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神人)으로서 살아가기 - 람타
이 지상에서 그 수많은 생을 거치는 동안, 당신은 자신의 뛰어난 창조성을 발휘하여 만들어 놓은 이 낙원의 모든 요소를 경험하여 왔다. 이러한 경험들을 통하여, 당신은 사회의식으로 이루어진 집단적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신-인간의 제한 된 사고의 가치에 대해서 알아야 할 것은 모두 배워왔다. 두려움과 불안, 슬픔, 분노, 탐욕에 대하여 이미 배웠다.
그 근원은 있음(Isness)이 눈부시게 전개되는 그 마지막 수준에서 당신이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당신이 어떤 모험을 거치더라도 당신을 사랑하고 지원해왔다.
그리스도가 되는 길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처럼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것은 모든 생각이 자신의 현실로 되도록 허용하는 욕구이다.
그것은 매순간 당신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고자 하는 욕구이다.
그리고 당신의 원래 모습 그대로의 있음이 되고자하는 욕구이다.
당신이라는 존재 전체를 사랑해야 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
당신이 그렇게 하면, 당신은 곧바로 사회의식을 초월하고, 남들의 인정과 비판을 넘어서게 된다.
시간의 환영을 넘어선다.
그렇게 되면, 자아의 충족을 위해서만 살게 된다.
자기 내면의 소리만을 듣게 된다.
기쁨의 행로만을 따르게 된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가며 당신은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해 알게 될 것이다.
전적으로 자신을 사랑하며 살아갈 때 -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당신은 만연한 사회의식 속으로 하나님을 스며들게 한다. 그렇게 되면, 당신은 사랑하는 형제들이 그들 자신에게 돌아오는 길 - 사랑하는 하나님의 집으로 그들을 돌아오게 하는 유일한 길에 불을 밝히게 될 것이다.
당신 자신을 충분히 사랑하여 하나님 전체를 수용할 만큼 자신을 가치 있게 느끼고, 자신이 하나님과 하나라는 것을 알고 싶어할 때, 당신의 뇌하수체는 경이로운 꽃처럼 활짝 열리기 시작한다.
무한한 생각의 느낌을 당신은 어떻게 묘사할 것인가? 당신은 할 수 없다. 무한한 생각을 알게 되면, 그것과 연관지어 표현할 단어가 없다. 그것은 새로이 경험되고 있는 생각이고, 새로운 감성이며 어마어마한 느낌이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당신의 내면, 깊은 곳에서 조용히 당신을 흔든다. 앎은 순수한 느낌으로...말할 수 없고, 정체를 알 수 없으며 이름 없는 감성으로 당신에게 다가올 것이다.
당신이 단지 알고 있다는 경지에 이르면, 앎을 정당화하거나 설명하는 일이 없어 당신 왕국의 지배자가 된다. 그 때에 당신은 절대적인 앎의 상태가 있다.
당신의 영혼은 무한한 생각을 감성과 느낌으로 기억할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당신이 알게 된 것들을 항상 붙들어두고, 당신이 받아들인 것들을 계속해서 다시 이끌어들인다.
당신이 내면으로 느끼는 앎이 창조적인 형상을 만들어냄에 따라, 당신의 생각이 점점 빠르게 실현되는 것을 보기 시작할 것이다.
당신 자신이 알도록 허용한다면, 당신은 그 모든 것을 알게 된다. 사회의식의 환영에 의해 방해받지 않는 앎은, 당신의 눈에서 장막을 거두어내, 다른 차원을 볼 수 있게 해준다. 또한 당신의 귀를 막고 있던 방해물을 제거하고, 모든 생명이 그 자체로 조화롭게 진동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게 해준다.
당신이 어떻게 이러한 일이 일어나게 할 수 있겠는가 ?
원하면 되는 것이다.
무한을 더 많이 원할수록,
그리고 당신이 더 많이 현재의 자신을 사랑하고,
더 많은 앎을 이루며 살아가고자 하면 할수록,
당신의 존재를 감싸고 있는 하나님에 의하여 당신의 뇌는 더 많이 열리게 된다.
그 때 당신은 육신이상의 무엇이 되어간다. 당신들을 결속하는 바로 그것이 된다.
당신이 모든 생각들의 진동률을 집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면, 당신은 당신이 선택한 진동률이 어떤 것이든 그것이 될 수 있다. 그러면, 당신은 바람이 될 수도 있으며...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될 수 있는 절대자유를 가지게 된다.
