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끄는 글
인산선생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돌팔이는 인명을 경시하니 조심하라"라고. 사실 돌팔이 약장사들도 적지 않고 돌팔이 치과야매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철학도 없고 활인정신도 결여된 채 '무지가 곧 힘'이라는 기치아래서 이거나 상업성에 눈이 멀거나 병적인 성향에서 돌팔이 의료행위로 인해 선량한 사람들에게 불행을 안겨주는 경우도 많이 눈에 띈다. 한편 정식 면허를 가진 의사들의 경우에도 너무 자신들이 배운 것만 진리라는 편향된 관점에서 보다 부작용이 적고 손쉬운 치료방법들을 무시하고 아는 사람들이 보면 오히려 무지한 방법으로 합법적 만행을 저지르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는 어느 편도 아니다. 나는 항상 진리의 편에서서 진리를 옹호하고자 한다.
우주창조이래 전무후무한 존재이시고 남기신 말씀들이나 글들을 자세히 보면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말씀들이 너무나 많아 대각자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인산 김일훈 선생의 경우는 선배 의사들이 다 인정해주고 찬탄한 바 있는 경우여서 면허증이 없다뿐이지 면허가 엄연히 존재하는 경우임에도 매일 같이 고발당하셨다. 선생께서는 이승만정권 시절에 한의대 설립과 한의학제도를 건의한 바 있었지만 이승만은 부인이 프란체스카로 미국여자이고 미국에서 많이 있었던 관계인지는 몰라도 묵살당하셨다. 그로인해 지금까지 서양서학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나는 한의학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하지는 않는다. 한의학은 신선들이나 도인들이 남긴 의서들이 주류여서 그 맥이 그대로 이어져 왔다고 보기는 어려울 뿐만 아니라 요즘같은 공해시대에 현대인의 체질도 옛날 같지 않아 새로운 의학이 필요한 상태이다. 또한 한약제가 대부분 자연산이 아니고 중국에서 수입하거나 농약을 쳐서 재배한 것들이라 위험성이 내포되어 있다. 양약을 달일 때도 압력솥에 고열로 하면 농약이 그대로 밀려나오니 그걸 먹어서 효과보단 해가 더 많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효심에서 의학을 공부하였다고 한다. 부모의 병을 고치기 위하여 스스로 공부를 한 것이다. 사랑에서 지혜가 나온다는 말도 있듯이 부모를 위한 잡념없는 마음앞에 어려운 의학도 그 비밀을 드러내 보였을 것이다. 그렇다. 돌이나 나무도 정성을 들이면 영험이 있는데 하물며 약재임에랴. 활인정신 아니면 부모를 위한 효심, 아내나 남편을 위한 정성으로 약을 달이면 그 효험이 얼마나 뛰어날 것인가.
나는 막연히 전통의학과 한의학을 지지하지는 않는다. 서양의학의 장점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언젠가 동서를 융합한 합리적이면서 철저히 환자지향적인 의술이 대중화되는 날이 오기를 바라는 사람 중의 하나일 뿐이다. 여기서 서양의학과 동양의학의 차이점중에 중요한 한가지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조금전에도 말한 바 있지만 동양의학은 아주 뛰어난 인간, 초인적인 존재들, 즉 신인이거나 도인이거나 신선같은 분들이 기초를 다져놓은 것이고 서양의학은 보통사람들 중에 조금더 뛰어난 사람들이 경험적으로 연구해 쌓아온 의학인 것이다. 나는 서양의학을 전공한 사람이며 서양의서를 읽다가 아직 연구중, 내지 알 수 없음, 또는 중구난방적인 가설들이 난립해 있는 것을 허다하게 보았다. 평범한 인간들의 머리에서 억척을 하자니 이말도 옳을 것같고 저말도 옳을 것같기도 한 모양이다. 그러나 진짜 아는 사람이 보면 얼마나 가소롭겠는가. 나는 진짜 아시는 분이 인산 선생이시다고 믿고 있다. 아니 감히 인산선생임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 아는 자는 억지로 의심하면서 믿을 필요가 없다는 말도 있다. 진정으로 아시는 분을 스승삼아 배우면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되겠는가. 나는 음으로 양으로 인산의학의 영험을 확인하고 있다.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만나고 있다. 인산의학은 편견없이 그대로만 한다면 너무나 안전하고 좋은 방법들이다. 빛이 어둠을 이기듯 아무리 어둠이 짙어도 빛이 승리하듯 언젠가 집집마다 의사가 나올 날이 반드시 오리라고 보고 있다.
