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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토불이와 인산의학사상
                             신토불이와 인산의학사상                                                                                      김 윤 우/ 전  단국대 동양학연구소 전문위원   신토불이의 어원   1. ‘신토불이(身土不二)’의 어원에 대해서는 1990년대에 민기(閔畿) 선생 (한국교열기자회 고문)이 <말과글> 61호(1994년 겨울호)와 75호(1998년 여름호)에 상세히 논급한 바 있다.   그는 곧 <말과글> 75호에서 ‘신토불이’라는 말은 일본의 중 니치렌(日蓮:1222~1282)의 저술로 전해져 오는, 1279년 저 《소캄몬쇼(總勘文抄)》에 처음 등장한다고 하였다. 또《신문 ․ 방송 보도용어 순화자료집》제5집(1997년, 한국교열기자회 간)에도 그 요지를 간추려 수록하면서 이 한자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 ‘신토불이’라는 말은 일본의 니치렌(日蓮)의 저술에 나오는 말로서, ‘身土’는 불신국토(佛身國土)의 준말로 그가 쓴 것이고, ‘不二’는 중국의 묘락(妙樂)의 저술에서 처음으로 내세운 열 가지 불이문(不二門)이라는 ‘不二’에서 왔는데, 이 말이 일본의 식생활 용어로 둔갑하여 ‘신체(身)와 환경(土)은 뗄 수 없는(不二)것’ 이라는 뜻으로 의미 분화되어 쓰이기 사작했다.   이를 한국의 농협중앙회가 막바로 들여와서 그동안 10년 가까이 우리도 ‘신토불이’라는 말을 얼씨구나 애용해 왔는데, 이는 절대 써서는 안될 일본의 조어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고대의 불경 및 중국 천태종계의 불교사상을 두루 살펴보지 못하고 주로 일본의 《불교철학대사전》(창가학회 교학부편, 1985)과 같은 2차적 자료에 의거하여 결론에 이른 잘못된 견해이다.   ‘신토불이’는 일찍이 중국 불교의 천태종계(天台宗系) 조사(祖師)들이 논급한 천태종의 불교사상에서 나온 말이다. 이의 출처가 된 원말은 천태종의 중흥조로 일컬어지는 당대(唐代)의 형계존자(荊溪尊者) 잠연(湛然:711~782)의 《십불이문(十不二門)》에 보이는 ‘의정불이(依正不二)’라 할 수 있다.   잠연은 세칭 묘락대사(妙樂大師)라고도 하며, 시호는 원통존자(圓通尊者)이다. ‘신토불이’라는 말은 결론적으로 말하면 일본의 불교철학 용어가 아니며, 사상적 측면에서는 우리 민족의 정신세계와 부합하는 점도 있는 말이다.   또 동국대 오형근 교수는 1305년, 중국 원(元)나라 성종 때 보도법사(普度法師)가 《여산연종보감(廬山蓮宗寶鑑)》에서 비로자나불의 법신(法身)과 대지(大地)는 한몸과 같다는 뜻을 ‘신토불이’라는 제목으로 ‘신토본래무이상(身土本來無二相)’, 곧 ‘몸과 흙은 본래 두 가지 모습이 아니다’고 언급한 것이 가장 오래된 신토불이의 어원이라고 말한 바 있다.(《불교의 물질과 시간론 , 제9장》, 유가사상사, 1994)   그러나 이 말은 이미 북송(北宋) 시대 천태종 산외파(山外派)의 고승인 지원(智圓:976~1022)이 진종(眞宗) 3년(1006)에 집록한《금강비현성록(金剛錍顯性錄)》에 나오는 말이므로, 잘못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금강비》 일명 《금비론(金錍論)》은 당나라 때 잠연이 저술한 것으로 ‘무정유성(無情有性)’의 학설을 논중한 것이다. ‘의정불이’ 또는 ‘신토불이’라는 말은 바로 잠연의 불교사상에 기초하고 있는 불교철학 용어이다. 《금강비현성록》(권1)에 이르기를, “동일(同一)하여 능(能:동작을 하는 것)과 소(所:동작을 받는 것)의 차별이 없다는 것은, 能이 곧 身이요, 所가 곧 土라는 것이다. 만일 身과土가 둘이 아니다[身土不二]고 한다면 能과所가(차별상이)없는 것이요, 만일 身과 土가 다름이 있다 [身土有異]고 한다면 전부가 범부(凡夫)와 같으니, 어찌 불(佛)이라 이름하겠는가?” (一無能所者, 能卽身, 所卽土, 若言身土不二則無能所, 若言身土有異則全同凡夫, 何名佛耶.) 라 하였다. 이는 잠연이 불신(佛身)과 불토(佛土)의 관계에 대하여 말한 ‘일무능소(一無能所), 이즉동범(異則同凡)’의 주석(註釋)이다.   2. 민기 선생은 또 ‘身土’는 불신국토의 준말로 니치렌이 쓴 것이고, ‘不二’는 중국의 묘락의 저술에서 처음으로 내세운 열 가지 不二門이라는 ‘不二’에서 왔다고 하였다.   그러나 ‘身土’는 당나라 때 잠연이《금강비》에서 ‘신토상즉(身土相卽)’을,《십불이문》에서 ‘의정불이(依正不二)’를 논급한 이래 뒤를 이어 이의 주석서(註釋書)를 편술한 송대(宋代) 천태종계 조사들의 문집 속에 수없이 등장하고 있는 말이다. 잠연보다 앞서는 시기에 ‘신토’라는 용어를 사용한 불승은 필자가 아직 보지 못하였으나, 이 말을 탄생케 할 수 있었던 이론적 근거는 앞선 시기 천태종의 불교사상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곧 천태종의 개조(開祖)로 일컬어지는 수대(隨代)의 지의(智顗:538~597)는 말하기를 “마땅히 몸[身]은 비록 작지만 뜻는 천지(天地)와 더불어 서로 관련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처럼 몸은 비단 곧바로 오음세간(五陰世間:10계(界)에 대한 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의 오온이 각각 차별하여 존재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또한 국토세간(國土世間:곧 주처세간(住處世間). 중생이 사는 10계 차별의 기세간(器世間)]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석선바라밀차제법문(釋禪波羅蜜次弟法門)》권8)고 하였다. 또 ‘不二’라는 불교철학 용어도 이미 고대부터 ‘상즉(相卽) 일여(一如)’와 같은 개념으로 불경에 써오고 있는 말이다.   이 말은 이미 5세기 초 후진(後秦) 요장(姚萇) 때에 구마라집(鳩摩羅什:343~413)이 변역한《유마힐소설경(維摩詰所說經)》아홉째 항의 입불이법문품(入不二法門品)에 18회나 등장하고 있는 말이고, 수(隋)나라 때 혜원(慧遠:523~592)이 지은 일종의 불교어 사전격인 《대승의장(大乘義章)》(권1)에도 보이는 말이다.   혜원이 말하기를 “不二라는 말은 다름이 없음(無異)을 이름이니, 곧 경(經) 가운데의 일실(一實:평등한 實相)의 뜻이다.   일실의 이치가 현묘하고 적멸하여 차별의 상(相)을 떠나 동일, 평등하여 피차(彼此)의 분별이 없기 때문에 不二라 한다.” 고 하였다.   승조(僧肇:383~414)는 말하기를 “진(眞)을 여의면 다 둘[二]이라 이름하므로 不二로써 말을 한 것이다” [《주유마경(注維摩經)》권8]라 하였다.   ‘신토’와 ‘불이’를 불학(佛學)적 관점에서 상세히 논하려면 한이 없으므로 이를 사전적 개념으로서만 좀더 살펴보기로 하자.) ‘身土’는 살고 있는 몸과 그 국토를 말하며, ‘不二’는 대립을 초월한 절대평등, 곧 대립한 두 개가 상대하는 것이 실상은 대립이 없는 평등한 가운데 있는 것을 말한 것이라 하겠다.   잠연은 일찍이 ‘身土’를 ‘의정(依正)’으로도 표현하였는데, 1919년에 중국의 정중호(丁仲祜)가 편집한 《불학대사전(佛學大辭典)》(1961년, 대北華嚴蓮社 영인)에 이르기를, “‘身土’는 범부(凡夫)와 성인(聖人:부처보살)의 ‘의정이보(依正二報)’이니 身이 정보(正報)요, 土가 의보(依報)이다.” 고 하였다.   의보는 국토세간(國土世間)을 가리킨 것으로 곧 유정(有情)이 의탁하는 처소요(곧 依住處), 정보는 중생세간(衆生世間)을 가리킨 것으로 곧 능동적으로(동작하여) 의탁하는 유정이라 풀이된다. 또 송(宋) 종익(宗翌)이 이르기를, “의정불이라는 것은 3천 상(相)중에, 1천 국토(國土)는 거처가 되는 곳이니 依라 하고, 2천 계여(界如)는 능동적으로 거처하는 몸(곧 중생과 불 ․ 보살)이니 正 이라 한다.   모두가 일념(一念)에 있기 때문에 不二라 한다.” 〔《주법화본적십불이문(註法華本迹十不二門》〕고 하였다. 이로써 볼 때 ‘依正不二’는 곧 ‘身土不二’와 같은 뜻의 말이라 하겠다.   중국 천태종계 조사들은 또 잠연의 불교사상을 주해(注解)하면서 ‘身土不二’의 의미를 같은 의미로서 달리 표현하기도 하였는데, 몇가지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신토일여(身土一如): 송(宋) 원청(源淸)의 《법화십묘불이문시주지(法華十妙不二門示珠指)》 2) 신토무편(身土無偏): 송 종익(宗翌)의 《주법화본적십불이문(註法華本迹十不二門》 3) 이신무토(離身無土), 이토무신(離土無身), 신필겸토(身必兼土), 일체불이(一體不二):송인악(仁岳) 《십불이문심해(十不二門心解)》 4) 신토상즉(身土相卽), 능소호융(能所互融):송지원(智圓) 《금강비현성록》 5) 사토즉삼신(四土卽三身), 삼신즉사토(三身卽四土), 삼사호융(三四互融), 불리심성(不離心性): 위의 4)와 같은 책. 위에서 1)의 一如는 본래 동일하다는 뜻으로, 차별없이 평등한 것을 이름이요, 2)의 無偏은 서로 치우침이 없는 것을 이름이요, 3)은 인악(仁岳)이 ‘依正不二’를 주해한 내용으로 ‘身必兼土, 一體不二’는 곧 4자로 줄여 ‘身土不二’라 칭할 수 있는 뜻의 말이다. 4)의 相卽은 ‘파도이면서 곧 물이요, 물이면서 곧 파도이다’라는 것과 같은 뜻의 말로서, 곧 이것과 저것이 서로 자기를 폐하여 다른 것과 같아짐을 이름이요, 4)5)의 互融은 서로 융통하며, 융합(融合)한다는 뜻의 말이다.   그리고 5)에서 四土는 곧 국토를 4종으로 나눈 천태종의 4토이고 三身은 곧 불신을 그 성질상 셋으로 나눈 법신(法身) ․보신(報身) ․응신(應身)을 말함이니 ‘삼사호융’은 곧 ‘삼사불이(三四不二)’로서, ‘신토불이’의 의미를 좀더 정밀하게 풀이하여 언급한 것이다. 지면 관계상 더 이상의 자세한 풀이는 생략하겠다.   신토불이와 一念三千    천태종은 천태법화종(天台法華宗) 또는 천태법화원종(天台法華圓宗)이라고도 하는데, 중국 수나라 때 절강성(浙江省) 천태산(天台山)에서 지자대사(智者大師) 지의가 창립한 종파로서 법화경(法華經)을 그 종지(宗旨)로 하고 용수(龍樹) 보살의 사상을 기본으로 한다.   묘락대사 잠연은 천태종의 중흥조로서 그의 불교사상에 대해서는 뒤를 이은 송대의 고승들이 많은 주석서를 남기고 있는데, 이미 앞에서 조금 살펴본바 있다.   일본의 니치렌 또한 천태종의 불교사상을 계승, 수용하여 독자적으로 발전시킨 불승으로 보인다. 니치렌은 가마쿠라(鎌倉) 시대에 일련종(日蓮宗)을 개종(開宗)하였는데, 일련종도 법화경을 종지로 하는 일본 불교의 한 종파이다.   니치렌은 그의 유문(遺文)인 《여래멸후오오백세시관심본존초(如來滅後五五百歲始觀心本尊抄)》약칭《관심본존초》에서 “묘락대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마땅히 신토(身土)가 일념삼천(一念三千)임을 알아야 한다고 하였다. [妙樂大師云, 當知身土一念三千]”라 하였다. 이 한 구절의 글을 보더라도 니치렌은 천태종의 불교사상을 계승한 불승임을 알 수 있다.   