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벌이 나선 노래방 주부, 왜 이리 많아"
택시창에 비친세상<2> 흔들리는 가족
열 커플 태우면 세 커플은 살벌해…법원가는 짝도 많고
윤락가 가는 여중생 한사코 말렸더니 "내 인생에 참견마요"
▲ 탈선현장을 곁에서 바라보는 택시기사들은 가족의 소중함을 더 절실히 느낀다. 사진은 유흥가의 밤.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은 없다./ 주완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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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이 넘으면 술 취한 아줌마들이 많이 타. 술집 아가씨들보다 많아. 보통 2~3명이 함께 타는데, 어디서 오라는 휴대전화 벨이 계속 울리지.”
택시 운전기사 나근후(52·경력 30년)씨는 “기사들 사이에 요즘 화제는 단연 노래방 주부 도우미”라고 말했다. “남편 실직했다고 한다는 거야. 자식이 중·고생이라니 마흔이 훨씬 넘은 주부들이지. 먹을 것 줄여도 학비를 줄이기 힘들다나, 참…” “밤 10시에서 12시 사이에 30대 후반쯤 되는 아줌마 태우면 전화에 불이 나. 이쪽저쪽에서 오라고. 요즘엔 노래방 도우미만 바쁜 것 같아.”(이종희·47·경력 3년)
김성일(44·경력 2년)씨는 ‘주부 도우미’ 얘기를 꺼내자 “식당에서 설거지하면 돈 못버나!”라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얼핏 들으면 ‘2차’ 나가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 버는 돈이 팍 오르니까. (아줌마들이) 스스로 ‘메뚜기’라고 해. 부르는 곳이 많아 여기저기 뛰어다닌다고.” ‘2차’는 손님과 잠자리를 함께하는 윤락행위를 뜻한다. 홍석규(36·경력 3개월)씨는 “식당에서 12시간 일할 거 도우미 3시간이면 버는 세태가 문제지…”라고 말했다.
한완수(41·경력 5개월)씨는 얼마 전 “집에 들어가기 싫다”는 40대 남성을 태운 일이 있었다. “아내가 ‘노래방 도우미’라 늘 늦게 온대. ‘2차’도 가는 것 같지만 모른 척 한대. 아이 교육비가 아내 호주머니에서 나오니까. 아내가 잠이 든 다음 들어가고 싶대. 딴 남자와 놀다가 술에 절어 들어온 아내를 대하기 힘들다는 거지.”
손님들로부터 들은 노래방에 얽힌 거짓말 같은 사연들은 많다. 노래방에 가서 친한 친구 부인을 만나 줄행랑을 놓은 이야기, 노래방에서 단골손님 도우미를 만나 단골을 잃은 수퍼마켓 주인 이야기 등등….
오명석(49·경력 22년)씨는 “중화동에서 탄 아줌마가 ‘○○들, 노래 한 곡 하더니 다짜고짜 ‘2차’ 나가자고 해, 언제 봤다고’라며 씩씩거리더라”고 말했다. 물론 주부 도우미를 찾는 것은 남자들이다. 전국 3만5000개 노래방 중 60~70%가 도우미를 쓰는 것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요즘 택시기사들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하는 것은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가정이다. “아이 2명을 데리고 탄 아주머니가 한강다리 중간에서 내리는 거야.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 차를 돌렸는데 신발을 벗어놓고 다리 난간에 쭈그리고 앉아 있더라. ‘얘들이 무슨 죄냐’고 간신히 설득해서 차에 태웠어.”(신우순·45·경력 5년) 남편이 회사 부도로 도망가 두 달째 소식이 없어 동반 자살을 생각한 주부였다고 한다.
‘불륜’도 심각하다고 한다. “30대 여자 손님이 휴대전화로 ‘○○모텔에서 보자’고 하더니 집에 전화를 걸어 ‘아빠한테 연락 없지? 좀 늦으니까 문 잠그고 자’라고 하더군.”(안철헌·48·경력 26년) “열 커플이 타면 세 커플은 말 걸기가 민망할 정도로 살벌해. 법원 가자는 커플도 많아.”(최병수·41·경력 16년) “분명히 부부인데 남자는 앞자리, 여자는 뒷자리야. 뒷자리에 함께 탄 중년 남녀를 보면 이제 모두 불륜같아 보여.”(권오종·39·경력 3년)
요즘엔 아이들이 더 무섭다고 한다. “제주도에서 올라온 여중생 2명이 롯데월드 근방에서 탔어. 전봇대에 붙은 사창가 광고를 보고 그곳에 가재. 가진 돈 롯데월드에서 모두 날렸다나. 말리니까 ‘아저씨가 내 인생 살아줄 거냐’고 대들어. 겨우 설득해 부모에게 연락하고 공항에 데려다 줬지.”(김병천·57·경력 18년)
김광석(49·경력 4년)씨는 헐겁게 매놓은 안전벨트를 가리켰다. “꼭 조이면 막 잡아당겨 목을 졸라. 자식뻘 되는 놈들, 20대 초반 놈들이 술 퍼먹고 그래. 지난번에는 마포대교를 건너는데 뒤에 탄 놈이 갑자기 머리를 당기는 거야. 중학생 정도 여자애들이 ‘담배 달라’는 적도 있어. 그냥 ‘없다’고 하는데도 뒤에서 ‘○발’ 소리가 들려.” 현문의(53·경력 2년)씨는 “못본 척, 못들은 척 그냥 흘리다가 집에 가면 남은 기억까지 모두 잊어버리는 것이 요즘 운전사가 사는 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택시기사들은 이런 세태에서도 훈훈한 가족애를 종종 접한다고 한다. “사당역에서 튀김장사를 하는 50대 아줌마를 태운 적이 있어. 문정동까지 가는 여자였는데, 5년 전 남편이 일급목수로 잘 나갔다가 떨어져서 전신마비래. 죽을까도 생각했지만 마음을 잡고 5년 전부터 포장마차로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다는 거야. 아들은 공부를 잘해 제일 좋은 대학에 진학했다고. 아버지가 쓰러져도 가족들이 단합해서 사는 모습이 보기가 좋더라.”(홍민수·45·경력 2년)
(김봉기기자 knight@chosun.com )
(신은진기자 momof@chosun.com )
(장상진기자 jhin@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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