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지님! 팃낫한스님의 시,는 말과 글로서 설명한다고 이해할 수 없으며 저 또한 어렴푸시 이해하고 있을 뿐 깊이 꽤둟고 있지 않음이지요. 오직 스스로 깊이 꽤뚫는 수 밖에 없는듯 사려됨니다. 미약하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서 그동안 심심풀이 땅콩으로 깨작깨작 끄적인 글을 함 옮겨 보았습니다.
가슴뛰는 삶
배일에 쌓인 신비지혜를 접하다 보면 인류라는 인격체는 지구만 따저도 몇십억년동안 흥하고 망하는 반복의 흐름으로 흘러왔다고 합니다.그중의 일부는 새롭게 "업그래이드"한 또다른 차원으로 이동했는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한발짝 깊이 물러나서 전체의식으로 역사의 뒤안길을 추측해 보면 삶의 체험을 통하여 슬픔,고통,즐거움,아름다움,등의 체험들은 또다른 성장을 위하여 필요한 체험일지도 모르는 일이며 그 또한 기나긴 무상한 꿈놀이 일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실상은 환상이라고 하기엔 실제같은 비실제(변화하는)의 거칠은 무지의 공간에 존재하기에 삶을 인간적인 마음으로 느낀다면 무상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지금에 존재하는 가슴뛰는 삶을 살수만 있다면"금상첨화"겠지요.그렇다면,어떠한 삶이 가슴뛰는 삶일까요? 과거도 현제도 미래도 아닌 영원(참자아)에 초점이 맞추어진 지금에 존재하는 삶이 가슴뛰는 삶이라 사려되지만..즉, 분별과 분리를 초월하여 세상과 나름되로 조화를 이루며 재미나게 살수만 있다면 사바세계가 곧 불국토 임을 느낄수 있겠지요. 말이싶쥐~ㅎㅎ
앞서간 선각자분들의 지침을 따르는 것 또한 현명하다고 생각이 들지만 그분들께서는 그 길들을 제시해 줄 뿐 밥가지 떠먹여 주지 않습니다. 또한 개개인마다 천성적으로 타고난 파장이 틀리드시 세상에서 해야 될 고유의 역활이 제각각이라 생각이들며 그 누구도 똑같은 사람이 될 수 없슴으로 유한하게 한계를 끗지 않는 것이 지혜롭지 않을까 사려됨니다.
지가 무얼 알겠습니까만, 아무리 포괄적으로 인지하고 알아차려도 체득이 되지가 않으면 "용두사미"에 지나지 않겠지요. 그러나 그러한 앎을 통해서 더욱 더 '업그래이드" 될 희망이 있다고 봅니다.
역사와 사회의 관념화 된 실상을 뒤돌아보면 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안되며 세상가득하 게 안대대대대대...가 수미산을 이루고 있습니다.그러한 실상에서 숨막혀서 자신의 길을 어떻게 가겠습니까?
그러한 관념이 알게 모르게 내면에 스며들면 멀정한 사람도 주눅들어서 쪼다가 됨니다. 쪼다같은 사람도 된다는 소리를 많이 들으면 긍정적인 관념이 스며들어 날아댕기는 게 인간으로서의 잠재된 무한한 특권이며 우주의 법칙인 듯 싶네요.
우리들은, 대부분 인생의 반쯤은 쓰잘 때 없이 고민하다 삶을 소모하고 말지요.그렇게 안된다는 관념이 인류의 내면에 깊숙하게 잠재해 있으니 세상이 요모양 요꼴이고(?) 스스로가 유한한, 한계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우리들의 현 실상입니다.
무엇을 접하는야에 따라서 그에 합당한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러한 생각을 통해서 마음으로 전달되어 전생+이생의 상념으로 뭉처친 관념과 융화되어 지금의 행동으로 표연되겠지요. 결국 전생+이생에 보고 느끼고 배워온 상념과 부모로부터 받은 유전자의 종합적인 총 합이 보편적인 지금의 모습이며 지금의 모습이 쌓여 미래라는 환상을 창출하겠지요.