위의 묘락대사가 한 말에 보이는 ‘一念三千’은 천태종의 교의(敎義)에 보이는 ‘일념삼천설(一念三千說)’로서, 삼천여(三千如)의 세계, 또는 삼천제법(三千諸法)이 우리의 일념심(一念心) 위에 갖추어져 있다는 말이다.   이 말은 곧 한순간 한순간의 우리들 마음의 움직임 속에 전세계가 들어 있으며, 一念의 마음이 존재의 전부라는 것으로, 잠연에 앞서서 일찍이 저의가 《마하지관(摩河止觀)》(권5上)에서 언급한 불가사의경(不可思議境)의 해명으로서의 ‘일념삼천’ 사상이다.   그것을 조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대체로 일심(一心)에는 십법계가 갖추어져 있다. 일법계가 또 십법계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백법계가 된다. 다시금 일법계는 삼십종세간(三十種世間:五陰 衆生 國土의 삼세간에 十如 가 갖추어진 것)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백법계는 곧 삼천종세간을 갖추게 된다. 이 삼천종세간이라고 하는 세계 전체가 일념의 마음에 존재하는 것이다. 만약에 마음이 없으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그러나 아주 조금이나마 마음이 있다면 즉시 삼천을 갖추는 것이다.”   니치렌이 인용한 잠연의 말은 앞에서 송나라 종익이 의정불이(依正不二)에 대하여 주해한 관점에 의하면, 이 말 또한 ‘의정불이’나 ‘신토불이’의 의미와 상통하고 있는 말이라 하겠다.   니치렌은 또 《총감문초(總勘文抄)》에서 이르기를 “사토불이(四土不二) 이면서 법신(法身)의 일불(一佛)이다. 십계(十界)를 신(身)으로 삼으면 법신이요. 십계를 심(心)으로 삼으면 보신(報身)이요. 십계를 형(形)으로 삼으면 응신(應身)인 것이다. 십계 바깥에는 부처가 없고, 부처의 바깥에는 십계가 없으니, 의정불이(依正不二)요, 신토불이(身土不二)이다. 일불의 신체임으로써 적광토(寂光土)라고 한다.” 라 하였다.   앞의 서두에서 언급한 바 있지만 민기 선생은 이 내용을 보고 일본의 니치렌이 처음으로 ‘신토불이’를 언급한 것으로 오해하고 이 말을 니치렌이 최초로 조어(造語)한 일본의 불교철학 용어로 언급하였다.   그러나 니치렌이 언급하고 있는 ‘신토불이’에 관한 논리전개는 그보다 앞선 시기에 이미 언급되고 있는 천태종의 불교 논리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이는 곧 송나라 지원이 집록한 《금강비현성록》(권3․4)에 “삼신은 둘이 아니요(三身不二), 사토는 그 체(體)가 하나이다(四土體一), 사토는 곧 삼신이요(四土卽三身), 삼신은 곧 사토이니(三身卽四土), 삼신과 사토는 서로 융합한다(三四互融)”고 하고, 또 이를 ‘신토상즉(身土相卽), 의정불이(依正不二)로 언급하고, 때로는 ‘신토불이(身土不二)’로도 언급하고 있는 내용과 거의 동일한 논리 전개로 이는 니치렌이 천태종의 불교사상을 수용하여 그의 불교 논리를 전개한 것일 뿐 그의 독창적인 불교사상에서 나온 내용은 아니다.   이상으로써 ‘身土不二’는 중국 천태종의 불교사상에서 나온 말로서 일본의 조어도, 일본의 불교철학 용어도 아니라는 것을 살펴보았다.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언급하면 이 말은 잠연이 언급한 ‘依正不二’ 또는 ‘身土相卽’과 같은 의미의 말로서 잠연의 불교사상에서 나온 말이라 할 수 있고, 용어상으로 보면 잠연의 불교사상을 계승한 지원이 잠연의 《금강비》를 집주(集註)한《금강비현성록》에 처음으로 나타나고 있는 말이다.   이로써 볼 때 ‘신토불이’라는 말은 일본의 조어도 아니고, 한 일본 승려가 만들어 낸 하나의 불교철학 용어도 아니라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그렇다면 ‘신토불이’라는 말은 우리의 국민정서에도 맞는 의철학 용어로, 우리는 우리식대로 즐겨 사용해도 무방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신토불이’라는 용어는 대표적인 일본어사전인 《광사원(廣辭苑)》이나 《광사림(廣辭林)》에도 올라 있지 않으며, 한글학회에서 편찬한《우리말큰사전》보다도 더 방대한 양의 일본어 사전인《일본국어대사전》(총20권, 1975년 小學館 발행)에도 수록되지 않은 말이다. 또 가장 방대한 한자어사전인 “대한화사전(大漢和辭典)에도 올라 있지 않는 말이다.   이는 한마디로 ‘신토불이’가 일본 말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단적인 예이다. 사쿠라자와 유키카즈(櫻澤如一:1893~1966) 등의 공동저서인 《일본정신의 생리학》에 의하면, ‘신토불이’와 의미상에서 거의 동의어로 볼 수 있는 ‘신토체일(身土體一) ․ 신토상즉(身土相卽)’과 같은 천태종계의 불교철학용어를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일본인 학자들은 이미 일찍부터 ‘신토불이’가 그들의 고유 한자말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더구나 사쿠라자와는 사상적인 면에서는 “그리스신화에서 ‘땅의 아들’이라고 불리는 거인 안데오스가 그의 발이 대지 위에서 떨어지자마자 큰 힘을 잃고 헤라클라스에게 패배한 것도 신토불이의 도리(원리?)를 풍자한 것이 아닌가 한다.” 라 하여 서양에서도 이미 고대시절에 동양과 유사한 신토불이사상이 있었음을 언급하고 있으니, ‘신토불이’가 더더욱 일본의 한자말이 아니라고 여겼을 가능성이 많다.   이는 아놀드 토인비와 이케다 다이사쿠(池田大作)가 1974년도에 대화를 가진 후 공동저작한 《21세기를 여는 대화》에서 토인비가 의정불이(依正不二)라는 개념은 서양인으로서도 낯선 것이 아니며, 그 이념은 그리스도교 이전 그리스 로마의 세계관 이었다고 한 말에도 잘 드러나 보인다.   전화된 의미의 신토불이 ‘신토불이’라는 말은 본래는 천태종의 불교사상이 내재된 심오한 의미의 불교철학 용어이나, 이 말은 현대에 이르러 일본과 한국에서 그 의미가 전화(轉化)되어 식생활 ․ 식문화용어로 많이 쓰이고 있다.   일본에서는 특히 이미 1920년대 후반에 식양학자 사쿠라자와 유키카즈(櫻澤如一:1893~1966)가 그의 스승과 공저로 펴낸 《일본정신의 생리학》(일본식량연구소, 1928년간)에서 ‘신토불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불법(佛法)의 이른 바 ‘신토불이’라는 원칙은 세계 각 지대의 주민들은 거의 다 기후의 한열, 대기의 압력 ․ 방향 ․ 온도 ․ 토지의 건습, 공중전기 ․ 지중자기의 특유한 작용에 의하여 그 땅에 적응 출현 생장한 자연의 주산물을 주식으로 삼고 부산물을 부식으로 삼음으로써 심신(心身)을 양육한 습관법 자연률을 가리킨 것이다. 새로운 말로 바꾸어 말한다면 가장 넓은 의미로서는 식물의 자급자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곧 신토불이의 원칙을 식량학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있음을 살필 수 있다. 또 하스미 다케요시의 《협동조합지역 사회로 가는 길》1984년간 (1986. 11.한호선 역. P.145)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보인다.   “예부터 신토불이라는 이념이 있다. 불교사상에서 인간의 건강(행복)과 흙=농업=먹을거리는 나누려야 나눌 수 없이 얽혀서 순환되고 있다는 윤회관을 간결하게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위의 내용은 단지 ‘신토불이’라는 말이 불교사상에서 나온 말임을 이해하고 있을뿐, 천태종 교의의 ‘일념삼천(一念三千)’ 사상이 내포된 더욱 심오한 의미의 불교철학 용어라는 것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이 말이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급속히 퍼지게 된 것은 1989년부터 당시의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에 대응하여 당시의 초대 농협회장 한호선이 하스미의 저서를 번역하면서 ‘신토불이’라는 용어를 접한 이후 농협에서 ‘신토불이’를 “우리 체질에는 우리 농산물이 제일” 이라는 뜻으로 각종 행사 및 홍보물 등에 사용한 이후부터다. 이 말은 곧 유행어처럼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우리 몸에는 우리 농산물(또는 수산물 ․ 축산물까지도 포함하는)이 좋다는 것을 표현하는 하나의 기호처럼 정착되었다.   그 의미도 점차 확장되어 이제는 농림축수산물뿐 아니라, 이 땅에서 생산되는 모든 분야의 물품에 대해 우리 것은 소중한 것. 가장 한국적인 것이 곧 세계적인 것이라는 광의의 의미를 지닌 말로도 전의되어, 국제화 ․ 개방화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서 우리의 토산적 ․ 전통적인 것을 증시 하자는 하나의 표어처럼 정착되었다.   그 과정 중에서 ‘신토불이’ 사상이 건강론(→의학사상)에 까지 적용되어 1994년 7월부터 한동안 월간 건강잡지인 《신토불이》[(주) 시사춘추, 김윤세 발행:현 《수테크》의 전신]가 발행된 적이 있다. 이 잡지의 발행자는 이에 앞서 1994년 5월 22일부터 <일간 스포츠>에 ‘김윤세의 신토불이 건강’ 이라는 건강론을 계속 연재한 바 있으며, 이듬해 그 건강론을 모두 모아《김윤세의 신토불이 건강》[(주)광제원 발행]이라는 한 권의 단행본을 내기까지도 하였다.   현대에 이르러 식문화용어로 전의(轉義)된 의미로서의 ‘신토불이’라는 말을 우리보다 앞선 시기부터 사용한 일본에서도 역시 우리보다 조금 앞서서 시마다 아키오(島田彰夫) 교수가 《身土不二》(1993.6.10. 無明舍出版 간)라는 저서를 세상에 내놓은 바 있다.   필자는 이 책을 전반적으로 검토하여 볼 기회를 갖지 못하였으나, 민기 선생의 신토불이 어원론(《말과 글》61호, 75호 참조)을 통하여 이를 간접적으로 살펴보면, 적어도 일본인들에게 있어서는 ‘신토불이’라는 용어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만큼 친숙한 용어로 다가서지는 못 한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한 내용의 요지를 조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신토불이라는 말은, 그다지 일반적인 용어는 아니다 … 이 말은 가끔 식(食)의 신조(信條), 또는 사상을 나타내는 말로서도 사용된다. 이 때문에 이 말이 과학적인 표현은 못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 (왜냐하면) 식품문화라는 말이 갖는 어감과 매한가지이며, 신토불이라는 표현을 문화 측면에서만 파악하고 거기에 ‘사람’이 존재하고 있음을 망각한 소견에 그쳤기 때문이었다.”   