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TH/건강단신 제 443호 200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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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pping the Power of the Placebo
위약도 제대로만 쓰면 강력한 치료제가 될 수 있다
독자적인 연구 영역으로 부상, 가짜 수술 받은 파킨슨씨병 환자 호전
Howard Brody, M.D.,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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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킨슨씨병이 상당히 진전된 한 환자가 있었다. 그녀는 몸이 너무나 뻣뻣해 거의 걸음을 뗄 수 없는 지경이었다. 그러다 그녀는 실험적인 뇌수술을 받았다. 그로부터 한두달 뒤 한 TV 뉴스매거진 쇼에 그녀가 가뿐히 방을 활보하는 모습이 방영됐다. 수술 전과 비교하면 마치 의학적 기적처럼 보였다. 어떤 의미에선 실제로 기적이었다. 여기서 기적적인 부분이라면 환자가 받은 수술이 가짜였다는 것이다. 태아 신경세포 이식술 연구의 일환으로 의사들은 그 환자를 마취시키고 두개골에 구멍을 냈지만 새 세포를 이식하지는 않았다. 환자의 극적인 회복은 순전히 ‘플라시보 효과’(위약이나 허위 수술 등으로 인한 심리효과로 증상이 호전되는 것) 때문이었다. 연구자들은 이 실험에서 가짜 수술을 받은 환자에게 나타나는 효과도 실제 뇌세포 이식 수술을 받은 환자의 경우보다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플라시보 효과는 실질적인 치료 수단이 없는 돌팔이 의사가 사용하는 최후의 방법이거나 상상 속의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가 환상으로 병이 낫는 데 불과한 것으로 치부돼 왔다. 그러나 이제는 플라시보 효과도 독자적인 연구 대상으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한 실험에서 어린이 천식환자들에게 치료제와 함께 바닐라 향을 맡게 했다. 그러자 나중에는 환자들이 바닐라 향만으로도 천식억제 효과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렇듯 기대심리가 작용할 경우 정신은 육체를 치유할 힘을 갖고 있다.
과학자들은 정신적인 상태와 신체 건강을 연결하는 몇 개의 경로를 밝혀냈다. 예를 들어 마음을 가라앉히는 생각은 해로운 스트레스 호르몬의 생성을 억제한다. 또 정신적인 상태는 면역체계를 조절해 엔도르핀이라는 진통 물질의 생성을 촉발한다. 앞으로 의사들이 관련 신경을 자극해 면역체계를 기계적으로 조작할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때까지 마냥 기다리기만 할 필요는 없다. 지금도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은 위약이나 가짜 수술뿐이 아니다. ‘내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다’, ‘나를 걱정해 주는 사람이 있다’, ‘내 증상은 불가해한 것이 아니다’, ‘내 증상은 다스려질 수 있다’라는 메시지중 어느 하나라도 환자에게 전달해줄 수 있는 것이라면 거의 전부가 건강을 호전시킬 수 있다. 캐나다 연구진은 최근 의사를 찾아가 두통을 호소한 적이 있는 사람들을 연구했다. 의사가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다고 말한 환자들은 그렇지 않은 환자보다 두통이 훨씬 나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훌륭한 의사가 환자들에게 치유의 메시지를 전달하듯 환자 스스로도 자신에게 그런 메시지를 보내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한가지 방법은 자신이 앓고 있는 질환에 대해 스스로 혹은 다른 사람에게 하는 이야기를 분석하는 것이다. 이야기는 강력한 수단이다. 무언가에 관해 이야기를 하면 그것이 완전히 설명됐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몸이 아플 때는 불길한 생각이나 자신에 대해 스스로 손을 쓸 수 없다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이런 생각은 두려움과 무력함을 부추겨 실제로 병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긍정적인 사고를 하면 결과는 달라진다. 극심한 편두통을 자주 앓는 환자를 만난 적이 있다. 당시 실직 상태였던 그는 두통 때문에 직장을 못 구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이야기를 분석한 결과 자신이 두통을 악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초기 통증이 올 때 그는 이미 자신이 머잖아 완전히 일할 능력을 잃게 될 것이라는 끔찍한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편두통을 다스릴 수 있다고 자신을 안심시키는 방법을 배우자 통증은 점차 경감됐다. 그는 곧 새 직장을 구할 수 있었다.
플라시보 효과를 보는 것이 항상 그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자기 얘기도 하고 같은 입장에 처해 있는 다른 이들의 얘기도 들을 수 있는 환자 상조단체에 드는 것이다. 1980년대 스탠퍼드大에서 실시한 실험에서 정신과의사 데이비드 스피겔은 환자 상조단체에 참가시킨 유방암 환자들의 경우 이미 암의 전이가 이뤄진 상태에서도 일반 치료를 받은 환자들보다 평균 18개월 더 오래 살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 단체의 활동을 살펴보면 그런 효과는 당연하다. 그들은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서로를 염려해주었으며, 증상을 이해하고 처치하기 위해 서로 합심했다. 이런 활동은 플라시보 효과를 일으키는 메시지를 자신에게 전달하게 된다.
상조단체 참여 여부를 떠나 환자 스스로 통제력을 가짐으로써 치료 효과를 향상시킬 수 있다. 20여 년 전 연구자들은 한 양로원에서 노인들에게 자기통제 훈련을 시켰다. 1년 뒤 훈련을 받은 노인들은 그렇지 않은 노인들보다 더 나은 건강을 누렸고 사망률도 적었다. 또 다른 실험에서 연구자들은 다양한 만성 질환을 갖고 있는 환자들에게 좀 더 능동적으로 의사와 상담에 임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병원마다 훈련을 받은 환자들은 그렇지 않은 환자들보다 병이 더 호전됐다. 누구나 이런 방법을 이용해 더 나은 건강을 얻을 수 있다. 위약이 그처럼 강력한 치료제인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 힘은 약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에게 있다.
[필자는 미시간주립大(이스트랜싱)의 가정의학·의학윤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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