처 상상도 못했었다.
3 년 여의 세월을,자나깨나 언제 어디서라도 어떻게 써야 할까 궁리해 왔지만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 망설여지기만 할 뿐이다. 아마 이런 강박 관념은 내 무의식의 저 깊숙한 물결 속에서조차 사라지지 않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해야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망연해 하는 나를 자꾸만 재촉하는 그 무엇에 쫓겨 이제 감연히 붓을 들었다. 칠흙처럼 캄캄한 세계에 난 한 줄기 외길을 따라서 이제 백척간에 선 나로서 계속 머뭇거리고만 있을 수는 없다. 한 걸음 내디뎌야 하는 것이다.
내 무의식의 저편에 있는 거대한 섬광에 기대를 걸어볼 뿐이다. 이 글을 읽어가는 동안 독자들은, 비재를 불고하고 붓을들면서 이렇게 장황한 변명을 늘어놓지 않으면 안되었던 저간의 사정을 짐작하게 될 것이다. 신룡을 그리려다 잘뭇 뱀으로 그려놓을 가능성이 있다는염려 때문에 아직도 선뜻 붓을 들기가 어렵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요구도 있고 또 세월이 더 흐르기 전에 지혜와 체험으로 이룬 영묘한 의방을 하루 속히 세상에 알려 각종 난치병으로 억울하게 죽어가는 사람들을 구원해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부득이 붓을 들게 된 것이다. 우선 이 글의 주인공에 대한 면모를 대략 소개하고 뒤를 이어 자세한 이야기를 할까 한다.
미리 말해 둘 것은, 필자는 비록 주인공과 부자지간이지만 항용 자식이 아버지에 대하여 우러르는 선망의 눈길, 또는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그의 출세가 이 세대와 인류, 그리고 미래세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 하는 점을 가능한 한 객관적으로 서술하려 한다.
이야기의 서술 방법은 있는 그대로 에 치중하기 위해 어떠한 형식에도 구애받지 않고 그때그때 생각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써나갈 예정이다.
책상을 놓고 향한 벽에는, 지난해(85년) 여름 함양 상림 숲속의 한 정자에서 필자가 직접 찍은 아버지의 앉은 모습 사진이 걸려있다. 우거진 녹음을 배경으로 흰 모시적삼을 입고 앉아 그윽한 눈빛으로 이쪽을 굽어 보는 자애로운 얼굴, 높고 넓은 이마는 태극무늬 모양 양쪽 가장자리가 벗겨져 올라갔으며 얼마 안되는 머리칼과 수염은 77세(85년)의 노인답게 희끗희끗하다.
다만 불그레한 빛을 띠고 있는 얼굴만은 아직도 나이와 어울리지 않는 동안 그대로다. 지금껏 단 한번도 아버지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 본 적이 없음을 오늘(86.3.8)에사 비로소 깨닫게 된다. 이제 보니 아버지는 많이 늙으셨다. 늙지 않고 늘 여여한 것은 가늘고 긴 눈 사이로 엿보이는 불멸의 영광 그것뿐이다.
내친김에 종더 기억을 더듬는다면 육신의 키는 160CM가 조금 넘는 듯하고 체구는 그리 크지 않지만 위풍 당당한 선풍 도골형이며 적당히 융기한 코에 길쭉하고도 두툼한 입술이다. 요즘 그는, 멀리 덕유산을 뒤로 두고 코앞에 지리산을 마주 보며 자리잡은 인구 3만명의 조그마한 고을-함양읍의 허름한 집에 우거하고 있다.
싯가 3백여만원 상당의 허름한 집이 그의 재산의 전부인 만큼 물질적 풍요를 구가하는 20세기 말의 오늘의 세계에서 볼 때 그는 초라한 하나의 티끌 같은 존재에 불과하다.
돈과 권력과 권모술수가 지배하는 오늘의 사회에서 그가 차지하는 취상은 가장 소득이 낮은 최하층 그룹에 속할 것이다. 자연히 그를 찾는 수많은방문객들도 가난하고 병든 소외된 계층 사람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다.그는 병든 서민들의 진정한 임금이다.
서민들의 한량없는 온갖 질병을 다스리는 의황으러서 그는 겨웁게 이 세상을 살아간다. 이 병원, 저 병원, 먼 외국의 병원까지 각지의 병원들을 편력하던 병든 사람들의 종착역, 삶과 죽음의 마지막 기로에서 안타까이 갈구하는 한 가닥 생명선에 희망과 활기를 부여하는 만병의 통치자.
천하의 생령들을 병고에서 구제하면서도 세금을 걷지 않는 자비로운 임금. 그러나 부귀한 사람들은 대부분 그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조차 모른다.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 이외에는 아무도 우러르지 않고 가까이하지 않는 고독한 황제. 과연 그는 자신의 말처럼 무변허공보다 더 광대한 몸으로 손바닥만한 땅에서 유형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상공에는 산삼분자를 위시하여 각종 약분자가 가득하고 산야에는 뛰어난약성은 지닌 동.식물이 자라며 주위 바닷물 속에는 무궁한 약물질을 간직한 곳. 이 한반도 땅에서 그는 지구촌의 질병 퇴치와 영원한 미래세 인류의 무병건강을 위하여 부단히 약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용이 물을 얻지 못하면 미물들에게조차 고통받는 다던가. 그는 이상한 얘기 를 한번 들어 보자고 하는 이 땅의 오만무례한 무리들의 강연 초청에도 바보인 양 응하곤 한다. 강좌에서는 강연 주제와는 상관없이 자유롭게 이런저런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8세 때부터 각종 난치병(그의 말에 따르면 불치병은 없다)을 고쳐주던 체험담, 16세부터 독립 운동을 하던 얘기, 유.불.선 삼가의 심요 등 두서 없는 이야기는 종횡무진으로 치닫는다. 정해진 틀 속의 얘기가 아니라 언제 어디서라도 항상 새롭게 쏟아져 나오는 신선함으로 빛난다.
..........계속
그러나 간혹 일부 청중들은 세련된 상품 을 기대하다가 실망하고는 하나 둘 강의장을 빠져나가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인산 김일훈의 현상으로서의 대략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많은 이 땅의 지혜로운 이들은 다섯 자 남짓한 그의 배후에 어린 무변 허공보다 더 광대한 그의 진면목을 본다.
시방에 가득하다가 한 티끌 속에 들어 앉기도 하고 백천억겁을 사는 불괴신으로서 삼계를 오가기도 하는 자재로운 화신의 출현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아는 사람들은 안다.
그리고 그의 출현이 예고하는 암울한 그림자와 광명의 엇갈림에 점두하게 된다.
그의 비현상으로서의 모습은 애석하나 그릴 수 없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모습이고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는 영역이기때문이다.
다만 현상으로서의 모습에 대한 중요한 족적을 더듬어 노라면 다소간의 윤곽이나마 부각되어 그의 진면목을 조금은 짐작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의 생애는 위대한 철인으로서의 면모, 숨은 독립운동가로서의 면모, 전무후무한 의황으로서의 면모로 크게 구분 지을 수 있다.
여기서는 의술의 묘리를 크게 깨달은(7세 때 1915년) 이듬해, 즉 여덟 살 때부터 실제 병고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시작한 구료일화 를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할까 한다.
이 이야기는 이책 신약 에서 소개하는 많은 새 의료법에 대한 이해와 신뢰를 돕기 위한 의도에서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타 다른 사항들은 약전에서 간략히 소개하는 데 그치고 상세한 전기는 뒤로 미룬다.
1) 용운면의 전설
1909년 3월 25일 밤 10시쯤. 며칠 전부터 이상한 향내가 은은히 감돌던 함경남도 홍원군 용운면 연흥리 산중 마을에, 심야의 정적을 깨는 고고의 울음 소리가 밤하늘에 가득 울려 퍼졌다.
조상 대대로 독자 또는 양자로 근근히 대를 이어 오던 김학자 댁의 세째 아들은, 이렇듯 온 세상이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때 이 땅에 태어났다.
아이의 이름은 운룡. 그의 어머니는 어느 날, 거대한 용 한마리가 구름을 헤치며 날아 내려오는 꿈을 꾼다.
그런데 같은 시각에 할아버지도 똑같은 꿈을 꾸었다.
그 뒤로 잉태하여 낳은 아이라 해서 운룡 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 반도의 동북쪽 귀퉁이에 자리한 홍원군의 용운면 연흥리는 130여 가구가 모여 사는 조그만 마을이다.
용운면에는, 언제부터인가 인류를 액난에서 구원할 위대한 성자가 여기서 탄생하리라는 예언이 전설처럼 구전되어 온다.
어떤 이는 성자란, 부처를 지칭하는 말이라 하고 혹자는 미륵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구체적인 출현 시기나 그밖의 사항에 관해서 더 이상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사람들은 아뭏든 그 말을 신의 계시인 양 믿으며 사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예언은, 운룡의 집안의 묘 이야기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는 것으로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 면내에는 바닷가 부근에 거대한 용소가 있는데 보통 번개늪 이라 불리운다.
용소 못가와 그 곳에서 20리 쯤 떨어진 지점에 조선 성종 때 성균관 전적, 사간원의 정언 등을 지낸 운룡의 선조 김사지의 장남과 차남의 묘소가 있다.
차남은 곧 운룔의 직계 할아버지로서 임진란 무렵 좌수를 지냈다 한다.
바닷가 쪽에 위치한 장남의 묘는 천주낙반, 용소 부근 차남의 묘는 백로규어 형국이라고 지관은 말한다.
그리고 면내 세전동 일대의 장군대좌에는 운룡의 조상묘들이 모셔져 있다.
간좌곤향으로 앉은 장군대좌는 앞에 용마산.안장봉이 보이고 왼편으로 오방패.투구봉.칠성검산.삼정수.칠반석이 있으며 바른 편으로 큰 산들이 백호를 이룬다.
응소형국에 할아버지의 양가쪽 할아버지 내외와 부모의 묘가 있으며 노승예불 형국에는 할아버지의 생가 어머니 묘가 모셔졌다.
이 가운데 할아버지의 생모, 즉 운룡의 증조 할며니안 청주 한씨 묘에 얽힌 사연이 운룡의 출생과 어떤 관련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 묘는 운룡의 할아버지가 젊었을 때 어머니 한씨를 위선한 것으로 어머니의 남동생인 명지관 한모씨가 자리를 잡았었다.
백두산의 산맥이 동남방으로 흐르다가 평지에서 거대한 산을 이루니 곧 두무산이다.
두무산의 한 줄기가 북청군과 신흥군에 걸쳐 있는데 증조 할머니의 묘소는 그 산자락에 안겨 있다.
늙은 스님이 부처님전에 예배하는 모습으로 이뤄졌다 고 하여 지관들은 그 묘역을 노승예불 이라 부른다.
그 묘를 다 완성하고 나서 지관 한씨는 아쉬운 듯 이런 말을 남겼다.
자네들 기량으로 천하에 둘도 없는 대지의 복을 온전히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군. 탈이 생기면 자네(할아버지)가 지혜롭게 대처하게......
한씨는 땅 기운이 돌아서면 우선은 패가할 것이라는 말을 덧붙이고 표연히 떠나갔다.
그 묘를 쓰고 난 뒤로 집안은 계속 기울어져 갔다.
소를 비롯한 여러 가축들이 원인 모르게 죽어가고 농사는 계속 흉작을 면치 못했으며 전답은 날로 줄어들었다.
이렇듯 가세가 급속도로 기울고 우환이 끊이지 않자 집안 여론은 묘를 잘못 써서 그럴 것이라는 쪽으로 집약되었다.
할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의 형의 주장에 따라 결국 이장하기로 결정이 났다.
묘를 쓴 지 1년이 갓 지났을 즈음이었다.
온 식구들이 빙 둘러서서 지켜보는 가운데 장정의 곡괭이가 묘 한귀퉁이에 내리찍혔다.
그 순간 묘에서는 마치 거대한 범종이 울리듯 쩡- 소리가 나더니 하얀 수증기가 분수처럼 공중으로 솟구쳤다.
순식간에 묘는 짙은 안개에 휩싸였다.
뜻밖의 사건에 모두들 허둥대며 어쩔 줄을 몰랏다.
유독 할아버지만이 재빨리 자신의 옷을 벗어 쥐고 수증기를 헤치며 뚫린 구멍을 찾아서 틀어 막았다.
할아버지는 이때 뜨거운 김에 등이 구부러져 평생 허리를 펴지 못하는 불구자로 살게 된다.
수증기가 걷힌 뒤 식구들은 곧 묘를 원상태대로 복구했다. 몇 년 뒤 한 지관이 집에 들러 외조카(할아버지)의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더니 이윽고 크게 탄식을 한다.
걸국 파묘했구나. 너의 허리가 그 모양인 걸 보니...... 3대부처가 나오는 대지에서 이제 겨우 한 분밖에 나올 수 없고 그나마 평생 운학의 신세 를 면치 못하리라.
할아버지는 그 뒤 장남 경삼의 밑으로 얻은 두 아들을 어린아이 때 모두 잃는다.
뒷날 외아들 경삼이 낳은 7남2녀 가운데 세째 아들 철진이 바로 운룡이다.
할아버지는 운룡이 10살 나던 1918년 무렵, 영특하기 이를 데 없는 세째 손자를 데리고 간산차 선산찾아 장군대좌의 지세와 노승예불 형국의 묘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할아버지는, 일곱 살 때부터 이미 난치병 치료에 있어서 늙도록 의원 노릇을 해온 자신의 의술을 까마득히 뛰어넘은 천재 의사 손자가 대견스럽기만 했다.
타는 듯한 저녁놀이 유난히 곱다. 그는 놀빛 속에 늙은 스님이 부처께 합장 배례하는 듯한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비록 그때 허리가 이렇게 꼬부러지긴 했지만 결코 헛되지 않았어. 암, 헛되지 않았고 말고.......
2) 1915년의 무지개
중천에 높이 뜬 해가 바야흐로 서편으로 향한다. 지독한 더위다.
풀잎들 조차 더위에 흐느적거린다. 새벽부터 엄마와 형을 도와 밭일을 하던 용이는 슬며시 꾀가 났다.