그러므로,자신의 모습이 어떠하여도 된다라는 긍정으로 끊임없이 봐꾸어 나가는 것이 불행 끝 행복으로가는 열세라 이 연사 강력하게 외침니당.^^ 음...예전에 무언가를 완벽하게 알고서 행동으로 옴기려고 2~3년정도 반 패인처럼 꼴똘이 생각한적이 있었더랬습니다.
그러나 결국 생각이 생각을 낳고 더욱 더 꼬여만 갖지요.그래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생각을 뒤로하고 영업에다 도심을 붙여 도닦는다 생각하며 정성을 들인지 한 석달이 지나니. 앞으로 두번다시 겪고싶지 않은 3년동안의 지옥같은 의문들이 많이 풀어진 체험을 했더랬습니다.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무언가 영감이 떠오를 때 생각을 뒤로하고 행동으로 바로 옮겼다면 아마, 지금보다 많이 "업그래이드" 된 모습으로 변화되었을지 모름니다.
누구나 그러하듯 저 또한 스스로가 걸어야 될 진정한 길이 무언지 수년을 고민했지만 가치관의 혼돈으로 많은 방황을 했지요.지금와서 뒤돌아 보면 그때 그때 자신이 가슴깊이 하고싶은 일들을 하는 것이 자신만의 성장하는 고유의 길이며 그 과정이 자신만의 진정한 가슴뛰는 삶이 아닌가 사려됨니다. 또한 삼나만상이 영원한 것이 없듯 그 상황에 따라 또다른 선택을 할수도 있겠지요.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자신이 진실로 원하는 그 무엇을 하고 있다면 가슴 뿌듯하며 고생이 낙으로 느껴질 것입니다.그렇지 않다면 깊이 생각해 봐야 겠지요. 그러한 삶이 자신만의 진정한 가슴뛰는 삶이 아닐까 사려됨니다.가슴이 뛴다는 것은 깨어있다는 것이고 그로인해 스스로 치유되며 그 여파로 자연스럽게 주위를 맑고 밝은 세상으로 자연스럽게 치유가 되겠지요.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여도 스스로가 변하되지 않으면 진실로 도와주기 어렵고 얼마가지 않아서 지처버리며 때로는 원망과 상처로 얼룩질지도 모름니다. 영적인 파장이 어떠한 형태로든"업그래이드' 된다면 자연이 주위까지 '업그래이드"됨을 조금식 체험해 보았습니다.
영력이 깨어있고 넓어지면 우리들은 개체이면서 주체인 하나의 영이기에 온 우주와 세상이 나를 돕게됨을 체험을 통해 잠시라도 느낄 수 있습니다.다만, 어떠한 상황과 어느정도 깨어있는야에 따라서 "천차만별'로 다가오겠지만..
삶을 쬐금 살아보니 이혜와 노력으로는 자연스러운 삶을 살기에는 부족함을 느낌니다.그러므로 '나는 누구인가'를 확연이 꽤뚫어 행위를 하대 행위자가 없는 자연스러운 천지인으로 거듭나야 될것 같습니다. 미투^^;
제법실상사..
팃낫한 스님의 글들을 보면서 생각나는 것은, 우리나라불교계의 한계인"제법실상"사(단순이 끄적이자면..삼나만상의 본성이 공(하나)이기에 광물+식물+동물인=생명은 인간의 하위자아(나라고착가하는상념덩어리 즉,비실제(변화하는)가, 높고 낯음을 분별하고 분리할 따름이지 모든 생명의 근원은 평등하다.
다만 인간이 진화하는 단계가 '원시반본'으로 성불할 수 있는 근기가 출중 할 뿐이다.즉, 흘러오다 보니 인간의 하위자아를 창출하게 되었고 그로인한 퇴보로 어두어저 착각하매, 개체(불성~그리스도 의식)로 분별하고 분리하여 그로인한 까르마로 어두어 젖을 뿐 하위자아만 타파하면 처음부터 분리란 존재하지 않았으며 "주체"(브라만~하느님)인 것이다.
