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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산 선생 저서 우주와 신약 발문
                          인산 선생 최초의 저서 우주와 신약 발문(跋文)   1. 작년에 某大學 전임강사로 있는 魯某 學兄이 나에게 이런 권유를 한 적이 있었다. “아버님의 그 깊은 철학사상과 신비의 의술을 책으로 저술케 하시면 좋지 않겠는가?” 하고.   이런 말은 家親의 다른 여러 제자분들 한테서도 누차 들어온 이야기였다. 나도 가친께 이러한 권유를 여러 번 드려보았으나 그때마다 아직은 발표할 단계가 아니라고 하시면서 응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가친의 연세가 70후로 접어들면서부터는 많이 노쇠해지셨고 기억력도 상당히 감퇴되셨다. 72년도 大韓畵報에 神宗哲學 易祕傳을 기획연재하실 때만해도 훌륭한 저서를 남기실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근래에 와서는 더욱 절실해졌다.   마침 가친의 제자 중에 道詵寺 교무과장으로 있는 朴某 학형이 아버님께서 책을 쓰시면 자기가 전적으로 책을 맡아 발간하겠다고 나섰다.   그리하여 나와 여러 사람들의 권유로 가친께서는 드디어 집필을 시작하셨다.   그런데 가친의 기억력이 많이 감퇴되어 우선 생각나시는 대로 원고를 써나가셨는데 잊어버린 내용도 상당히 많으셨다. 또 연로하신 관계로 남들처럼 조직적인 구성 체계를 잡지 못하신 채 글을 쓰신 거라 원고정리에 있어서 상당히 애로사항이 많았다. 나 자신도 시간에 쫓겨 가친의 원고를 맡겠다는 다른 분들한테 모두 넘겨주고 싶었으나 혹시나 그분들이 가친의 思想을 조금이라도 이해하지 못할 부분이 없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에서 결국 내가 원고를 맡아 정리하기로 하였다. 꾸준히 노력한 결과 두어 달 만에 원고를 정리하여 도선사 박형한테 넘겼다.   그러나 나 자신 韓醫學에는 원래 문외한이고 또한 宇宙論은 동양철학사상에 있어서의 매우 심오한 경지라 菲才淺學인 나로서는 가친의 원고를 정리하는 일이 매우 벅찬 일이었으므로 원고 정리상에 많은 오류가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2. 이 책은 가친께서 평생을 苦究하신 宇宙哲學과 韓醫學의 神祕方을 논술하신 것이다. 人身은 小宇宙體로서 大宇宙와 불가분의 관계이므로 먼저 대우주의 생성과정을 前篇에 설하셨고, 後篇에서는 이를 통한 한방치료법으로서 현대세계의 불치병인 각종 癌과 난치병인 中風· 糖尿· 癩病 ·癲癎 등의 神祕方을 설하셨다.   그러면 이 책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먼저 가친의 略歷(略傳)을 대략 소개한 후 책의 내용에 대해서도 조금 살펴보기로 하겠다.   가친께서는 8세시에 이미 祖父 밑에서 四書三經을 수학하셨고 그 뒤로는 중학 및 대학강의록을 혼자서 자습하셨다. 10세시부터 義州普通學校에서 수학하다가 그 뒤 1924년 16세시에 만주로 건너가 假名을 池乙龍으로 하여 독립운동에 투신, 장백현 모화산(모아산?)부대 대원으로 활약하셨다.   이때부터 파란만장한 가친의 路程이 시작되었다. 일본군경을 피해 다니며 보통학교 및 漢文私塾의 교사로, 때로는 농사꾼`노동자 등으로 활동하기도 하고, 때로는 걸인처럼 산과 들에서 風餐露宿하기를 多飯事처럼 하셨다.   말할 수 없는 역경 속에서도 오직 일념은 조국광복을 위하여 粉骨碎身 노력하시되 그런 중에서도 한의학 및 동양철학에 대하여도 깊이 연구하셨다. 