점심도 먹었겠다. 날씨도 무덥겠다. 아뭏든 절호의 기회다. 어느덧 용이는 마을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용소가 있는 냇물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용아-, 용아! 멀리서 엄마의 외침소리가 들려왔지만 그 소리는 이내 우주의 정적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용소에는 같은 또래의 아이들 너댓 명이 멱을 감고 있었다.
용운면 서편을 너르게 감싸고 흐르는 냇물이 연흥리를 지나는 지점에 깊숙한 용소가 패여져 있다. 밑이 보이지 않아 얼마나 깊은지는 아무도 모른다.
전하는 말로는 돌맹이를 맨 명주실 한 꾸러미가 다 풀려서 들어가도 바닥에 닿지 않았다고 한다.
아이들은 용소 가에서 혹은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그리 깊지 않은 곳에서 헤엄을 쳐 냇물을 건녀기도 하고 편을 갈라 물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유독 용이만은 시커멓게 밑이 보이지 않는 용소에서 홀로 오락가락하며 자맥질을 하곤 했다.
이 날도 용이는 아무도 다가오지 않는 용소에서 잠수도 하고 개헤엄도 치고 송장 헤엄도 치다가 싫증이 난듯 물가 언덕으로 올라갔다.
나무그늘에 벌렁 드러 눕자 파아란 하늘이 와락 쏟아져 내린다.
향긋한 풀내음은 영혼 속으로 깊숙이 스며들며 아득한 과거의 기억들을 일깨운다.
서양 사람들의 과학이 굉장허이-. 저 하늘의 별들을 모조리 볼 수 있는 기계가 있다지 뭔가. 그렇지 암.
저네들이 쓴 천문학 책을 중국 사람들이 한문으로 번역한 것을 보니 대단하더이. 거 망원경인가 뭔가를 가지고 별세계를 죄다 볼 수 있다더군.
맞아 서양의 과학이 앞으로 온세계를 지배 할거야.
할아버지와 동네 할아버지들 사이에 한문으로 된 영국의 천문학 서적에 대한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그때 그만 참지 못하고 말참견을 한것이 화근이었다.
할아버지, 그것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시는 말씀이어요.
서양 사람들 천문학이란 것은 망원경이 발달한 만큼밖에 별세계를 보지 못하는 극히 한정된 것인데 그게 무슨 천문학인가요? 진정한 천문학이라면 전우주를 빠짐없이 보고 알 수 있어야지요.
용아-. 엄마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용이를 부르며 빨리 오라는 듯 손짓을 한다.
허 그놈 참 할아버지들께 그 무슨 말버릇인고-. 할아버지들은 혀를 차며 술렁거렸다.
더 이상 말을 할 수 있게 허용이 안 됐을 뿐 아니라 아버지께 불려가 버릇 없다 고 호된 꾸지람을 들은 뒤 다시는 할아버지들 얘기에 말참견 말도록 엄명을 받았다.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었다. 자기가 알고 있는 천문학에 대해 왜 말할 수 잇는 기회를 주지 않고 자신들의 좁은 소견들만을 얘기하려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육신의 나이가 적은 사람이 아는 것은 값어치가 없다는 말인가.
다섯 살 때의 최초의 충격은 지금까지도 기억 속에 생생하다.
어른들한테 말할 때마다 머뭇거려지고 되도록이면 할 말이 있어도 꾹꾹 참는 버릇이 생긴 것은 그때부터다.
네 살 위인 누나가 할아버지께 한극 배우는 광경을 어깨 너머로 보고 한글을 자득할 때만 해도 집안 식구들은 별 말이 없었다.
그런데 그뒤 옥편을 외우고 한글 춘향전 을 읽은 뒤 한문 명사십리 능라도 조웅전 충열전 삼국지 계명편 당시 두시 강희자전 등을 차례로 독파하자 식구들은 또다시 신경들을 돈두 세웠다.
그러더니 동네 사람들을 만날 때 간혹 뱃속의 병이 깊어 몇 달 못살겠다 머리에 병이 들어 곧 죽는다 비명에 죽은 조상 혼령이 붙어 머지 않아 물에 빠져 죽을 게다 부모의 악혈을 받은 탓에 10살 안에 죽는다 는 등의 이야기를 하는 용이를, 할아버지를 제외한 모든 식구들은 어지간히 못마땅해 했다.
이윽고 용이의 예언 이 차례로 적중하자 동네 사람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용이는 귀신 붙은 애다. 저 아이가 재앙을 부를 거야. 저 아이땜에 온 동네 사람들이 피해를 보게 될 걸? 그래서 용이의 입은 또다시 철저히 봉해졌다. 무슨 말이고 일체 하지 말라는 불호령이 떨어진 것이다.
아무 이상 없는 혀를 갖고도 말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참으로, 아는 것이 병이란 말인가? 나의 혀는 음식 맛을 감지하는 데밖에 쓰지 못하게 됐으니......
어쨌든 용이는 마을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과 집안 식구들의 엄중한 감시 속에 벙어리 아닌 벙어리가 되어 살아야 했다.
멱을 감는 아이들은 계속 참새 새끼들마냥 마음껏 지껄여 대고 있었다.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기울여 갔다. 아이들이 하나 둘 옷을 벗어 두었던 곳으로 나온다.
으악-! 한 아이가 질겁을 하며 뒷걸음질 쳤다. 순간, 용이는 불현듯 스치는 생각이 있어 용수철 튀듯 일어나 그쪽으로 달려갔다.
아이의 옷가지 옆으로 검은빛, 흰빛으로 얼룩얼룩한 뱀이 소리없이 미끄러져 갔다. 까치독사다! 한 아이가 소리쳤다.
단숨에 달려온 용이는 미끄러지듯 풀숲 새로 몸을 감추려는 뱀을 쫓아가는가 싶더니 어느새 왼손으로 뱀의 목덜미를 덥썩 움켜쥐었다.
뱀은 입을 쩍 벌리고 온몸을 꿈틀대다가 사력을 대해 용이의 바른쪽 엄지 손가락을 콱 물었다. 햐 요것 봐라. 네가 날 물어? 너 같은 미물에게 물려 죽을 인간이라면 이 세상에서 아예 죽어버리는 게 낫겠지......
용이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뱀을 잡은 채 꿈틀거리는 모습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다.
빙 둘러선 아이들의 얼굴이 잿빛으로 변한다. 큰일낫다. 용이가 독사한테 물려 죽는다.
용이는 아이들의 놀라는 양이 그렇게 재미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부러 뱀을 움켜쥔 채로 꼼짝도 않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미물을 두려워 하다니... 용이는 그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자, 애들아 잘들 봐라. 독사가 죽는지 내가 죽는지 둘 중에 하나는 필연코 죽으리라.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용이의 손목을 물고 놓지 않던 그 독사는 꼬리 끝부터 서서히 부풀어 오르기 시작 하더니 이내 축 늘어지고 말았다.
용이는 독사의 목덜미를 손톱으로 후벼 파내어 껍질을 벗겨 내리고 아직도 꿈틀거리는 붉은 살코기를 우적우적 씹어 먹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순식간에 벌어진 이 광경에 벌린 입을 다물 줄 몰랐다. 독사에 물려 피가 묻은 팔로 입에 묻은 피를 훔치는 용이의 눈에는 시퍼런 불빛이 번뜩거렸다.
이렇게 독사를 볼 때마다 달려가 잡아 먹은 것이 지금까지 수십 마리는 될 게다. 다섯 살 나던 해 처음으로 논두렁에서 지나가는 독사를 보고 목덜미를 움켜쥐었을 때에도 독사는 용이의 엄지 손가락을 사정없이 물었었다.
그러나 잠시 뒤 독사는 온 몸이 퉁퉁 부어 죽었고 용이는 이빨로 죽은 독사의 목을 물어끊은 다음 통째로 그 고기를 먹었었다.
그때도 이일이 알려녀 온 집안은 발칵 뒤집이다시피 했었다. 특히 할아버지는 아이를 잘못 건사해 손자 하나를 잃게 됐다 며 약을 달이라는 등 안절부절하였다.
할아버지는 인근 고을에까지 명의로 소문이 자자한 한학자요, 의원이었으나 막상 손자가 독사에 물린 데다 그 독사를 먹었다는 말에는 여간 당황하는 게 아니었다.
용이는 그때도 사람이 버럭지한테 물렸기로 그것이 무슨 대수냐 며 아랑곳하지도 않았었다.
며칠이 지나도록 아무런 이상이 없자 그때 비로소 집안식구들은 마음을 놓는 한편 용이를 더욱 이상한 아이 로 여기게 되었다. 그러나 용이는 그 점도 답답하기만 했다.
왜 사람들은 겉모습만을 보고 다 같은 사람 이라고 쉽게 생각해 버리려는지 이해가 안 갔다.
사람들은 자신의 혈관에 흐르는 피가 어떤 독사의 독수보다도 훨씬 더 무서운 영독을 지녔다는 사신을 알 턱이 없다.
눈에 보이는 현상만을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광대 무변한 세계의 일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다는 말인가.
집을 향하는 용이의 발걸음은 무겁기만하다. 작열하던 한낮의 억기가 서서히 식어가면서 어느덧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한다. 지비안에 들어서자 마당을 서성이는 할아버지와 마주쳤다.
또 뱀을 잡아 먹었다며? 예... 하마터면 용칠이가 물릴 뻔했어요. 그래 넌 괜찮다는 말이지? 거 참 알 수 없는 노릇이야... 할아버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안채로 들어갔다.
잠시 뒤 할아버지와 어떤 사람의 얘깃 소리가 들려왔다. 아뭏든 이상한 아이입니다. 소승도 몇번 보았읍니다만 골격이 비상한 것으로 보아 접신한 아이가 아니라 법기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도사라 부르는 두무산 영기봉 아래 은적사의무주스님이엇다. 그는 할아버지와 막역한 사이였다.
용이는 방으로 들어가 벌써 세 번째 읽는 삼국지 를 집어들었다. 삼국지의 이야기들은 싫증나질 않았다.
제갈량의 신출귀몰한 용병술이며 관운장의 높은 의리, 그리고 화타의 신이한 의술 등 그림같이 펼쳐지는 옛사람들의 이야기에 용이는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책 속에는 집안 식구나 동네 아이들과의 대화에서 결코 느낄 수 없는 통쾌함이 있었다. 함구령 속에 사는 용이로서는 공연히 나이 어리다고 무슨 말이건 윽박지르는 현실보다는 책속의 세계에 몰두하는 것이 훨씬 속 편하다.
책속의 주인공들과는 말이 통할 것 같고 또 실제로 그들의 하는 행동들이 마음에 들기도 하여 늘 장시간 무언의 대화를 나누곤 한다.
그날 새벽 세찬 소나기가 대지를 두드리는 소리에 용이는 잠을 깼다. 요즘 들어 척을 괴고 깊은 상념에 잠기는 일이 부쩍 잦아진 용이는 뭔가 알듯알듯 하면서도 명확히 떠오르지 않는 하나의 문제에 부딪쳐 고민하고 있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앉은 그는 또다시 깊은 상념의 수렁으로 빠져 들어갔다.
일순 자아는 무화되어 버렸다. 염념상속하는 하나의 상념만이 우주를 가득 메웠다.
얼마나 지났을까? 어듬 속에서 바늘 구멍만한 동공이 트이더니 그 빛은 점점 커져서 마침내 거대한 달걀 같은 물체로 바뀐다.
어둠의 바닷속에 떠있는 하나의 광명 덩어리. 그중에서 유독 투명하고 여린 녹색의 빛이 가득 서려 있는 지점에 용이의 눈길은 머문다.
절반쯤이, 검고 푸르고 누런 바닷물에 싸여 있는 아름다운 땅이었다. 반도의 지상과 수중의 만물 속에 내재해 있는 갖가지 약소들의 조직이 보인다.
누런 빛을 띤 바다는 온갖 약의 보고였다. 바닷물도 그속에 사는 어족들도 모두 약이었다. 땅 위에 있는 생물과 무생물 역시 약이 아닌 것이 없었다.
집오리의 뇌수 속에 극강한 해독제가 있고 오이에서는 화독을 푸는 묘약이 보였다. 독사와 땅벌의 독수 속에 함유된 폐병의 특효약이 보이고 도마뱀의 체내에서는 미량의 보양제가 함께 비친다.
마른 명태에는 독사독과 독사스, 그밖의 여러 독을 풀 수 있는 극강한 해독제가 들어 있고 바닷물 속에서는 핵비소 등 각종 불치병들을 치료할 수 있는 무궁한 양의 신비한 약소들이 보였다.
끝없이 펼쳐지는 신비한 약의 세계를 보면서 용이는 이 약소들이 어떻게 해서 이와 같은 약성을 지니며 그들의 궁극적인 근원처는 어디인가를 곰곰 생각했다.
생각이 이에 이르자 빛은 서서히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어둠은 또 다시 온 우주을 휩싼다. 금방이라도 터질 듯 머리가 아파온다. 대지를 질타하던 소나기의 소리는 멎는가 싶더니 어느덧 날이 훤히 밝아 왔다.
용이는 왠지 모르게 답답한 가슴을 안고 대문을 나섰다. 안개가 서서히 걷혀져 갔다.
온갖 곡식과 초목들이 물에 씻기운 청결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는 옥수수가 열지어 서 있는 밭 옆 길을 따라서 집 뒤편 언덕에 올랐다. 언덕에 오르면 보다 너른 세계를 볼 수 있어 좋았다.
끝없이 펼쳐진 들판이 하늘과 맞닿아 푸르다. 마악 동녘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해가 솟는다 풀잎의 이슬 방울들이 아침 햇살을 받아 보석처럼 빛났다.
이때였다. 서녘 하늘로부터 강한 힘으로 용이의 눈길을 이끄는 그 무엇이 있었다. 용이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탄성을 질렀다.
무지개를 본 순간 용이는 가슴 깊숙이 울체됐던 상념의 거대한 덩어리가 산산히 부서져 내림을 느꼈다. 시야가 무한대로 확대되어 갔다.
무지개의 저 빛이 곧 인간과 만물의 바탕인 것을... 그렇다. 이 세상 모든 약의 든원처는 인체조직의 근원처와 같은 곳이었다.