나는 황종국판사를 며칠전 말 이라는 잡지에서 처음 대했다. 그리고 한편쯤 들어볼만한 이야기인 것같아 여기 싣고자 할 뿐이다. 진정한 의술에 일조하는 글이기를 바랄 뿐이다.
2. 현직 판사가 국가의료제도의 불합리성을 정면으로 고발하고 나섰다. 부산지방법원 황종국 판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의사가 아니면 치료행위를 전혀 못하게 하는 의료법은 위헌적 소지가 있으므로 개정돼야 한다"는 것과 "의료법에 의해 불법화되면서 천대받고 사장됐던 민간의술을 정식으로 국가의료체계에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정지환 기자
3. "의사가 치료를 포기한 불치병으로 고통받고 있더라도 의사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는 치료받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현행 의료법은 악법 중의 악법입니다."
지난 7월 3일 오후 국회 헌정기념관 대강당에서 뜸사랑모임(회장 천호선)과 대한침구사협회(회장 신태호)가 공동주최한 초청강연회가 열렸다. 2층 좌석과 계단까지 가득 메운 5백여 명의 청중들은 숨을 죽인 채 한 연사가 토해 내는 열강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강연을 담당한 사람은 황종국 부산지방법원 판사(46). 현직 판사가 민간의료단체 행사의 강사로 나선 것도 이례적인 일이지만 발언 내용 또한 매우 충격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이날 강연회는 주간 『시민의 신문』에만 보도됐을 뿐, 제도권 언론으로부터 철저한 외면을 받았다.
황 판사가 기자에게 던진 두 가지 질문
황종국 판사가 강연회에 초청된 데는 사연이 있었다. 그는 지난 92년 검찰이 청구한 무면허 침술사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해 의료계에 일대 파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94년에는 자연요법으로 암환자를 치료하다 의료법 위반으로 기소된 민간의료인의 심리를 진행하던 중 헌법재판소에 의료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기도 했다. 그것은 강연회에서 그가 던진 말이 돌출성 발언이 아니라 평소 가지고 있었던 소신의 피력이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그의 '진심'과 '논리'를 직접 확인해 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태풍 올가가 한반도를 통과하던 지난 8월 3일, 기자는 부산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법원 한 구석의 낡은 건물 2층에 자리한 황판사의 사무실은 혼잡했다. 경매 담당 판사인 그의 책상 위에는 서류뭉치가 잔뜩 쌓여 있었다. 앞으로 처리해야 할 재판 업무가 9개월치나 밀려 있다고 한다. 직원들이 새로 가져온 서류 점검하라, 결재 도장 찍어 주랴, 전화 받으랴, 그런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인터뷰는 진행됐다. 그러나 대화가 시작되자 그는 적극적으로, 그리고 열정적으로 자신의 소신과 논리를 펼치기 시작했다.
-강연회에서 의료법의 불합리성을 지적했는데,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이해하기 쉽게 먼저 두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병에 걸렸다고 칩시다. 그는 당연히 의사에게 찾아가 진단과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장기간 치료를 해도 병이 낫지 않고 오히려 악화만 됩니다. 그대로 방치하면 머지않아 생명을 잃을지도 모릅니다. 벼랑에 몰린 가족들이 수소문 끝에 그런 병을 잘고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게 됐습니다. 주변에 알아보니 그에게 치료를 받고 완치된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도 확인됐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의사도 아니고, 병원에서 하는 치료방법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치료를 합니다."