《身土不二》의 서문 (P.9)에 보이는 위의 말 속에서 “그다지 일반적인 용어가 아니며, 비과학적 표현이라 주장하는 사람이 있으며, 문화 측면에서만 파악하고 거기에 ‘사람’이 존재하고 있음을 망각한 소견”이라는 말 등에 의하면, 이 견해가 비록 일본인 전체의 견해라 말할 수는 없겠지만, 일본인들에게 매우 친숙한 보편적인 말이 되지 못하였음을 어느 정도 짐작해 볼 수 있다.   또 위의 책에서 시마다 교수가 ‘신토불이’라는 용어 풀이 특별란(P.21)에서 언급하고 있는 내용 중에 ‘신도후지(身土不二)’라는 항목은 일본에서 권위 있는 일본어 사전인 《고지엔(廣辭苑)》에도 안실려 있다는 사실을 먼저 지적한 점, 또 이 말이 고고학의 개념에서 말하는 ‘유적 테리토리(territory)'와 비슷한 개념으로, 주로 식생활에 관해서 쓰이는 말이라고 한 점, 현대인의 식생활은 인구의 도시집중으로 말미암아 좀 역설적인 느낌이 들지 몰라도 “신토불이에서 떠나 신토분산(身土分散) 으로 변했다”고 말한 점 등을 보더라도 이 말은 일본인들에게 그다지 친숙한 말이 되지 못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특히 우리 고유의 사상이라 할 수 있는 ’한 사상‘에 젖어온 한국인들이 ’불이‘라는 용어에 더욱 매력을 느끼고 있다면, 일본인들은 ’신토‘라는 말에 더 매력을 느끼고 치중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한국의 신토불이 사상   ‘신토불이’라는 말이 1980년대 말에 농협의 캐치프레이즈로 등장한 이래 이 말은 이제 농림축수산계뿐 아니라 전통의학 ․ 경제 ․ 교육 ․ 출판 ․ 의상 ․ 예술계까지도 유행어처럼 즐겨 쓰는 단계에 이르렀다(《월간 신토불이》1994년 8월호 ‘신토불이 열풍지대를 간다’ 참조).   이제는 ‘신토불이’하면 곧 우리 것은 좋은 것. 나아가 우리의 토산적 ․ 전통적인것이 바로 세계적인 것이라는 뜻을 상징하는 광의의 ‘신토불이’ 개념으로 정착하였다.   ‘신토불이(身土不二)’라는 말이 우리 것을 상징하는 일반 범칭으로까지 유행하면서 전국적으로 확산된 이면에는 1990년대부터 밀어닥친 국제화 ․ 개방화의 물결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적 용어로서 매우 적절한 표현의 말이라 여겼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그 이면을 좀더 들여다 보면 이 말 자체가 곧 우리 국민들 정서에 잘 맞는 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를 두 가지만 들어보기로 하겠다.   첫째는 신토불이의 ‘불이(不二)’ 사상이 우리 민족의 정신세계 속에 내재하는 ‘한’ 사상과 일치하는 점이 있어 이 말이 그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더욱 친근하게 다가서게 된 것으로 보인다.   한 민족의 정신세계 속에는 고대로부터 신라시대 원효(元曉:617~686)가 ‘합이문지동귀(合二門之同歸)’라 한 원융화쟁(圓融和諍) 사상, 고려시대 의천(義天:1055~1101)과 지눌(知訥:1158~1210)의 교선일여(敎禪一如) 사상, 조선시대 율곡(栗谷:1536~1584)의 이이일적이기관(二而一的理氣觀)과 같이 다원적(多元的) ․ 이원적(二元的)구조를 ‘한’으로 묘합(妙合), 귀일(歸一) 시키는 대일적(大一的) ․ 전일적(全一的) ‘한’사상의 맥이 흐르고 있다.    이중 ‘한’사상과 관련한 율곡의 이기(理氣)사상을 조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대저 이(理)는 기(氣)의 주재자요, 氣는 理의 탄(내재한) 바라, 理가 아니면 氣가 근저할 데가 없고, 氣가 아니면 理가 의지할 데가 없다.   이미 둘(두 물건)이 아니고 하나(한 물건)도 아니다. 하나도 아니기 때문에 일(一)이면서 이(二)요, 둘이 아니기 때문에 二이면서 一이다.” 〔《율곡전서(栗谷全書》권10〕 여기서 一이면서 二이고(一而二), 二이면서 一(二而一)이라 표현한 말은 ‘不二’의 개념과 서로 통하는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둘째는 조선 초기부터 한의학(韓醫學) 분야에서 향약(鄕藥)의 가치를 중시하게 되면서 비록 ‘신토불이’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았으나, 사상적인 면에서는 이미 ‘신토불이’ 사상이 존재하여 왔음을 살필 수 있다.   이 점은 양촌(陽村) 권근(權近:1352~1409)의《향약제생집성방(鄕藥濟生集成方)》 서문과 세종(世宗)의 명으로 편찬된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 서문에 잘 드러나고 있다. 그중 후자의 것을 조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대개 백리 사이에 습속(習俗)이 다르고 천리 사이에 풍속(風俗)이 다른 것처럼 초목의 생태도 환경에 따라 각기 적의(適宜)함이 있고, 사람의 음식 기호도 지방마다 다른 습관이 있다.   이것이 바로 옛 성인(聖人)이 온갖 풀의 맛을 보고서 여러 지방 사람들의 품성(品性)에 따라 그 병(炳)을 치료하게 된 연유이다.    생각하건대 우리나라는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한 구역으로서 대동(大東)의 지역을 차지하여 산과 바다에서 나오는 보물들과 생산되는 초목 ․ 약재(草木藥材)들이 모두 백성들의 생명을 양육하고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것들로 대개가 이 지역에 구비되어 있지 아니한 것이 없다․… 오직 민간의 고로(故老)들이 한 가지 풀로 어떤 병을 치료하여 그 효과가 매우 신비한 것은 토질(土質)에 알 맞은 약성(藥性)이 그 약과 병에 잘 부합하여서 그러한 것이 아니겠는가?”   위의 서문의 요지는 곧 제 나라 사람들의 질병을 치료하는 데에는 제 나라 풍토(風土)에 적합한 자국산(自國産) 약재가 더 효과적이라는, 병과 약에 대한 의토성(宜土性)을 강조한 것으로, 곧 신토불이 사상이 내재함을 살필 수 있다.   이규태 선생이 쓴 <신토불이론> <조선일보, 1994년 1월8일자, 이규태 코너)에도 조선시대에 신토불이 사상이 있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보인다.   그 중에서《대동야승(大東野乘)》을 인용하여 소개하고 있는 내용을 한 대목 다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부녀자들이 절에 가서 놀면서 버섯을 따 국을 끊여 먹었는데, 그 가운데 소심(笑蕈)이 들어 있었던지 나뒹굴며 웃어대는데 멎을 줄을 몰랐다.   산사(山寺)에 사는 노승이 그것을 보더니, 단풍나무 썩은 데서 돋은 버섯 탓이라 하고, 독이 생기면 그독을 푸는 약도 그 주변에 반드시 있게 마련이라 했다. 그러고는 절 모퉁이에 있는 황토흙을 물에 풀어 가라앉혀 윗물을 먹이니까 언제 웃었느냐는 듯이 웃움이 멎어 돌아갔다.”   위의 소심은 중국에서는 풍상균(楓上菌) 또는 풍수균(楓樹菌)이라 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먹으면 시시대며 웃는다고 하여 일명 시시심(時時蕈)이라고도 한다.   위에서 소심을 먹고 웃음이 멎지 않는 것을 지장수(地獎水)로 치료한 노승의 치료법은 이미 중국 남북조(南北朝) 시대의 본초가(本草家) 도홍경(陶弘景:452~536)이 세상에 전한 바 있는 고래의 처방이다. 이는《본초강목(本草綱目)》(권5)과 송나라 섭몽득(葉夢得)의《피서록화(避暑錄話), 上》등에도 소개된 이야기 이므로 우리만의 독특한 신토불이 처방은 아니다.   그러나 위에서 산사의 노승이 “독이 생기면 그 독을 푸는 약도 그 주변에 반드시 있게 마련”이라고 한 그 말 속에 바로 우리의 신토불이 사상이 내재함을 살필 수 있다.   인산의학에서의 신토불이 사상    신토불이 의약사상은 이미 조선 초기부터 존재하여 왔는데, 현대에 이르러서도 신토불이 사상에 의거하여 일관되게 한의학설(漢醫學說)이 아닌 한의학설(韓醫學說)을 전개한 이가 바로 인산(仁山) 김일훈(金一勳:1909~1992) 선생이다. 그러한 의약사상을 살필 수 있는 대표적인 저술이 바로 《신약(神藥)》(1986년. 나무출판사 발행)과 《신약본초(神藥本草)》(1992년. 광제원 발행) 이다.   《신약》을 보면, 여러 질병들에 대한 각종 처방에 있어서 토웅담(土熊膽), 토사향(土麝香), 토종닭, 토종 집오리, 토종 꿀, 토종 마늘, 동해산(東海産) 마른 명태, 유근피(楡根皮), 인삼(人蔘) 등 수많은 토산 약재들이 등장하고 있다.   아울러 이 약재들은 모두가 순수한 토산(土産 =국산) 약재라야 효험이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선생의 신토불이 의약 사상은 70여년의 실제적 치료 경험론이므로 더욱 주목되는 의론(醫論)이다.   선생의 저술에서는 또 우리 체질에는 우리의 토산 약재를 써야 한다는 한의학론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 각종 난치병 치료에 있어서 우리의 것이 가장 효험이 있는 세계적인 것임을 논급하고 있다. 이는 광의의 ‘신토불이’ 사상이면서도 독특한 한국적 신토불이 사상이라 하겠다. 그러한 의약 사상의 근저를 이루고 있는 독특한 설은 곧 백두산 천지(天池)에서 비롯한다는 감로정설(甘露精說)과 한반도의 간동분야설(艮東分野說)이다. 그것을 조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지구에서 이루어지는 산천정기, 땅에서 이루어지는 정기, 그것이 백두대간에 오게 되면 천상(天上)의 정기와 합해 가지고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물은 물 자체가 신수(神水)이다.   그것을 일러 감로정(甘露精)이라 하고, 그것이 모아져서 나오는 것을 감로천(甘露泉)이라 한다 … 이 땅이 영역(靈域)이 되고 신국(神國)이 되는 이유가 그것이다… 이 땅엔 신수인 감로수가 있고 그 감로의 정으로 화하는 분자가 천공(天空)에서 많은 생물을 화한다.   은하계에서 오는 힘, 오행성(五行星)에서 오는 힘이 천지에 합류되어 가지고 백두산 정을 이룰 적에 백두산에서 내려간 낙맥(落脈)은 감로수라는 게 있게 마련이다.   그 감로수의 정기를 모아 가지고 우리나라의 신인(神人) 단군 할아버지가 탄생하셨다. 감로수는 지구에 우리나라뿐이다. 감로수는 우리나라 천공에서 감로정 분자로 화하기 때문에 인간이 신선(神仙)이 되고, 풀도 산삼(山蔘)이 되고, 벌레도 천년 후에 구름을 타고 다니며 구름 속에서 산다… 태평양에서 들어오는 조기가 영광 바다에 들어오면 사흘 안에 왜 참조기가 그 속에서 생기는가 ? 이것은 감로정의 원리이다.”     (《신약본초》p.33~35, 42. 99. 507 참조): 독자의 이해를 위해 구어체 문장을 문법에 맞게 약간 수정함) “한반도는 이 지구상에서 영약(靈藥)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곳이다. 비전(秘傳)되어 오는 주역(周易)의 학설에 따라 이 지구를 8개 분야로 분류하면 한반도는 8괘(卦) 중에서 간동(艮東) 분야에 해당된다. 