모든 것의 구성요소는 공간의 색소였다. 색소 결핍에 의해 인간은 병들고 색소 고갈에 의해 인체는 무너진다. 인체 조직체와 모든 약의 조직체의 근원처가 같으므로 인체의 모돈 병에는 반드시 약이 있게 마련이다.
고칠 수 없는 병은 결코 없는 것이다. 색소의 이합 집산은 뭇별의 주재 하에 이뤄진다. 다시 말해 뭇별들의 주재로 만물은 생장하고 소멸하는 것이다.
수수께끼처럼 풀리지 않던 하늘의 뭇별들과 땅위 만물사이와의 상응관계가 비로소 보였다.
인체에 유해한 독성을 함유한 독사.지네 등은 대개 화성인 형혹성 정기를 응해 화생한 물체이고 이들 독성을 풀어 없애는 명태.집 오리.오이 등은 28수 중의 수성분야 일곱 별 가운데 여성정을 응해 화생한 것들이다.
노나무와 흡사하게 생긴 심산의 벌나무는 목성인 세성정을 응해 화생한 나무이므로 간병의 영약이며, 참옻은 천강성정과 세성정이 한데 어우러져 이룩해 낸 각종 난치병의 묘약이다.
옻나무 속에 함유된 천강성의 독기는 세성의 생기를 좇아 독으로 독을 없애는 이독공독의 작용으로 만병을 퇴치하고, 생기는 꺼져들어가는 생명에 활력을 불어 넣는다.
목성에는 3천년 이상 묵은 지렁이가 수없이 보였다. 지구상의 지렁이들은 3천년 이상 묵으면 모두 목성으로 이둔하는 것이다.
약성의 강약이 다를 뿐 지구상의 만물은 약이 아닌 것이 없다.
약의 분포는 비단 지구상의 만물에만 그치지 않고 훨씬 더 무궁무진했다.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약의 세계가 열려져 갔다. 공간 색소 중의 각종 약분자 조직과 바닷물 속에 함유된 약의 미립자들도 보다 뚜렷이 드러났다.
그중 최고 양질의 약을 가장 풍부히 지니고 있는 이 지구상의 억의 보고라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용이가 태어나 머물고 있는 이 한반도 땅이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한반도 상공에는 영약-산삼의 분자를 비롯, 갖가지 우수한 약분자들아 충만해 있고 지상과 주변의 바닷속에도 무궁한 양의 각종 약물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오색 무지개를 보고 광대무변한 신약의 세계에 눈뜨게 된 용이는 그날부터 이 세상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거대한 고독감에 휩싸여 살아야 했다.
=====계속
3) 구료의 신화를 뿌리는 소년
의원님, 의원님! 큰일났읍니다. 사람이 죽어요! 할아버지는 문을 열어 제쳤다.
허둥대지만 말고 자세히 말해 보게.예, 저희 아기 아버지가 나무하러 갔다가 독사에게 그만......온 몸이 퉁퉁 붓고 곧 죽게 생겼으니 제발 좀 살려주십시오...제발. 여인은 우느라 말을 잇지 못했다.
어허 이를 어쩐담. 요즘 항상 독이 오를 대로 오른 독사에 물리면 백약이 별무 효험인데...... 마을 사람들이 수군댔다. 팔뚝만한 까치 독사에 물렸대요... 약이 없다지? 똥물을 먹이면 된다던데...... 처사님, 고양이를 달여 먹이면 혹 살릴 수도 있을 텐데요? 마침 할아버지를 찾아와 도담을 나누고 있던 무주 스님의 말이었다. 글쎄 별다른 약이 없으니 그것이라도...... 이때였다. 삼국지를 읽고 있다가 책을 덮고 바깥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던 용이가 후다닥 마루로 뛰어나오며 소리쳤다.
할아버지! 관두세요. 다 죽게된 사람한테 고양이 따위가 무슨 약이 된다고 그러세요? 용이의 눈에서 갑자기 이상한 광채가 번뜩였다.
용이는 쏜살같이 광으로 달려가더니 북어 다섯 마리를 꺼내와 댓돌 위에 놓고 돌멩이로 두들겨댔다. 할아버지와 무주 스님, 동네 사람들은 용이의 이상한 말과 행동을 신가한 듯 바라만 보고 있었다.
여인도 울음을 그치고 용이의 하는 양을 바라본다. 아지매, 빨리 화덕에 불 좀 피워 주세요. 용이는 잘 으깨어진 복어를 솥에 넣더니 풀무질을 해댄다. 이윽고 국물이 넘칠 듯 끓자 용이는 국 한 그릇을 떠서 여인에게 주었다. 얼른 가서 먹이세요! 여인은 할아버지를 쳐다본다. 그렇게 해도 되느냐는 뜻 같았다.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자 여인은 두 손으로 북어 국물을 받쳐들고 황급한 걸음으로 달려간다. 실로 순식간의 일이었다. 한참 동안 더 끓인 뒤 용이는 솥째 들고서 여인의 집으로 달려갔다. 할아버지와 무주 스님, 모였던 동네 사람들도 좇아갔다.
독사에 물린 사람은 얼굴이 얼마나 부었는지 눈이 마주 붙어버렸을 지경이었다. 왼쪽 발목을 물렸는데 다리는 퉁퉁 부어 한아름은 되는상 싶었고 푸르스름한 빛이 온몸을 감돌았으며 얼굴에서는 비지땀이 줄줄 흘렀다. 간신히 신음소리만 낼 뿐 전혀 사람을 못 알아볼 정도로 인사불상이다.
먼저 떠간 국물은 이미 다 먹였다. 운룡은 다시 솥안의 국물을 떠서 계속 먹이라고 했다. 국물을 절반쯤 먹였을 때 고통으로 일그러졌던 사나이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져갔다. 눈에 띌 정도로 부은 기가 내렸다. 잿빛이던 그 사람의 얼굴에 불그레한 빛이 돌기 시작했다. 크기 한숨을 몰아쉬더니 그는 의식을 되찾았는지 잠에서 깨어 나듯 눈을 번쩍 떴다.
아지매, 아저씨는 이제 살았어요. 모여 섰던 동네 사람들이 술렁대기 시작했다. 도깝 붙었다더니 과연이군. 그래도 사람을 살렸지 아나능가? 신동은 요절한다며? 쟤를 누가 여덟 살로 보겠나? 할아버지! 집으로 가요. 용이의 말에 넋나간 듯 서 있던 할아버지와 무주 스님은 그제서야 정시니을 차렸는지 하나 둘 흩어지는 동네 사람들을 따라서 그 집 문을 나선다. 할아버지는 용이의 등을 쓸어주었다.
늦여름 해가 서녘 하늘을 붉게 물들여 갔다. 묵묵히 길을 걷던 무주 스님이 용이를 돌아보며 말을 건넨다. 독사 물린데에 북어가 약이 된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지? 본래부터 알고 있지요. 독사는 사화독이고 북어는 해자수정을 함유한 극강한 해독제입니다.
우리나라 북어는 천상 28수 중의 여성정을 응해 화생한 물체라 체내에 극강한 해독제를 지니고 있읍니다. 바닷속의 수정수기에다 이를 말릴 때 공간의 수정수기까지 합성되므로 최상의 해독제가 되는 거지요.
음, 그러니까 독사의 사화독이 북어의 극강한 수정수기를 만나면 소멸된다, 그 말이냐? 동해산, 특히 속초태가 가장 훌륭한 약성을 지닙니다.
그것은 또 왜이지? 지역적 조건이 다른데다 말리는 데서 약의 묘가 이뤄지기 때문이죠. 할아버지는 기특한듯 따뜻하게 묻는다. 그같은 약리를 너는 어떻기 알게 됐느냐? 사람들은 대부분 모든 것을 배워서 알게 되지만 간혹 생이지지자도 있는 법이지요. 그런데 왜 너는 한번도 약에 관해 말하지 않았느냐? 남보다 조금 더 알면 아는것 이 되지만 뛰어나게 알면 도리어 등시니이 됩니다.
인간의 생각으로 미칠 수 없는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미쳤다고 욕하고, 남들 다 아는 이야기는 굳이 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이야기가 이쯤 이르자 어안이 벙벙해진 할아버지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무주 스님 역시 고개만 끄덕일 뿐 별 다른 말이 없었다.
아무래도 연칠이는 몇 달 못살 것 같았다. 이제 살이라곤 어느 한 구석에서도 찾아볼 수 없으니 말이다. 사람들은 병이름도 모르고 그저 부족증(폐암)이라고 했다. 연칠이네 어머니 아버지도 어지간히 애가 탈 가다.
꼬챙이처럼 말라가는 아들의 얼굴에서 그들도 죽음의 그림자를 볼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날품팔이로 근근히 입에 풀칠하는 형편에 첩 은 고사하고 의원에 데리고 갈 엄두조차 못내고 있으니. 그렇다고 저 녀석을 저대로 죽게 놔둘 수만도 없지 않은가? 용이는 연칠이를 볼 때마다 괴로왔다.
영칠이의 병은 이미 첩약 따위로는 끄덕도 않을 만큼 뿌리가 깊숙이 퍼져 있었다. 상공에는 영약 분자들이 충만해 있고 땅 위에는 특이한 약물들이 가득한 이 한반도 땅에서 사람들은 저렇게 병들어 죽어가고 있다.
이용 방법은 모르고, 아는 사람의 말은 미친 소리라 비웃으며 약을 코앞에 둔 채 마치 숙명인 양 죽어가는 것이다. 나이 어린 용이로서는 무지한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공간 색소중의 약분자들을 당장 합성해 낼 방법이 없고 바닷속의 신약 또한 이용할 수가 없다.
일반 약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하고 치료할 수 있는 약은 구할 수 없고 참으로 난감했다. 용이는, 오늘도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언덕배기에 힘없이 앉아 다른 아이들의 노는 모습을 구경만 하는 연칠이가 측은해 견딜 수 없을 지경이었다. 아이들과 어울리지 않고 강둑에서 땅만 보고 왔다갔다 하며 생각에 잠겼던 용이는 별안간 우뚝 걸음을 멈췄다. 땅바닥을 이리저리 살펴보던 용이는 무릎을 탁 쳤다.
만았어! 바로 저거야. 연칠이를 살릴 수 있다. 독백처럼 한ㅁ바디 내뱉고는 뒤도 안돌아보고 집으로 달려갔다. 어머니! 저 삼베옷 좀 꺼내 주세요. 아니, 형의 삼베옷을 무엇에 쓰려고? 필요한 데가 있으니 아뭏든 꺼내주세요. 몸에 어울리지도 않는 커다란 삼베옷을 걸친 용이는 긴 장대와 쑥 두어 다발을 챙겨 들고 다시 아이들이 놀고 있는 강둑으로 갔다.
연칠아! 이리 와봐. 어서? 앞서 무엇인가를 보았던 지점에서 용이는 연칠이에게 오라고 손짓했다. 연칠이는 부시시 잔디밭에서 일어나 어기적거리며 느릿느릿 그리로 다가갔다. 아이들도 궁금했던지 서너 명쯤 모여들었다.
야! 너희들은 저리 비켜! 용이는 아이들을 쫓아내고 나서 연칠이가 가까이 오자 먼발치의 땅을 장대 끝으로 쿡 쑤셨다. 순간, 그곳에서는 파리떼같은 것들이 새까맣게 날아 오른다.
땡끼다! 누군가가 소리치자 아이들은 질겁을 하고 흩어져 숲속에 엎드렸다. 용이도 뒷걸음질텨서 삼베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엎드렸다 느릿한 걸음으로 뒤뚱거리며 달아나는 연칠이의 온몸에 새까맣게 땅벌들이 달라 붙엇다. 연칠이는 마치 물에 빠진 사람처럼 두 팔을 내저으며 허우적대다가 이윽고 털썩 모로 자빠졌다. 이를 지켜보던 용이는 벌떡 일어나 쑥대강에 불을 붙여 들고 달려가 그것을 휘두르며 땅벌들을 쫓았다. 그도 얼굴과 손등을 10여 군데나 벌에 쏘였다.
연칠이는 의식을 잃고 가느다란 신음소리만 내고 있었다. 얼굴과 목, 팔 등 온 몸에 군데군데 핏방울이 팾혔고 죽은 벌들이 달라 붙어 있었다. 얘들아! 연칠이가 죽겠다.
용이는 연칠이 몸에 붙은 벌들을 대충 뜯어 내고 핏방울들을 닦은 다음 축늘어진 연칠이를 들쳐 업었다. 체구에 맞지 않는 큰 삼베옷을 입은 데다 벌에 쏘여 일그러진 얼굴에 비지땀을 흘리며 연칠이를 업고 가는 용이의 모습은 흡사 괴물 같았다. 서너 명의 아이들이 장대를 들고 용이의 뒤를 따랐다.
마을 근처에 다다르자 한 아이가 쏜살같이 동네 속으로 뛰어갔다. 잠시 뒤 연칠이네 집에 거의 다다랐을 때 집안에서 연칠이 어머니가 황급히 니오다가 용이와 마주쳤다. 용이가 이걸로 벌집을 건드렸어요.
한아이가 장대를 세우며 말했다. 용이는 얼른 집안으로 들어가 마루 위에 연칠이를 내려 놓고는 밖으로 뛰어나와 쏜살같이 달아난다. 이놈아! 이 못된 놈아. 연칠이 어머니의 고함소리가 뒤통수를 후려치는 것같았다. 마을을 벗어나자 용이는 다시 강둑으로 올라가 잔디밭에 턱을 괴고 앉아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깊은 상념의 심연으로 빠져들어 갔다.
도대체 뭐라고 말해야 하는가? 연칠이를 살리려고 일부러 벌에 쏘이게 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까? 사실대로 말하면 그들은 대번에 날더러 미쳤다거나 도깝 붙었다고 욕할 테고...... 에라 모르겠다. 남이사 욕을 허건 말건 사람을 살렸으면 그만 아닌가. 까짓 욕설쯤이야 얼마든지 하라지. 어쨌든 부모 형제들의 무지로 비명에 죽을 연칠이를 내가 살린 것만은 틀림없으니까.
