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의 믿음은 신의의 환란
김 윤우/ 전 단국대 동양학연구소 전문위원·한국 자유기고가협회 부회장
직궁과 미생의 고사는 신의의 환란
근래에 정가에서는 세종시 문제와 관련하여 미생지신(尾生之信) 곧 미생의 믿음이라는 중국 고사성어를 가지고 한 당의 두 계파간에 품격높은(?) 정치적 공방전을 벌인 바 있다!(중앙일보 1월 19일자 참조)
곧 지난 14일,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는 세종시 문제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정부가 일시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지만 이를 고집하지 않고 올바르게 고쳐 나가려고 애쓴다면 국민이 정부를 신뢰할 수 있다. 중국 고사에 미생지신이란게 있다. 미생이 애인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폭우 속에 오지않는 애인을 다리 밑에서 기다리다가 결국 익사했다는 고사다.”
이에 대하여 박근혜 전대표는
“미생을 얘기할 때 이해가 안 됬다. 그 반대로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니냐. 만나기로 약속한 미생은 진정성이 있었지만 그 애인은 그렇지 못했다. 미생은 죽었으나 귀감이 됬고, 애인은 평생 괴로움 속에 손가락질 받았다.”
위의 두 사람의 정치적 논쟁에 중국 고사성어가 등장하고 있어서 본인과 같은 동양학 연구자로서 볼 때 금방 관심의 눈길이 가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위에서 정대표의 고사 해석에 응수한 박 전대표의 고사 해석에 있어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곧 이 짤막한 미생의 고사에서 그 애인의 입장까지 이야기한다는 것은 원전에도 없는 거의 소설적 이야기로서 이 고사의 진실과는 거리가 있다고 본다.
박 전대표는 또 약속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증자의 돼지’라는 중국 고사까지 뒤이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두 중국 고사에 대한 박 전대표의 견해와 모습을 보게 대면서 그녀에 대한 실망감이 생기는 것을 금할 길이 없다!
곧 이전까지는 그녀에 대하여 부친의 지도자적 자질을 이어 받아서인지, 아니면 나름대로 부친에게 지도자적 수업을 전수받아서인지 처신이 아주 신중하고 매사에 있어서 합리적이고 결단력이 있는 정치가로 생각해 왔었다.
그러나 최근 세종시 문제에 관한 그녀의 정치적 행보와 발언들을 보면 곧 위의 미생지신 고사에 보이는, 지나치게 우직하고 융통성이 없는 미생을 꽤 닮아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녀에 대한 실망감을 금할 수 없게 한다.(물론 정치에 문외한인 우리같은 우생이 정치고수들의 깊은 속낸를 다 들여다 볼 수는 없겠지만```)
위의 미생의 고사에 대해서는 두 정객이 서로 상반된 해석을 하면서 세종시 문제에 대하여 자기 입장을 대변하고 있기도 하지만, 이 고사에 대해서는 일반인들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서로 상반된 견해를 보여 주기도 하고, 또 본래의 원전에도 없는 소설적 이야기까지 멋대로 덧붙여 언급하기도 하면서 이 고사의 본질적 의미를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
이들 모두가 과연 미생의 고사에 대하여 고사성어 사전 따위가 아닌, 본래의 출전을 읽어본 사람들이 얼마나 있는지 그리고 그 본질적 의미에 관하여 얼마만큼 깊이 생각해 보았는지 본인과 같은 동양학 연구자의 관점에서 볼 때 의심이 간다!
미생의 고사에 대한 가장 오래된 대표적 고전으로는 《장자, 도척》조와 《사기, 소진전》을 들 수 있다. 장자에 이르기를,
“미생이 한 여자와 다리 아래서 만나기로 약속하였는데, 여자가 오지 않았다. 폭우로 물이 불어나는데도 떠나지 않고 다리 기둥을 끌어안고 기다리다가 물에 빠져 죽었다.”고 하였다.
장자는 이 미생과 함께 백이·숙제와 포초·신도적·개자추 여섯 사람의 극단적인 행위로 생을 마감한 간략한 삶을 소개한 후 이들은 모두 희생으로 바쳐져 사지가 찢긴 개와 물에 떠내려가는 돼지와 바가지를 들고 구걸하는 거렁뱅이와 다를 것 없는 사람들로 평가절하하여 혹평하고 있다.
그리고 이어 “이들은 모두 명분에 얽매여 죽음을 가벼이 여기고, 사물의 본질을 생각지 않고 타고난 수명을 보양해야함을 망각한 자들이다.”라 하였다.