동방(東方)은 곧 생기(生氣)의 방소(方所)이며, 따라서 우리 공간에는 가장 많은 양의 녹색소, 즉 활인색소(活人色素)가 분포되어 있다… 지구의 간동분야는 한반도이다.   만물의 시생처(始生處)이고 선불지시(仙佛之始)이며 약물지종(藥物之宗)이므로 동방주불(東方主佛)은 약사여래불(藥師如來佛)인 것이다.” [《신약》P.33, 95참조]   인산의학사상 소고   색소론(色素論) 색소(色素)라는 용어는 선생의 저서 중에서 철학론뿐 아니라, 의학론에서도 곳곳에 드러나고 있는 독특한 의철학(醫哲學) 용어이다. 특히 의학론에서는 이를 청․ 황․ 적․ 백․ 흑(靑黃赤白黑)의 오색소(五色素)로써 인체에 발생되고 있는 질병 관계를 논하고 있다.   이 색소에 대해서는 일찍이 양 대연(梁大淵) 박사가 이르기를 “한 가지 특견(特見)이라 할 것은 ‘색소세계(色素世界)를 제창한 것이라 하겠다. 물론 불교에서 색 ․ 공(色空)을 말하였지만, 그것과는 달리 색만이 아니라 색소라 하여 한 차원 더 높이 진화시킨 점이라 하겠으니, 이것은 의학계에 있어서만 신설(新說)이 아니라 철학 사상에 있어서도 갱일지보(更一地步)를 고답(高踏)한 것이라고 보아야 하겠다.” (宇宙와 神藥 P.5)고 찬탄한 바 있다.   송대(宋代)의 주자(朱子)는 기(氣)에 대하여 이르기를 “대개 기(氣)는 능히(스스로) 응결조작(凝結造作)한다. ” (朱子語類, 卷1, 理氣)하고, 또 이르기를 “기(氣)라는 것은 형이하(形而下)의 기(器)로서 물(物)을 생(生)하는 자구(資具)이다.” (朱子大全, 권58, 黃道夫)라 한 바 있다.   이것은 기(氣)를, 만물을 응취성형(凝聚成形)케 하는 무형무적(無形無迹)의 氣(氣運: 힘 ․ energy)와 그 만물이 응취성형(凝聚成形) 되는 형이하자(形而下者)로서의 氣(形質,材料)인 두 종류의 氣를 말한 것으로 볼 수 있겠는데, 선생은 전자(前者)에 말한 氣를 氣(氣運), 후자(後者)에 말한 氣를 色(色素)이라 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있어서는 인산 선생이 우주론에서 ‘삼소(三素)와 삼요(三要)의 설’을 논하면서 ‘기취색형(氣臭色形)’의 생성유무의 과정으로 설명하고 있는 대목에도 잘 드러나 있다고 본다.   한약재(韓藥材)의 성정론(星精論) 선생은 우라나라 토산(土産) 한약재와 별정기와의 연관관계를 논하고, 이에 의한 제반 질병치료를 논급하고 있다. 이는 어느 한의서(韓醫書)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설이다.   필자가 과문(寡聞)한 탓으로 그 과학적인 근거는 분명히 알 수 없으나, 추측컨대 이는 동양사상 중 오행사상(五行思想)에 바탕을 둔 한의약론(韓醫藥論)이 아닌가 한다. 《神藥》책에서 몇가지 그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수영(시금초 ․ 괴시양: )은 뭇 별 중 목성(木星) 계열인 세성(歲星)과 수성(壽星)의 별정기를 받아 화생하므로 맛이 시다[=木味]. 목생화(木生火)→화생토(火生土)의 원리에 따라 비위(脾胃)등 제반 소화기 계통 질환의 치료에 유용하게 쓰인다. -神藥P.64 -   이를 보면, 목성 계열의 세성과 수성의 별정기를 받아 화생한 수영은 오행상생(五行相生)의 원리에 의하여, 오행 중 토(土)에 속하는 장부인 비위(脾胃)계통의 여러 질환에 좋다는 이론이다.   몇 가지 예를 더 들어보면, ‘옻나무는 생기(生氣)를 주재하는 세성(歲星)과 살기(殺氣)를 주재하는 천강성(天罡星)의 별정기를 아울러 받으며 자라므로 독기는 인체의 병독(病毒)을 소멸[以毒攻毒]하고, 생기(生氣)는 온갖 질병을 다스려 무병장수케 한다.’ -神藥 P.72 -   '소나무 ․ 잣나무 역시 세성(歲星)의 정기를 응해 화생한 물체로서 동방 청색소(靑色素)의 산소의 모체이며 인체의 간(肝)과 담(膽) 및 비위(脾胃)에 좋은 약이 된다.’ -神藥 P.88 -   '명태는 ant 별들 가운데 28수(宿) 중의 여성정(女星精)으로 화생하고 바닷물 속의 수정(水精)으로 성장하므로 강한 해독제를 다량 함유하게 된다. 즉 최고의 해독 능력이 있는 해자(亥子)의 수정 수기(水精水氣)를 체내에 가장 많이 지니고 있는 물체이다. …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사경(死境)을 헤맬 때 마른 명태 5마리를 푹 달여 그 국물을 계속 떠 넣어 주면 숨떨어지기 전에는 거의 모두 소생한다.… 연탄독은 사오화독(巳午火毒) 가운데 오화(午火)의 독성(毒性)인데 명태가 함유한 성분은 여성정(女星精)의 수정 수기이므로 수극화(水克火)의 원리에 의해 그 독이 제거되는 것이다.’ -神藥 P.108~109 -   이상 예를 든 이외에도 선생은 수많은 한약재에 대해서 천상(天上)의 별정기와의 연관관계를 논하고 그에 의한 여러 질병의 치료법을 밝히고 있다.   죽염론 죽염에 대해서는 인산가의 김윤세 회장과 이전 생명과학연구소의 김영희 박사 및 관련 연구기관과 인산가의 열성회원 등이 그동안 끊임없이 많은 연구를 해왔다. 때문에 필자가 특별히 학술적으로 새로 밝힌 것이라 할 만한 연구 결과가 없기에 예전에 인산 선생께서 대중강연을 하면서 육성으로 언급하신 독특한 내용을 하나 소개하는 것으로 논의를 대신하고자 한다.   “죽염 속에 황토흙이 주장이라. 그 황토흙을 써야 되는 이유는 뭐이냐. 이제 말하던 그거라. 모든 기름이 송진도 소나무 기름이고 대나무의 죽력(竹瀝)도 대나무 기름인데 이것이 황토를 만날 때에는 그 힘이 신비가 들어가 있어. 그래서 수정체인 소금에 모든 불순물이 합성된 것은 물러가고 앞으로 이렇게 무서운 세계에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능력, 이것이 이뤄진다 이거요.   그래서 이 죽염의 세계에서 그런 비밀이 오는데 거기 뭐 있느냐, 쇠 속에는 철정(鐵精). 철정이 소금 속에 있는 백금을 도와줘요. 그래서 그 신비가 상당히 신비인데. 그러면 그것도 아홉 번 불을 때다가 마지막에 고열(高熱)로 처리하는데 그 불이 아홉 번을 가고 거기 전부 소금을 가지고 해내는데 소금은 수정체고 불 속의 화신체는 기름인데 대나무 기름, 소나무 기름, 그럼 화신체(火神體)와 수정체(水精體)가 합성될 적에 그 속에 비밀을 다 파헤쳐 가지고 화공약독으로 죽는 사람은 살려라.”(1990년 12월8일 인산 선생 강연 내용, 《건강저널》1991년 1월호 참조)   * 이상은 2008년도 1월 17일 인산가  제4기 자연의학과 동양고전 프로그램  강연 원고임. 이 중 신토불이의 어원과 사상은 일찍이 <말과 글> 76호(한국교열기자회, 1998)에 발표, 게재한 것을 약간 보완하여 건강론으로 재작성한 것임.  
    인산학우주와신약
  •   귀신장난도 못하는 神學 박사들     또 박사가 많은데, 신학(神學)에 박사가 있는데 그 사람들 보면 둔갑(遁甲)도 못해. 둔갑은커녕 장난술이 있어요, 요술도 있지만. 장난술에 초인고주법(招人沽酒法)이 있어요. 거 비장방(費長房)의 문서인데. 그 비장방의 문서를 가지고 초인고주법 하는 신학 박사도 없어. 이 싸리말 만들어 놓고 부적(符籍)을 써서 얹어 놓으면 시키는 대로 가서 도적질 해 와요. 그게 초인고주법 비장방의 문서인데.   그리고 부적이 없이 되는 건 뭐이냐? 그만침 정신력이 강한 자는 부적도 없고 싸리말도 없어요. 공중에서 신이 아무 집에서 잔치에 쓸 돼지 있는데 그거 잡아서 지금 삶아 놨으니 얼른 가져오라 하면 이런 데도 갖다 놔요.   그건 비장방 초인고주법이라, 이런데. 사람 불러다가 술도 훔쳐 오고 고기도 훔쳐 오는 법인데. 그럼 이 신학 박사를 볼 때 내가 알고 있는 귀신 장난도 못해. 그러면 육정육갑(六丁六甲)의 도신장(道神將)은 어느 단에 도신장 있고 중단에 도신장이 있어요. 상단 중단에. 하단엔 도신장이 없어요. 그러면 그 상중(上中)의 신장들을 불러다가 놓고 자기가 마음대로 하는 사람이 신학 박사라면 그것이 비슷한 말이오. 근데 내가 볼 적에 얼간이라도 어느 정도래야 하는 거 아니오? 어린 애기들이 주먹 들고 때려죽인다고 고함지르면 고건 고놈의 생각이지, 어른들이 볼 땐 그 주먹에 맞아 죽을 사람도 있느냐 이거요.   그럼 사람이 자기를 모른다 하는 정도는 철없는 어린 애기라. 신학 박사가 자기를 알고 한소리 아냐.   그러면 지금 미국 같은 데 가서 의학 박사 됐다? 그 사람들의 수백 년 전 할아버지 쓴 책이 그땐 화학(化學)이 발달돼 가지고 화공약에 인류가 피해를 당하던 때이냐? 그때 써 놓은 의서(醫書) 가지고 박사 됐다면 그건 당연해.   그렇지만 그 양반들 쓴 걸 가지고 박사 한다는 자체가 그 정신에 뭐이 좀 멍든 사람들이라. 어떻게 제정신 가지고 오늘의 화학이 인류를 멸하는데, 그 인류를 멸하는 화학사회에서 사람을 구할 수 있는 법을 알면 건 의학 박사라.    
    인산학이야기속으로
  • 肺의 36개 비선은 白血을 조성     왜 백금이 많으냐? 백금을 타고, 바다는 물하고 불인데 백금을 타고 전기 같은 걸 대어도 빨리 통해요. 또 벼락을 쳐도 물속에 닿는 덴 다 고기들이 죽어요.   이래서 그 백금의 선이 이뤄지는 걸 사람 몸에도 기운 ‘기’(氣)자 기선인데, 그걸 신경이라고 해서 잘못된 것도 아니에요. 신(神)의 길이라. 백금은 신(神)이 왕래(往來)하는 길이라. 기운이 왕래하고 불(火)도 왕래하고 물(水)의 정(精)도 왕래하는 것이 백금이라. 그래서 그 기선이 이뤄지는데. 기선이 이뤄지게 되면 그 기선을 타고 왕래하는 건 천만 가지 힘이 다 기선을 타고 왕래하는데, 거기에 뭐이 있느냐? 피를 만드는데, 음식물로써 피를 만드는데. 이 피가 지름[기름]인데. 심장부에서 비선(脾線)이 64선이 있어요. 그 원선(元線)이거든. 그 원선 하나에 12선이 있어요. 그래서 원선은 64선이라. 그게 심장에 색소(色素)를 전하는 거라. 그게 췌장(膵臟)으로 전해요. 췌장으로 전하면 췌장에서 염색체(染色體)가 생겨서 붙게 되는데. 그 지름이 피가 되는 거지. 그러면 그 다음에 폐에서 36선이 이뤄져요. 그 이뤄지는 수학(數學)은 분명한 수학(數學)인데. 내가 지금 그 수학을 죄다 설명할라면 정신이 가물가물해서 순서를 잡을 수 없어서 그걸 세밀히 말하진 않으나, 거 앞으로 책으로 나올 땐 순서가 세밀할 거요.   그래서 폐(肺)에서는 36이라는 비선이 이뤄지는데, 그건 또 백혈(白血)을 조성하는 거라.   심장에서 64선은 적혈(赤血)을 조성하는 비선이고. 그 양의학(洋醫學)은 아직도 이해하게 될라면 기백년나 가도 몰라. 그 사람들 힘으론 1만년 가도 안될 거요.   폐에서 내려오는 비선은 36선인데 그 36선은 백혈을 조성하는 선이라. 이래 가지고 췌장에서 수분이 다 끝난 기름을 수장(水臟)이, 비장에서 췌장하고 사이에 수장이 있어요. 거기서 비장(脾臟)에서 흡수한 지름을 수장에서 수분을 완전히 정제한 후에 췌장에서 염색해요. 염색공장은 췌장이라. 췌장에서 염색이 다 끝나면 그 피는 간으로 넘어가는 거. 그런데 그 염색공장에 약간 하자(瑕疵) 있으면 간에 간염(肝炎)이 온다. 그 간염이 두 종류라. A형 간염하고 B형 간염이 있어요.   B형 간염은 간암(肝癌) 시초라. 그래서 그런 비밀을 인간의 힘으로 알게 돼 있느냐? 알아도 옛날 양반은 글로 밝힐 수 없다.   그땐 한글이 없어요. 한문(漢文)을 가지고 그 속에 들어가 세밀한 비밀을 그릴라면 후세에 알아보기 힘들어요. 그 의서(醫書)도 알기 힘든데, 건 의서에 대하면 천배 만배 힘든 설명이 그 속에 있어요.  