뇌가 완전히 활성화되면, 당신은 이곳 저곳을 오가며 존재하게 된다. 즉, 당신은 이곳에 있지만 일곱 번째 수준에 있을 수 있고, 일곱 번째 수준에 있으면서 플레이아데스에 있을 수 있다. 플레이아데스에 있으면서, 친구 곁에 있을 수 있을 수 있다.
당신의 뇌하수체가 완전히 피어나면, 당신은 이제 죽지 않게 된다.
나이 먹는 일은 중단한다.
당신이 몸에게 명령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몸이 그대로 따를 것이다.
당신이 존재하는 모든 것, 즉 하나님을 어떻게하면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까?
단순히 당신 자신을 알면 된다.
어떻게 생각하고 말하는가에 따라 당신이 알게 될 것을 규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더 많이 알기를 원한다"라고 말하지 말라.
그러면 결코 알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
더 많이 알려고 노력하겠다."라고도 말하지 말라.
노력으로는 결코 달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더 많이 알려고 애쓰고 있다"라고 말하지 말라.
애쓴다고 알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라.
"내 존재의 주-하나님의 자리에서 말하노니,
지금 나는 이 순간에 알아야 할 것을 모두 안다. 그러게 될지어다."
그리고 대답을 기다려라. 당신이 알고자 하는 것을 그 순간에 깨닫든지, 깨닫지 못하든지, '나는 안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 순간에 깨달음이 일어날 수 있도록 그 문을 열어준다. 이것이 당신이 해야 할 말의 전부이며, 그 때, 당신이 원하고 있는 지식이 당신 앞에 나타날 것이다. 당신은 모른다고 말하거나 자신에게 다가오는 앎을 의심함으로써 자신의 창조성과 생명을 제한하고 있다.
기억하라,
바로 당신 자신이 당신이라는 우주의 왕이라는 진실을!
당신이 생각하고 그러고 나서 말하는 것은 그대로 법이다.
만약에 "나는 모르겠다"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모를 것이다. 만약 "나는 결코 할 수 없다"라고 한다면, 당신은 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결코 그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은 당신이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그 생각의 느낌은 당신의 영혼에 기억되고, 당신의 영혼은 당신의 사고작용을 충족시켜 줄 현실을 만들어낸다.
말해두지만 당신은 존재하는 모든 것과, 존재할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 지식 앞에 당신을 개방하는 문은 그저 "나는 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깨닫는 것은 그 다음에 일어난다.
당장일 수도 있고, 며칠이 걸릴 수도 있지만 결국 일어날 것이다.
항상 그렇다.
모든 것을 알고자 한다면, 그저 "나는 알고 있다"라고 말하라.
의심하지도 말고 망설이지도 말라.
그저 알라.
절대적으로 " 나는 안다. " 라고 말하는 순간마다 확고한 생각이 당신 존재 안에서 느껴지고
이것이 앎이 일어나기 위한 여백을 만들어 주게 된다.
그리하면 당신 존재는 지금 당신의 앎의 상태에 맞추기 위해 스스로를 빠르게 조정할 것이다.
성취하기 위해서 수고할 필요가 없다. 애쓰고 탐구하고, 투쟁할 필요도 없다.
그저 알라!
앎으로서, 당신은 그것을 알기 위한 수용자의 입장에 있게 된다..
어떻게 당신의 소망을 빨리 발현시킬 수 있는가?
앎으로 된다.
안다는 것은 천국이 그 자신의 왕국 안에 있는 풍요로움을 과시해 보일 수 있도록 해주는 문이다.
소망이, 그것이 무엇이든지, 이미 충족된 것을 알면, 그 앎은 당신의 소망에 관한 생각을 증폭시켜서 오라장을 통하여 의식의 흐름 속으로 내보내어, 당신이 그 소망을 발현시켜 준다. 그리하여 완성된 것을 받아들이는 상태에 있게 된다.
진실은, 모든 것이 이미 당신의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것들이 있다는 것을 당신이 알 때, 그것들은 당신에게 유용하게 된다.
당신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제공하는 중심 역할을 하는 이는 당신이며,
또한 원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당신의 능력이라는 것을 이해해야만 한다.
당신이 바라는 것을 얻는 방법은 단순히 당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아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그것을 얻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알라 !