원래 조부께서 儒學者이면서도 漢醫學에 밝으셨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그 영향을 많이 받으셨다.   그리하여 풍찬노숙하며 다니실 때도 집안에 전래되어오던 비방과 혼자서 자득한 신비의 치료법으로 많은 사람들을 병고에서 구해내고는 인사도 주고받을 겨를 없이 종적을 감추는 奇人의 행적을 수없이 남겼다고 한다.   그 뒤 계속 피신 도중 1933년 25세시에 국내파인 변창호 선생과 독립운동을 모의하다 철원경찰서 습격사건으로 인하여 被逮, 강원도 金化警察署에서 6개월간 모진 고문을 당한 뒤 춘천형무소로 옮겨져 2년간 옥고를 치르셨다.   그 뒤 춘천형무소에서 작업도중 탈출, 금강산을 거쳐 묘향산에 은신하고 있다가 1935년 27세시부터 한말의 巨儒 李華西의 연원인 義兵大將 柳毅庵의 문인 充齋 金斗運 선생을 모시고   1945년 해방시까지 독립운동 전개방안과 동지규합 등에 관하여 수시로 숙의하고 활동을 전개하는 한편 학문에 대한 연구토론도 게을리 하지 않으셨다.   8.15해방과 동시에 越南, 民世 安在鴻 선생, 維石 趙炳玉 박사, 尤史 金奎植 박사, 海公 申翼熙 선생 및 李承晩 대통령 등 여러 애국지사와 교유하며 국정을 논의하셨다. 그 뒤 정계에 뜻이 안맞아 시골로 내려가 鷄龍學院 및 漢文私塾의 강사로서 제자양성에 힘쓰기도 하고, 때로는 나무장사를 하며 世事를 잊고 지내기도 하셨다.   6.25 직전부터는 부산에서 한의원을 경영하셨고, 6.25후 다시 상경, 이대통령 등과 종유하며 국정을 논의하였으나 끝내는 이대통령 정부와 뜻이 안맞아 다시 하향, 경남 咸陽 智異山 부근에서 목물장수와 농사꾼으로 세사를 잊고 지내셨다.   4.19의거 이후 이대통령이 하야하자 다시 상경, 聖惠漢醫院의 원장으로서, 高麗漢方綜合病院의 고문으로서 계속 한의학연구와 치료에 몰두하셨고 때로는 한학을 전수하며 제자양성에 힘쓰기도 하면서 오늘에까지 이르셨다. 이 책은 이러한 역경 속을 지나온 뒤 70여년 만에 처음으로 내는 책이니만큼 매우 감회가 깊으시리라 생각된다.   3. 이 책의 특징은 다른 의서와는 달리 醫藥篇에 앞서 宇宙論을 설한 것이라 하겠다. 가친께서는 宇宙와 人體와 醫藥은 불가분의 관계이므로 모두를 함께 밝히지 않으면 훌륭한 의서가 될 수 없다고 하셨다. 나의 愚見으로 보아도 이 책은 의학뿐만 아니라 철학상에 있어서도 주목될만한 매우 독특한 저서라 여겨진다.   먼저 우주론의 일부를 살펴보면 가친께서는 太空· 太虛· 太極을 三素라 하고 太始· 太初 ·太一을 三要라 하여 三素三要之說로 우주의 本體를 설명하셨다. 이를 좀더 詳述해보면 다음과 같다.   太空은 즉 太始로서 理의 元祖이며, 數로는 零點이요, 冲漠無際하며 寂然不動하고 無氣無形, 無色無臭한 眞空의 상태이다. 시간적으로는 太虛에서 우주의 一劫之數인 十二萬九千六百年 이전의 세계이다.   太虛는 즉 太初로서 氣의 元祖이며, 數로는 零點五요, 兆朕無形하며 豁然貫通하고 有氣無形, 有色無臭한 外實內虛의 상태이다. 시간적으로는 太極에서 十二萬九千六百年 이전의 세계이다.   太極은 즉 太一로서 道의 元祖이며, 數로는 一이요, 循環無端하며 自然之有得이요, 有氣有形, 有色有臭한 混沌之中에 陰陽이 未分된 상태이다. 이는 곧 億兆世界의 化成之道며 萬物化生의 근본이다.   이상이 곧 가친의 宇宙論에 대한 일부를 略述해 본 것이다. 老子는 “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이라 하여 곧 一以前의 세계를 道라 하였고 그 도는 常無爲而無不爲요, 惟愰惟惚하여 惚兮恍兮! 其中有象하고, 恍兮惚兮! 