    인산학신암론
  • 애매한 이들, 비참히 죽인 게 聖者냐     그래서 앞으로《신약본초》(神藥本草)란 책은, 지금부터 이런 얘기가 전부 원고로 들어갈 건데, 거기 있어서는 지구에 있는 글은 앞으로 글이 될 수 없어요.   내가 죽은 후엔 글이 될 수 없어요. 글이라는 건 사실을 말씀해야지. 공자님이 나신 후에 진시황(秦始皇) 시절에 억울한 선비 죽음이 얼마나 비참했더냐? 또 예수님이 나신 후에 억울한 죽음이 얼마나 비참했더냐? 오늘까지도 비참하게 죽어요.   그러면 그 양반들이 당신 한 사람의 폐를 입어 가지고 많은 사람에 해를 준다면 그런 말 안했을 거요. 태양이 돈다는 말, 할 리도 없고. 공자님 학설을 전부 보게 되면《주역》(周易)에는 계사단상(繫辭彖象)에 땅은 네모났다는 말씀하고 하늘이 돈다는 말씀하는데, 그건 확실히 사리에 어두운 말씀이고 글에 들어가선 만고의 성자(聖者)라.   글엔 만고성자(萬古聖者) 되시는 분이나 사리(事理)에 고운(孤雲) 선생님 같은 분에 비하면 대단할 것도 없어요. 난 어려서 공자도 인간이냐는 생각까지 해봤어요. 당신이 세상 떠난 후에 얼마 안가서 진시황 손에 많은 선비를 생죽음을 죽여. 땅에다 파묻어 죽여요.    갱유생(坑儒生)이니까, 이런데. 내가 만주에서 백계노인들, 그 공후백자남(公侯伯子男)이 전부 천주교인인데. 거 투하체프스키(1893~1937, 赤軍 참모총장 역임) 원수가, 그 일파가 흑룡강변에서 죽인 학살 기록을 보면 한이 없어요. 그러니 그 당시에 소련 땅에 들어가서 기독교인 찾을 수 없고 천주교인 만나볼 수 없어요. 싹 치워 버렸어요, 그랬는데. 또 광복 후에 가장 급성하던 기독교인 천주교인이 이북 땅에서 살아남게 돼 있질 않아. 건 김일성의 장난이겠지. 그러면 칼 맑스(karl Marx)하고 그리스도의 뒤에 이런 일이 온다는 걸 그들이 알게 되면 그런 짓을 안했을 거요. 나도 앞으로 내가 말한 말이 후세에 큰 해(害)가 돼 가지고 많은 생명을 해친다면 난 그런 말은 안할게요. 나는 억울하게 몰라서 비참히 죽어 가는 사람 살려 주러 온 사람이지, 애매한 사람들을 비참하게 죽이러 온 사람은 아니라. 그래 내게는 십자가가 있을 수 없어.   왜놈의 시절에도 편하게 피할 힘이 있으니까. 좌익 시절에도 편하게 피할 힘이 있고. 이제는 난 다 산 사람이라. 오늘에 죽는 한이 있어도 이제는 기록은 얼추 나갔어요. 그런데 앞으로 마지막으로 기록에 남을 거는 이제 얼마 안 남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단전호흡이란 말인데. 그 이야긴 많은 사람 한 걸 내가 일생에 두고 보고 그 사람들도 만나보는데, 엉터린 완전히 엉터리요. 나운몽(羅雲夢)이나 박태선이 주님이 재림했다고 큰소리 하듯이 그 모두 엉터리고······. 강증산(姜甑山)이 당신이 미륵불(彌勒佛)이라? 내가 어렸을 때 그 양반 막 세상 떠나서 그 추종자를 전부 만난 일이 있어요. 거 순 엉터리고. 또 옥황상제(玉皇上帝)님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것도 엉터리고. 그러면 강증산의 수제자 차경석(車京石)을 보면 사람은 밥술이나 먹게 생겼지만 흉한 도둑놈이라. 그런 사람의 수가 이 나라에 상당수가 있었어요. 백백교주 같은 사람도 그렇지만 그런 수가 많은데.   그러면 이 나라에서 볼 때에 그 사람들을 숭배하는 사람은 상당수고 어디를 지나댕겨도 날 밥 한술 주겠다는 사람 없어요.   그러니 세상은 속아 사는 거지, 속지 않고 세상을 내다볼 사람이 있다는 건 거, 어려운 일이라. 그래서 나는 한평생 비참하게 왔다 가는 사람이지. 석가모니가 고해중생이라고, 내가 고해에 떨어진 인간이라. 그래 석가모니처럼 문전걸식이나 하다 죽어도 괜찮아요. 그러나 태평양 물이 있는 한 지구의 생명은 영원히 존재하리라고 생각했던 거고. 내 말을 안 듣고 비명에 가는 건, 건 다 자기의 죄지 내가 죄 짓고 가는 건 아니오.  
    인산학이야기속으로
  • 유점사 뜰에 올라선 전생의 觀音佛     그러고 또 앞으로 10년 전후해서 모든 혈관(血管)이 자동적으로 녹아 버려요. 그러면 피만 토하면 출혈열(出血熱)이 생기는 땐, 그땐 죽게 돼 있어요. 혈관이 전부 다 녹았으니까.   그땐 구할 수 없어요. 그래서 나는 젊어서부터 그 일을 생각할 적엔 뼈가 아파. 그래서 젊어서도 누가 죽을 때 실험해 봐요.   이게 확실히 인체의 비밀이 분명하냐? 그래 살려 본 후에는 전하리라고 생각하는데. 지금 세상에선 그건 제대로 이용하질 못하고 있으나 앞으로다 제대로 이용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기가 와요. 건 혈관(血管)이 녹아 버리는 거.   그리고 소금이라는 거, 소금의 모든 불순물을 잘만 처리해 놓으면 그 신비의 약물이라. 그거 앞으로 없이는 이 세상을 구할 길이 없어요. 그보다 더 좋은 건 없어요. 그러고 태평양 물같이 양이 많은 건 없어요. 질도 좋으려니와 양이 많아요. 지구상의 인간이 수천억이 살아도 태평양 물 말리울 순 없어요. 그래서 나는 어려서부터 태평양 물이 있는 한 지구의 인류를 구하는 덴 어렵지 않다고 생각하는 거라. 그러나 세상은 나를 오늘까지도 모욕할려고 애쓰고 음해(陰害)하는 사람이 계속해. 이건 뭐이냐? 인간은 미개하게 돼 있어. 지구에 내가 와서 살고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저, 도깨비 붙은 무당들이 처음에 신(神)이 내리면 날 보고 땅에 엎드려 절하며 전생(前生)에 관음불(觀音佛)이올시다 하는 말 들은 적이 있어요. 그러고 강원도 유점사(楡岾寺)에 그전 한 60년 전 주지가 김운택(金雲澤)이라고 있는데, 구름 ‘운’(雲)자 못 ‘택’(澤)자. 그가 현몽(現夢)을 얻고서 오늘 12시 정각에 전생의 관음불이 유점사 뜰에 올라서니라. 12시 정각에 올라오니라. 그래서 이 사람이 지키고 있다가 12시 딱 정각에 내가 올라가는데, 난 그때 몰래 숨어 댕기며 얻어먹고 보니 형편이 없어요. 거지 중의 거지라.   그래도 쫓아나와서 버선발로 마당에 엎드려 절을 하기에 벌써 그때 알아 낼 수 있어요.   새벽에 꿈을 꾸었구나, 거 알 수 있는데. “거 주지스님은 꿈을 꼭 믿으시네요.” “아, 꿈을 안 믿을 수 없는 꿈이올시다.” 하고 이야길 해요. 그래 거기서 며칠 묵으며 금강경(金剛經)을 묻기에 일러준 일이 있어요.   그러면 그런 사람들은 나를 전생에 관음불이라는 걸 알고 있는데 내 자신은 얻어먹는 날은 거지고 일하는 날은 노동자요, 농사짓는 날은 농부인데, 내가 전생에 관음불이란 이유가 닿질 않아요. 그러고 한평생이 비참하게 살아오는 내가 만주서 왜놈의 총에 죽었으면 객귀(客鬼)가 되었을 거고 원혼(冤魂)이 되었을 건데.   내가 전생에 관음불이라는 증거를 세상에 나타낼 힘이 없으니까 난 그런 걸 안 믿어요. 안 믿으나 앞으로 영원히 인류를 구하는 힘은 내게만 있는 건 알아요.    
    인산학대도론
  • 前生과 今生의 인연 두 가지     여러분은 자주 만날수록 반가운 분이래도 내가 힘이 모자라는데, 게을러져 가지고 자주 만날 기회가 없어서 나도 서운하지만 회원 여러분도 서운하리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이렇게 바쁜 세상에 찾아오셔서 감사하다고 얘기 드리는 거요. 그럼 지금 이야긴 뭐이냐? 그새 단전호흡법(丹田呼吸法)에 대해서 세밀하게 이야기한 일이 없어요. 그러나 정신이 원래 오락가락하는 때라 아는 바는 있어도 고걸 순서 있게 세밀한 이야기하긴 조금 어려운 관계로 더러 빠질 수도 있고 이야기할 수도 있고 그렇게 돼 있지, 정상은 좀 못돼요.   다음에 책으로 나올 땐 수정하면 자세할 수도 있어요. 그러면 단전호흡이라는 이야길 하기 위해서 그 기초에 대한 이야길 약간씩 하는데 너무 어려운 면은 말하기조차 어렵고 알아들을 수 전혀 없는 이야기는 그 서면(書面)으로도 약간씩이 나오지, 확실한 것만은 힘들어요.   그런데 뭐이 있느냐? 지금 단전호흡이라는 거이 신(神)의 비밀이기 때문에 우주에서 단전호흡의 진리는 신(神)이 알고 있지, 사람으로선 알 수 없는 거. 내가 어려서는 귀신보다는 못하지 않았을 거요. 그러니까 그때는 알았지.   지금은 그 정도의 인간이 아니니까. 이젠 노폐물은 다 지나간 거, 세상에 나올 적처럼 그렇게 맑은 정신과 무서운 영력(靈力)을 지니고 있진 않으니까 지금 하는 이야긴 혹 듣기 좀 힘들 수도 있어요. 너무 정신이 모자라서 그렇게 돼요. 그러면 단전호흡 전에 그 기초의 몇 가지 이야긴 뭐이냐? 부처님 말씀이 ‘인연’(因緣)이란 말을 했는데, 그 ‘인연’은 두 가지요. 전생의 인연은 보이지 않는 사실이었고 금생의 인연은 보이는 사실인데.   그래 인연에서부터 시작인데. 전생의 인연은 어렵다. 거 왜 어려우냐? 부처님은 절로 된다 했는데. 전생의 인연이 있는 사람이 금생에 와서 부처님을 위하고 싶은데 위할 힘이 없다. 그러다 보니 돈이 좀 생기면 심산(深山) 속에 들어가서 숲속에 절을 짓는다.   그건 누가 일러주는 것도 아니고 누가 시키질 않아도 하게 돼 있어요. 그게 절로 되는데, 그게 전생의 인연이라.   그러면 그 무인공산(無人空山)에 빈집을 지어 놓으면 자기 부모형제 승낙도 없이 몰래 빠져 가서 옛날엔 중 됩니다.   그러면 그것도 전생의 인연이지, 금생에 누가 사정해서 가는 것도 아니고 세상에서 지시하는 사람도 없이 되는 건데. 그런 속에 들어가면 보이지 않는 전생문제가 나와요. 그걸 전생인연(前生因緣)이라고 그러는데.   그 속에 전부를, 신의 비밀을 파헤치는 건, 거 간단히 안되겠지요? 거의 만년을 해도 힘든 게 그런 신의 비밀이라.  