장자는 또 미생을 직궁이란 사람과 함께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하였다.
“직궁(直躬)은 아비를 고발하여 증언을 섰고, 미생은 물에 빠져 죽었으니 신의(信義)의 환란이다.”
직궁은 공자도 평한 바 있는 인물로 요즘말로 법대로의 원칙을 고수한 자이다! 곧 《논어, 자로편》에 다음과 대목이 보인다.
“섭공이 공자에게, ‘우리 마을에 궁이라는 정직한 사람(직궁)이 있는데, 그는 자기 아버지가 몰래 양을 훔친 것을 증언했오.’라 하니, 공자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우리들이 말하는 정직이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어버이는 자식을 위해 숨기고, 자식은 어버이를 위해 숨겨 줍니다. 정직은 그러한 부자간의 애정 속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장자는 곧 정직이란 명분으로 고지식하게 아버지를 관에 고발하고 증언한 정직의 표상 직궁의 일과, 물이 불어나는데도 약속이란 신의의 명분에 얽매여 자리를 뜨지 않고 우직하게 물에 빠져 죽은 미생의 일을 ‘신의의 환란’이라 규정하였다!
위의 미생은 당나라 안사고의 말에 의하면 일명 ‘미생고’라고도 한다. 그렇다면 미생 또한 공자께서 한 번 평을 한 바 있는 인물이다. 곧 《논어, 공야장편》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보인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누가 미생고를 정직하다고 하는가? 어떤 사람이 그에게 식초를 얻으러 갔더니, 그가 식초를 이웃집에서 얻어다 주었다.’”
공자께서는 곧 내 집에 물건이 없으면 없다고 할 일이지, 그것을 이웃집에서 빌려다 내 것을 빌려주는 것처럼 생색내는 것은 위선적인 행동으로 정직하지 못한 일이라는 뜻으로 말씀한 것 같다.
그렇다면 미생의 고사에 등장하는 미생은 이미 당대의 성자인 공자와 그리멀지 않은 후대시기인 전국시대 현인 장자에게 저평가된 인물로, 일면 순진하고 고지식해 보이기는 하지만 박근혜 전대표의 말처럼 후대에 귀감이 될만한 인물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미생의 믿음은 틀린 것
미생의 고사에 대한 최고의 출전으로 많은 이들이 장자와 함께 사기 소진전을 예로 들면서 소진이 미생을 신의의 표상으로 언급한 것처럼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소진전을 끝까지 정밀하게 읽어보지 않고 단장취의격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소진전에 의하면, 소진은 연나라 이왕(易王)에게 “만일 증삼(증자)과 같은 효자, 백이와 같은 청렴한 인물, 미생과 같은 신의 있는 인물이 있어서, 이런 세 사람을 찾아 대왕을 섬기도록 하면 어떻겠습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왕이 만족한다고 하자 소진이 이런 부류의 비현실적 인물들에게는 연나라를 위한 국가의 중대한 외교업무 따위를 맡길 수 있는 인물들이 못된다는 뜻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곧 증삼과 같이 효의 도리를 다하고자 그의 부모 곁을 떠나 밖에서 하루 저녁도 자지않을 인물에게 어찌 천리 밖으로 가서 위기에 빠진 연나라의 국왕을 섬기도록 하게 할 수 있겠느냐는 논리로, 청렴한 백이와 신의를 지킨 미생과 같은 인물도 마찬가지로 국가의 중대업무를 맡기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뜻으로 연왕에게 이야기한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비록 충성스럽고 신실하기는 하지만 자기만을 위하고 나아가 취함을 강구하여 다른 사람을 위해, 곧 연왕을 위해 일할 수 있는 현실적인 인믈은 못된다는 뜻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전국책, 연책》에 의하면, 소진의 동생인 소대도 연나라 소왕에게 ‘미생과 같은 신의는 단지 남을 속이지 않은 것에 지나지 않을 따름이다’고 하였다.
《회남자, 범론훈》에서는 미생 등의 고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말을 하면 반드시 신용이 있고 약속을 하면 반드시 지키는 것은 천하의 고귀한 행동이다.
직궁이란 자는 그의 아버지가 양을 훔친 것을 자식으로서 증언했고, 미생이란 자는 여인과의 약속을 지키다가 익사했다. 곧아서 아버지의 죄를 증언하고 신의를 지키다가 익사했으나 비록 곧고 신의가 있다 하더라도 누기 이것을 귀하게 여기겠는가?”
같은 책 설산훈에서는 또 다음과 같이 미생을 말하기도 하였다.