무지한 인간들이야 모를 테지만 저하늘은 알리라. 저 산은 보았으리라. 하긴 사람들이 나를 알기도 쉽지는 않을 거다. 보통 사람들보다 조금 더 알고 조금 더 나은 재주를 지니면 선생 노릇도 하고 남에게 대접도 받겠지만 인간세를 초월한 지혜는 고독할 뿐이다.
대지는 무지요, 대용은 무용이라 고 한 옛사람도 얼마나 답답했으면 그런 말을 했을까? 보통 사람들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오묘한 현상을 보고, 사람들의 캄캄한 마음으로 감지할 수 없는 세계를 홀로 알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숨막히는 일이다. 안다고 해서 아는 대로 모두 말하려 하다가는 명대로 살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난치병에 걸려 무고하게 죽어가는 이웃을 외면할 수만도 없는 노릇인 만큼 세사아의 비난과 일신의 괴로움쯤은 각오를 하자. 생각이 이에 미치자 용이의 울적하던 마음은 한결 가뿐해졌다 어느덧 해가 서산 마루에 걸렸다. 대문안에 들어서면서 용이는 집안의 분위기가 무겁다는 것을 느꼈다.
용이냐?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이 방으로 들어 오거라. 아버지는 엄숙한 표정으로, 꿇어 앉은 용이를 꾸짖는다. 경거망동으로 집안 망신을 시킨다는 요지였다. 직감적으로 연칠이네 식구들이 다녀 갔다는 것을 눈치챘다. 용이는 무슨 말인거 하려다가 말고 계속 침묵을 지켰다. 이때였다. 용아! 용이를 이리 보내거라. 건넌방에서 들려온 할아버지의 음성은 언제나처럼 부드러웠다.
아슬아슬하게 종아리 맞는 것을 모면했다. 할아버지는 용이에게 대화가 통하는 유일한 말상대였다. 그것은 할아버지가 인간세의 약리에 밝은 의원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연칠이를 벌에 쏘이게 했다며? 제가 부러 그랬어요. 왜이지? 연칠이의 병을 고치려고요. 벌에 쏘여서 그런 병이 낫느냐? 할아버지는 뜻밖의 대답에 의아해 하며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되묻는다.
이미 병독이 온몸에 퍼져 있으므로 그리 안 하면 살릴 수 없어요. 벌에 쏘여 병이 낫는다? 할아버지는 아무래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할아버지! 땅벌은 체내에 호신용 독수를 지니고 있잖아요? 여러 마리의 독수를 합치면 그 독으로, 병뿌리가 온몸에 퍼진 사람의 피속의 독을 모두 멸할 수 있어요.
그럼 독으로 독을 없앤다 그말이로구나. 허나 그러다가 죽기라도 하면 그때는 어쩔 것이냐? 할아버지처럼 막연하면사람을 죽일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저는 몇 마리의 벌에 쏘이면 어떤 병이 낫는다는 걸 거울처럼 아는 걸요? 두고 보셔요. 며칠 뒤 연칠이가 증명해 줄 테니까요.
그날부터 용이는 할아버지를 제외한 다른 집안 식구들과 마을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벌에 쏘여 고통 받는 연칠이 못지 않게 심적 고통을 받아야 했다.
용이는 연칠이네 식구들한테 욕설을 들으면서도 매일 그 집을 찾아가 동태를 살폈다. 연칠이는 벌에 쏘인 뒤로 줄곧 신열이 심하도니 3일 만에야 열이 다소 내리며 잃었던 의식을 되찾았다. 그리고 7일 뒤 열이 완전히 가시면서 거무튀튀하던 연칠이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병세가 호전되어 완전히 건강을 되찾자 연칠이의 아버지는 용이를 찾아와 용이 할아버지에게 깊이 사과하였다. 할아버지는 실로 오랜 만에 호탕하게 웃으면서 용이를 돌아보며 말한다. 용이도 벌에 쏘인 것 못지 않게 고통스러웠을 걸?
4) 방도인의 예언
강선봉 산정의 깎아지른 듯한 석벽들이 병풍처럼 둘러선 속에 남향의 조그만 암자 하나가 하염없이 세월을 보내며 앉아 있다. 오랜 비바람을 겪은 탓인지, 아무도 찾는 이가 없었던 탓인지, 열댓평 가량 되어 보이는 암자는 퇴락할 대로 퇴락한 모습이었다.
자주 호랑이가 군데군데 도금이 벗겨져 나무속살이 드러나 보이는 퇴색한 목조 관음좌상이 침묵하고 있고 밖에는 암자의 터줏대감인 양 한쌍의 늙은 까마귀가 거만스레 제 둥지를 지키고 있다. 까아악 깍깍 까아악 깍- 암자 마당 한쪽 귀퉁이를 차지하고 허리 굽은 노인처럼 서 있는 노송 가지 끝에서 악을 쓰면 짖어대는 까마귀의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산중의 정적을 깬다.
물에 불린 쌀로 마악 아침 요기를 하려던 운룡은 문득 동작을 멈추고 까마귀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가늘고 긴 눈, 높고 넓은 이마, 축늘어진 귀는 법당 안의 목조 관음상 상호와 상당히 흡사했다.
거기에 두툼한 입술, 길게 째진 입이 유난히 커 보이는 얼굴이다. 그는 밤새도록 물에 불린 생쌀이 담긴 바리때를 들고 문밖으로 나왔다. 또 산로의 얼음이 풀렸나 보군.
혼잣말처럼 중얼대며 그는 마른 풀덤불을 헤치더니 바리때의 물을 따라 버리고는 고개를 들어 까마귀의 하는 양을 바라 본다. 까마귀는 머리털을 곤두세우고 나래를 퍼득이며 다급한 표정으로 무슨 소린가를 외쳐댔다.
알았다 알았어. 고마운 녀석...... 그는 법당으로 들어가 한 말 가량의 쌀과 헌 양복 두 벌, 서너 권의 책이 전부인 짐보따리를 능숙하게 꾸려 걸머 메고는 부엌으로 들어가 묵은 재를 이용해서 생활의 흔적을 감췄다. 그리곤 잽싸게 암자 건너편의 석벽쪽으로 뛰어가 암자가 잘 내려다 보이는 바위틈에 몸을 숨기고 암자를 지켜 봤다. 삼십 분쯤 지났을까.
두명의 사내가 조심조심 암자 마당으로 들러서는 것이 보였다. 그중 하나는 권총을 뽑아 든 채로 암자 안을 샅샅이 뒤졌고 한 자는 왼손을 이마에 대고 주위를 휘휘 둘러 보더니 암자 주변을 유심히 살폈다. 어떻게 알고 찾아 오는지 일본 형사들은 줄기차게도 쫒아다녔다.
하늘이 뵈지 않는 깊은 원시림을 지나고 깎아지른 듯한 수직의 절벽을 오르며 만주-> 백두산금점판-> 묘향산 설령의 설령암-> 천마산 영덕사-> 묘항산 강선봉의 강선암으로 이어지는 운룡의 족적을 그들은 숨가쁘게 추적해 왔다. 위기때 마다 번번히 그들을 헛걸음질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어딜가도 운룡의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며 길흉의 소식을 알려 주는 까마귀들 덕이었다.
이젠 늙어 죽었을지도 모르는, 밥을 그리도 좋아 했던 영덕사의 까마귀가 그랬고 암자안의 한 식구였던 사슴 노루 족제비 들을 제새끼처럼 따뜻이 보살펴 주던 설령암의 까마귀도 그랬다. 추적자와 도망자의 폭이 계속 좁혀져 가는 만 20년에 이른 산중 도피 생활이 이제 지긋지긋하다. 이 공간, 이 시기를 사는 생 자체가 한심스럽기까지 하다.
이렇듯 손발을 묶고 숨통을 죄는 현실 앞에서 내 앎과 능력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소경의 눈을 보게 하고 간질을 멎게 하며 문둥병을 고칠 수 있는 의술. 세상사람들이 불치병으로 낙인 찍은 대부분의 병과 요즘 서양 사람들이 발명해낸 살인 무기의 유독까지도 치유할 수 있는 미증유의 내 의술이 이렇게 20년간을 심산 속에 파묻혀 있다. 운룡은 가슴이 답답했다.
도피 중에 만났던 갖가지 장면들이 눈앞에서 명멸했다. 영변 고을의 그 할머니는 소위 홍역 이질로 60평생을 고생했었다. 들기름에 비빈 메밀국수 한 사발로 그 할머니의 불편한 고통은 끝났었다.
어느 동네를 지나다 젊은 아낙네의 구슬픈 통곡소리를 듣고 찾아 갔었다. 세살 난 아기가 뇌염으로 죽었다고 거적을 덮어 놓았다. 아낙네의 미친놈 취급을 감내하며 거적을 걷어 내고 침을 놓아 소생시켰었다. 뇌염으로 죽었다고 밀쳐 두었던 아기를 살려낸 것은 셈해 보면 천 번도 훨씬 넘을 것이다.
북신현면에서였다. 마을 사람들이 죽둘러 서서 물에 빠진 처녀를 건져 놓고 죽었다고 웅성대던 장면을 목격했다. 사람들을 밀치고 들어가 착 달라붙은 처녀의 웃옷을젖가슴이 드러나도록 걷어 젖히고 중완에다 달걀만한 쑥뜸을 9장이나 떠서 살려 냈었다.
그때도 미친놈 이라고 마을 사람들에게 몰매를 맞을 뻔했다. 아마 그 처녀가 소생하지 않았더라면 초죽음이 되도록 맞았을 것이다.
잡다한 병들의 치료는 일반 의사들보다 별로 나을 것도 없다. 일반 의사들이 불치병이라고 치료를 포기한 병들이야말로 운룡의 의술이 눈부신 위력을 보여줄 수 있는 대상이었다. 예수께서 몇몇 불치병과 불구를 고쳤던 사례를 성경 은 기적을 보여준 것으로 말한다.
그렇다. 그것은 그때 그에 한정된 하나의 기적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러한 병들을 고칠 수 있는 명확한 방법을 전해준 사실은 없지 않은가. 하나 운룡은 의술은 달랐다.
소경이 눈을 볼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간질병을 고쳐줄 뿐 아니라 고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각종 난치병을 치료해 줄 뿐 아니라 그 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의 제조 방법과 치료 방법을 니타내 보여 준다.
세상 사람들이 소위 기적 이라고 말하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의 뒤에 숨겨진 보편적인 원리를 찾아 의술에 적용시킨 것이 곧 운룡의 독특한 의술이다.
그러나 그의 의술은, 아직껏 도피 중인 그가 극히 좁은 폭으로 만나는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유용한 셈이었다. 또한 그런 현실이 계속되는 것도 답답한 노릇이었다. 거듭거듭 도피의 발걸음을 막는 준령의 수직의 석벽처럼 그릐 의술이 가는 곳에는 끝없는 장벽이 계속해서 앞을 가로막았다. 해는 하늘 복판에 이르렀다.
정오쯤 된 성싶었다. 운룡은 배가 몹시 고팠다. 법당과 주방 뒷방을 기웃거리며 드나들던 형사들은 주변 숲속까지 샅샅이 살피고는 마당 복판에 나와 마주 섰다. 담배 한 대씩을 붙여문 뒤 그들은 잠시 무슨 말을 주고 받더니 이재 그곳을 떠났다. 암자 주변을 맴돌던 두 마리의 까마귀가 날아와 몇 번 짖어 대고 날아 간다. 형사들이 정말 내려 갔다는 뜻인 것 같았다.
운룡은 짐보따리를 걸머 메고 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 갔다. 법당 마당에 들어서자 어디론가 달아났던 노루와 족제비 무리들이 다시 돌아와 부엌과 뒷마루 밑의 제자리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법당 안에는 목조 관음좌상이 침묵 속에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었다. 목조 관음상을 바라보던 운룡은 야릇한 연민을 느꼈다.
아무도 찾는 이 없는 이 깊은 산중의 조그만 암자에서 무심히 흐르는 세월을 보내며 모르게 모르게 썩어가는 목조관음의 초라한 몰골은 곧 자신의 모습이었다.
천부의 의술을 지니고도 이렇듯 벗어나기 어려운 첩첩의 장벽속에 갇혀 한정된 삶의시간을 허송하고 있는 속박된 모습의 상징 같았다.
운룡이 의주 천마산 영덕사로 옮겨온 지도 어언 1년이 되어 간다.
까아악 깍깍 가아악 깍 깍...... 이날 따라 까마귀가 유별나게 수다를 떨었다. 역왈 공용석준우고용지상하야 획지니...... 이른 새벽부터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상체를 흔들며 주역 계사편만을 반복하여 읽고 있던 운룡의 낭랑한 음성이 갑작스레 수다 떨기 시작한 까마귀 소리에 뚝 끊겼다 운룡은 잠시 귀를 기울였다.
반가운 소식이라고? 무슨 일일까? 그는 문을 밀며 마당으로 나섰다. 8월 한여름의 해가 중천에서 강렬한 빛을 내리 퍼붓고 있었다. 매우 눈이 부셨으나 1300여M의 표고 탓인지 그리 덥진 않았다.
그는 온몸을 죽 펴며 크게 기지개를 켜고는 두 손을 입에 모으고 흰구름이 감도는 무수한 봉우리들을 향해 벽력 같은 소리를 질렀다. 야- 하는 소리를 좇아 메아리가 울려 퍼졌다. 뒤따라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어-이 하는 낯익은 목소리가 메아리를 띠고 날아 들었다.
잠시 뒤 땀에 범벅이 된 한 사나이가 암자로 통하는 오솔길을 따라 매우 숨찬 듯 헉헉 거리며 마당으로 들어 섰다. 운룡은 사나이를 보자 반가움에 소리쳤다.
유통사께서 웬일이십니까? 사나이는 한때 통사(통역관)를 지낸 바 있는 유운승으로 운룡과는 형님 아우하는 사이다. 당시 그는 천마동에서 벌 1백여 통을 치는 양봉업자였다. 그는 운룡을 보자, 아우님! 하며 와락 달려 오더니 손을 덥썩 잡았다. 그리고는 얼굴에 줄줄 흐르는 땀을 닦는 것조차 잊고 감격에 찬 눈빛으로 운룡을 지그시 바라본다. 아우님! 이제 살았읍니다. 드디어 해방이 됐어요.