즉, 꺽꾸로 퇴행하면 주체(하느님~대우주~브라만)인 우리들이 영겁을 통해서 삼나만상을 창조하였고 인간을 창조하여 내면에 거하게 된 것이였고 무수한 세월의 강을 흐르다보니 퇴보되어 분리라는 환상을 창출한 것이라고 한다.
성명쌍수...
3만년전에"환골탈퇴"한 람타를 참고하면, 개체이면서 주체의 근원인 '삼나만상'을 부양하고 우주에 편제해 있는 신의 식(제8아뢰야식)인 우리들의 내면에 존재하는"영혼의 빛"을 가로막고 있는 육체의 낯은 파장을 빛의 에네지로 끌어올려 거듭나는 제창조를, '성명쌍수'의 이치임을 간접적으로 상상할 수 있다.
불법에서는 인도에서 28대 달마대사까지 '성명쌍수'의 비전이 전해지다가 그 후에 6대에서 그 맥이 끊어젖다고 한다.그리고 불공화상께서 그러한 법을 전하려 했지만 받을만한 근기를 찾지 못해 사바세계에 천년을 머물다 이백년 전 쯤 계운조사에게 비전을 전수하고 "우화등선"하시고(?)계운조사께서는 때가 이르기에 비전(책이름잊저버림- -;)을 숨기고 지리산에서 잠적하셨다고 한다.
지금의 실상은, 선법+불법이 흘러오면서 외곡되고 흩어저 그 진의를 가려내기 심히 어렵고 갈라지고 흩어저 무언가 부족하고 부분적인 법들이라, 지금까지 수만은 사람들이 도전했지만 실패로 생을 맞친이가 허다하다고 한다.그 원인을 나의 얕은 소견으로 단순히 상상해 보면,외곡되고 부족한 방법도 방법이지만 자연적인 이치에 어긋나고 인겪+육체+정신, 등등의 근기가 충분히 가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욕망+욕심=무지함으로 인해서 그릇치지 않았나(?) 추측해 본다.
충분한 근기가 가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진법을 만난다 하여도 아마, 개란으로 바위를 치는 겪일지 모른다.자신의 유한한 잣대로 생각하면 지극히 단순하고 쉬운 것 같으나 상상과 탁상공론이 아닌 실직적으로 체득하기란 그렇게 만만하지 않음을 사려된다.그렇지 않다면 수만은 사람들이 지금 쯤 날아댕기고 있지 않겠는가?
람타,라는 인물을 참고해 보면, 자신의 말로는 아틀란티스가 무너진 직후에 태어나 어린시절 부터 인간으로서 지극히 처참하고 비참함을 체험했고 세상을 두로 체험하면 칼 하나로 지구의 3분의 2를 점령했다고 한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성장했고 그러한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진리를 갈망하므로 인해 본성을 알아차렸으며, 일념으로 바람과 같은 자유로운 존재를 꿈꾸며 수십년을 염원하고 수행하여 종국에는 120살 되던 해 초탈했다고 한다.
그리고 50을 넘긴 옛 선사분들의 간접+직접적으로 남기신 유언들을 보면 50전에 '성명쌍수'의 법들을 닦지 않음을 한탄한 시와 글들을 엿볼수 있다.그러나 지금같이 물질문명화 된 사회와 급박하게 돌아가는 흐름에서 수십년을 일념으로 파고든다는 것 자체는 시대와 변화의 흐름에 맞추기 어려움이 많을것이다.
또한 가정이 있다면 자식도 키우고 가정도 돌보려면 머니머니 해도 머니를 벌어야 된다.^^ 그러한 실상에서 스스로 걷고자하는 길들을 선택하기란 심히 두려움이 고개를 처들고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평범하게 살면서 가족도 돌보고 세상의 흐름에 맞추어 자신이 걷고자 하는 길을 추구하면서 많은 노력과 소모전을 강력하게 좁혀나가는 수행법이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절실하게 요구되는 실상이다.