“믿음에도 틀린 것이 있고 예에도 잃은 것이 있다. 미생이 다리 기둥 아래서 죽은 것은 믿음이 틀린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미생지신의 고사에 나오는, 미생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내던진 행동에 대해서는 춘추전국시대 이래 굳게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긍정적인 측면보다는, 약속을 헌신짝 버리듯 버린 하찮은 여인과의 약속을 위해 우직하여 융통성없이 목숨까지 버린 어리석은 인물로 본 것이 일반론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한서, 동방삭전 등과 같이 ‘청렴한 것은 포숙과 같고, 신의는 미생과 같았다.“라 하여 미생을 신의의 상징적 인물로 볼 수 있는 측면도 일면 있을 수 있으나, 이것이 보편적인 일반론은 될 수 없다고 본다. 이는 요즘의 대표적 국어대사전인 표준국어대사전에도 다음과 같이 미생의 고사를 주석하고 있는 예에도 드러나 보인다.
“미생지신:우직하여 융통성이 없이 약속만을 굳게 지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이상과 같이 미생의 고사가 시사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일반론적인 교훈은 그 약속에 중대한 문제가 발생해도 미생처럼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끝까지 고수할 게 아니라 어쩔 수 없는 부득이한 문제가 발생하면 그 약속을 수정해야 될 상황도 있을 것이라 본다.
곧 미생처럼 다리 밑에서 장소를 떠나지 않고 다리 교각을 끌어안고 약속을 위해 물에 빠져 죽을게 아니라 부득이한 사정으로 약속을 조금 변경하여 다리 위로 올라와서 여인을 기다려 볼 수도 있고 좀더 높은 고지대로 가서 여인이 나타날 방면을 주시하면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도 될 것이다.
세종시 문제는 국가 중대사가 걸린 문제
요즈음 최고의 국민적 이슈가 되고 있는 세종시 문제에 대한 원안고수냐 수정안(신안) 지지냐 하는 문제도 약속을 어떻게 지키느냐 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미생의 약속문제와 마찬가지라 본다.
이 문제는 미생처럼 한 개인의 문제라면 신의라는 한 명분을 위해 강물에 떠내려가는 돼지같이 목숨을 초개같이 버려도 그만이겠지만 이 일에 국가의 백년대계와 같은 국가의 중대사가 걸린 문제라면, 또는 그러한 국가지도자의 입장에 있는 사람이라면 꼭 지킬 수 없는 약속에 대해서는 누구처럼 이 주제로 재미좀 보았다는, 대중영합주의에 의한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재삼 숙고하고 신중히 처신하여 이 문제를 처리해야 할 것이라 본다!
박 전대표도 2004년 6월 21일 "신행정수도 특별법을 통과시키는 과정에 우리 실책이 컸다"면서 '무엇보다 국가 중대사를 놓고 충분한 공감대 형성이나 의견, 타당성에 대한 충분한 검토를 갖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듯이 지금의 정치적 입장과는 반대편의 입장에도 있었던 것을 한 번 상기해 보아야 할 것이다.
박 전대표는 미생의 고사에 대하여 응수한 것이 미흡하다고 여겼는지 최근에는 또 증자의 돼지, 곧 증자살체(曾子殺체) 또는 증자살저(曾子殺猪)라 이르는 고사를 들고나와 그녀의 정치적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이 고사인용에 대해서도 썩 수긍이 가지 않는다.
곧 증자의 부인이 시장에 갈 때 자꾸 따라오며 우는 어린애를 달래려고 집에 돌아오면 너를 위해 돼지를 잡아 고기를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하였는데, 증자의 부인이 집에 돌아오자 증자가 돼지를 잡으려고 하길래 부인이 말하길 아이를 달래려고 장난으로 한 말인데 진짜로 돼지를 잡으면 어떻게 하냐고 하였다.
증자가 말하길 어린애는 보는대로 배우고 따라하는데 아이에게 거짓말을 가르칠 수는 없다고 하면서 돼지를 잡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고사내용에서 부모로서 약속을 지킨다는 것을 보여줄 교육적 대상은 오늘날의 초등학생 1~2학년 짜리의 어린아이이지만, 오늘날 세종시 문제에 관하여 국가 지도자급 인사들이 약속을 지키는 걸 보여주어야 할 대상의 국민은 적어도 대학생 이상 대학원생(석·박사과정의) 정도의 지식과 의식수준을 지니고 있는 이들이라 부모가 거짓말을 하거나 잘못하는 일이 있으면 오히려 잘못을 지적할 수도 있는 이들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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