그가 잠시 숨을 고른 뒤 말을 계속 이어갔다.
"병에 걸린 또 다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아보니 충분히 고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치료비도 비쌀 뿐 아니라 오랫동안 입원해 있어야 하므로 다니던 직장도 쉬어야 합니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한 그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조건입니다. 그 와중에 같은 병을 침이나 뜸으로 아주 잘 고치는 사람이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됐습니다. 알아보니 그 사람에게 가면 입원할 필요도 없고 치료기간도 짧고 비용도 저렴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의사도 아니고 침구사 면허도 없습니다."
말을 마친 그가 이번에는 기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 두 명의 환자는 과연 그 사람을 찾아가서 치료를 받으려고 할까요, 아니면 '어떻게 의사도 아닌 사람에게 치료를 받겠냐'면서 마다할까요? 한편, 환자가 찾아와 병을 고쳐 달라고 하면 그 사람은 치료를 해 주어야 할까요, 아니면 '나는 의사가 아니므로 치료할 수 없다'면서 거절해야 할까요?"
-글쎄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의 사람들에게야 물으나마나한 질문이 아닐까요.
"그렇습니다. 정말이지 그것은 어리석은 질문에 불과합니다. 아마도 대통령, 대법관, 변호사, 의사라고 할지라도 모두 치료를 받겠다고 했을 것입니다. 또한 자신이 고칠 수 있는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가 찾아왔는데 의료인이 거절하기도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실 그것은 인간의 당연한 선택이자 본성입니다. 그러나 현행 의료법에 따르면 이러한 의료행위는 '무면허 의료행위에 해당합니다. 아무리 능력이 있더라도 의사가 아닌 이상 치료해서는 안 되고(의료법 제25조 1항), 이를 위반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며(의료법 제66조 3호), 이를 직업으로 삼아 돈을 받으면 무기 또는 2년 이상의 징역에 처함과 동시에 1백만원 이상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됩니다(보건범죄 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 제5조). 나는 이것이 헌법 정신에 위반될 뿐만 아니라 인간의 본성과 천륜에도 반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 법률 때문에 수천년 동안 민간에서 전승되어 온 전통의술까지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무면허 침술사 구속영장을 기각한 이유
헌법 정신에 위반된다고 했는데.
"헌법 10조에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와 행복도 생명과 건강이 없다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치료방법을 선택할 자유를 어떤 법률로도 제한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러나 현행 의료법은 그러한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겠다는데, 왜 국가가 '너는 죽은 한이 있더라도 의사 자격 없는 사람에게 치료받아서는 안 돼. 만약 이를 어기면 그 사람을 감옥에 가둘 거야'라고 위협합니까? 그래서 내가 강연회에서 현행 의료법을 악법 중의 악법이라고 지적했던 겁니다."
황 판사의 목소리가 자꾸만 높아졌다. 화제를 돌렸다.
-지난 92년 무면허 침술사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부담감을 느끼지는 않았습니까.
"전혀 부담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민간의료와 관련한 나 자신의 절실한 체험을 통해 이미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법관으로서의 체험과 양심을 바탕으로 내린 당연한 판결이었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겪었다는 '절실한 체험'이 궁금합니다.
"젊은 시절 나는 비후성비염과 축농증 등 콧병으로 10년 넘게 고생한 적이 있습니다. 국내에서 최고로 좋다는 병원을 찾아다니며 6개월 동안 통원치료를 받기도 하고 두 번이나 수술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전혀 효과가 없었습니다. 병원 치료를 포기하고 있던 와중에 우연히 단식과 침구 등 민간의료를 접하게 되었는데, 간단한 치료를 받고 거짓말처럼 씻은 듯이 나았습니다. 당시 나는 그렇게 간단하면서도 완벽한 치료방법이 있다는 사실에 너무 놀랐고, 이런 탁월한 치료방법이 널리 보급되지 않는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의료행위들 대부분이 의료법상 전면 금지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가중처벌까지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역설적이게도 민간의료인 중 조금이라도 용하다는 소문이 나면 더 빨리 잡혀 가는 것이 현실입니다."