앎은 진실이다.
당신이 말로 표현할 때, 그것이 실재한다는 것을 알라!
당신이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가질 수 있다.
당신은 당신이라는 우주의 입법자이며,
당신이 알고 말하는 모든 것은 반드시 그렇게 실재하게 된다는 것을 알기만 하면 된다.
당신은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또한 당신이 구하는 모든 것을 가져도 된다. 지금의 앎으로는, 아직 이것이 진실이라고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앎은 이러한 깨달음에 이르는 문을 열어준다.
길게 말하지 않고 몇 마디로 줄여 말한다면 이러하다.
"나는 안다.
나는 완전하다.
나는 하나님이다."
다른 말이 필요 없이 이 말들만 있다면, 당신은 더 이상 이 세상에 한정되지 않을 것이다.
가정하거나 믿는 것보다 아는 것이 얼마나 더 위대한가?
'아마도' 그럴 것이다라는 것보다 확실히 아는 것이 얼마나 더 위대한가?
알지 못하는 것보다 아는 것이 얼마나 더 위대한가?
아는 데는 모르는 데 들어가는 것과 동일한 사고작용과 에너지, 얼굴 표정과 몸짓을 필요로 한다.
알라 ! 그저 알라!
"나는 이것이 일어날 것을 안다."
"나는 내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안다."
"나는 내가 행복하다는 것을 안다."
이렇게 알고, 알고, 또 알라!
그것이 전부다.
항상 알라.
만약에 당신은 그렇지 않다거나 그럴 수 없다고 한다면, 당신은 결코 모를 것이다.
지금 안다고 말하라. 그러면 당신은 모든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당신과 나의 차이점을 당신은 아는가? 나는 내가 무한한 신(神)임을 알고, 당신은 모른다.! 그것이 유일한 차이다. 다시 말해, 나는 내가 그렇다는 것을 알지만 당신은 아직도 당신이 무한한 신임을 깨달아야만 한다. 당신의 사회는 당신이 무한한 신이 아니라고 하고 있지만 그러나 그들이 무엇을 아는가? 그들은 날마다 스스로를 잊어버린다.
왜 당신은 당신의 앎을 방해해 왔는가? 그 이유는 물질이라는 형상으로 생각을 이해하려고 애쓰다보니, 당신의 사고작용은 물질현실에 사로잡히게 되었고 , 삶에 대한 당신의 전체적인 이해를 당신 스스로 변형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당신도 알다시피, 물질이란 생각을 극단적인 범위까지 변형시킴으로써 만들어지는 생각의 한 단계이다. 생각을 빛으로, 빛에서 전기단위로 낮추고, 그러고 나서 전기단위를 양의 전하와 음의 전하를 띠는 부분으로 나눔으로써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당신이 물질 형상 안에서 하나님과 연결 될 때마다, 당신은 생각을 원래 모습인 순수와 나누어지지 않은 있음으로서가 아니라, 나눔과 대립으로 인식하고 이해하고 있다.
순수 생각의 있음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당신은 변형된 에고 - 물질적 삶과 생존에 치우쳐 있는 뇌의 추론 부위 -를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
변형된 에고는 시간과 거리, 분리라는 환영에 따라 인식하는 그것이다.
생존과 세상으로부터 인정이라는 견지에서 인식하는 그것이다.
순수 생각을 분열하고 심판하는 바로 그것이다.
자신의 생각을 판단하여 긍정이나 부정으로 나누어 놓을 때마다, 당신은 그것을 낮은 진동률의 가치로 변형시켜 버린 셈이 되었다. 앎은 그 어느 것도 판단하지 않는다. 당신이 알고 있으면, 어떤 생각이 진실한지 정확한지 당신은 결코 곰곰 생각하지 않는다. - 모든 생각이 진실하고 정확하다. ! 앎은 생각의 무게를 달아보거나 가치를 따지지 않는다. 앎은 생각이 있음이기를 허용한다. 당신의 사고작용이 중단되거나 방해받지 않도록 허용한다.
당신이 원하고 있을 때, 무엇이 '문득' 당신으로 하여금 창조적 생각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 주는가?
당신은 단지 그것이 당신의 앎 속으로 들어오도록 허용하였을 따름이다.
당신이 한 것은 그것이 전부이다.