其中有物이라 하여, 無에서 有는 나올 수 없다는 상식을 초월한 無, 곧 無爲는 후천적인 人爲를 거부한 더 본질적인 有爲의 전단계로서 그것이 道임을 설하였다. 그리하여 그의 道眼으로 관조해본 그 도의 모습을 오직 황홀하고 황홀할 뿐이라고 하면서 찬탄을 마지않았다.   가친께서는 노자의 도를 좀더 세분하여 0에서 1까지의 세계를 공간적, 시간적으로 더욱 치밀하게 분석하신 점이 매우 독특하가 하겠다.   그런데 列子의 본체론을 살펴보면 가친의 설과 매우 유사하다. 列子에 曰 “有太易, 有太初, 有太始, 有太素하니 太易者는 未見氣也요, 太初者는 氣之始也요, 太始者는 形之始也요, 太素者는 質之始也라. 氣形質而 具而未相離라. 故로 曰 混淪이니라.” 하였다.   그러나 가친의 본체론에서는 氣臭色形이 具而未相離를 曰太極이라 하고 또 열자와 달리 臭와 色을 설하신 것과 이를 “零(0)→ 零點五(0.5)→ 一(1)→ 二(2)···”로 전개되는 수리적 학설과 우주의 一劫之數를 설하여 우주론을 공간적, 시간적으로 詳論한 것은 매우 과학적인 일면을 지닌 학설이라 하겠다.   宋儒도 ‘無極而太極“이라 하고 태극이전의 0에까지의 세계를 상술하지 못했으며 또한 理氣에 입각한 우주론을 唱導했을 뿐이다.   그런데 가친의 ”論天堂地獄’장 등을 살펴보면 靈空과 靈界를 설하여 이 세계를 淸界와 濁界, 곧 천당과 지옥으로 분설하여 만물의 구성원을 色素라 하고, 그 색소를 합성시켜주는 것이 氣요, 기의 주인공이 靈이라 하였으며, 또한 心은 七神之靈이라 하여 性 靈 精 氣 神 魂 魄의 그림자라 하고 그 七神의 주인이며 核이 靈이라 하셨다.   이상 가친의 우주론을 약간 살펴보았는데 이는 동양철학상에 있어서도 매우 독특한 지위를 점하는 학설이라 하겠다. 4. 본서에서 또 醫藥篇을 살펴볼 때 현대세계에서 불치의 병으로 알려진 각종 癌病治療의 神藥과 천부의 병으로 알려진 癩病治療의 神祕方 및 眼盲者開眼法, 胎中化男· 化女法 등과 50여년 연구의 所産인 五核丹· 竹鹽 등을 이용한 각종 난치병의 독특한 처방은 고금의 어느 의서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祕方들이라 하겠다.   근래에 와서는 서양에서도 동양철학을 깊이 연구하고 있고 또한 한방의학에 대해서도 크게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는 것이 전 세계적인 추세임을 볼 때 우리도 이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있어야 하리라 생각한다. 원래 나의 염원은 이 책을 모두 한글로 논술하여 많은 독자들에게 읽히도록 하고 싶었다.   이를 가친께도 건의해 보았으나 심오한 우주론을 한글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점이 많다고 하시어 한문체를 그대로 둔 채 되도록 내 나름대로 현대적인 토를 달아 쉽게 읽히기에 노력하였고, 단지 의약편 만은 가친께 상의를 드려 國 漢文 混用體로하여 독자들이 읽기 쉽게 노력하였다.   그러나 나 자신의 학문의 부족함으로 인하여 원고 정리상에 있어서 많은 오류가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江湖諸賢의 叱正과 海諒이 있기를 앙망할 뿐이다.  