진리는 자연이고 인간은 자연의 일부분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삶 또한 자연이기에 살아간다는 자체가 수행이라 생각된다.유가에도'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말이 있지 않는가. 역사적으로 근기가 출중한 도학의 천재들도 평생을 공부하고 닦아서 좀 알만하면 이제는 무덤에 들어 갈 준비를 해야된다.유가어록을 보면 공자께서도 그러하셨다 한다.
그러한 실상을 생각하면 언제 공부하고 깨우처 어느세월에 체득하겠는가? 여러 비전들을 간접적으로 보고 듣고 배워왔지만 우주와 인간의 무한한 이치와 비밀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그 깊이를 헤아리기 심호하며 난헤한 것 같다.
그러므로 앞서간 대각자이신 석가모니, 노자.등등등.... 선각자 분들의 치침을 참고하고 검증삼아 걷는 것이 현명하겠지만, 흘러오면서 외곡되고 진법은 흩어저 잡다한 지식만 넓어저서리 그 진의를 가늠하기 어렵고 그로인한 가치관의 혼돈으로 여러므로 헤메이게 되었다.
만물+인간의 본성의 근원은 나라고 착각하는 하위자아가 높고 낮음을 분별하고 분리할 따름이지 평등하다고 한다.그러나 대각자께서 말씀하시길. 보통 사람과 선지식의 자성(영혼의 빛,불교에서는제8 아뢰야식)의 밝기의 차이는 하늘과 땅차이며 선지식과 조사와의 차이는 10배 정도 차이가 나며 조사와 석가모니+노자,등등의 대각자와는 3배정도 차이가 난다고 한다.
또한 보편적으로(?) 삼생을 견성해야 대각할 수 있다고 하는데 앞생에 조사와 선지식이라 하여도 수행과 선업의 복덕으로 인해 다음생게 복진타락하는 경우가 '비일비제'하다고 한다.그러므로 지금까지 접해온 비전 중 탁상공론이 아닌 직접적이고, 강력하며, 뜻이 있고 의지가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닦을 수 있는 '인산김일훈선생님'의 '영구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분께서는 사바세계를 떠나시기 직전에 모든 비밀을 밝혀놓고 가셨기에 알려지지 않은 부분들이 많으므로 진실로 아는이가 드문것 같다.
까르마의 법칙+원시반본..
까르마의 법칙또한 전생+이생에 무언가의 죄의식을 느끼면 스스로 알게모르게 그에 합당한 부정적인 관념이 내면에 형성되므로 그러한 관념이 작게~크게 우주에 전달되어 나에게 되돌아와 자신의 상황을 더욱 더 막히게 하고 꼬이게 하는 것 같습니다.
인간의 근원이 창조주이며 만물의 영장이기에 자신의 파장이 긍정적이면 그에 합당한 긍정적인 상황이 차자오며 부정적인 파장을 보내면 부정적인 상황이 차자오는 것이 당연하겠지요.
고로, 전생+이생에 어떠한 잘못을 했더라도 생각을 긍정적으로 봐꾸면 까르마는 자신이 얼마나 기억하고 깨어있는 정도에 따라서 사라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어떠한 까르마도 알게 모르게 내면적으로 스스로 관념으로 뭉처진 선택이겠지만,그러한 까르마를 구지 받을 필요는 없는듯 사려됨니다.
첫째로 스스로의 인생이 어두워 지면 그로인해서 주위가 어두워지고 더 나아가 세상까지 그 여파를 받겠지요. 다만, 죄의식이라 느끼는 어떠한 상황을 깊이 관조하고 그 원인을 알아차려 그 무지의 근원을 타파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게 매사에 긍정적으로 생각을 뒤집어 업으면 어떠한 까르마도 반드시 살아지리라 굳게 믿습니다. 말이싶징~ 그러나 안된다는 부정적인 마음으로는 무엇이든 안되겠지요.
