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山 尹氏의 痘瘡經驗方
한국의학서 가운데 가장 많은 주제 중의 하나가 바로 瘡疹 혹은 痘瘡이다. 조선 전기까지는 두창과 마진을 명확히 구분하지 않고 함께 다루곤 하였는데 任元濬의 「瘡疹集」과 金安國의 「諺解瘡疹方」이 그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대체로 조선 중기 허준의 「諺解痘瘡集要」 이후 痘瘡과 麻疹(紅疹)을 구분하여 논하게 되었으며 그 처음 증상은 비슷한 면이 있으나 증상의 경중과 위급함에 있어서는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조선 후기의 두창전문서로는 朴震禧의 「痘瘡經驗方」과 李蕃의 「龍山療痘編」 李鍾仁의 「時種通編」이 있으며, 이는 주로 두창의 對症치료와 후유증 처치에 주력하는 한편 人痘接種 방식을 발전시켜 왔다.
이후 池錫永의 「牛痘新說」에 이르러 비로소 牛痘接種이 보급되기 시작한다. 인류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할 정도로 오랜 기간 인간을 괴롭혔던 두창은 20세기 초까지도 법정전염병으로 맹위를 떨쳤지만 이후 예방백신의 보급에 힘입어 경계심이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러나 근래 지구촌 한편에서 사라졌던 천연두가 다시 등장했다는 소식이 들린 적도 있다.
이 책의 서명에 붙은 鳳城은 「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영남 三嘉지방의 일명으로 지금의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에 해당한다고 한다. 다른 한편 전남 求禮현의 읍지가 「鳳城誌」로 되어 있어 이곳의 고지명 또한 鳳城임을 알 수 있는데 좀 더 조사가 필요한 부분이다.
이 책 『鳳城新方』은 필사본 1책으로 痘疾禁忌, 初痛三朝, 出痘三朝, 起脹三朝, 貫膿三朝, 痘後雜症, 辨痘形色, 辨痘虛實, 辨痘陰陽症, 辨痘症, 發熱吉凶症, 出痘吉凶症, 起脹吉凶, 貫膿吉凶, 聲音, 咽喉, 腰腹痛 …… 등의 차례로 기술되어 있으며 寫本에 따라 다소 차서가 달라지기도 하지만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본문의 기술은 소주제별 분류 아래 간단한 痘症의 경과와 辨證요령을 적고 ‘此時’라는 접두어를 두어 兼症에 대한 증상과 처치를 적었으며 처방과 경험례를 풍부하게 들고 있어 곳에 따라 유효적절하게 응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대개 保元湯, 四聖回天湯, 猪尾膏, 水楊湯 등을 포함하여 허준의 「두창집요」와 「고사촬요」, 「두창경험방」 등에 실린 처방과 내용을 重用하고 있다.
한편 필자 소장의 필사본 「痘瘡方」은 이 책의 차서와 내용이 거의 흡사한데, 본문에 ‘三山丘坪尹志五撰’이라는 明文이 들어 있다.
또한 「醫家神方」은 이 책의 일부를 수록한 사본으로 내용 중 일부가 중복되어 있는데, 특히 뒤에 붙은 三山尹氏의 禁忌가 채록된 것으로 보아 ‘三山 尹志五’라는 인물이 이 책의 원작자일 것으로 추측되나 아직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의 제작연도는 빨라야 18~19세기로, 앞 시대의 「두창집요」와 「두창경험방」을 토대로 임상경험을 덧붙여 작성한 경험방으로 보인다. 이 책의 서문에서 저자는 “본래 의술을 모르는 처지였으나 역병에 古方을 시험해 보다가 뚜렷한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여러 차례 痘症을 겪은 후에야 겨우 두창에 대한 안목을 기르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또 總論에서 “세상 사람들이 흔히 다른 증상에 쓰이는 醫方은 능숙하게 익히면서도 두창을 치료하는 방법에는 아주 어둡고 약 쓰는 것이 몹시 서툴러 살 수 있는 사람도 죽게 한다”라고 개탄하였다.
연구원 소장본 『鳳城神方』은 ‘廣州安氏家藏’라는 藏書記가 붙어 있는데, 내용이 충실하고 오류가 적은 것으로 보아 三山尹氏의 원본을 채록하여 家傳書로 마련한 善本으로 여겨진다. 이 寫本의 ‘經驗方序’에는 저자가 다만 ‘鳳城尹’으로만 밝혀져 있다. 비슷한 내용의 異寫本을 비교적 흔하게 찾아볼 수 있으나 체제가 산만하고 내용이 뒤섞여 있는 것이 많다.
전체적으로 예로부터 전해 오던 두창치료법(古方)과 중국의서의 치법에 구애받지 않고 나름대로 경험한 바에 따라 새로운 처방과 증상별 가감법, 후유증 조치법을 폭 넓게 제시함으로써 조선 후기 전염성 질환의 치료와 방역에 전심전력을 기울였던 경험의학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