끝으로 가친께서는 宇宙와 人體와 藥理의 연관성에 대해서 좀더 깊고 자세한 설명을 가하고 또한 잊었던 기억을 되살려 이 책의 未備點을 보충, 보다 더 完壁에 가까운 醫書로 再著述해 보시겠다고 하니 그때 더 좋은 책으로 만들어 볼 것을 독자제현에 약속한다.                                                                                                                                         1980년  6월초에                                                                                                                                          不肖子 侖禹 謹識 * 위의 발문은 본인이 약 30년전 20대 후반에 인산 선생의 최초의 저서인 《宇宙와 神藥》에 대한 후기로 쓴 발문이다.   당시 선친의 한의학 사상과 의약론을 의철학적 관점에서 내 나름대로 객관적으로 써본 것인데, 당시에는 ‘不肖子’라고만 쓰고 내 이름을 밝히지 않았었다.   가친의 저술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감히 자식의 이름을 밝힌다는 것이 쑥스럽기도 하고 독자의 관점에서 자칫 객관성이 없다고 하지 않을까 염려되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나름대로 객관성을 갖고 쓸려고 노력하였고, 많은 세월이 흐른 후에 다시 읽어보는 발문이나  이때 조금 논급한 선친의 의철학사상에 관한 내용에 있어서는 지금도 생각이 크게 변한 바 없다.   이에 이 글을 접해보지 못한 회원님들의 일독을 위해 약간의 한글화 작업과 교정을 보아 그대로 올려놓는다! 후일 생각해보니 비록 선친에 관한 글이라도 작자의 이름을 밝히지 않으면 작자에 있어서 다른 이의 글로 오해받거나 도용되어 역사왜곡이 될 수도 있기에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이라도 이 점 명확히 하기 위해 본인의 이름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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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산 선생 저서 우주와 신약 발문
                          인산 선생 최초의 저서 우주와 신약 발문(跋文)   1. 작년에 某大學 전임강사로 있는 魯某 學兄이 나에게 이런 권유를 한 적이 있었다. “아버님의 그 깊은 철학사상과 신비의 의술을 책으로 저술케 하시면 좋지 않겠는가?” 하고.   이런 말은 家親의 다른 여러 제자분들 한테서도 누차 들어온 이야기였다. 나도 가친께 이러한 권유를 여러 번 드려보았으나 그때마다 아직은 발표할 단계가 아니라고 하시면서 응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가친의 연세가 70후로 접어들면서부터는 많이 노쇠해지셨고 기억력도 상당히 감퇴되셨다. 72년도 大韓畵報에 神宗哲學 易祕傳을 기획연재하실 때만해도 훌륭한 저서를 남기실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근래에 와서는 더욱 절실해졌다.   마침 가친의 제자 중에 道詵寺 교무과장으로 있는 朴某 학형이 아버님께서 책을 쓰시면 자기가 전적으로 책을 맡아 발간하겠다고 나섰다.   그리하여 나와 여러 사람들의 권유로 가친께서는 드디어 집필을 시작하셨다.   그런데 가친의 기억력이 많이 감퇴되어 우선 생각나시는 대로 원고를 써나가셨는데 잊어버린 내용도 상당히 많으셨다. 또 연로하신 관계로 남들처럼 조직적인 구성 체계를 잡지 못하신 채 글을 쓰신 거라 원고정리에 있어서 상당히 애로사항이 많았다. 