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피어난 지혜에게 절 하나이다. 마하무드라는 보여질 수 없다. 그러나 스승에게 헌신하고 숱한 고행과 고통을 넘어온 나로빠 내 그대를 위해 이 가르침을 전하노니 축복받은 제자여, 가슴 깊이 간직하여라. 들어보게나. 세상의 본질은 신기루나 꿈과 같이 무상하여라. 신기루와 꿈은 존재하지 않나니 매이지 않는 삶을 가꾸며 세속적 행위를 버려라. 노예와 자식을 버려라, 탐욕과 분노의 원인인 것을. 홀로 숲이나 한적한 곳에서 명상하라. 비명상의 상태로 머물러라. 아무 것도 얻을 것 없는 그것을 얻을 때 그것이 바로 마하무드라. 윤회의 법은 부질없어 탐욕과 분노를 일으킨다. 우리가 만들어낸 것은 실체가 없다. 그러므로 궁극의 실체를 찾아라. 마음의 법으로는 깨달은 마음의 법을 보지 못하고 행위의 법으로는 무위의 법을 알지 못한다. 초월의 마음과 무위의 깨달음을 얻으려 한다면 마음의 뿌리를 잘라버리고 벌거벗은 본성의 상태에 머물라. 마음의 투사를 억누르지 말고 다만 스스로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멎어지게 하라. 거부하는 마음도 받아들이는 마음도 일어나지 않을 때 그대 마하무드라 안에서 자유롭게 되리라. 나무엔 숱한 가지와 잎이 돋아나나 그 뿌리를 잘라 버리면 숱한 가지와 잎들도 시들고 만다. 이와 같이 마음의 뿌리를 잘라버린다면 모든 마음의 파도는 사라지리라. 오랜 영겁 동안 쌓여온 어둠도 등불 하나에 의해 스러지나니 칠흑 같은 카르마의 베일은 일순간 자각의 불꽃에 타버린다네. 이를 이해치 못하는 이들은 의식을 모아 호흡을 지켜보라. 또한 눈의 관법과 심법으로 그대 마음을 닦아 자연스럽게 머물지니. 허공을 깨달으면 중심과 바깥이란 굳은 관념마저 풀어진다. 이와 같이 마음이 마음을 깨달으면 모든 마음의 움직임은 끝나고 무념(無念)의 상태에 머물게 되며 위없는 보리심을 깨닫게 되리라. 땅에서 솟아오른 수증기 구름이 되고 마침내 하늘로 사라지듯 구름이 어디로 가고 언제 사라지는지 알 수 없네. 사념의 물결도 마음이 마음을 깨달을 때 해체되리라. 허공은 빛깔도 형태도 없어라. 변하지 않으며 검고 흰 것에 물들지 않나니 이와 같이 빛의 마음은 빛깔도 형태도 없으면서 흑과 백, 선과 악에 물들지 않네. 수천 겁 내려온 어둠도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의 근원을 가리지 못하듯 기나긴 영겁의 윤회도 눈부시게 빛나는 마음의 근원을 적시지 못한다. 허공은 텅 비어 있다 하건만 어이 말로써 묘사할 수 있으랴. 마음이 빛난다 말하지만 이름붙임으로 마음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으리. 이처럼 마하무드라는 머무름이 없어라. 변함없이 원초의 상태 속에 여유롭게 머물러 있으라. 반드시 그대의 속박에서 풀려나리라. 마음의 근원은 허공과 같아 만유(萬有)를 머금고 있다. 몸의 움직임을 느긋한 참됨 속으로 흐르게 하고 뜻없는 지껄임을 멈추어 그대 말의 메아리, 굽이치게 하라. 무심(無心)으로 살되 그대 자각을 독수리처럼 치솟게 하라. 몸은 텅 빈 대나무처럼 실체가 없네. 마음도 본래 허공과 같아 사념이 머물 자리가 없으니 그대 마음을 부드러이 머물게 하고 억누르지도 떠돌게고 하지 마라. 마음에 목표가 사라질 때 이것이 마하무드라, 이에 다다랐을 때 위없는 깨달음은 성취되리라. 마음의 본성은 감각의 대상 없이 빛나고 있나니 명상의 길이 없어질 때 붓다의 길을 발견되리라. 비명상의 상태를 명상하면 절대의 보리를 깨달으리라. 이것이 지고의 통찰, 이는 대상에 대한 집착과 나에 대한 집착을 넘어서 있네. 이것이 최고의 명상, 여기에 헤매는 마음은 없어라. 이것이 황제의 행위. 아무런 노력도 바람도 두려움도 없을 때 그대는 이미 목적지에 이르렀네. 태어남 없는 알라야는 습관과 베일이 없다. 태어나지 않는 근원에 마음을 두게 하고 명상과 비명상의 구별을 짓지 마라. 투사 속에 일어나는 마음의 현상을 모두 소진시켰을 때 한계 없이 드넓은 황제의 통찰에 도달하리라. 지고의 명상은 경계 없이 심원하여라. 지고의 행위는 노력 없이 스스로 흘러나오네. 지고의 결실은 바람 없이 스스로 가득 차 오르네. 깨달음의 처음에는 격렬한 강과 같으며 중간에는 유유히 흐르는 갠지스 강과 같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아들과 어머니가 만나듯 모든 강줄기가 바다에서 하나로 모인다. 만트라, 육바라밀, 계율, 종교를 따르는 이들은 경전과 교리에 얽매여 빛나는 마하무드라를 보지 못할 것이다. 무심으로 살며 욕망이 없으며 절로 고요하며 스스로 존재하는 이 마음은 물의 흐름과 같아라. 빛을 가리는 것은 욕망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참된 삼마야의 서원은 도그마의 관점으로 생각할 때 부서져버린다. 궁극의 상태를 벗어나서 지각하거나, 방황하거나, 머물지 않을 때 그대는 성스런 구도자.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 되리라. 욕망이 사라져 극단에 머물지 않을 때 그대는 모든 가르침의 달마(dharma)를 보게 되리라. 이와 같은 노력 속에서 정진해 나가면 윤회의 감옥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리라. 이와 같은 방법으로 명상한다면 어두운 카르마의 베일은 사라지리라. 그러므로 그대를 '가르침의 등불'이라 하느니라. 이 가르침에 헌신하지 않는 무지한 자들도 그대로 하여 영원히 윤회의 강물에 빠져 허덕임을 벗어날 수 있으리라. 살아 있는 것은 모두 낮은 세계에서 가엾게도 이런 고통을 감내하고 있으니 고통으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이는 지혜로운 스승을 찾아야 한다. 스승의 축복 속에 녹아 들어가 그의 마음은 영원히 해방되리니. 카르마무드라를 찾으면 텅 빔과 기쁨의 합일에서 지혜가 솟아나리라. 신묘한 방편과 지혜의 결합은 축복을 가져다주리라. 이를 끌어내려 만다라를 일으키도록 하라. 이를 온 몸으로 나누어보내라. 욕망이 끼어들지 않을 때 허공과 환희의 합일이 일어나리. 영생을 누리며 흰머리칼도 없이 만월처럼 가득 차게 되어 그대의 생명력은 완전해지리. 상대적인 신통력을 빨리 얻고 난 후에 절대적인 신통력을 얻어야 한다. 대하(大河) 같은 마하무드라의 노래가 행복한 존재들의 가슴에 영원히 흘러넘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