    인산학인산禪사상
  •   육신 썩는 33일 동안의 체험   그래서 그 세상을 완전히 밝혀 놓으면 어떠냐? 부처님이, 그때에 이런 마이크가 없어요. 마이크만 있으면 거 떠들고 댕길 양반이라. 마이크 없어서 한 사람 두 사람 붙들고 따귀를 얼마를 맞고 발길에 얼마를 채였을 거요. 그 세상을 살다 간 양반이 부처라. 난 뭐, 그런 일이 없잖아요? 이렇게 편해도 고생을 한다고 하면서 부처님 고행하고 같을까?   또 풍찬노숙(風餐露宿)한다고 부처님의 풍찬노숙일까? 이러니 나는 호사(好事) 하면서 오늘 현실엔 가장 고행(苦行)이라. 내가 어려서부터 해온 거이 고행은 틀림없는데. 내가 육신이 며칠이면 완전히 썩는 걸 경험해 본사람. 그게 미쳤지. 내 정신 속에는 다 썩어도 새로 만들 수 있다. 그거 자신이 너무 있어서 혼나는 거라. 그래 가지고 묘향산 설령암에서 33일을 물 한모금 먹지 않고 가만 앉아 있으니 1주일이 지내니까[지나니까] 창자에서 냄새가 시작해요. 2주일이 지내니까 썩는다는 소식이 올라와, 몹쓸 내[냄새] 나. 3주일이 지내니까 완전히 썩는 내가 나는데. 그걸 4주일이 지내니까 창자는 몽땅 썩었어.   그러면 그 후부터 살이 썩을 테니까, 33일이니까 손가락을 내를 맡으면 손가락도 썩는 내 나. 이젠 얼마나 있으면 다 썩느냐? 다 썩은 후에 내 정신이 다시 재생시킬 수 있을 거다, 그런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내 정신 부족을 몰랐다 이거라. 왜놈들이 쫓아와서 가자고 해서 가는데, 그래 그때 삼포 광업소 있어요. 광업소 사무실로 가는데. 거 강원(講院)의 강사(講師)랑 조실(祖室)이랑 모조리 왔어. “이상한 사람이 지금 묘향산에 들어왔다” 했어. 그래 왔는데. 내가 웃었어. “내 앞에서 불경 얘긴 일체 내놓지 말아라. 조실보다는 천 배 이상 알 게다. 그러나 지금 중병 들어서 오늘 내일 한다.” 왜놈들이 의사를 모두 데리고 왔는데 공의(公醫)가 진단해 보니 아주 위험하거든. “이 양반 아주 위험하오. 말 시키지 마시오.” 이거라.   그런데, “음식은 뭘 드릴까”하는데, “고기 있으면 고깃국 달라” 고깃국 끓여다 줘요. “소주 두어 사발 달라” 소주 두 사발, 처음에 한 사발 쭉 마시고 고깃국 한 사발 먹고 그러고 또 재차 소주 한 사발 고깃국 한 사발. 그러고 밥을 하도 여러 날 굶었으니까 창자는 다 썩고 속이 비었으니까. 그래서 고깃국에 밥 말아 먹으니 일어나 댕겨 보니까 거뜬해. 그건 내 정신 속에서 이뤄지는 건 틀림없으나 내가 몰랐다. 그게 뭐이냐? 육신이 몽땅 썩은 후에 재생(再生)시킬 수 있는 정신력이 내게 없다는 증거라. 모든 불보살이 나를 가호할 적에 완전히 썩으면 저건 우리 힘으로도 다시 살릴 수 없으니 완전히 육신이 채 썩기 전에 끌고 가자. 그래서 신중단(神衆壇)에서 끌고 가지 않으면 불보살이 끌고 가도 가야 될 판인데. 그래서 그렇게 신의 가호를 입은 건 내가 알아요. 그게 신의 가호라. 거기서 설령암에서 그 아래 삼포 광업소가 20리가 넘는데 33일을 물 한 모금 안 먹고 굶은 사람이 걸어가는데 힘 안 든다? 건 있을 수 없어.   그렇지만 내겐 있었어. 난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갔다 3일 만에 부활했다는 말, 건 순 거짓말로 듣진 않는데. 그 양반이 냉수 한모금 안 마시고 가만 앉아서 33일간 육신이 얼마나 썩는 걸 경험해 가지고 내가 고걸 썩는 숫자를 정확하게 세상에 발표할 수 있어요.   1주일이 되니까 위(胃)에 약간 염증(炎症)이 이렇게 생기더라. 거 염증이 2주일이니까 이렇게 많아지더라. 3주일이 되니까 폐에서 이런 염증이 이만해지더라. 건 얼마든지 기록을 할 수 있어요. 자 이젠, 나도 이젠 힘들어서 그만둘랍니다.  
    인산학이야기속으로
  • 어려서 전국 절터 돌아보고 祖室 만나 훈도     그래서 석가모니가 출가(出家)했다, 입문(入門)했다. 득도(得道)했다, 대각(大覺)을 했다? 난 그런 소릴 웃어요. 내가 억천만년 환히 알고 있었는데, 어려서. 석가모니가 그래 배웠다? 각(覺)을 했다? 그런 이야기를 그거 하고 있으면 거 어떻게 되나? 거 얼마나 분야가 미개하고 있나? 황산(黃山)이라고 해서 다 누런 건 아니야.   불자라고 해서 다 부처는 아니야.   그건 뭐인가 잘못된 거. 내가 지구에 와보니 이렇게 잘못되어 있어.   그렇다면 하루아침에 되느냐 하면 안돼. 내가 어려서 절에 가서 다 돌아보았어요. 그래 다 돌아보고 석가모니 모신 법당터에 상당히 좋은 터가 많아요. 묘향산의 백마도강(白馬渡江) 같은 거, 태천 양화사도 그렇지만. 이 양산 통도사, 거 아주 좋아요. 물을 봐도 그러고 수구(水口)도 장원(長遠) 하려니와 산이 아주 잘됐어요. 거 영취산맥이 내려오다 된 거 보면 잘됐는데. 그게 뭐이냐?   이 태백성(太白星)에서 오는 금기(金氣)가 통해. 그걸 밝을 ‘명’자 명기(明氣)라고 해요. 그래서 거기다 모셨으니 통도사(通度寺)에 사는 분들은 배곯지는 않겠구나. 고성 건봉사(乾鳳寺)에 가도 그래. 배곯지는 않아요. 해인사(海印寺)도 배곯지는 않으나 해인사는 큰돈 가지고 있을 수는 없어요. 그 앞이 돈이 빠져 나가는 구멍이 많아요.   그러면 내가 전국의 절터를 다 보고 참선(參禪)하는 데 조실(祖室)을 보는데, 그 참선할 때에 조실방으로 외인출입 금지라고 써붙여. “이 정신병 든 영감.” 내가 문을 차고 들어가. 들어가면 호통을 해. “에이, 이 돌중놈. 나이 늙도록 산, 이 돌중놈의 자식이^^"   “날 보고 뭐야? 눈도 없느냐? 여기가 어딘데 여기 들어오느냐?” “너 같은 돌중놈 보러 왔다. 야, 이 돌중놈아, 네가 나이 몇 살인데 눈이 그렇게 어두우냐. 너 지금 지구에 누가 와 있는 걸 모르고 네가 여기 지금 조실이냐? 저 사람들이 네게서 배워 가지고 너 같은 거 아니냐.   너는 너 같은 걸 가르칠 테니 중세계가 어떻게 되느냐? 너 호왈(呼曰) 불자고 조실이고 그 꼴이 이거구나. 너, 나 들어오는데 호통을 칠 수 있니? 이 정신병자야. 지구가 생긴 이래로 처음 온 사람인데, 지구에 누가 사는 것도 모르고 지금 문 차고 들어온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고. 넌 보고도 모르잖니. 근데 무자(無字) 화두? 이 정신병자 같은 놈.” 그러고 이제 욕을 하고.   그때 만능의 인간이라. 주먹이 세요. 내가 어려서 세상이, 내 꼴이 이 모양이니 우리나라는 망했고, 내 꼴이 이 모양이니 어디 가도 인간대우를 못 받는다. 뭐 세계에서 박사래도 된 일이 없고. 그래 언제고 난 인간대우를 못 받으니. 여하간 내게 못되게 굴면 한대 쥐어박는다.   그래서 어려서 횡행천하(橫行天下) 할라면 첫째 주먹이 있어야 돼, 힘은 없고. 그래서 내가 아무도 모르는 무술을 은근히 단련해 가지고 맷돌을 치면 부서진다, 이 정도로 자신을 단련한 거라. 하고 싶은 소릴 마음 놓고 해. 아, 어슬렁거리면 그 절에 있는 승려들 천(千)이 나오면 어쩌나? 눈 끔뻑하면 다 피 토하고 나자빠지는데. 그러니까 무서운 게 있을 수 있느냐 말이야. 천하에 무서운 거 없이 댕기니 하고 싶은 말을 왜 못해? 그래서 내가 욕먹을 짓 한데도 많아요.   지금 살아 있는 윤치영(尹致映 ; 이승만의 비서실장, 초대 내무장관, 국회 부의장, 공화당 당의장, 서울특별시장 역임 ; 아호는 東山)일 인간말종이라고 해놔서 아주 날 싫어해요. 그자가 국회 부의장 때에 내가 무슨 일 일러주니까 냉정하게 반대해. 이승만인 날 보고 사정했고. 그거이 국회 부의장으로 있을 때라.   지금 자유당의 조직부장 임철호를 을구(乙區 ; 서울 中區 乙區)에 출마시키는데 그 사람이 을구에 나오지 않으면 잘 밀어 가지고 인산(仁山 ; 김일훈옹의 아호)이 노력하면 된다.   그래서 내가 서로 만났는데. 죽어도 잡아먹겠다고 그거 비서 시절에 서로 뜻이 안 맞았다고 고런 감정을 표현해. 그걸 차마, ‘기생첩의 자식은 다르다.’ 그 말은 못하고 “에이, 나쁜 양반 인종지말(人種之末)이구나.   인간에 동산(東山) 같은 말종(末種)이 있는 줄 내가 몰랐소.” 거기서 오늘도 날 만나면 좋아 안할 거요. 아주 나하고 앙숙이라. 거 뭐이냐? 그런 사람들이 장관을 했어. 국회 부의장하고 또 부통령 출마하고. 그걸 보면 내가 인신공격을 가끔 해요, “너 사람 새끼냐” 하고, 이런데.   이런 세상을 살아왔어. 살아오나, 윤치영인, 윤치호도 그러고 다 장사(壯士)요. 그 부모들이 차력약(借力藥) 먹여서 장사(壯士)요.   장사기 때문에 내게 붙으면 아주 뼈가지가 가루 되게 해줄라고 한 거라. 장사를 뼈가지가 가루 되게 할라는 자신 가진 자가 세상을 댕기는데 무서운 거 뭐이겠나? 그래서 내가 앞으로 한 사람이래도 내게 있는 주먹질은 배워서는 안되고 마음에 있는 모든 사람의 어려움을 극복시킬 수 있는 실력을 가르치고 싶어.  