나 자신도 시간에 쫓겨 가친의 원고를 맡겠다는 다른 분들한테 모두 넘겨주고 싶었으나 혹시나 그분들이 가친의 思想을 조금이라도 이해하지 못할 부분이 없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에서 결국 내가 원고를 맡아 정리하기로 하였다. 꾸준히 노력한 결과 두어 달 만에 원고를 정리하여 도선사 박형한테 넘겼다.   그러나 나 자신 韓醫學에는 원래 문외한이고 또한 宇宙論은 동양철학사상에 있어서의 매우 심오한 경지라 菲才淺學인 나로서는 가친의 원고를 정리하는 일이 매우 벅찬 일이었으므로 원고 정리상에 많은 오류가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2. 이 책은 가친께서 평생을 苦究하신 宇宙哲學과 韓醫學의 神祕方을 논술하신 것이다. 人身은 小宇宙體로서 大宇宙와 불가분의 관계이므로 먼저 대우주의 생성과정을 前篇에 설하셨고, 後篇에서는 이를 통한 한방치료법으로서 현대세계의 불치병인 각종 癌과 난치병인 中風· 糖尿· 癩病 ·癲癎 등의 神祕方을 설하셨다.   그러면 이 책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먼저 가친의 略歷(略傳)을 대략 소개한 후 책의 내용에 대해서도 조금 살펴보기로 하겠다.   가친께서는 8세시에 이미 祖父 밑에서 四書三經을 수학하셨고 그 뒤로는 중학 및 대학강의록을 혼자서 자습하셨다. 10세시부터 義州普通學校에서 수학하다가 그 뒤 1924년 16세시에 만주로 건너가 假名을 池乙龍으로 하여 독립운동에 투신, 장백현 모화산(모아산?)부대 대원으로 활약하셨다.   이때부터 파란만장한 가친의 路程이 시작되었다. 일본군경을 피해 다니며 보통학교 및 漢文私塾의 교사로, 때로는 농사꾼`노동자 등으로 활동하기도 하고, 때로는 걸인처럼 산과 들에서 風餐露宿하기를 多飯事처럼 하셨다.   말할 수 없는 역경 속에서도 오직 일념은 조국광복을 위하여 粉骨碎身 노력하시되 그런 중에서도 한의학 및 동양철학에 대하여도 깊이 연구하셨다. 원래 조부께서 儒學者이면서도 漢醫學에 밝으셨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그 영향을 많이 받으셨다.   그리하여 풍찬노숙하며 다니실 때도 집안에 전래되어오던 비방과 혼자서 자득한 신비의 치료법으로 많은 사람들을 병고에서 구해내고는 인사도 주고받을 겨를 없이 종적을 감추는 奇人의 행적을 수없이 남겼다고 한다.   그 뒤 계속 피신 도중 1933년 25세시에 국내파인 변창호 선생과 독립운동을 모의하다 철원경찰서 습격사건으로 인하여 被逮, 강원도 金化警察署에서 6개월간 모진 고문을 당한 뒤 춘천형무소로 옮겨져 2년간 옥고를 치르셨다.   그 뒤 춘천형무소에서 작업도중 탈출, 금강산을 거쳐 묘향산에 은신하고 있다가 1935년 27세시부터 한말의 巨儒 李華西의 연원인 義兵大將 柳毅庵의 문인 充齋 金斗運 선생을 모시고   1945년 해방시까지 독립운동 전개방안과 동지규합 등에 관하여 수시로 숙의하고 활동을 전개하는 한편 학문에 대한 연구토론도 게을리 하지 않으셨다.   8.15해방과 동시에 越南, 民世 安在鴻 선생, 維石 趙炳玉 박사, 尤史 金奎植 박사, 海公 申翼熙 선생 및 李承晩 대통령 등 여러 애국지사와 교유하며 국정을 논의하셨다. 그 뒤 정계에 뜻이 안맞아 시골로 내려가 鷄龍學院 및 漢文私塾의 강사로서 제자양성에 힘쓰기도 하고, 때로는 나무장사를 하며 世事를 잊고 지내기도 하셨다.   6.25 직전부터는 부산에서 한의원을 경영하셨고, 6.25후 다시 상경, 이대통령 등과 종유하며 국정을 논의하였으나 끝내는 이대통령 정부와 뜻이 안맞아 다시 하향, 경남 咸陽 智異山 부근에서 목물장수와 농사꾼으로 세사를 잊고 지내셨다.   4.19의거 이후 이대통령이 하야하자 다시 상경, 聖惠漢醫院의 원장으로서, 高麗漢方綜合病院의 고문으로서 계속 한의학연구와 치료에 몰두하셨고 때로는 한학을 전수하며 제자양성에 힘쓰기도 하면서 오늘에까지 이르셨다. 