저 또한 그 과정속에 있지만 문득 생각이 떠올라 끄적여 봅니다.단순하게 요약하면 사람으로 태어나 싫고,좋고,옮고,그르다는 상념을"에고"라 한다.그러나 육체와 정신적인 까르마로 인하여'에고'라는 비실제를 자신으로 착각하며 대부분의 삶을 살고 끝맞인다.
그러나,수행이란 걸 하다보면 그 "에고"는 들어나게 되어있다.물론'에고'또한 나와 인류가 창출한 비실제인 환상이기에 인간이라면 누구를 막논하고 가볍든,무겁든,해당되는 실상이다.
어떠한 상황과 체험을 통해 무엇을 어떻게 집착하고 행동하는야에 따라서 천차만별로 '마야'라는 무지의 장막에서 헤메이고 그로인해 고통이라는 환상을 체험한다.유한한 의식으로 그 모든 어둠이라는 환상을 헤아리고 그 폭을 잡기란 심히 난헤하고 오묘하기에 무지를 타파하기란 생각처럼 그리 간단하지 않음을 느낀다.
마야든,마장이든,모든 어둠을 동기감응으로 끌어들이는 통로는'에고'에서 시작되고 '에고'에서 끝이난다.또한 그 에고라는 상념은 좌뇌~우뇌~양미간에 형성되는데 어떠한 상념에 초점을 맞추는야에 따라서 아스트랄계(하위차원계)의 자신의 상념과 비스므리한 신들을 끌어들이고 오래가면 기생하며 집을 짖는다.
또한 수행을 통해 떨어지기도 하지만 주위를 맨돌며 감응한다. 그러므로 지독한 정신력~그에 합당한 부정적 상념들을 완벽하게 타파해야 된다.결국 시간과 공간이라는 무지의 장막을 넘어서 모든 우주를 부양하는 근원과 완벽하게 상통하여 하나됨을 이루는 것이 완벽하게 벗어나는 것일 것이다.
세상에는 엄청나게 많은 비전이 있지만 진리를 기억하고 깨닫는 과정에서 열리기에 그 무지와 혼돈의 장막을 타파하기란 심히 괴롭기 활량이 없는듯 사려된다.그러나 태초에 무한에서 시작되었기에"원시반본"으로 돌아가면 될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한방울의 물방울이 바다의 모든 속성과 상통하며 그 바다의 속성은 우주의 모든 법칙이 잠재되어 있다고 한다.그렇다면 개체이며 전체인 인간의 본성을 깊이 꽤뚫으면 삼라만상의 법칙과 상통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렇다면 삼라만상을 움직이게 하는 그 근원으로 파고들면 될 것이다.분리라는 환상을 걷으면 개체이며 전체인 태초의 시작이며 끝인 무한한, 신~하느님~사랑~부처,등등인 신의식이며 태초의 시작이며 궁극이다.
고로,모든 해답은 나는 누구인가에서 시작하여 나는 누구인가로 끝나리라 사려된다.그러므로 자신의 본성을 깊이 꽤뚫으면 모든 무지의 장막은 사라지리라.
6식+7말라식+제8아뢰야식+제9엄말라식
6식은 모든(1,2,3,4,5식)분별의 체라면 7식은 형체가 없는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고 꿈속에서는 돌아댕기구 유체를 이탈한 상태에서 분별하는 넘이 제7말라식이라 합니다. 그것을 귀신이라고도 하고 영,이라고도 하며, '중음신'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6식과 7식이 끊어진 자리가 윤회의 수래봐퀴에서 벗어난 자리인 시관과 공간을 초월해 있는 우리들의 참마음의 자리인 제8아뢰야식인 본성의 자리라고 합니다.
