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하 1000년 이상된 기와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립니다.
무장사 터 절 주변에는 기와조각이 무수히 널려있습니다.
원형에 가까운 것을 구하는 것은 쉬운일은 아니지만 약용으로 쓰기에는 무난할 것 같습니다.
저는 반송에서 약국을 개업하고 있습니다.
저는 몇 년 전에 OFF-Road Tour 코스로 무장사터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 이후 수차례 친구들과 방문을 했습니다.
산 중턱에서 만나는 탑의 웅장함과 놀라움은 새로운 경험으로 다가옵니다.
저는 그 이후 탑에 대해서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경북 경주시 암곡동에 절터가 남아 있다.
무장사터이다.
태종무열왕이 삼국을 통일한 뒤 병기와 투구를 이 골짜기에 숨겼다 하여 무장사라고 하였다는 유래가 《삼국유사》에 전합니다.
《삼국유사》가 씌어질 무렵까지는 사찰이 현존해 있었으나 그 뒤 무슨 이유로 폐허가 되었는지 기록이 전해지지 않지만, 산 중턱에 위치해 있는 절이라 접근하기가 용이하지 않아서 인지, 그 이후로는 중건이나 보수의 기록은 없다.
절터의 미타전: 이 절의 고승이 잠을 자다 꿈을 꾼 뒤 세웠다 하며 안에 봉안된 아미타불과 신중(神衆)은 소성왕비인 계화왕후가 먼저 죽은 남편의 구원을 위해 희사한 재물로 만든 것이라 한다. 이 터에는 미타상을 조성한 인연을 적은 비문 무장사아미타불 조상사적비의 비신을 받쳤던 귀부와 이수만 남아 있다. 비신은 왕희지(王羲之) 글씨를 집각한 것으로 1915년 파편 3조각이 발견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이 비문으로 무장사터라는 것이 알려졌다. 숲 사이에 방치되어 있던 것을 1963년에 복원한 무장사지삼층석탑(보물 제126호), 석등의 옥개석(屋蓋石)과 미타전의 자리를 짐작하게 하는 10개의 초석이 남아 있다.
무장사지 삼층석탑
경북 경주시 암곡동(暗谷洞) 무장사 터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화강석 석탑.
지정번호 : 보물 제126호
소장 : 무장사
소재지 : 경북 경주시 암곡동(暗谷洞)
시대 : 통일신라시대
크기 : 높이 약 4.94m, 기단(基壇) 너비 약 3.21m
종류 : 석탑
보물 제126호. 높이 약 4.94m, 기단(基壇) 너비 약 3.21m. 쓰러져 있던 것을 1962년에 복원하였다. 그 중 기단 위의 3층 석탑으로, 지대석(地臺石)과 하층기단은 중석(中石)을 붙여서 8개의 돌로 짰고, 중석은 우주형(隅柱形)으로 되어 있으며 각 면에 2주식(柱式)의 탱주(撑柱)가 있다. 갑석(甲石)도 8개의 돌로 짰으며 윗면에는 약간의 경사를 두고 그 중앙은 각형(角形)과 호형(弧形)의 몰딩(쇠시리)으로 상층을 받쳤다.
상층기단의 중석 역시 8개의 돌로 구성하였고, 각 면에는 2좌식(二座式)의 원에 가까운 형태의 안상(眼象)을 조각하였을 뿐 우주와 탱주는 표출하지 않았다. 갑석은 4장의 판석(板石)으로 덮었고, 밑에는 부연(附椽)이 있으며 윗면 중앙에는 2단의 각형(角形) 몰딩이 있어 일반 석탑의 기단구조를 따랐다. 그러나 상층기단 중석의 각 면에 새겨진 안상은 특이한 장식이다.
탑신부(塔身部)는 옥신(屋身)과 옥개석(屋蓋石)을 각각 하나의 돌로 짰는데 높고 큰 첫층의 옥신에는 4귀에 우주가 있을 뿐 다른 장식은 없다. 2층 이상은 체감비율이 급격히 줄어들었으나 각층의 옥개석은 건실한 비율로 작아졌다. 각층의 받침은 5단이고 첨하(墅下)는 직선이며 전각(轉角)의 낙수면(落水面)부터는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있다. 첫층 옥신의 윗면 중앙에 1변이 27.5cm, 깊이 23cm의 네모난 사리공(舍利孔)이 있으나 사리는 없어졌다.
보수 때 없어졌던 하층기단의 갑석, 상층기단의 중석과 갑석 등 부재(部材)를 새로 만들어 보충하였고, 상륜부(相輪部)는 모두 없어진 것을 노반(露盤)과 복발(覆鉢)만을 새로 만들어 얹었다. 이 탑은 첫층의 탑신이 약간 높은 편이나 단순화가 심하지 않은 점과 기단부의 안상으로 보아 9세기 이후에 조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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