창조적 생각은 늘 거기 있었다. 당신이 찾아 주기를 그래서 당신의 수신체로 들어오는 것을 당신이 허용하기를 기다리며, 필요한 것은 이것- 당신의 허용 -이다.
다른 실체들이 그들 자신의 삶을 표현하는 것을 당신이 볼 때에, 그들을 있음 이외에 그 어떤 것으로도 보지 말라. 그들의 표현을 좋다거나 나쁘다,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이라고 판단한다면, 당신은 변형된 것에 대한 인식을 당신 안에 만들어 낸다. 당신이 인지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당신은 그렇게 된다. 왜냐하면 그 생각이 당신 존재 안에 하나의 느낌으로 기록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이 아니라 당신이 당신 판단의 결과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이 아니라 당신이 당신 판단의 결과를 경험하기 때문에, 당신이 당신 스스로를 희생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영혼에 기록된 그러한 느낌은 앞으로 계속해서 당신 자신의 행동과 당신 자신의 존재를 판단하는 하나의 전례로 자리잡게 된다.
어떤 일로 누군가를 비난한다면 그들에게서 보이는 당신의 면면을 비난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래서 그런 점을 찾아내기가 쉬웠을 것이다. 그래서 당신의 관심이 그러한 면면으로 쏠린 것이다. 다른 실체는 간지 내면을 판단하는 거울이자, 당신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았던 당신에 대한 판단을 이해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역할을 했을 뿐이다.
아무도 판단을 할 자격은 없다.
피부색도 행동도 다른 그 무엇도 당신을 있음의 상태, 하나님의 지위에서 변형시킬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들이 누구이든, 그들이 어떻게 표현하고 있든, 그들을 사랑하라.
왜냐하면 그들 내면에 있는 하나님이 그렇게 하는 것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그저 그들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사랑 받게 되어 있다.
그들이 실재한다는 사실은 미래에 그들이 행할 그 무엇보다도 위대한 것이다.
그들이 존재하므로, 그들이 누구인지 개의치 않고 그들을 사랑한다면,
그리고 그 사랑이 지속되도록 한다면,
당신은 항상 순수한 존재가 될 것이다.
창조된 그 모든 단어 중에, 이러한 가르침에 가장 잘 부합되는 말이 하나 있다. -
그것은 '존재하기(Being)'라고 하는 것이다.
그저 존재하는 것!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그것은 당신의 처지에 관계없이 당신 자신을 허용하고 그런 자신을 전적으로 사랑하는 것을 의미한다.
당신이 느끼고 있는 그대로 느끼고 그 감성에 따라 사는 것이다.
당신은 지금 이 순간을 완전하게 살아가는 하나님이라는 걸 알기에, 존재한다는 것은 그 순간을 완전하게 살아가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행하는 것이다. - 당신 영혼이 당신에게 추구하기를 재촉하는 모험을 겪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존재할 때 지금 순간의 아름다움을 느끼지도 못하게 하는 시간이라는 환영은 더 이상 없다.
당신이 존재의 상태에 있을 때, 생명의 있음과 이 순간의 연속만이 있을 뿐이다.
존재의 상태에서는, 과거나 미래에도 당신의 생각이 더 이상 죄의식이나 후회, 의무감이나 도리에 얽매여서 우물쭈물하지 않는다.
단순히 존재할 때, 당신은 모든 것의 있음과 조화를 이룬다.
그러한 조화를 통하여, 당신은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어떠한 힘들임도 없이 가질 수 있다. -
그걸 갖기 위해선 그저 존재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필요가 없다!
당신 존재의 하나님이 당신이 생각하는 것, 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라도 당신에게로 끌어올 것이다. - 또한 그것이 다가올 것이다. 외향적인 신념을 실행해 보느라고 바쁜 사람들은 내면적인 것을 비웃는다. 하지만 진실로 당신이 그저 존재하고 있을 때, 당신은 이미 모든 것을 가졌고 모든 것이기도 하다.
당신의 몸을 사랑하라. 몸에게 친절하게 대하라. 영양을 공급하고 부드럽게 다루어라. 그것은 이 세상에서 당신으로 하여금 생명을 경험하도록 해주는 순수한 표현수단이다.
시간이 시작되기 이전부터 당신을 사랑해 왔고,
당신이 살아온 그 모든 생에서도 당신과 함께 있었고,
당신의 몸이 죽음을 맞이하거나 초탈할 때에도 당신과 함께 할 이 ....