    인산학인산禪사상
  • 날 때부터 세상 글을 다 아는 이유     내가 석삼극무진본, 석삼극무진본을 내가 무척 안타까이 생각해요. 거 삼도(三道)라는 거 삼극지도(三極之道)야. 삼극지도라는 거이 가장 묘한데 그 인류의 신세계(神世界)라,   그건. 삼극지도는 신세계인데. 그 신세계가 이뤄지지 않느냐, 이뤄지느냐? 거 앞으로 교육이 발달이 돼야 해요. 어린 애기가 태교(胎敎)는 없을망정 날바람에 태모(胎母)가 저 애기 엄마가, 가장 좋은 만고대현(萬古大賢)들 그 핵심이 들어가는 그런 글이 남아 있는데 그런 걸 모아 가지고 애기들한테 밤낮 그런 것만 들려주면 요것들 귀에는 그 소리만 머리속에 꽉 배어 가지고 딴 소리가 들어오지 않아.   그러면 그놈들이 대성자의 가장 좋은 말 그런 격언(格言)을 전부 들었고 그런 격언으로 이뤄진 초학(初學)부터 글을 일르고[읽고], 그래 가지고 종말엔 뭐이 되느냐? 거기서 분야별로 가장 세계에서 뛰어난 양반 성공담을 자기가 원한다, 그럼 가르쳐 줘야지. 그거이 지금 말하면 가장 재주 있는 사람 가르치는 법인데. 천재교육이 우리나라에 지금 말이 이뤄진 지 오라. 그런 나라에 천재가 누구냐? 내가 보는데 하나도 없어. 천만 대(代)를 환히 알고 억천만년 환히 아는 그런 천재가 나온 일이 없어.   난 어려서 천재가 아니야, 천재가 아니고 나무꾼인데. 어떻게 나무꾼인데 날바람에 세상 글을 다 아느냐 이거야. 내가 날바람에《강희자전》(康熙字典)을 《규장전운》(奎章全韻)을 외워 읽어.   그래서 어려서 글 지은 건 다 율(律)을 맞춰 지어요.   두자미(杜子美)의 72격(格)을 맞추고 12율을 맞춰 가지고 짓는데. 그렇다면 그거이 있을 수 있느냐? 평생에 글을 지어도 72격을 놓고 짓는 사람이 없고 아무리 고풍(古風)으로 나가도 격이 있어야 돼. 격은 콩나물 대구리[대가리]야.   그러고 12율이 있어야 되는데 거 첫째 율이 가세율인데. 그러면 환미렴(換尾簾)이다, 환두렴(換頭簾)이다, 양괄염(兩括簾)이다. 그게 전부 12염(簾)에 들어가는 건데.   그 12염을 맞추면 12율이 나와. 12염을 맞춰서 12율을 맞추면 그거이 72격으로 들어 가.   72격은 뭐이냐? 그 글제가 ‘봄’이라 하면 봄에는 가장 필요한 게 꽃이야. 꽃이 없이 열매가 안 열려. 그러면 그 꽃세상에 대해서 모든 묘사를 잘 표현하면 그게 격이라. 그런 걸 말하는 건데. 어떻게 어려서 글 본 일도 없고 날바람에 지구상의 글은 외워 알 수 있느냐? 전생에 글을 읽었다는 징조겠지.   그러고 내가 구경 가는 걸 싫어하는 건 지금 나이 먹어서 골 아파 소풍을 댕겨도 젊어서 구경을 가기 싫어하는 건 뭐이냐? 전생에 다 알던 지구에 가볼 데 어디 있느냐 이거야.   나 혼자 생각은 전생에 다 본 곳인데, 캐나다에 갔다고 볼 거 있을까? 다 아는걸. 그래서 내 자신이 등신으로 알아요. 남은 다 가보고 와서 이야길 하는데 안 보고 이야길 하면 그건 정신병자라. 외삼촌 서울 구경이지? 그래서 나는 정신병의 하나를 못 고치고 죽는다. 그건 지금도 생각해요. 지금도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글을 안 보고 아는 수가 어떻게 있느냐? 이 율을 짓는 데는 12율에 72격을 맞추는 법이 나와 있어요. 또 그러고 글자는 사람이라면 사람‘인’(人)자가 어떻게 해놓으면 될 거다.   그러면 하늘을 상징해 가지고 상반신이 있으면 하반신의 양다리를 벌리고 서면 그건 사람 ‘인’(人)자 분명하겠구나. 팔을 쭉 펴면, 사람이 이렇게 사각이 제대로 되면 이것이 큰 ‘대’(大)자가 틀림없구나. 그런 걸 알 수 있는 거이, 이 자연의 원리를 쫓아댕기면 다 알아져요. 그래서 날바람에 그런 걸 머리속으로 생각하면 다 나와요, 나오는데.   소나무 ‘송’자는 왜 소나무 ‘송’(松)자냐? 나무 중에 나무 ‘목’(木)변에 가장 주인공(主人公)을 소나무라고 한다. 그러면 공(公)자가 소나무지.   그런 걸 모두 소나무 다음에 고 다음에 가는 건 잣나무 잣 ‘백’(柏)자, 나무 ‘목’변에 흰 ‘백’(白), 일백 ‘백’(百). 그래서 그런 것을 어려서 하나하나 알고 나가면 환하게 탁 터져 버려요. 즉석에 한글을 볼 때 한글을 듣지도 보지도 않아도 알 수 있어요. 그런 거와 마찬가지로 한문도 그래요.   그러면 날바람에 말을 하면서부턴 표현 못하는 게 우주엔 없어. 말하기 전엔 못했고. 그런데 석가모니는 날바람에 말을 하고 날바람에 걸어댕기고 이랬는데.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고 하셨는데.   난 날바람에 그렇게 못했어, 그렇게 못했는데. 내가 누구한테 가서 글자를 물을 순 없어, 다 아는 글자. 그런데 석가모니도 석가모니 가르친 선생들이 있어. 연등고불로 신선들이 여럿이야. 그러면 내가 볼 때에 이것이 어디서 잘못됐느냐? 후세의 기록일 게다 그거야. 그 양반이 당시에 세상에 나오며 어머니 바른쪽 옆구리를 틔고 내려서면서 북행칠보(北行七步)하고 목고좌우(目顧左右)하고 천상천하유아독존인데.   아, 그런 양반이 어떻게 글을 모르느냐? 댕기며 또 배워야 되느냐? 난 아무것도 아닌 인간이 4살이 되니까 글은 다 알겠어. 그런데 그 양반이 날바람에 다 아는데 난 4년 후에 알았고. 그런 내가 아무것도 아닌 증거가 내게 있어요.  
    인산학대도론
  •   天符經 속 정치는 神의 정치     그래서 내가 보는 건 전체적으로 신의 세계로 보는데, 이 육신 가지고 한 끼 잘 먹기 위해서 남을 속여서 빼앗아 먹는 걸 좋게 보는 사람하고 나는 그런 세계를 싫게 보는 사람하고 정반대형이라. 그래서 합류될 순 없어. 이건 냉수하고 기름이라. 모든 사람하고 나하곤 정반대라. 그래 합류 안돼요.   내 자식도 당장 제게 싫은 걸 싫다 하는데, 그걸 볼 때 다 그럴 거라. 제게 싫은 건 싫다고 할 거라. 제게 싫은 것이 세상엔 좋으리라고 생각해야 돼.   내게 싫은 건 세상이 좋은 거야. 세상이 싫은 건 내게 좋은 거고. 그럼 거 안된 거지? 개체(個體) 하나의 싫다는 거 표현하면 안돼. 전체적으로 좋은걸 해야지.   그게 오늘도 국회의원 나가면 뭐 다 해준다 하고, 나가서 국회의원 노릇만 하고 들어오면 어떻게 되나? 자기가 그만한 실력이 없으면 그런 거짓말하지 말고 그만한 재목이 못되면 재목 있는 사람한테 사정해, 나가도록. 재목이 되는 사람한테 가서 나가 달라고 사정하면 그건 진정한 국회의원이 될 수 있어요.   살살 거짓말해 가지고 표를 얻어 가지고 나가? 그 사람의 머리속에서 이뤄지는 게 도대체 뭐이냐? 이게 지금 몇 대로 국회의원이 있는데 그 국회의원, 많은 수백의 숫자가 우주의 신비한 나라가 이뤄지나, 세계의 선진국이 이뤄졌었나.   이건 도대체 뭐 하는 거냐? 그래서《천부경》속에 들어가면 정치(政治)라는 건 신(神)의 정치라. 인간이 하는 거 아니야. 신통자(神通者)가 해야 돼.   그런데 우리나라에 신통자는커녕 각자(覺者)도 무시하는 민족, 각자를 무시하는 나라 어디 있나? 거 우리나라밖엔 없어. 내가 가슴 아피 생각하는 건 지구의 모든 불행이 나 때문에 온다.   지구의 모든 불구(不具)가 나 때문에 완인(完人)되진 못했다.   그게 내가 가슴에 미안한 응어리가 생긴 거라. 생겼지만 이런 나라에 태어나 가지고 그 응어리가 풀어지냐? 안 풀어져. 그래서 나는 늘 숲속에 혼자 고요히 살다 가야 되는데.   앞으로 10년 후에 그 말 못할 괴질에 죽는 걸 내가 어려서 환히 보고 있어서 지금도 그 생각이 나. 가다 오다 피 토하고 죽는 걸, 서로 껴안고 피 토하는 거. 이걸 보고 있으나 내 힘이 어떻게 되느냐 이거라.   내가 지금, 세상에 나온 지도 몇 해 되지 않아요.   이야기해 봐야 소용 있나? 오늘까지 된 게 뭐이요? 내가 한 것도 전부 정신병자의 잠꼬대라.   하나도 된 거 없어요.   그런 잠꼬대를 앞으로 계속해도 죽을 때까지 될 거 없다면 어떻게 되느냐? 그래서 지금은 한 사람이라도 그 비밀을 가르칠라고 하는 거요.     그런데 손금 봐 달라, 뭐 골 아프다, 배 아프다 하는 사람만 오지, 그런 걸 가르칠 시간은 오지 않아요. 또 피로가 겹쳐 가지고 가르칠 사람이 와도, 가르쳐 줄 사람이 와도 못 가르쳐. 도와주고 싶은 사람이 와도 지금은 못 도와줘.   그거이 내가 지금 현실에 노쇠했다는 증거라. 여러 사람에 시달리면 밤이면 잠을 이룰 수 없이 피곤한 때 많아요. 그래 또 그 이튿날 아침에, 새벽에 서울서 새벽차 타고 들어오는데, 그걸 가라고 따귀를 때릴 순 없고 욕만 해 보낼 수도 없고. 그 사정은 결국에 해(害)가 내게 오는 거라.  