오늘 새벽 일본 천황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대요. 순간 운룡의 눈이 초점을 잃었다. 먼 하늘을 올려 보다가 고개를 내려 휜 구름이 감도는 먼 산봉우리를 주시했다. 얼마나 갈구해 온 해방이던가. 운룡은 뒤늦게 해빙되는 산상의 늦은 봄처럼 자신에게도 늦봄이 찾아 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하나의 자위에 불과한 건지도 몰랐다. 어느덧 인생 여정은 37년이란 시간의 물결을 지나온 것이다
빼앗겨버린 삶의 귀중한 시간을 어디서 상환받을 것인가. 태어난 이듬해 나라의 구속을 의미하는 한일합방을 맞았고 열여섯 살 때 도피 유랑의 첫걸음을 옮겨 만주로 건너갔다. 독립운동에 가담하여 모화산 부대원으로 몇 번의 전투에 참가했다가 일경에 쫓겨 장백산.백두산을 거쳐 묘향산에 깊숙이 은신한 것이 햇수로 꼭 20년째다. 그리고 지난해 여름 일본 경찰의 마지막 발악과도 같은 수색을 피하여 이곳 천마산 영덕사로 옮겨온 것이다.
운룡은 즉시 하산을 서둘렀다. 칩거 20여 년 만의 세상구경이다. 영덕사여-, 천마산이여-, 부디 잘 있거라. 16일 영변으로 충재 김두운 선생을 찾아가 만나고 그곳에서 창성군의 강모씨를 알게 돼 함께 밤기차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의주에서 친구들 세명과 함께 일본인 아이 10여명을 때려 누인 뒤 압록강을 건너 만주로 가서 독립운동에 가담했던 것이 16세 때의 일이니, 그 뒤로 벌써 22년의 세월이 흘렀다.
봉천-> 블라디보스톡-> 백두산-> 묘향산 등지를 전전하며 없는 듯 살아온 20여 년의 숨막히던 세월 이제 해방된 조국은 나의 말을, 나의 지혜의 빛을 결코 막지는 않으리라.
하루빨리 무지로 인해 무고히 죽어기는 수많은 목숨들을 구해야 한다. 보고 듣고 기억하는 세계만이 전부인 것처럼 고집하는 무지한 사람들 이지만 내 민족이고 나의 동포가 아닌가? 어떻게 해서든 한반도의 무궁한 약재를 십분 활용하여 이 땅의 모든 병마를 퇴치해야겠다. 어디로 가시려우? 창성의 강씨는 운룡에게 서울에 도착하면 갈데가 있느냐고 물었다. 안면 있는 동지들이 몇 사람 있긴 하지만 그리 마땅치 않군요.
아, 그럼 잘됐오. 나와 함께 몽양 여운형 선생댁으로 갑시다. 여 선생과는 막역한 사이올시다. 몽양댁에 도착한 것은 17일 점심 시간 무렵이었다. 묘향산의 김동지라는 강씨의 소개가 있었다. 몽양은 두 사람을 반가이 맞아들이고는 흘끔 시간을 보더니 갑자기 표정이 엄숙해진다. 운룡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그는 불쑥 물었다. 동지의 본명이 혹 김운룡이 아니오? 운룡은 왜정때 몽양댁에 선배 동지들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몇 번 다녀간 일이 있어 서로 구면이었지반 지을룡이란 가명을 써왔던 까닭에 본명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그렇습니다만...... 어허 귀한 손님이 오셨군.
방송운 선생께서 벌써부터 눈이 빠지게 기다리시던데. 이튿날 새벽, 몽양의 전화연락을 받고 당대 명의로 이름 높던 송운 방주혁이 몽양댁을 방문했다.
몽양의 소개로 서로 수인사를 나눈 뒤 운룡은 방송운의 승용차에 동승하여 운현궁 곁에 있는 그의 집으로 갔다 방송운은 명의로서 일찌기 순종 때 참의를 지내고 한일합방 이후에는 독립운동자금을 대느라 나라에서 하사받은 전답을 거의 다 팔다시피한 숨은 애국지사다.
그가 운룡을 기다렸던 데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다. 평소 가장 존경해마지 않던 형님의 예언 때문이다. 그에게는 고매한 인품에다 탁월한 식견과 안목을 가져 당시의 식자층에서 방도인 으로 불리운 형님 한 분이 있었다. 그 형님이 해방을 보지 못하고 죽음에 다다르자 임종을 지키던 많은 독립운동가들은 그에게 물었다. 선생님께서 떠나시면 이 나라의 장래는 어떻게 되겠읍니까?
을유년(1945년) 7월(음력) 해방되리라. 해방 이후에는 어찌 될까요? 그 이상은 묻지 말라. 선생님 같은 이인이 과연 또다시 나올 수 있겠읍니까? 모였던 사람들의 대부분은 방도인의 초월적 예지 능력에 한 두 번쯤 놀란 경험을 갖고 있었던 까닭에 물어보는 것이었다.
모르는 소리...나보다 월등한 재주들이 많지. 해방 후 이틀 째 되는 날 묘향산의 김운룡이 몽양 집으로 올 걸세.
그리고 금강산 중 백성욱이 있지 않은가? 모두 천하의 기재들이닌 나라에 큰 일이 있거든 나이를 관계치 말고 물어서 의견을 듣도록 하게나. 방도인은 이어 김운룡의 인물됨과 현재 묘향산에 숨어 살고 있다는 점, 몽양댁에 당도하는 시각 등에 대해 간략히 언급했다.
그러자 궁금했던지 누군가가 재차 물었다. 김운룡은 어떤 인물입니까?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고 삼국지 에 나오는 제갈공명이 그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되너이.
방송운은 형님의 임종 자리에서 들었던 이러한 이야기를 소홀히 넘기지 않았다. 그는 마침내 형님의 예언대로 해방이 되자 몽양에게 단단히 부탁을 하여 이날 운룡을 만난것이다. 운룡은 그날부터 방송운 댁에서 임정요인이 모두 귀국할 때까지 머물며 국내의 거물급 인사들과 널리 사귈 수 있었다. 해방 직후 송진우.김성수.김범부.정인보.장덕수.짐준연.조병옥.장택상. 짐병로 등 많은 애국 지사들이 인사차 방송운 댁을 방문했다. 백성욱박사도 방송운과의 친분이 각별한 까닭에 자주 들르곤 하였다.
운룡은 방송운의 소개로 그들과 자리를 함께 하여 나라의 미래에 관해 의견을 나누고 국민 보건에 대한 자신의 소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조병옥 박사와 이명룡 선생은 특히 친밀히 대해주었고 백성욱박사 역시 운룡을 깊이 신뢰하였다.
백박사는 뒷날 백운계와 최영호를 통해 계룡산 백암동에 우거중인 운룡에게 편지를 보내 모두 세 차례 만남을 갖고 경인년:1950년의 일 에 관한 밀담을 나누기도 한다. 미군정 때와 정부수립 직후에 각각 한 번씩 만나고 경인년 봄 백 박사가 내무장관에 임명된 직후 을지로 1가 내무부 장관실에서 세 번째로 만나 구체적인 대처 방안을 마련했으나 당시 그 계획은 무산되고 만다.
5) 실패한 도전
좌.우 대립의 혼란 속에 세월은 유수처럼 흘러 어느덧 3년이 지나갔다. 1948년 8월 15일, 극적으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직후에 운룡은 3.1 운동 때 33인의 한 분이었던 이명룡 선생의 손에 이끌려 경무대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찾아간다.
이 대통령과 의형제를 맺은 바 있는 최영호도 함께였다. 이명룡은 이 대통령에게 미리 운룡에 관해 이야기해 둔 것 같았다. 그는 대뜸 대통령에게 본론을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의술로 이 민족의 생명을 충분히 구호할 수 있는데 왜 구태여 믿을 수 없는 저들에게 전적으로 국민의 보건을 맡기료 하십니까? 각하께서도 잘 아시리라 여겨집니다만 이 사람 인산(운룡의 호)은 의학에 관해 탁견을 지니고 있으니 한번 그 의견을 들어보셨으면 합니다.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인다. 인산이라면 나도 잘 알고 있읍니다.
나라를 위한 훌륭한 의견이 있으면 기탄없이 이야기해 주시오. 운룡은 국가 보건정책의 기본 방향과 동서의학의 장점을 취하여 우리나라 실정에 알맞도록 새로은 통합의료 기관을 설립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한의과대학 설립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누누이 강조하였다.
실눈을 뜨고 뒤로 의자에 등을 기댄 채 묵묵히 듣고 있던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이며 띠엄띠엄 말문을 열었다. 참으로 훌륭한 생각이오.
그러나 인산! 아직도 여러 가지 면에서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동양 의술에 비해 서양 의술은 눈부신 속도로 발달을 거듭해 왔고 또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발전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속도로 계속 발달한다면 앞으로 우리 극민의 보건을 특별히 염려할 게 없을 것이오. 각하, 서양 의술을 서양 사람들의 전통적 생활방식과 체질에 맞도록 발달한 의술입니다.
식생활과 체질.주거형태 등 모든 면에서 판이한 전통을 가진 우리 나라에서 동양 의술과의 조화없이 서양 의술을 받다들인다면 많은 부작용이 뒤따를 것입니다. 서양 의술의 독주는 이 나라 이 국민에게 불필요한 비극을 가져올 위험이 있읍니다.
잠시 창밖을 응시하던 대통령은 고개를 돌려 운룡을 바라봤다. 불필요한 비극이라 함은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운룡은 침착한 어조로 말응 이었다. 치료 범위가 한정된 의술로 모든 질병을 다스리려 한다면 소생 가능한 숱한 환자들의 생명이 무고하게 희생될 가능성이 있다는 말입니다.
서양 의술은 병의 부분적 치료에 탁월하나 원인치료, 즉 종합적 치료엔 어두운 실정 입니다. 따라서 하나의 병을 치료할 때 또다른 하나의 병인을 만들 가능성이 짙습니다. 대통령은 운룡의 말을 묵묵히 들으며 가끔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내 한가지 물어봅시다. 앞으로 세계 의학이 다같이 지향해 나가야할 목표는 어다에 있다고 생각합니까? 운룡은 마치 그런 질문을 미리 예상이라도 한듯 서슴없이 대답한다. 기계문명의 발달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화공약독에 의해 생명의 원천인 대기중의 종균이 소멸되어 감엥 따라 앞으로 각종 암과 난치병. 괴질환자가 크게 늘어날 것입니다. 따라서 공간 색소중의 약분자들을 합성, 활인핵을 생산하여 암과 난치병.괴질을 퇴치하고 살인핵 무기의 가공할 피해를 가능한 한 줄이도록 다같이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현대 의학의 최대 과제라 생각합니다. 당시 한의학은 전반적으로 부진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데다 양의학의 상륙으로 지리멸렬해 있는 상황이었다. 나라의 보건은 이미 미군정 때부터 뿌리내리기 시작한 양의학에 의해 모두 장악되었과 한의학은 미신의 잡술 정도로 매도당하는 실정이었다.
한의학이 뚫고 들어갈 자리는 거의 없었다. 각하! 양의학으로는 뇌염. 뇌막염. 독감 등 각종 전염병에 대한 예방 및 치료가 미흡한 실정이므로 그 방면에 힘써 봤으면 합니다. 먼저 방역을 통해 전통의학의 권위를 회복시키려는 의도에서 한 말이었다. 최영호와 이시영.이명룡 등이 곁에서 계속 거들엇다.
이 대통령은 운룡의 의술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아는 터였다. 자신이 실제로 보고 경험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지독한 홍콩독감으로 며칠간 고생할 때 주치의의 약을 끊고
최영호를 통해 운룡에게 처방을 물었을 때 운룡은 첩약 두 첩을 지어 보냈었다.
아무리 명의라 해도 설마 이런 지독한 감기가 첩약 두 첩에 나를려고... 대통령은 반신반의하며 그것을 복용했으나 약을 채 다 먹기도 전에 감기는 씻은 듯 물러갔다. 그것은 운룡이 손수 마련한 처방에 따라 지은 영신해독탕이라는 이름의 감기약이다. 생지황을 위주로 하되 대통령의 체질(태음 체질)을 감안, 녹용 5푼을 가미한 것이다. 한번을 또 대통령과 친분이 깊은 이모씨의 손자가 뇌염으로 죽게 됐을 때 운룡의 손에 의해 기적적으로 소생한 일도 있었다. 그때 이모씨
손자가 뇌염으로 쓰러지자 서울대학병원(경성의대 부속병원 후신)에 입원시켰는데 병원에서는 열이 심하다 하여 아이를 얼음속에 담아 두었다. 대통령으로부터 명의가 와 있다는 전갈을 받고 달려온 이씨는 경무대 경찰서에서 운룡이 나오길 기다렸다. 인산! 그 아이를 꼭 좀 살려주시오.
대통령은 거듭 당부했다. 최영호의 안내로 운룡은 아이의 할아버지와 경무대 비서차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아이의 부모를 위시하여 병 고치는 광경을 직접 보려는 많은 사람들이 뒤를 따랐다. 법무장관 이인과 대법원장 김병로, 보건부장관 최제유 등은 특히 관심을 갖고 사람을 딸려 보냈다.
이인과 김병로는 모두 어려서 앓았던 뇌염의 후유증으로 소아마비에 걸려 다리를 절고 있는 사람들이어서 운룡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이들 일행이 병원에 도착하자 병원 내의 많은 의사들도 일손을 멈추고 아이가 립원해 있는 특실로 모여들었다. 다 죽게 된 어린아이를 살리러 온다는 소문이 원내에 퍼진 때문이었다. 아이는 3~4세쯤 되어 보였다.
백방으로 치료하다가 차도가 없자 치료를 포기하고 열이나 식힌다며 얼음속에 담아 둔 것이었다. 운룡은 얼음에 담긴 아이를 보자 의사들을 둘러보며 힐난하낟. 이런무지막지한 사람들......뇌염 앓는 아이에게 얼음찜질을 하다니. 이렇게 하면 뇌와 장부에 냉독이 범하여 혹 살아난다 해도 후유증으로 인해 저능아가 되거나 소아마비 또는 간질을 앓게 되는데...