-당시로서는 영장기각이 파격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을 텐데요.
"물론 관례와는 다른 판결이었습니다. 그래서 영장기각 이유를 길게 썼습니다. 그 덕분인지 언론이 비교적 자세히 다뤄 주었지요."
무면허 침술사에 대한 황 판사의 영장기각을 큰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언론 보도직후 전국의 민간의료인들로부터 수백 통의 감사 전보와 편지가 쇄도했다. 그들이 보내 준 민간의학에 관한 각종 저서와 자료도 받아 볼 수 있었다. 그런 일을 겪으면서, 그는 민간의료인들이 참으로 간절한 염원을 가슴에 품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고 한다.
-그들의 '간절한 염원'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그분들이 하고 있는 치료방법의 적법성을 국가로부터 인정받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이 염원을 이루고자 30여년 동안 눈물겨운 노력을 기울여 왔다는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사실 62년 3월 20일 서양의학 중심으로 의료법이 제정되면서 민족의학은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더욱이 69년 보건범죄 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제정되면서 민간의술은 아예 '무면허 의료행위'로 규정됐지요. 서양의학만이 정통의학으로 인정받고, 의과대학을 나와야만 의료행위를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동시에 민간영역에서 존재하는 자생적 치료기술이나 전통적으로 전수돼 온 치료방법이 천대받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국립대에는 왜 한의대가 한 곳도 없을까
-판사의 신분으로 '민족의학 살리기 운동'에 나선다는 게 쉽지 않을 텐데요.
"사실 나는 천성적으로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법률가 중에서 이 문제를 거론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나서게 됐을 뿐입니다. 이러한 현상이 일어난 것은 결코 현행 법률이 정당하기 때문이 아니라 법률가들이 이 문제를 잘 알지 못하고 있거나 아예 알려고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법률가로서 '의사가 아니면 치료를 못한다.'로 요약되는, 천륜에 반하는 이 법률을 개정시키기 위해 법률적 논리를 개발하고 체계화하여 국가와 사회에 제공하는 일이 나의 소명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민간의료인이 얼마나 존재할 것으로 추정합니까.
"직업적으로 침구를 시술하거나 부업이나 취미로 배우는 사람이 모두 30만명이 넘는다고 들었습니다. 최근 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수지침까지 포함한다면 그 숫자는 1백만명에 육박할 것으로 보입니다."
-엄격하게 따진다면, 이들 거의 모두가 의료법을 위반하고 있다는 말로 들리는데요.
"그러니까 한심한 일이지요. 서양에서는 동양의학이 대체의학, 보완의학으로 불리며 붐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것은 서양의학의 한계를 인정하고 동양의학의 가능성을 수용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동양의학의 본거지 중 한 곳인 한국에서는 도리어 민간의술이 억압받고 있습니다. 이거야말로 정신 나간 일 아닙니까? 사실 무비판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대체의학이라는 용어에도 문제가 있어요. 서양에서야 동양의학이 '대체'이고 '보완'일 수 있겠지만 우리조차 그런 말을 그대로 쓴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실제로 뜸사랑모임이 강연회를 홍보하기 위해 지난 6월 30일 『한겨레』에 게재한 광고에도 "세계보건기구(WHO)는 78년에 이미 47종의 질병에 대한 침구의술의 치료효과를 공인하고 세계각국에 침구의술의 1차효과를 공인하고 세계 각국에 침구의술을 1차 진료로 활용할 것을 적극 권장했으며, 20여년간 철저한 검증을 거쳐 98년에는 3백여 종의 질병에 대한 침구의술의 치료효과를 공인했다"는 대목이 있었다.
민간의술 혹은 민족의학이 천대받아 온 이유는 무엇이라고 봅니까.
