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이자 초능력자이며 심령과학자인 '안동민(安東民)' 1931년 신미년 양력 9월19일생이고 1997년에 돌아가셨다.
생전에 영능력자 였던 그는 사람들의 전생을 보고 심령치료를 하셨던 분으로 우리나라에 심령과학의 붐을 일으켰던 사람이다.
‘옴 진동수(육각수)’를 처음 도입하여 영적 치료을 하였으며 많은 심령과학책을 집필했다. 특히 외계 문명에서 지구인의 영혼이 유례 되어 진화했다는 모델을 처음 도입 하였다.
현재 외계문명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명상단체들은 직 간접적으로 이분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그분의 번역서 및 저서로는
‘보병궁 복음서’,‘ 심령과학 시리즈’, ‘사후의 생명’ ‘심령과학’, ‘심령진단’, ‘악령의 세계’, ‘육감의 세계’, ‘자살자가 본 사후세계’, ‘저승을 다녀온 사람들’ 등...이 있다.
그는 자신의 전생에 대해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는데,
자신은 본래 우주인으로 한때는 크리야 요가의 스승인 ‘라히리 마하사야’였다고 하였으며 근세에서는 '강증산'이었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영혼의 매우 다양한 측면을 시사해 주고 있다.
먼저 그분의 영기장을 보면
영기장을 그냥 보아도 무척이나 대단한 분이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모좌(근원의 좌)와 뛰어난 채널링 그리고 강한 기장과 발광체, 또한 중단전과 하단전이 매우 발달해 계셨음을 보여주고 있다.
모좌의 운영은 그 분이 근원적인 힘을 운영하고 생전에 하신 일이 자신의 사명에 맞는 일을 진행하였음을 알 수있다.
채널링의 측면으로 보면 머리(뇌)에 연결된 부분과 기장에 연결된 부분 둘다 매우 발달되어 있다. 심령의 일은 무형의 세계이므로 채널이 발달되지 않으면 이루어 질 수 없다. 생전에 자신의 전생과 다른 사람의 전생을 훤히 꽤뚫어 보신 능력은 이 채널로 인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기장(氣場)도 이중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 인체의 발광에너지가 소모가 된 것이 아니라 기운을 다시 되 돌릴 정도로 기운의 순환이 원활했음으로 알 수있다.
인체의 발광의 형태는 매우 보기 드문데, 즐겨 이용한 옴 진동수(육각수)나 수련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보여 진다.
가슴(중단전)의 기장은 기공 수련자 또는 심리학에 관계된 형태인데, 이분은 수련과 심리(심령)의 두가지 측면을 다 가지고 계셨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중단전은 반드시 하단전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하단전이 강하지 않으면 영능력(일)에 한계를 가지게 될 수도 있다. 적절한 운동과 하 단전 강화는 필수 조건이다.
“자신의 역할을 인식할 때는 창명의 뜻이 된다.”
이는 안 선생님이 자신의 사명을 정확히 인식하고 계셨음을 나타내고 있다.
자시의 사명을 정확히 아는 것 - 공부의 출발 일 수도 있다.
“생사의명을 운영할 때는 반드시 명(命)있어야 한다. 명 없으면 절명의 명잡이 제도되어 영도 멈출 수 있다.”
이는 영적인 일을 다루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로 본다.
생사의 명은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넘나드는 일로 볼 수 있으니 이 일을 할때는 반드시 일정한 조거(命영)을 가추지 않으면 자신의 영혼에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음을 이야기 하고 있다. 일반인에게도 흔히 무형의 존재와 연관을 가지고 대화를 하면 특수한 능력을 보이기도 하는데, 이는 매우 조심해야 할 일이다. 이 세상은 보이는 세계다. 보이지 않는 무형의 세계에 접한다는 것은 그 만큼의 위험 부담을 안아야 한다.
이 분도 돌아가실 때는 불치의 병(뼈가 썩어들어가는 병?)에 걸려 어렵게 돌아가셨다. 스스로 감수 하셨으리라 생각되지만, 영적 세계의 부정적인 측면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아무나 될 수 있다. 나는 아무나 이기도 하다. 한 가지가 아니어야 모든 것을 열 수 있다.”
이 말이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그분은 자신의 전생이 ‘라히리 마하사야’, 또는 ‘강증산’이었다 고 말했다.
그럼 이분이 정말 그러한 전생을 가지고 계셨던 것일까?
개인적으로는 ‘그렇다.’는 대답에 무게를 두는 편이다.
이는 본영과 분영의 개념 때문이다.
인간의 영혼은 개체로 존재하기도 하며 또는 분령으로 존재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즉 이분이 ‘라히리 마하사야’의 본령으로는 보지 않고 분령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영혼은 어떤 특정한 목적을 위해 또 다른 자신을 만드는데, 화신(化身)의 개념으로 이해가 가능하다. 선도에서 말하는 양신(출신)은 또 다른 자신을 만드는 개념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분령과 분령은 결합되기도 분리되기도 한다.
그래서 “변심의 뜻 아니니 변화의 뜻 일수도..”라는 기술이 나온 것으로 본다.
나머지 기술들도 이와 비슷한 측면의 글들이지만, 인간의 영혼은 너무나 신비하고 난해한 면들이 잇다. 파고들면 들수록 어려워지기 때문에 그냥 일반적인 이해를 할 수 있는 범주만 살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되어 해석을 생략 한다.
안동민 선생이 어렵게 돌아 가셨다 하지만 스스로 해야 할 사명을 인식하고 그 일에 최선을 다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 또한 국내의 영적인 인식을 새롭게 하고 인식의 지편을 넓혀 주셨으니 진실로 존경받을 수 있는 분이 아닌가 한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아는 것 . 정명의 출발이 아닐 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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