운룡은 아이를 꺼내어 침대에 눕히고 온몸을 주물러 주도록 했다. 그리고는 동침 하나를 뽑아 정수리의 백회.신회혈 등에 오방 을 놓은 뒤 인중혈에 이어 양손 엄지 손가락으이 소상혈에 침을 살짝 찔러 피를 짰다. 우주의 잠재적 전류가 운룡의 영선을 통해 침을 거쳐 아이에게로 전달되는 순간이었다. 모두들 숨소리조차 죽이며 운룡의 치료 광경을 지켜보느라 일순 정적이 감돌았다.
아이의 두 엄지 손가락을 눌러 한 방울씩의 피를 짜냄과 동시에 으-앙 하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침묵을 깼다. 아이는 눈을 뜨고 의식을 되찾아 버둥거렸다 모여 섰던 사람들은 일제히 박수를 쳤다. 사람들은, 운룡이 집을 떠나 떠돌아 다닐 때 뇌염으로 죽었다고 거적에 싸서 버린 아이를 살려낸 것을 비롯 20여 년간 1천여 명에 달하는 어린이 뇌염환자를 소생시킨 사실을 알 턱이 없다.
운룡이 병을 고쳐주고 박수갈채를 받아 보기는 처음이었다. 매양 죽을 병을 고쳐주면서도 온갖 욕설을 듣기가 일쑤였던 만큼 이날의 감회는 다소 새로운 것이었다. 아이는 이제 괜찮으니 오늘 중으로 퇴원시키시오. 혹시 뒷날 후유증이 생길지도 모르니 저녁 무렵 댁으로 들려서 마저 치료하겠읍니다.
우선 아이를 편히 쉬도록 따뜻한 곳에 눕혀 두시오. 운룡은 그날 저녁 이화장 앞에 있는 상공차관 함덕용씨 집에서 최영호.이명룡.아이의 할아버지와 함께 식사를 마치고 아이의 집을 방문, 콩알 만한 크기의 쑥뜸을 백회혈(50장)과 신회혈(5장)에 떠주도록 일러주었다.
이 대통령은 이런저런 이유로 운룡의 의술에 대해서 익히 알게 되어 그의 재주를 국가보건사업에 십분 활용하고 싶었다. 그는 약정국장을 불러 한국 정부가 자체적으로 방역사업을 할 수 있는가의 여부를 물었다.
국장의 대답은 어려울 것 같다는 얘기였다. 과거에로 미군정청에서 배치한 방역국 고문들에게 그와 비슷한 건의를 했었는데 그들은 한의학도 의학이냐 며 시키는 대로만 하라 로 지시했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약정국장의 설명을 다 듣고 나서 불쾌한 표정을 짓더니 아뭏든 모시고 가서 다시 잘 상의해 보라 고 명했다. 당시 방역대책 위원회의 당연적 위원장은 약정국장이고 위원회에는 수석 고문을 비롯 3~4명의 미국인 고문들이 있었다.
약정국장실 소파에 앉은 운룡의 마음은 착잡했다. 또다른 속박이 자신을 에워싸고 있음을 새삼 절실히 느꼈다. 그는 일제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여 마악 출범하는 해방된 조국에서 자신의 의술을 마음껏 펴고 싶었다.
그러나 타의에 의해 국토가 분단되고 마치 휴화산 같은 비극의 불씨를 안고 있는 한반도의 상황인 만큼 또다른 형태의 속박을 감내해야 했다. 그 와중에서도 정당이다 뭐다 패를 갈라 서로 대립 반목하는 집단들의 작태에 그는 환멸을 느꼈다.
어수선한 시대의 흐름에 휩쓸리고 싶지 않았다. 다만 인류의 질병을 퇴치할 우수한 약을 생산, 제조하고 자신의 의료법을 펴서 나라 안의 모든 질병을 예방 치료하며 나아가 널리 인류의 병고를 해소할 수 있는 여건만 주어진다면 그걸로 만족할 것이었다.
그리고 아직껏 밝혀지지 않은 새로운 약의 세계를 밝히는 일로 먼훗날, 자신이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광복 후 3 년의 나라꼴을 보면 도저히 자신이 발붙일 땅은 없을 것 같았다. 물밀 듯 밀어닥친 서구 문물에 접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내려온 사대를 비판하며 또다른 형태의 사대사상을 다져 갔다.
한의학에 대한 멸시와 양의학에 대한 숭배도 그러한 현상의 일면으로 볼 수밖에없었다. 엄격히 따지자면 한의학도 양의학도 아닌, 다시 말해 동양 의술도 서양 의술도 아닌 전인류를 위한 운룡의 독창적인 범세계적 의술도 우리 것 이므로 도매금으로 멸시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또다시 높고 견고한 겹겹의 장벽이 앞길을 가로막고 있음을 느꼈다. 문이 열리며 몹시 거드름을 피우는 두 명의 미국인이 들러섰고 두 명의 우리 나라 사람이 뒤따라 들어왔다. 좌정이 끝난 후 국장은 그들에게 낮은 소리로 일련의 무슨 설명을 했다.
그리고 운룡에게도 그들을 소개했다. 두 명의 미국인은 방역대책위 수석고문과 고문이고 두 명의 한국인은 보건부의 다른 국장과 실무자라고 했다. 무릎을 포개고 거만한 자세로 뒤로 기대어 앉은 수석 고문이, 운룡의 모습을 아래 위로 훑어 보고 나서 묻는다.
우리말을 꽤 잘하는 편이었다. 그럼 마년 당신네 나라에서 많은 어린이가 걸려 불구가 되거나. 혹은 죽게 되는 뇌염에는 어떤 치료 방법이 있읍니까? 운룡은 목소리를 가다듬어 침착한 어조로 답한다.
세 첩의 첩약으로 족하오. 침과 뜸을 겸하면 효과도 빠르고 완전무결하게 치료되지요. 수석고문은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반문했다.
첩약 세 첩으로 족하다구요? 그렇소 천마탕 이라는 약이오. 처음부터 잔뜩 조소를 머금고 운룡의 말을 듣고 있던, 또다른 미극인 고문이 둘의 대화에 끼어 들었다. 실제로 고쳐 본 일이있읍네까? 뇌염으로 죽었다고 거적에 싸서 버렸던 아이를 되살린 것만 해도 천 명이 훨씬 넘을 게요. 첩약으로 말입네까? 일본 경찰에 쫓겨 다니던 몸에 무슨 첩약이 있었겠소.
모두 동침 하나로 살린 거요. 수석고문의 입가에 야유하는 듯한 조소가 번졌다. 쇠꼬챙이로 찔러 뇌염 환자를 고쳐요? 이보십쇼. 쇠꼬챙이로 사람을 찌르고 불로 살을 지지며 나뭇껍질 풀뿌리를 삶아 먹이는 것도 의술입네까? 그런 야만적인 방법으로 어떻게 사람의 병을 고친단 말입네까? 그런 거짓말 마십시오! 순간 운룡의 얼굴에 노기가 가득 서렸다. 그의 가늘고 긴 눈에서 새파란 불꽃이 일었다.
쇠꼬챙이라니. 이 개만도 못한 자야! 그럼 꼭 살릴 자신도 없으면서 툭하면 칼로 사람의 배를 가르는 것은 문명인의 의술이더냐? 메스가 한번 가해질 때마다 그것을 타고 체내로 들어가는 공간의 전류가 인체조직에 어떤 해를 얼마만큼 입히는지를 너희들은 짐작이라도 하느냐? 동양 의학은 눈에 보이는 세계만을 고집하는 너희들의 머리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니라! 말을 마친 운룡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어안이 벙벙해 있는 그들을 거들떠보지고 않고 휘적휘적 걸어 나갔다.
일제 치하에서 그들에 의해 철저히 구속된 삶을 살다가 해방된 조국에서 또다른 속박에 의해 손발을 묶인 자신의 운명은 곧 반도의 운명, 그것이었다. 자, 돌아가자. 우주의 뜨락이 황폐해져 가노니...가서, 저 광대무변한 신약의 세계를 열자 신약의 밭을 일구자. 계룡산 백암동의 허름한 움막으로 향하는 운룡의 발걸음은 도리어 가벼웠다.
6) 70세 넘어 눈 뜬 소경 할머니
산 채로 화장해도 이보다 더 뜨겁지는 않으리라. 운룡은 뜨거움이 잠시 누그러진 틈을 타서 눈을 뜨고 희미한 등잔불 빛에 희뿌옇게 드러나 보이는 천장을 응시한다.
방안 가득 연기가 자욱하다. 아내와 아이들은 연기 때문에 호흡이 불편한 지 이따금 코를 킁킁대며 몸을 뒤척인다.
고개를 돌려 시계를 본다. 새벽 1시다. 저녁을 머거고 잠시 집 뒷뜰을 산책 하고 나서 8시쯤 시작을 했으니 5시간은 한 듯 싶다. 이제 마지막 1장이 남았다. 그것은 지금까지 떠온 것 가운데 가장 큰 것이다.
오늘 5시간 뜬 것 중에서도 그렇지만 5년 동안 해마다 떠온 뜸장 중에서도 최대의 것이리라. 방바닥에 놓여 있는 산 모양의 뜸장은 달걀과 비슷한 크기였다. 조금 전에 뜬 것도 30분 가량 탔으니 저것은 몇 분이나 더 탈까? 불이 꺼진 든 싶다. 누운 채로 고개를 들어 아랬배를 본다.
성냥가지로 불꺼진 재뭉치를 쪼개자 잿속에서 팥알만한 잔화가 보이다가 이내 꺼졌다. 마지막 뜸장을 집어 들었다. 배위의 뜸재 중간 허리를 잘라 윗부분을 밀쳐버리고 남은 재위에 살푼 올려 놓았다. 성냥을 그렀다. 잠시 불꽃이 일어 어둠을 사른다뜸장 꼭대기에 불을 붙였다.
한줄기 연기가 치솟아 천장에 이르자 안개처럼 퍼지면서 뭉게구름이 되어 우주의 공간을 가득 메운다. 연기는 무럭무럭 피어오른다. 저마다 자기를 밀어달라고 조르는 정치가들의 치근덕거림임 귀찮아 서울을 떠나 이곳으로 깊숙이 들어온 지도 어언 5년이 되어간다.
서둘러 떠나오느라고 거의 맨손으로 심심산골 함양에 도착한 것이 지난 56년 무렵. 그곳에서 알게 된 사람들의 난치병도 고쳐주고 묘자리도 잡아준 덕택으로 몇 달 도음을 받으며 살았으나 사람의 마음이란 한결같기가 어려운 모양이다.
날이 갈수록 달라지는 사람의 마음 에 비애를 느끼며 눈물짓는 아내와 다섯 살 난 큰아이, 돐 지난 둘째를 이끌고 명에서 30리쯤 떨어진 산속 마을 이곳 살구쟁이로 온 것이다. 허망된 육신에서 솟는 마음에 의지하여 사는 사람들과 무슨 말을 더하랴. 또다시 빈털털이로 들어온 까닭에 처음 오던 날, 그날 저녁 식사는 날밤을 주워서 해결하고 어느 집 헉간을 빌어 하룻밤 유숙했다.
이튿날 터를 닦고 천막을 쳐서 임시 거처를 얽어 놓고 그날부터 지금까지 줄곧 함지박을 파서 5일 마다 서는 함양장에 내다팔아 가까스로 생계를 꾸려 왔다. 함지박을 깎는 기술은 신당골의 박씨에게 배운 것이다. 살구쟁이 인근 숲속에서 밤을 줍고 있을 때 나무찍는 소리가 나서 가보니 허름한 옷에 체구가 작은 50대 남자가 자귀로 나무그릇을 깎고 있었다.
큰나무를 잘라서 토막낸 뒤 여러 가지 유용한 그릇듥을 만드는 과정을 반나절쯤 지켜보고 나서 그릐 연장을 빌어 함지박 하나를 깎아냈을 때 그는 무척이나 신기해 하였다. 몇 달 되지 않아 함양장에 나가면 운룡이란 이름 대신 김함박 이란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그의 함지박은 유명해졌고 따라서 박씨의 그것보다 월등 비싼 값을 받을 수 있었다. 나흘간 함지박을 깎아 지게에 지고 30리 길을 걸어나가 장애 판 뒤 그 돈으로 닷새 먹을 쌀과 식량을 사서 짊어지고 오는 단조로운 생활 속에 어느덧 5년이런 세월이 흘러갔다.
고개를 들어 아랫배 쪽을 바라본다. 뜸장 전체가 불덩어리로 변하면서 뭉게 구름처럼 피어오르던 연기는 더이상 오르지 않았다. 뜨거움이 왈칵 더ㅠ친다. 눈을 감았다. 아랫배로부터 번지는 더없는 뜨거움에, 경직된 육신은 가느다란 경련을 일으킨다.
오직 뜨거움뿐이더니 그것도 잠시뿐, 뜨거움은 사라지고 천산이 짓누르듯 고통만 계속된다. 고통이 마음을 지배하다가 고통의 마음은 이내 온 우주에 가득해진다. 우주 전체가 그저 고 한가지일 뿐이다. 고통......고통......고통......고통......광대무변한 시방 삼세가 삽시간에 텅 비고 다만 하나의 고통만이 눈덩이처럼 계속 부풀더니 마침내 온 우주를 삼켜버린다.
한동안 어두컴컴한 침묵이 흐르고 나서 텅빈 공간에 조그만 불빛 하나가 반짝이며 다가왔다.그 빛은 차츰 커지더니 마침내 거대한 광명덩어리, 뜸장의 연기가 빠져 나가듯, 우주를 지배하던 거대한 고통의 뿌리가 뽑혀 아득히 운해 저편으로 사라진다. 그와 동시에 고통의 심연 저 깊은 곳에서 샘솟는 묘한 열락에 홀연 도취되어 버린다. 이윽고 근원을 알 수 없는 무한한 희열에 젖어 학의 깃털보다 눈부신 흰구름의 바다를 마냥 둥둥 떠다닌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극심한 고통의 심연에서 도리어 무한한 열락이 샘솟다니. 철저한 고통에서 오는 열락. 고통과 열락의 뿌리는 아나인 것이다. 지금까지 한번도 느껴본 적 없는 오묘한 희열이었다. 지금 이 자리는 고금동서 어느 황제의 어떤 보좌보다도 훨씬더 안온할 게다. 열반락은 이런 경우를 두고 이른 말인가.