"사대주의 근성 때문입니다. 우리도 모르게 제국주의적 사고방식에 오염되어 있었던 겁니다. 우리는 서양인의 사고와 눈을 통해 자신을 바라본 얼빠진 민족이었음을 철저히 반성해야 합니다. 『홍제내경』에 뿌리를 둔 전통의학에는 양대계보가 있습니다. 본초학(약학)과 침구학이 바로 그것입니다. 본초학은 한의학으로 이어져 어느 정도 제도화됐으나 침구학은 망각되고 무시돼 왔습니다. 우리 민족의학은 동양의학의 본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뛰어난 전통과 역사를 무시하고 방치하다 이제 와서 민족의학을 대체의학이라고 부른다는 것은 우리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는 반증입니다."
그래도 한의과대를 통해 전통의학이 어느 정도 계승되고 있는 것은 사실 아닙니까.
"그것은 피상적인 관찰에 불과합니다. 한의과대를 설치한 국공립대학이 단 한 곳도 없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대학에는 서양의술을 가르치는 의과대만이 있을 뿐입니다. 한의과대가 있는 곳은 모두 사립대입니다. 이것은 한의과대가 있는 곳은 모두 사립대입니다. 이것은 한의학조차 국가 차원에서 공적으로 지원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입니다. 한의과대가 이럴진대 민간의술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서양의술은 과학적이고 우수한 반면 전통의술은 비과학적이고 수준이 낮다는 분위기가 팽배합니다. 이것은 우리나라 제도권 의료계를 지배하고 있는 사고방식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서양의술이나 서양문화를 적대적으로만 보다가는 국수주의에 빠질 위험성도 있다고 보는데요.
"물론 서양 것에 좋은 점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지요. 그러나 어디까지나 자기 주체성을 지키면서 그것을 바탕으로 능동적으로 받아들여야 우리 자신을 살찌울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자기 존재의 기반을 멸시하고 외면한 채 맹목적으로 서구만을 좇다가는 영원히 그들을 넘어설 수 없는 이등민족이 될 것입니다."
세계보건기구도 민간의술 치료효과 인정
-현행 의료법을 시급히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개정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이른바 민간의술의 치료행위를 금지하는 규정을 철폐해야 합니다. 그래야 민족의학이 부활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침구, 기공, 지압, 활법, 단식 등 분야별로 법을 제정하고 면허제도를 실시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62년까지 실시돼다 없어진 침구사제도는 당장 부활시켜 실시해도 큰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결국 방법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치 않다. 반대 의견들을 종합해 보면, "만약 의사가 아닌 사람도 함부로 의료행위를 할 수 있게 된다면 사이비 의료인이 창궐할 것이다. 특히 불치병을 앓는 사람들이 이들에게 현혹되는 등 부작용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국가 의료체계의 기초는 일거에 무너질 수 있다. 그러므로 무면허 의료행위는 그 치료결과가 좋든 나쁘든 규제할 필요가 있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아무래도 가장 쟁점이 되는 것은 '의사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도 의료행위를 허용한다'는 부분이 될 것 같습니다. 민간의술 활성화에는 기여할 수 있겠지만, 사이비 의료인들에게 악용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우선 그러한 주장의 밑바탕에는 민간의료인들에 대한 극도의 불신과 편견이 깔려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발로 찾은 황토명의』라는 책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 중에는 의사보다 훨씬 탁월한 의술을 지닌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그리고 환자가 혹시 현혹될지도 모른다는 노파심 때문에 치료방법을 미리 제한해 버리는 것도 잘못입니다. 그것은 마치 경제학에서 시장 기능을 불신하여 국가가 개입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국가는 환자와 그의 가족들이 다양한 치료방법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선택할 수 있도록 최대한 돕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봅니다."
-의료사고와 같은 부작용을 지적하는 사람도 있는데요.