    인산학천부경
  • 昻明人中天地一의 신비세계     이 민족을 내가 볼 때에 왜놈 앞에서 우릴 죽이는 것이 가장 영광스럽게 생각해. 거 어떻게 되느냐? 김일성인 사생동지(死生同志)를 죽이고 좋아하듯이 왜놈을 위해서 우릴 죽이는 걸 좋아하는 자 있고 제 동지를 죽이고 좋아하는 자 있으니 이 민족성을 어떻게 말하나?   그래서 내가 이제 오·칠·일 묘연은 완전무결하게 이야길 했지만 거말고도 많은 해석을 했어요, 하고.   또 묘명인중천지일(昴明人中天地一)이라고 했는데 그걸 ‘묘’자로 읽는 사람이 많아요. 나도 그러면 그렇게 읽어요.   그렇지만 나는, 건 높을 ‘앙’(昻)자 앙명인중천지일(昻明人中天地一). 그러면 그것은 인간을 비해서 “네가 즉 천지느니라, 하늘과 땅은 네게 있느니라.”   그건 뭐이냐? 네 정신은 하늘에 있고 네 육신은 땅에 있느니라. 왜 땅에 있느냐? 땅에서 나온 초목, 짐승 뭐 고기 할 거 없이 땅에서 나는 걸 먹고 생긴 살코기, 거기서 피가 생기니 살이 거기서 되지? 어머니한테서 물려받은 것도 내내 땅에서 나온 걸 가지고 자식을 만들고 자식은 그걸 먹고 컸고.   그러면 육신은 썩으면 흙이고 안 썩으면 흙에서 난 걸 먹고 사는 거. 그래서 그 육신 자체가 흙이라. 그러고 정신은 흙이 아니라.   정신은 우주의 모든 기운이 모아 있어요. 대각(大覺)한 이들은 우주의 별 정기가 안 들어온 사람이 없어요. 다 들어와요, 이런데.   그래서 앙명인중천지일. 거 높을 ‘앙’자 우러를 ‘앙’자, 높을 ‘앙’자인데. 거 가장 우주와 같이 밝은 사람 가운데 마음은 하늘과 땅과 똑같다 이거라. 천지와 하나야. 그래서 그런 거고. 거기에 지금 설명을 다 나가면 고루 할라면 가장 어려운 일이 많은데.   거기에 이제 물에 ‘정’(精)이 있고 불에 ‘신’(神)이 있는데. 화기, 물에 정. 그러면 수정(水精)은 혼자서 빛을 낼 힘이 없어요. 화광(火光)이, 반조(返照)라는 건 뭐이냐?   이 모든 생물세계에 비친 화광이, 화광이 그 불세계 하고 합류할 때 비치는 걸, 그게 정이야.   그 비치는 걸 정의 정광(精光)이거든. 그걸 가지고 수정은 화광이 반조할 때만이 완전히 우주의 정광체(精光體)가 돼요. 그럼 거 신비세계인데.    
    인산학천부경
  •   自卑自虐의 민족성에서 벗어나야.     그렇지만 왜족은 모른다. 아, 요즘에 제 나라의 훌륭한 사람은 지워 버리고 그 역사를 덮어놓고 다른 나라 훌륭한 사람 역사를 떠드는 거이 현실이라. 일본놈 시절에 일본의 홍법대사(弘法大師)를 굉장히 추앙하는 승려가 많아요. 우리나라의 서산대사(西山大師)하고 갖다 놓으면 봉황 앞에 깨구래기[개구리]도 못돼, 병아리 아니라.   봉황 앞에 깨구래기도 안되는 이걸 가지고 추어싸니[추앙하니] 이거 어떻게 되느냐? 내가 그걸 보고 “저것도 중이구나.   저것도 이름이 불자(佛子)인데 부처님이 아들 똑똑한 아들 두었구나.” 거 어떻게 되나? 이름이 불자라고 하는 사람이 그 왜놈의 중, 서산대사나 우리나라의 그전에 훌륭한 양반들이 하도 많은데, 대선사가 수북한데 그런 분들 앞에 비하여선 안되는 양반, 그걸 가지고 추어싸니 거 마음이 좀 아프나 마주서면[맞서면 ; 대항하면]바로 가서 고발하면 나만 손해요. 묘향산에서 또 저 낭림산(狼林山)으로 도망해야 돼. 이런 세상을 살아왔는데.   그러면 우리 땅에는 역대로 내려오며 위대하나 우리는 위대하다는, 나타나는 인물이 없어. 건 뭐이냐? 뒤에 붓을 든 양반이 되놈을 잔뜩 추고[추앙하고].   그 양반들 글엔 그게 있어요. 존중화(尊中華)하고 양이적(攘夷狄)하라. 내가 그런 놈의 글 쓴 양반 글의 문집(文集)을 일체 안 봐요. 거 정신병자들 쓴 거라. ‘중화’, 되놈만 존중하고 우리 같은 오랑캐는 아주 발바닥으로 밟아 버려라 이거야. ‘양이적’이라는 건 내쫓으란 말이요, 내칠 ‘양’(攘)자, 이러니.   우리가 우리를 그렇게 욕하는 학자라면 난 그 학자를 숭배 안해. 그러기 때문에 내가 세상의 글을 안 볼라고 하는 이유가 그거라. 학자들이 쓴 거라. 그래 이조의 문집을 내게 그전에 많은 사람이 가지고 와요. 좀 가르쳐 달라고. “이것 나 모르는 글이다.   가지고 가라. 이건 되놈이라면, 저 할아버질 오랑캐라고 하고 되놈이라고 하면 성자(聖者)라 하는 그 양반들이 쓴 거다. 내 곁엔 가지고 오지 마.” 그러면 다 날 욕해, 버릇없다고. 그 훌륭한 대현(大賢)의 문집을 그렇게 말한다고. 그래서 난 욕을 먹어요. 욕을 먹어도 그런덴 바른 소리해요.   왜놈의 땅에 가고 싶지 않은 것도 내가, 동지들이 만주에 피를 흘리고 대한 독립만세 부르고 죽는데, 그 뼈가지가 지금 풀 속에 묻혀 있어. 그런데 왜놈의 나라에 왜놈을 보러 가? 지금도 정 사정하면 갈 수 있을까는 모르는데 그건 내가 망령이 들 때만 있을 수 있어.   아직까지도 망령은 100%에서 70%도 안돼. 100%되는 망령객이 되면 똥오줌 모르는 때엔 갈 거요. 똥오줌을 아는 땐 안 가.  
    인산학이야기속으로
  •     단군 35대孫 神武天皇       그런데 내가 지금 딴 얘기를 많이 했어요. 하는데도 거 해롭지 않은 소리지. 이래서 하는데.   지금 거 왜놈이 내가 하도 원이 맺혀서 일본 땅의 교포들이 오라고 초청하겠다고 해도 아주 냉정하게 거절한다? 건 왜 그러냐?   나는 뼈가 가루되게 매 맞았으면서 그 사람들 나라에 가고 싶어? 또 우리 임진란부터 신라 때부터 왜놈의 손에 우리가 얼마나 죽어 갔게. 그렇지만 그 뿌리는 한 뿌리라. 그건 내가 잘 알아요. 한 뿌리인데.   신무천황(神武天皇)이라고 하는 일본 역사의 인물이 있는데, 그 자가 있다는 걸 내가 책을 보는 거 아니고 정신 속으로도 있다는 건 알아요.     그런데 그건 누구냐? 이《천부경》에 오․칠․일이라고 있어요. 오․칠․일, 오․칠․일묘연(五七一妙衍)이라고 있는데 오 · 칠 · 일이라는 게 뭐이냐? 오칠이 삼십오(5×7=35), 단군 35대 손(孫)에 가서 가장 아시아의 유일한 인물이 하나 나온다.   그 신무천황이라는 자가, 그 미개족들이 창조시에 이야기한 거 돼 그러지, 참말로 훌륭한 인물이야. 그래서 아시아의 유일한 신무천황이라는 자가 나온다는 거지.   그건 그땐 신무천황이 아니고 그 양반 말씀은 유일한 영걸지주(英傑之主), 영웅호걸, 영걸지주가 탄생한다. 그걸 의미한 거라.   오․칠․일이 묘연이야. ‘묘’라는 건 단 하나인 비밀을 말하는 거고, ‘연’이라는 건 단군 때까지 35대만을 이어 가지고 오다가 그런 인간이 나온다.   그래 ‘묘연’이라고 붙였어요. 그건 고운 선생님의 해석이라, 이런데. 그래서 그 왜족이래도 단군할아버지가 내 35대 만에 내 핏줄에는 신무천황이란 그런 영걸지주가 나오니라,   그걸 표현했으니 그걸 볼 때에 고운 선생님도 탄복한 거고 나도 어려서 그 절구(絶句)를 탄복한 거요.   우리 할아버진 이런 분이다.  
    인산학천부경
  • 천년 묵은 瓦松의 신비     그러고 여기 개왓장에 와송(瓦松)이 있어요. 와송세계가 뭐이냐? 와송세계가 그 개왓장은 불에다 구워 낸 황토질인데, 진땅의 진흙인데.   이 속엔 상당히 비밀이 많아요. 비밀이 많은데. 비가 오게 되면 거기에 빗속에 좋은 우주진(宇宙塵)이 누적돼 가요. 거기에서 생장한 놈은 좋은 약초가 와송이라고 있어요. 와용인데, 와송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왜 지금은 나쁘냐? 이 공해가 증발돼서 그래.   그런데 절에서는 거 약수다, 또 약초다, 약목이다, 이런 증발물이 많아요.   샘이 원래 산천 그 도랑물도 시냇물이 원래 맑고 광석물 속에서 좋은 약수도 나오는데, 그놈들이 전부 증발돼서 비오면 바람 불어서 들에 나가지 않으면 그 개와에 떨어지게 돼 있어요. 그거이 천년이라면 그 속에 부처님 힘이 있어요. 그런 와송은 상당히 좋은 약이 되게 돼 있어요.     그래서 천년 묵은 개와 위에 와송은 약이다. 건 사실이지요.   옛날 양반이 알기 때문에 사실인데. 지금은 사실이 아니오.   지금은 절 개와도 바람 부는 날 비 오게 되면 구름 속에서 여기에 있는 공해물이 있게 매련이오.   그래서 그걸 싹 제대로 할라면 지금 알래스카 같은 데 가서 약초를 심으면 비슷할 거요. 농약을 안 치고도 키울 거요.  
    인산학인산본초약물
  •   대나무 하나에도 비밀은 무궁무진     그러면 석삼극무진본에 들어가서 삼통자 뒤에 그 모든 구름 속의 비밀도 한이 없으니까 그걸 어떻게 다 설명하나? 운학(雲鶴)이라고 하면 학의 비밀.   대나무, 대나무 비밀은 대나무는 거기에 퉁소를 만들면, 아주 이 대금 만들면 아주 신통하는 대나무가 있어요. 그건 어떤 땅에서고 어떤 방향으로 어떤 산속에 있는 거이 틀림없느니라. 거기에 비밀도 한이 없고. 그 비밀속에서 대나무의 신통(神通)하는 술(術)이 나와요.     그래서 요즘에 퉁소를 만드는 건 옛날에 전해진 전설로 따라 만들지. 그렇지만 그런 비밀은 챙길 수가 없어요. 동선본 교수님   어느 해에 났으니, 갑자년(甲子年)에 났으니 이 대나무는 아무 해에 가서 꼭 필요하다. 갑자년에 났는데 왜 기축년(己丑年)에 꼭 필요하냐? 그것도 이 자연의 비밀이라.     그래서 갑(甲三 · 八木의 三 )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셋이 근본이고 갑인삼(甲寅三)이고, 이 기축년이라 하면 ‘기’라는 건 갑기(甲己)가 화토(化土)하는 그 음양술서(陰陽術書)인데. ‘기’(己)라는 건 ‘백’(百)을 상징하는 거라. ‘기독백’(己獨百)이라, 사주보는 데도 그래요, 이런데. ‘기’는 완성한 이야기라. ‘갑’(甲)은 모든 생물세계를 창조하는 이야기고. 그래서 대나무 하나 가지고도 그 비밀이 무궁해. 대나무 잎에서 나는 소리, 그 비밀이 무궁한데. 그것을 다 설한다는 건 내가 머리가 어두운 이때엔 힘들어요.   그러고 또 거북 ‘구’(龜)자, 거북이라는 그거 아주 신통물이오. 발바닥에서 땅을 짚고 있으면 땅속에 어떤 생물이 살고 있는 거 다 알아요.   물속을 헤어[헤엄쳐] 갈 때도 그러고. 그 갑옷이 잔등 그 뚜껑인데, 그 잔등의 갑(甲)이 우주의 비밀을 다 알아요. 용의 비늘 한가지라, 이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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