육신의 탈을 쓰고 나온 인간이라면 누구나 어쩔 수 없이 존재의 근원적인 고통을 지니고 살게 마련이다. 육신에 머무는 동안 안락은 실로 순간에 그치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고통의 극치점에서 만난 열락은, 일시적이고 단절적인 세속적 즐거움과 결코 비교할 수 없는 숭고한 것이었다. 존재의 저 깊숙한 심연에서 만난 희열은, 말로는 무어라 형용하기 어려운 일면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다! 드디어 나는 길을 발견하였다. 걸어서 구름 위로 올라가기 보다 더 어려운 향상의 대도를 나는 보았다. 그 향상의 대도를 쫓아 가는사람은 이 세상 어떤 질병도, 고통도 결코 구속할 수 없으리라. 병이 있는 자는 병이 낫고 몸이 불구인 자는 불구를 고치며 구도자는 마침내 영명 대각을 이룰 수 있다. 바탕만 있으면 얼마든지 본래의 기능을 회복할 수 있는 중묘의 집합처가 바로 인체다.
안구가 있으면 소경도 눈을 뜰 수 있고 팔.다리의 발육이 좋지 않은 상태로라도 붙어만 있으면 앉은뱅이도 얼마든지 다시 정상인으로 회복된다.
다만 문제는 과연 어떤 사람이 산 채로 화장하는 것만큼 뜨거운 고통을 참고 견디어 그 고비를 넘길 수 있을 것이냐는 점이다. 차라리 그런 고통을 안 받고 소경인 채로, 앉은뱅이이 채로, 또는 병든 그대로 사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 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뜸장에 불을 붙인 지 35분이 지났다. 구름이 걷히듯 아랫배를 뒤덮고 있던 상쾌한 느낌들이 서서히 밀려 나간다.
뜸재를 쪼개자 불이 막 꺼지는 것이 보였다. 운룡은 상체를 약간 일으켜 벽에 기대고 다시 뜸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체내에 있는 깊숙한 고통의 뿌리가 모두 뽑힌 듯, 뜨는 동안 계속 열락의 시간이 흘러갔다. 새벽 닭우는 소리가 들리고 이어 먼동이 훤하게 터올 무렵에야 운룡은 배위의 뜸재도 쓸어내지 않은 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60년 6월. 운룡이 상결하여 서울 친지의 집에 머물자 전국 각처로부터 어려운 병 잘보는 사람 이라는 소문을 듣고 그를 찾는 사람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운룡이 주교동에 있는 김의환이라고 하는 친구의 집에 머물 때였다. 한 여인이 찾아와 자신의 병을 고쳐 달라고 간곡히 애원하였다. 척수염을 앓다거 허리가 굽어져 앉은뱅이가 됐다는 것이다.
한 가지방법이 있긴 하지만 극심한 고통이 따르는데 괜찮은가? 여인의 얼굴에는 순간 밝은 빛이 감돌았다.
병만 고칠 수 있다면 무슨 짓인들 못하겠읍니까 선생닙! 저는 남편과 시댁 식구 보기가 민망해 극약을 먹고 죽어버리려고 시도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고통이 아무리 심하다 해도 설마 죽는 것 보다야 덜하겠지요...... 운룡은 그 여인에게 관원과 족삼리혈에 뜸을 뜨도록 방법을 일러주었다.
그녀는 모진 마음을 먹고 쑥뜸을 뚜더니 60여 일 만에 허리가 펴지기 시작하자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계속하여 1백 일도 안 돼 자신의 힘으로 일어설 수 있게 되었다. 이듬해인 61년 7월 광나루 부근의 절에 사는 어대사라는 소경이 운룡을 찾아왔다. 그는 17세 때 열병을 앓다가 시신경이 끊어져 소경이 된 사람이었다.
소경이 된 직후부터 어대사는 절에 가서 자신의 시력을 되찾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처님께 정성어린 기도를 올리며 30년을 보냈다. 그 무렵 만 30년의 기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자 어대사는 절망감에 빠져 실의에 찬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 날 절에서 하룻밤 머물고 떠나는 객승 한 사람이 어대사의 사연을 듣고는 지나가는 얘기처럼 한마디 던졌다.
여보! 죽은 부처 에게 눈 뜨게 해달라고 기도한다고 해서 무슨 영험이 있겠소. 내 들으니 묘향산의 산 부처가 서울에 나타나 앉은뱅이를 서게하고 벙어리를 말하게 했다 합디다. 한번 가보시구려. 어대사는 귀가 번쩍 뜨였다. 그는 깊숙한 곳에서 잠자던 무한한 생명력이 창공을 솟구치는 새처럼 솟아오름을 느꼈다.
그게, 그게 정말입니까? 대체 당신은 뉘시오? 그리고 그 산부처님은 서울 어디에 계신단 말입니까? 나도 들은 얘기니 자세히 알 수는 없소만 을지로 4가 부근의 어느 사탕공장이라 합디다.
그 부근 가서 물어보면 알 테지요. 어대사는 물어 물어 천신만고 끝에, 마침 종로 5가 시중 한의원에 옮겨가 있는 운룡을 찾아온 것이다.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이 따르는데 괜찮겠소? 제게는 고통 따위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못합니다. 30년을 하루같이 부처님께 기도하였더니 천신의 인도로 오늘 이렇게 살아있는 부처님을 뵙게 됐나 봅니다. 무슨 일이든 가르침대로 하겠사오니 꼭 일러주십시오.
다시 한번 제게 광명을 주십시오. 대사는, 공간 색소중의 빛의 원료를 호흡으로 흡수는 하면서도 그럿을 정작 광명으로 바꾸는 기능이 마비된 까닭에 어둠 속에서 사는 것입니다. 하나 대사의 어둠과 눈뜬 사람의 어둠은 별차이 없는 다같은 어둠이니 진정한 광명은 육안의 한정된 광명 테두리를 벗어날 때 비로소 자능해지는 법입니다. 단전에 5분 이상 타는 쑥뜸을 뜨면 영력의 묘로 호흡을 통해 들어오는 색소 중의 빛의 원료를 광명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오. 그러면 육안은 어렵지 않게 뜰 수 있을 겁니다.
운룡에게 뜸뜨는 자리와 방법 및 금기사항 등을 듣고 간 어대사는 40일 동안 쑥뜸의 고통과 사운 끝에 마침내 잃었던 빛을 되찾았다. 그는 그뒤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손수 찾아다니며 소경 7명의 광명을 되찾아주고 10년뒤 세상을 떠난다.
한 사람의 눈을 띄울 때마다 운룡을 찾아와 상세히 경과를 설명하면서 함께 기뻐하곤 했다. 소경 어대사가 눈을 떴다는 소문은 사람의 입으로 입으로 전해지고 어대사에 의해 강원도의 한 소경이 또다시 눈떴다는 이야기가 장안에 파다할 무렵이었다.
어느 날 마포 산다는 한 젊은 부부가 운룡을 찾아와 간곡하게 청을 하였다. 선생님! 저의 어머니 마지막 소원입니다. 부디 왕림해 주시기를 다시 한번 간청드립니다. 운룡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 사람들아! 자네들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가네만 태어나면서 부터 소경인 데다 나이가 70이 넘었는데 염라국 최판관이라 한들 그럿이 가능하겠 가?만나 보면 서로 마음만 아플 테니 아예 그만두세. 젊은 부부는 더 간청해도 소용 없을 것 같자 잠시 뒤 물러나 돌아갔다. 그런데 석양 무렵 이들 부부는 또다시 운룡을 찾아와 사정을 하였다.
저희가 아무리 말씀을 드려도 어머니는 막무가내입니다. 목소리만이라도 듣는 것이 소원이라 하니 어려우시겠지만 저희 집에 한번 행차해 주십시오. 부탁입니다. 마포에 있는 그들의 집안에 들어서자 문 열리는 소리를 듣고 쫓아 나오는 할머니가 보였다. 애들아! 모셔왔느냐? 선생님을 모셔 왔느냐고? 어허! 노인도......망녕이 드셨구려? 운룡이 웃음 섞인 목소리로 농담을 건네며 그들을 따라서 실내로 들어갔다.
저녁 식사를 준비한다, 차를 끓인다. 집안은 분주했다. 운룡은 할머니의 기대를 포기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한마디 했다. 여사님께서는 70이 넘게 유복한 생활을 했으면 족하지 이제 또 무엇이 아쉽다고 눈을 뜨고 싶어 하시오. 또 설혹 눈을 뜬다 해도 몇 년이나 더 사시겠다고 고집을 피우시는 겁니까? 그 할머니는 운룡의 말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자기 하고 싶은 말부터 불쑥 묻는다. 선생님! 아무려나 다 좋습니다.
선생님께선 벌써 여러 사람들의 눈을 띄워주셨다던데 여기 이 늙은이의 눈도 띄워 주실 수 있겠지요? 저도 이렇게 동자가 멀쩡하지 않습니까? 선생님, 제게도 눈을 볼 수 있는 은혜를 베푸시는 거지요? 가능하기만 하면 저는 뭐든 다 하렵니다.
길이 있다면 하다가 설혹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로 후회도 원망도 않겠읍니다. 운룡은 난감했다. 분명히 가능성은 있는 일이지만 73세의 노령에 그 고통은 어찌 견딜 것이며 또 그 어려움을 이기고 눈을 뜬다해도 얼마나 더 살겠느냐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그 할머니는 거의 필사적이었다.
선생님 저는 이날 이때껏 듣기만 들었지 밝은 빛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읍니다. 제 가슴 속에 맺힌 한을 풀어 주십시오. 단 하루만 살고 죽어도 좋으니 제발 밝은 세계를 한번만이라도 보게 해주십시오.
이 늙은이의 마지막 소원 입니다. 시종 눈물을 흘리며 하소연하는 할머니의 넋두리를 듣고 있던 운룡은 단호하게 말문을 열었다. 좋습니다.
한번 해보십시오. 그러나 극심한 고통이 따르는 것은 감내를 하셔야 합니다. 그날 저녁부터 그 할머니의 쑥뜸 정진은 여느 젊은이들보다도 더 무서우리만치 강행되었다. 한 장당 5분 이상 타는 것으로 하루 평균 50여 장씩 뜨는 초인적 의지력을 보였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배위에 불을 놓고 산 40일이었다.
그 할머니는 이제 거의 털진되다시피 지쳤다. 성한 사람도 그렇게 20일 정도 계속하면 배겨날 사람이 없을 텐데 70노인이 그 갑절인 40일을 뜬 것이다. 할머니는 그래도 쑥뜸법을 신의 계시인 양 굳게 믿고 뜸뜨는 일을 조금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살은 거의 모두 빠지고 기력도 소할 대로 쇠했으나 꼭 눈을 뜨고야 말겠다 는 집념은 아직도 꺾이지 않은 채 허물어져가는 육신을 힘겹게 버텨내고 있었다.
저러다가 명대로 못살고 돌아가실지 모른다. 가족들은 회의를 한 끝에 운룡을 모셔다가 할머니를 설득시켜 쑥뜸을 중단시키도록 하자는 결론을 얻었다.
41일째 되는 날 아침, 젊은 부부는 또 다시 운룡을 찾아가 그간의 경위와 할머니의 처절한 사투를 설명하고 나서 쑥뜸을 중단시켰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개진하였다. 운룡은 직접 그간의 경과도 살펴볼 겸 그들과 함께 할머니를 만나러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아들 부부가 운룡의 집을 방문하여 쑥뜸을 중단시켜야겠다는 말을 할 무렵, 아침 잠에서 깨어난 할머니는 지친 몸을 이끌고 베란다에 기대어대문쪽으로 얼굴을 향하고 있었다. 이때였다. 할머니의 눈에, 반쯤 열린 대문으로 청소부가 쓰레기 치우러 들어오는 모습이 희뿌옇게 어른거리며 보였다.
여보게! 자네 쓰레기 치루러 오는가? 평소 이 할머니가 소경이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는 청소부는 깜짝 놀랐다. 할머니는 웬 귀가 그렇게 밝으십니까? 자네 거 손에 들고 있는 건 뭔가? 예? 이거 삼태기 말입니까? 청소부는 평소와 사뭇 다른 할머니의 이상한 태도에 눈이 휘둥그래져 반문했다. 응, 그걸 삼태기라고 하는 거여? 아니 할머니, 정말 이것이 보이십니끼? 그제서야 할머니는 비로소 자신의 눈이 보인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란다.
아니, 정말, 정말 보이는구나! 대문이 반쯤 열려 있고 마당 구석에 나무 한 그루가 서있고 하늘에 흰 구름이 흘러가고......아! 하느님. 신이시여! 할머니는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두 팔을 벌리고 마당으로 나와 하늘과 땅을 번갈아 보며 두리번 거리더니 땅바닥에 털썩 주저 앉는다. 그러더니 두 팔을 번쩍 들었다가 땅에 내리치며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이런 밝은 세계가 있다니......이런 아름다운 세계가 있다니...
아이고......아이고...... 할머니의 통곡소리에 동네 사람들이 그 집 마당으로 모여들었다. 아들부부와 운룡이 그곳에 도착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어머니, 왜 이러십니까? 할머니는 울음을 뚝 그치더니 아들의 얼굴을 샅샅이 살펴보고 나서 와락 끌어 안는다. 네가 내 아들이내? 진정 내 아들이란 말이냐...... 내가 네 얼굴을 볼 수 있다니...... 할머니는 또다시 땅을 치며 울기 시작했다.
7) 오핵단과 열리는 신약의 세계
혈액은행 건물은 대낮에도 으시시할 정도로 분위기가 스산하다. 대지 2백 여평에 연건평 60여명의 2층 건물은 흡사 괴물처럼 도심에 버티고 앉아 무슨 흉계라도 꾸미는 소굴같은 인상이다. 마당 한 구석의 병든 감나무에는 떨어지고 남은 나뭇잎 몇 개가 볼썽사납게 매달려 있다. 운룡이 이 집을 3년 시한부로 빌어 들어온 지도 어언 2년이 차간다. 운룡의 나이 63세,그도 이제 휜 머리가 군데군데 피기 시작했다.