그 본성의 무명(무지)으로 인하여 모든 신이 생겼고, 그러니까..무극(태극)이 음양으로 음양이 사상, 팔쾌 오행으로 어쩌구 저쩌구 해서리 삼나만이 생겼다나 우째다나요.ㅋㅋ
그렇게 생각하면 신,이라는 실상도 마음의 무명(무지)으로 창출된 하나의 비실제가 아닌지? 그러나 그 신+분별을통하여 '원시반본'(왓던 곳으로 돼돌아감.)하니 이거이 참말로 요상하네요.
시관과 공간이라는 차원이 우주삼나만상이라면, 우주삼라만상을 부양하는 근원이 제8아뢰야식이라 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음.. 인간으로 치자면 6식과 7식을 항복(타파)시키면 분별하는 나라는 하위자아가 끊어 젖기에 너와 내가 없는 하나(공)만 있게 되겠지요.
또 제9엄말라식(범어)은 모든 부처와 여래께서 증득하신 곧이며 줄지도 늘지도 않는 제8아뢰야식이 맑고 밝게 정화된 청정한 차원이라 합니다.암튼 어느정도 공부가 되면은 조사나 대선사를 차자가 검증받는 것이 좋을듯 사려됨니다만..
저 자신도 꺼이꺼이 하는 처지지만 육체와 현실이라는 모든 상황을 극복하고 넘어서기에 그 고뇌와 혼돈이 만만치 않으므로 예전에 끄적인 글 함 옮겨 보았습니다. 어케 하겠습니깜! 가다가 넘어지면 징징 짜다감 제충전해서 걷다감 또 넘어지면 오~ 마이갓- 흑흑^^ 그렇게 꺼이꺼이 오뚜기 정신으로 가다보면 불퇴전의 전사로 업그래이드 될지 누가 알겠슴까.ㅎㅎ
빛과 사랑으로..
댓글 ( 6개 )
이거이 맨날꼰날 마구니의 경계에서 노니니.. 그렇다고 수행이나 하나.쩝쩝!!
암튼, 구차한 목숨 꺼이꺼이 연명하다보면 언젠 가 개과천선 할지 누가알겠습니까?
그러한 내용을 잘 몰라도 마음이 열려있고 서로간에 주파수가 맞는다면 심법으로 핵심요체를 동기감응으로 기운+상념을 통하여 상통할 수 있기도 하지만, 전에 끄적인 글들을 짭뽕해서 감지하기가 어려우며 저또한 맨날꼰날 술퍼먹기에 기운이 맑지 못해서리..
영감이 떠오르지 않는것은 흐르는강물처럼 흐러버리시고 호감이가고 자신에게 도움이 될 것 같고 어렴푸시 알듯 말듯 한 것은 억지로가 아닌 심심풀이 땅콩으로 생각하다 보면 자신의 파장과 간절함에 따라 자신의 상념과 그에 합당한 그 무엇과 상통해 작게~크게 나에게 전달되어 지는 것(깨달음)이 우주의 이치인듯 싶네요.
그것을 불교에서는 화두라고 합니다. 그리고 세월이가면서 적소적대에 가물가물 하던것이 조금식 열리기도 하며 때로는 한순간에 열리기도 하는것 같습니다.저의 체험상 괴롭고 고통스럽게 생각하는 것 보다 그 상황에 따라 긍정+순수하게 의문을 갓고 자신의 모습이 어떠하고 남들이 나를 어떻게 판단하더라도 절대적으로 자신를 신뢰하고 스스로를 사랑하면 싶게 그 의문들은 자연스럽게 풀어질 것입니다. 또한 나날이 해피가 보나스로 따따불고 따라붙지요.^^*
다만, 어느정도 가슴을 여는야에 따라서 천차만별로 투영되겠지만.. 지가 이렇게 끄적이지만 맨날꼰날 술퍼먹고 줄담배로 인한 무지함으로 지는 꺼이꺼이 합니당. - -;
화이팅!! ... 미투투투투투......................................... 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