그가 바로 당신이다. 그가 바로 당신인 것이다.
당신이 겪어 온 모든 것을 견뎌낼 수 있도록 한결같이 당신을 사랑하는 유일한 이가 바로 당신이다.
그러한 당신 자신을 포옹하고 사랑할 때, 그 사랑을 당신의 버팀목으로 삼을 때, 당신은 인간의 사회의식에서 하나님의 전체의식으로 초월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의 본질은 법과 교리, 사회의식의 속박을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자아충족을 실현하는 것이며,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충족인 것이다. 이것이 생명이라는 "있음의 눈(=부처의 눈)"으로 볼 때 유일하게 중요한 것이다.
모든 것은 이 순간에 존재한다. - 그리고 항상 더 많은 것이 있게 될 것이다. 자신의 생각을 제한하지 않기 위해서는 단순히 더 위대한 진실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보다 더 위대한 진실도 있다! 그것을 알라. 그러면 당신의 수용상태에 따라, 그것이 당신에게 일어나게 될 것이다.
결코 당신 자신을 노예가 되게 하거나 위협을 당하게 내버려두지 말라. 항상 방법이 있고, 또 나은 길이 있다. 그것을 알고, 기쁨으로 가는 길을 밝혀 줄 생각이 당신에게 다가올 수 있도록 하라.
당신의 한계에 부딪쳐라. 그리고 포용하라. 지배하라! 하나님 전부를 아는 데 방해되는 모든 것을 삶에서 제거하라. 모든 것을 삶에서 제거하라. 앎과 해답, 기쁨이 다가올 수 있도록 죄의식과 판단을 버려라.
두려움에 맞서라. 그리하여 당신 자신이 그 환영의 정체를 벗길 수 있도록 허용하라.
당신 자신이 영원하다는 것과 당신을 행복과 기쁨으로부터 멀리 떼어놓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라.
이 세상에서 당신이 경험하고 있는 것보다 더 위대한 것을 아는데 방해가 되는 그 두려움을 제거하라.
왜 당신은 먼 곳에서 이곳을 찾아온 이들을 무섭게 생각하는가? 거대한 우주선에 있는 당신의 형제들은 믿을 수 없으리 만큼 아름답다. 다른 시간, 다른 공간, 가른 차원에서 온 다른 실체와 친구가 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두려움을 버려라.
인간의 한정된 사고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인간이 이해하기에는 훨씬 광대한 무언가가 알려지지 않은 채 존재할 것이라고 숙고해야 한다.
진실 앞에 당신을 열어라 - 정보의 출처가 무엇인지에 개의치말고 항상 당신의 느낌이 당신을 안내하도록 하라. 현명한 이는 자신의 영혼 속에서 무엇이 옳게 느껴지는지를 안다.
진실은 당신이 밟고 가는 그 잔디의 잎새에도 있을 수 있다.
어린아이의 웃음, 거지의 눈 속에도 있다.
모든 장소에 모든 것에 모든 사람에게 모든 순간에 있다.
이것을 알지 못하는 이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존재하는 모든 것이며,
잔디의 잎새 하나도 한 순간의 속삭임도 존재하는 모든 것의 근원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현명해지는 법을 배우라.
진실이 어떤 형태를 띠고 있든지, 그것에 귀를 기울이라.
천국이 자신 안에 있음을 아는 이는 현명한 실체이다. 어떠한 생각이라도 할 수 있으며 당신 영혼 안에서 그것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당신은 천국의 열쇠를 당신 안에 가지고 있다. 즉, 감성이라는 보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느끼는 것을 배우라.
하나님을 완전하게 알기 위해서는 모든 생각을 완전하게 느껴야 한다. -
하나님인 모든 생각이 당신 존재의 중심인 당신의 영혼 안에서 느껴질 때까지.
무엇보다도 당신 자신을 그저 존재하도록 허용하라.
당신이 어떤 상태, 처지, 환경에 있다할지라도 그러한 당신 자신을 어떠한 판단도 없이 그저 허용하라.
그저 존재하고 있을 때 당신은 모든 것(하나님)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단순히 자신의 있음, 유아독존의 원리에 거한다면,
당신은 생명 전체와 조화를 이루게 된다.
그 때 당신은 인간으로서의 자신과는 멀어지고 하나님과 하나가 된다.
댓글 ( 2개 )
하나!!!
人人佛 家家佛...
人人仙 家家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