"사실 따지고 보면 의료행위의 부작용은 제도권 의술, 즉 의사들의 치료행위에서도 마찬가지로 제기되는 문제 아닙니까? 오히려 의사이기 때문에 더 책임을 지지 않는 측면도 있다고 봅니다. 뇌혁명의 주창자인 일본의 저명한 의사 하루야마 시게오도 자신의 책 서문에서 '질명의 20%만이 치료가 가능하다'고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민간의료인들이 시술을 하다가 잘못되면 당장 처벌을 받고 엄청난 비난을 받게 됩니다. 의료행위의 부작용을 민간의료인에게만 적용하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생각됩니다. 도리어 침구술의 경우 치료율이 높고, 수가가 싸고, 장비가 간단하고, 기동력이 빠르고, 부작용이 거의 없다는 점은 세계 보건기구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국가의료체계의 근간을 흔들 염려는 없을까요.
"무면허 의료행위 전면금지를 철폐한다고 해서 사이비까지 허용하자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핵심은 무조건적인 전면금지가 부당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무조건 금지만 할 것이 아니라 능력을 검증하는 제도를 마련하고 관문을 통과한 사람에게는 의료행위를 허용해야 합니다. 그것이 어렵다면 일단 금지제도를 철폐하고 의료행위가 사이비임이 결과적으로 드러난 경우에만 중벌하는 제도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사후중벌제도만 제대로 실시해도 국가의료체제의 기본적인 질서는 유지될 수 있다고 봅니다. 아울러 치료 능력의 옥석도 가려냄으로써 질병치료와 범죄처벌의 효과를 동시에 얻어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목마른 사람에겐 한 컵의 물이 더 중요
-민간의술의 치료방법이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과학적 검증'이 안 됐기 때문에 허용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는데요.
"나는 '과학적 검증'이라는 표현에서 다소 위선적 느낌을 갖습니다. 우선 도대체 무엇이 과학적인 것이냐고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의술은 병을 치료하는 것이 목적이지, 그 치료경로의 과학적 검증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목마른 사람에게 한 컵의 물이 중요한 것이지, 물이 어떤 이유로 갈증을 해소하는 지를 이론적으로 아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치료행위의 옳고그름은 치료한 결과 병이 나았느냐 아니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치료방법으로 병이 나았다면 그 자체로서 과학적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질병 치료는 당장 화급한 일인 반면 과학적 검증은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밝혀 내는 것은 과학자의 몫일 뿐입니다. 모든 치료행위에 일일이 과학적 검증을 요구하고,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것은 금지한다면 인류는 질병 앞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질병의 치료는 '현실'이고 과학적 검증은 '이론'일 뿐입니다."
바쁜 업무라는 '현실'때문에 더 이상 인터뷰는 진행될 수 없었다. 황 판사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힘주어 말했다.
"미국에서는 침구술 능력이 있으면 한의사자격을 준다고 합니다. 중국에서는 침구사, 한의사, 양의사로 의료 분야가 나뉘어 있는데, 한 가지 자격증만 가지고 있어도 제한 없이 나머지 분야도 담당할 수 있다고 합니다. 세계는 이렇게 급변하고 있는데, 우리만 이 민족의학을 무시하고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사실 서양의술과 민족의술의 장단점을 잘 조화시키기만 하면 우리는 세계제일의 의료 선진국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민족의학 살리기 운동'은 민족혼과 민족얼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사양화된 전통의술을 복원하는 문제가 아니라 잃어버린 우리의 정신을 되찾자는 운동입니다. 이 운동을 범국민운동으로 전환시켜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서 찾을 수 있습니다."
황종국 판사 약력
1953년 경남 고성 출생.
1971년 부산상고 졸업
및 한국은행 근무.
1981년 성균관대 법학과 졸업
1982년 사법고시 합격
1983년 성균관대 법학과 대학원 졸업
1985년 부산지방법원 판사
1992년 무면허 침술가 구속영장 기각.
1994년 헌법재판소에 의료법 위헌소송청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