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치원의 풍류도에 대하여.
※불빛(火光)이 보이면 화신(火神)의 음(音)인 치(徵)로 보고 수극화(水剋火)의 법칙에 따라 수정(水精)의 힘으로 공격하면 승리한다. 창칼이 부딪치는 소리는 상(商)이니 화신(火神)의 힘으로 공격하고 휘파람 소리 따위는 우(羽)니 토령(土靈)을 이용하면 승리한다. 이런 식으로 오신(五神), 오음(五音)을 실제 전술에 이용했다.
《六韜三略》(龍韜條, 第二十八) ☆原文 각궁우상치(角宮羽商徵)의 오음(五音)을 듣고 오신(五神)을 판단하여 적군의 기운을 꺾어버리는 공격 방법을 알아내는 것이 옛날의 전통 군사과학이었다. 천문(天文:하늘의 별), 지리(地理:땅의 地磁氣가 작용하는 이치)가 지휘관이 배워야 할 필수과목이었다. 장군으로 승진되면 단(壇)에 올라 천지귀신에 제사를 지내는 의식이 있었다.
그래서 군 지휘관의 필수과목인 천문에 관한 자연과학책을 《등단필구(登壇必究): 천문(天文)에 관한 책》라 했다. 등단필구에 통달하면 신책이 나오고, 지리에 통하면 묘산이 나온다. 각 지휘관이 계산해서 얻은 신책(神策)과 묘산(妙算)이 천지대도(天地大道)에의 부합(符合)여부(與否)를 알아내기 위해서 하는, 묘산신책(妙算神策)을 취합(聚合)하는 것을 화백(和白)한다고 했다. 참석자 전원의 책산(策算)이 일치하지 않으면 파의(破意)했다. 파의(破意)되면자기 부대로 돌아가 목용재계하고 다시 추수(推數)했다.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대한 전쟁이나 왕을 산출할 때는 반드시 화백(和白)을 해서 결정했다. 파의(破意)는 부결(否決)이다.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은 그 해 설날에 천문을 보고 미리 알았으니 화백(和白)해서 알았던 것이다. 화백한 내용을 외부에 누설하면 천기누설(국가기밀누설)이니 반역죄로 처벌했다. 비용이 안드는 국민투표와 같은 것이 화백(和白)이다.
화백은 민주제도가 아니라 신정(神政)때의 신(神)의 계시나, 당시 지도자의 지혜의 취합(聚合)이었다. ☆최치원과 민족주의, 그리고 풍류의학 최치원은 국조 단군신인(檀君神人) 98대손으로 태어나 우리 민족신앙을 지키고 기르는 데힘썼다. 중국에서 들어온 중국문자에 압도되어 고사(枯死)해 가는 우리 고유문자가 장래에 없어질 것을 예견하고, 당초 우리글자로 된 천부경을 중국문자로 번역하여 인적이 끊어진 심산 암벽에다 새겨 놓았다. 천부경은 우리민족 종교의 경전이며 전통 자연과학 법칙이니 최치원에 의해 오늘에 전해지게 된 것이다.
그는 또 난랑비서문(삼국사기 기록)으로 풍류(風流)를 전했다. 지리산 쌍계사에 아직도 있는 진감선사비문에서 그는 중국을 서국(西國)이라 불렀으니 우리나라를 세계의 중심으로 생각했던 그의 민족주체사상이 여실히 드러난다.
스스로 지은 그의 호는 해운(海雲)이니 우리 말로는 밀구름이다. 당시 우리 말은 바다를 밀이라 했다. 밀은 물(水)의 옛말인데 오늘에도 울릉도 사람들은 고리잡이하러 바다에 나가는 걸 ‘물(바다)에 간다’고 하고 있다.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이 다 물은 ‘밀’이라 했고 바다도 밀이라 불렀다. 그 때는 단어가 세분화 되기 이전이어서 바다, 물, 용(미리)을 모두 ‘밀’이라 불렀고 하늘의 강인 은하수도 밀이내(미리내:龍川)라 했다. 운(雲)은 천자문에서 설흔세번째 글자이고 치(致)는 설흔다섯번째 글자다.
33은 삼십삼천지일인(三十三天之一人)임을 뜻하고 35는 천부경의 오칠일묘연(五七一妙衍)의 5 x 7을 표시한다. 공자가 이름을 구(丘)라고 한 것은 그의 전생이 니구산(尼丘山) 산신이었음을 표시하고, 그의 호가 중니(仲尼)인 것도 니구산의 니(尼)와 어려서 죽은 형이 있기 때문에 중(仲:맞이는 伯이다.)이란 글자가 들어 간 것을 참고하면, 최치원의 이름과 호의 뜻을 잘 알 수가 있다. 운등치우(雲騰致雨), 네 글자는 천자문의 아홉 번째 줄이다. 구(九)는 하늘(天;乾)을 뜻하는 수다.
천부경이 9 x 9, 81글자로 되어 있는 사실과 결부시키고, 또 최치원(崔致遠)의 치(致)와 해운(海雲;死後에는 孤雲이라 했다.)의 운(雲)의 두 글자가 천자문 9째 줄에 있는 사실을 들어, 도인(道人)들 중에는 국조 단군 신인이 최치원으로 재림한 것이라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김유신 역시 삼십삼천지일인(三十三天之一人)이라 한다. 삼국유사 태종춘추공 얘기에 그 기록이 있다. 신문왕때 당 고종이 신라에 사신을 보내어 「우리 당태종은 위징과 이순풍 등 현명한 신하를 얻어 천하를 통일했기 때문에 태종이라 칭했다.
신라는 해외의 소국으로 태종이란 칭호가 가당찮다」고 꾸짖었다. 이에 신라는 답하기를 「신라가 국토는 작으나 성스러운 신하 김유신을 얻어 삼국을 하나로 통일했기 때문에 시호를 태종이라 한 것이다」라 했다. 당고종이 이 글을 읽고, ‘삼십삼천의 한 사람이 신라에 김유신으로 태어난다’는 소리가 공중에서 들려 이 사실을 글로 적어 놓았다는 얘기를 태자 때에 들은 사실을 상기하고 기록을 조사해 보니 틀림없는 지라, 놀라고 두려워 다시는 거론하지 않았다.
(有天唱空云三十三天之一人 降於新羅 爲庾信 紀在於書 出檢視之 驚懼不巳). 운등치우(雲騰致雨)는 「바다에서 증발한 수증기가 하늘에 올라가 비가 되어 내린다.」라는 과학적 사실을 말하는 글귀다.
운종룡(雲從龍, 구름은 용을 따른다, 구름이 있는 데는 용이 있다)는 주역 말씀과 같이 구름이 용이요, 용이 구름이며, 구름이 비가 되고 용이 비를 내린다.(九五를 설명하는 공자님 말씀에 同氣相求 水流濕 火就燥 雲從龍 風從虎가 있고, 또 時乘六龍 以御天也 雲行雨施 天下平也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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