육신의 나이테는 어쩔수 없는 건가. 마의 소굴 같던 이 집도 운룡이 이곳에 온 뒤로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던 탓인지 한결 밝고 부드러워진 편이다. 어디를 가든 그가 머무는 곳에는 사람들, 더 정확히 말해 환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어디서들 듣고 찾아오는지 전국 방방곡곡에서 용하다는 소문을 좇아 찾아오는 사람들의 숫자는 어림잡아 하루 평균 5~6명씩은 된다.
운룡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얼굴에 짙은 죽음의 빛깔을 띤 중환자들이다. 병원이란 병원, 의원이란 의원은 다 찾아다니며 안해본 짓이 없는 환자들. 운룡의 주처는 그들이 마지막으로 한가닥 희망을 걸고 찾아오는 피안길 나루다.
운룡은 참으로 딱했다. 그는 나라의 보건 책임자도 아니고 병원의 어떤 직책을 가진 사람도 아니며 더구나 나라로부터 자격을 부여받은 한의사도 양의사도 아니다. 재산도 명예도 없고 그것 없으면 살기 힘든 백 마저 없는 야인이요, 다만 서민의 한 사람일 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을 찾아와 울며불며 막무가내로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것이다. 때로는 답답한 나머지 울음 섞인 하소연을 웃음으로 넘겨 버리기도 한다. 다 죽게 된 사람을 나더러 무조건 살려 달라구? 그래, 내 염라국에 가서 최판관한테 부탁해보지.
살릴 가능성이 있을 때 찾아오지 않다가 병원이고 한의원이고 가는 곳마다 가망이 없다고 하면 그제사 찾아오는 사람들. 어떤 때는 밉기도 하지만 막상 사귀의 세계를 모른 채 죽음을 두려워만하는 그들의 얼굴을 대하면 그저 불쌍할 따름이었다. 다행히 처방을 일러주어 살아나면 그 뒷소식은 알 길 없고 죽거나 이상이 생기게 되면 원망을 사는 일이지만 운룡은 그래도 그 일을 포기할 수는 없다.
나의 이웃에 살고 나와 인연이 닿는 사람들만이라도 가능한 한 병액으로부터 구해 내자. 전국 각지의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의술의 혜택을 베풀기 위해서라도 그는 한 곳에 오래 물 수 없었다. 방랑은 아마도 그에게는 숙명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16세에 집도 떠나 독립운동을 한다고 만주 벌판과 심산유곡을 넘나들며 집도 절도 없이 떠돌아다닌 것은 동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함께 겪은 일인 만큼 따질 필요가 없다. 그러나 광복 후 가정을 가진 이후에도 운룡의 방랑은 끝없이 계속되었다.
광복 이후의 이사 다닌 횟수만도 줄잡아 70번은 넘으리라. 따지고 보면 지금 살고 있는 옛 혈액은행 건물에서 가장 오래 머물고 있는 셈이다. 들어올 때부터 먼저 살던 전소유주가 집을 완전히 비워주지 않아 전혀 문제가 없지는 않으나 벌써 2년이 되어가는 것이다.
다 낡은 집이라도, 넓은 덕에 지방에서 올라온 각종 암과 난치병 환자들은 한 구석씩 차지하고 아예 누워 살기가 예사다. 차라리 그들을 안 보면 마음이 덜 괴로울 텐데 곁에서 신음소리를 내며 누워 있으니 여간 답답한 것이 아니다.
더구나 토산 웅담.사향 등 쓸 만한 약재들은 점차 소멸되어 가는 형편이고 보면 염라국을 드나 들며 죽은 자를 소생시키는 재주가 있다한들 어찌하랴. 게다가 생사의 갈림길에서 죽느냐 사느냐를 판가름내는 약재에조차 상업혼은 구석구석 깃들어 있지 않은가? 이익과, 약이 약다운 것과는 필연적으로 모순을 안게 마련이다.
위급한 생명을 다루는 의사들도 입원수속을 안한 환자들의 치료에 선뜻 나서기를 꺼리는 세상인데 무슨 말을 더 하랴. 그러한 현상을 엄밀히 분석 하자면 병원이, 돈벌이를 위해 있는 건지 국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안가는 일이다.
아뭏든 그래도 한가닥 희망을 걸고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이나 무슨수를 써서라도 그들을 살리고 싶었다. 운룡의 기본적인 의사관은 7살 때 처음 사람의 목숨을 살려주기 시작한 이래 지금껏 조금치도 변하거나 퇴색하지 않았다. 힘이 닿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 살려보자. 운룡은 그동안 쌓였던 티검불 같은 약간의 재산들을 남김 없이 털어내어 약을 제조하기 시작했다.
집에서 개 10마리를 기르고 도봉산 기슭에서 돼지와 닭을 사육했다. 깨에게는 인삼가루를 밥에 섞어 먹이고 돼지에게는 부자가루를 사료에 섞어 길렀다.
남한산성 부근의 뱀수집상에게서 독사와 구렁이를 수백 마리씩 사다가 구더기를 내어 닭에게 먹였다. 허름한 혈액은행 건물은 제약공장 본부였다.
운룡은 손수 자식들을 거느리고 동분서주했다. 이웃집에서는 개똥냄새가 심하다고 날이면 날마다 투덜거리며 욕설을 퍼붓는다. 독사 구더기는 자칫 밤사이에 모두 달아나기 일쑤여서 광목을 끊어다가 일일이 감싸 놓았다.
1년쯤 지나자 독사구더기를 먹은 닭은 머리털이 빠져 흉칙한 몰골로 바뀌었다. 그러나 다른 닭들과 싸움을 하면 힘과 용맹이 월등하여 늘 이기곤 했다. 운룡은 2~3년전 서울 근교 화전에서 염소 15마리에 음양곽을 먹여 기르다가 14마리가 죽고 한 마리만 살아남아 그것의 에끼스를 뽑아 보관해 두었었다.
그리고 오래 전에 약을 먹여 기른 집오리의 에끼스도 보관해왔다. 이번에 기른 개.돼지.닭을 모두 잡아서 간만을 따로 모아 그것을 말린 가루에 염소.오리의 에끼스를 섞고 토종꿀로 반죽하여 하나의 알약으로 만들었다. 20여 개의 알약을얻었다.
이무렵 폐암을 앓는 한 젊은이는 병 치료에 전가산을 탕진하다시피 한뒤 운룡을 찾아왔다. 운룡은 선뜻 알약 하나를 주며 씹어 먹도록 했다. 그 젊은이는 채 사흘도 지나지 않아 병세가 좋아지고 얼굴에 홍조가 돌기 시작하였다. 대학 부속병원에서 간암 진단과 함께 6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한 사업가는 자기 병을 고쳐주는 이에게 자기재산의 절반을 주겠노라며 사람을 보내 애원했다.
알약 세 개를 보내 복용토록 하니 7일 만에 완전히 회복되어 그는 재검진을 받아 보았다. 아무 이상이 없이 건강 해졌다는 결과가 나왔다. 아마 앞서의 검진이 오진이었을 겁니다. 약을 먹는다고 해서 암이 낫는 법도 있읍니까? 담당 의사의 말이었다. 환자를 잘 아는 한 젊은 의사가 운룡에게 정중히 청했다. 선생님, 그 알약을 제게 조금만 주시겠읍니까? 제 나름대로 성분 분석을 해볼까 합니다.
그 젊은 의사는 며칠 뒤 성분 분석결과를 갖고 운룡을 찾아왔다. 그는 물론 개인적 호기심에서 분석을 시도한 것이었다. 선생님, 그 알약을 암을 고칠 만한 아무런 성분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동물성 지방질이 주성분이더군요. 그럼 내 한가지 묻겠네. 자네를 움직일 수 있게 하는 힘의 성분은 무엇인가? ...... 사람의 눈물을 분석하면 무엇이 나오는가? 그야 산소와 수소로 나타납니자.
그렇다면 그 눈물이. 어머니가 자식을 위하여 흘린 사랑의 눈물인지. 배신당한 여인이 남편을 향해 뿌리는 증오의 눈물인지는 어떤 방법의 분석을 통해 알 수 있는가? ...... 분명히 한계를 가진 과학으로 이 세상만사를 모두 재려 한다고 핵서 마음처럼 재어 지겠나? 여전히 부드러운 운룡의 말에 젊은 의사는 앉은 자세를 고치고 정중히 묻는다.
선생님 그 약은 어떤 것입니까? 자네는 우리나라의 인삼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것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 있나? 물론 들었읍니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토양의 특색 때문이 아닐까요? 그리 생각하는 게 보편적이지. 허나 그것도 그것이지만 또 하나의 중대한 원인이 있네. 바로 한반도 상공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은 양의 산삼분자가 밀집되어 있기 때문이야......자기가 볼 수 없고 알 수 없는 세계를 쉽게 부정해버리는 게 보통 사람들의 속성이니 어쩌겠나? 일반 사람들이 짐작할 수조차 없는 세계를 아는 사람이, 도리어 미친 사람 으로 취급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몰랐다.
이해할 수 없는 세계의 이야기를 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으니까. 처음 들어보는 이상한 이야기에 젊은 의사는 더욱 관심이 끌리는 듯 또 묻는다. 산삼분자와 그 알약은 어떤 관계가 있읍니까? 공간 색소중의 산삼부자.부자분자 등의 약분자를 합성 해 만든 것이 바로 그 알약이라네. 나는 그것을 오핵단이라 부르지. 오핵단이란 무슨 뜻입니까? 공간 색소 중의 약분자들을 합성해 낼 수 있는 기계는 현재 없다네. 아마 앞으로 백년 이내에는 개발이불가능할
걸세. 광대무변한 우주의 세계로 시야를 확대해 보면 오늘의 과학기술은 어린아이의 장난일 뿐이라네. 그래서 비록 원시적이긴 하지만 부득이 다섯 가지 동물의 생명현상을 이용하여 색소 중의 약분자들을 동물의 간에 응축 시키고 그것을 모아 알약을 만들었으므로 오핵단이라 이름 붙인 것이지.
젊은 의사는 자신이 잠시 이 지구를 떠나 광대무변한 신비의 세계로 유영하는 것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운룡의이야기에 심취하였다. 그럼 핵이라는 것은 단순히 동물의 간을 지칭하는 말입니까? 이 세상에서 한번도 들어볼 수 없었던, 운룡의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이야기는 끝없이 펼쳐진다.
자네도 알다시피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서양인들은 가공할 살인핵 무기를 개발했네. 2차 대전 때 그에 의해 무수산 목숨들이 스러져 갔고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그것의 피해를 입지 않겠는가? 그러나 자연은 사람을 다 죽도록 하지는 않는 법(천무진살지리), 음지가 있으면 반드시 양지도 있지. 숙살지기가 지배적인 서양에서 사람을 죽이는 살인핵이 나왔으니 생기가 충만한 동양에서 핵독은 물온 암 등 최고의 난치병들을 치유할 수 있는 활인핵이 개발되는 게 당연하지 않겠나? 핵이란 말은 그런저런 함축된 의미를 갖고 있다네.
오핵단의 제조와 때를 같이하여 운룡을 찾는 환자들의 수는 부쩍 늘어났다. 저승의 피안으로 가는 나루터인 양 죽음을 목전에 둔 환자들의 발걸음은 사방에서 꾸역꾸역 모여 들었다. 초겨울로 접어들면서 운룡에게 본채를 비워달라는 전소유주의 요구가 더욱 잦아졌다. 본래 그집은 외환은행 소유로 되어 있는 집이었다.
은행장이 자신의 아버지의 친구라는 점을 감안하여 매각을 3년 뒤로 미루고 운룡을 살도록 배려한 것이다. 운룡이 처음 그 집으로 옮겨 갔을 때 전소유주의 아들들은 그 집에서 완전히 떠나지 않고 몇 개의 방을 차지한 채 살고 있었다. 곧 떠난다기에 별 말 없이 지냈는데 세월이 지남에 따라 그들은 떠나기는 커녕 태도를 돌변하여 운룡에게 자신들이 본채를 써야겠으니 바깥 채로 옮겨달라고 떼를 쓰는 것이었다.
운룡은 어느 날, 그들을 불러 앉혀 놓고 호되게 꾸짖은 다음 또 다시 그런 쓸데 없는 생떼를 쓰면 집달리를 시켜 모두 쫓아내버리겠다 고 엄중히 경고하였다. 그들은 밖으로 나와 운룡이 있는 방안 쪽으로 정 그렇다면 우리도 생각이 있다 는 말을 내뱉고는 며칠 동안 어디론가 자취를 감췄다.
하루는 허름하게 차려 입은 한 아주머니가 찾아와 갑자기 체한 것 같다며 중완침 한 대만 놔주면 좋겠다고 사정했다. 아무 이상이 없으니 쓸 데 없는 소리 말고 가보라 는 운룡의 말에 그녀는 방 윗목에서 쑥뜸을 뜨고 있는 환자를 힐끗힐끗 보더니 나가는 것이었다.
그녀가 나간 지 3분 쯤 지났을 때였다. 갑자기 미닫이가 활짝 열리며 4~5명의 건강한 체구를 가진 40대 남자들이 들이닥쳤다. 그중 하나가 신분증을 꺼내 보였다. 카메라 후렛쉬가 터지고 몇몇 사람들은 방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신문기자와 ㅈ서 형사들이었다.
오핵단을 담은 봉지와 뜸쑥 등을 증거물로 챙긴 그들은 운룡을 경찰서로 연행했다. 이유는 무자격자 의료행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였다. 한 형사가 말했다.
영감! 그 나이에 뭐 할 짓이 없어 돌팔이 의사 노릇을 합니까? 살을 쇠꼬챙이로 찌르고 불로 지져서 병이 고쳐진다니 도대체 말이 되는 얘깁니까? 정직하게 벌어서 살아야지요. 이튿날 아침 ㅈ서 서장실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시오! 그분은 나와, 그리고 불치병으로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죽음 직전에서 구해주셨읍니다. 허가받은 사이비 의사들의 온갖 횡포와 죄악은 묵인하면서 오히려 이땅에 강림한 진정한 인류의 의사 를 잡아 가두는 당신네들의 행위는 무슨 경우입니까? 울먹이는 어느 여인의 항변이었다.
불초 근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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