이 책은 이러한 역경 속을 지나온 뒤 70여년 만에 처음으로 내는 책이니만큼 매우 감회가 깊으시리라 생각된다.   3. 이 책의 특징은 다른 의서와는 달리 醫藥篇에 앞서 宇宙論을 설한 것이라 하겠다. 가친께서는 宇宙와 人體와 醫藥은 불가분의 관계이므로 모두를 함께 밝히지 않으면 훌륭한 의서가 될 수 없다고 하셨다. 나의 愚見으로 보아도 이 책은 의학뿐만 아니라 철학상에 있어서도 주목될만한 매우 독특한 저서라 여겨진다.   먼저 우주론의 일부를 살펴보면 가친께서는 太空· 太虛· 太極을 三素라 하고 太始· 太初 ·太一을 三要라 하여 三素三要之說로 우주의 本體를 설명하셨다. 이를 좀더 詳述해보면 다음과 같다.   太空은 즉 太始로서 理의 元祖이며, 數로는 零點이요, 冲漠無際하며 寂然不動하고 無氣無形, 無色無臭한 眞空의 상태이다. 시간적으로는 太虛에서 우주의 一劫之數인 十二萬九千六百年 이전의 세계이다.   太虛는 즉 太初로서 氣의 元祖이며, 數로는 零點五요, 兆朕無形하며 豁然貫通하고 有氣無形, 有色無臭한 外實內虛의 상태이다. 시간적으로는 太極에서 十二萬九千六百年 이전의 세계이다.   太極은 즉 太一로서 道의 元祖이며, 數로는 一이요, 循環無端하며 自然之有得이요, 有氣有形, 有色有臭한 混沌之中에 陰陽이 未分된 상태이다. 이는 곧 億兆世界의 化成之道며 萬物化生의 근본이다.   이상이 곧 가친의 宇宙論에 대한 일부를 略述해 본 것이다. 老子는 “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이라 하여 곧 一以前의 세계를 道라 하였고 그 도는 常無爲而無不爲요, 惟愰惟惚하여 惚兮恍兮! 其中有象하고, 恍兮惚兮! 其中有物이라 하여, 無에서 有는 나올 수 없다는 상식을 초월한 無, 곧 無爲는 후천적인 人爲를 거부한 더 본질적인 有爲의 전단계로서 그것이 道임을 설하였다. 그리하여 그의 道眼으로 관조해본 그 도의 모습을 오직 황홀하고 황홀할 뿐이라고 하면서 찬탄을 마지않았다.   가친께서는 노자의 도를 좀더 세분하여 0에서 1까지의 세계를 공간적, 시간적으로 더욱 치밀하게 분석하신 점이 매우 독특하가 하겠다.   그런데 列子의 본체론을 살펴보면 가친의 설과 매우 유사하다. 列子에 曰 “有太易, 有太初, 有太始, 有太素하니 太易者는 未見氣也요, 太初者는 氣之始也요, 太始者는 形之始也요, 太素者는 質之始也라. 氣形質而 具而未相離라. 故로 曰 混淪이니라.” 하였다.   그러나 가친의 본체론에서는 氣臭色形이 具而未相離를 曰太極이라 하고 또 열자와 달리 臭와 色을 설하신 것과 이를 “零(0)→ 零點五(0.5)→ 一(1)→ 二(2)···”로 전개되는 수리적 학설과 우주의 一劫之數를 설하여 우주론을 공간적, 시간적으로 詳論한 것은 매우 과학적인 일면을 지닌 학설이라 하겠다.   宋儒도 ‘無極而太極“이라 하고 태극이전의 0에까지의 세계를 상술하지 못했으며 또한 理氣에 입각한 우주론을 唱導했을 뿐이다.   그런데 가친의 ”論天堂地獄’장 등을 살펴보면 靈空과 靈界를 설하여 이 세계를 淸界와 濁界, 곧 천당과 지옥으로 분설하여 만물의 구성원을 色素라 하고, 그 색소를 합성시켜주는 것이 氣요, 기의 주인공이 靈이라 하였으며, 또한 心은 七神之靈이라 하여 性 靈 精 氣 神 魂 魄의 그림자라 하고 그 七神의 주인이며 核이 靈이라 하셨다.   이상 가친의 우주론을 약간 살펴보았는데 이는 동양철학상에 있어서도 매우 독특한 지위를 점하는 학설이라 하겠다. 4. 본서에서 또 醫藥篇을 살펴볼 때 현대세계에서 불치의 병으로 알려진 각종 癌病治療의 神藥과 천부의 병으로 알려진 癩病治療의 神祕方 및 眼盲者開眼法, 胎中化男· 化女法 등과 50여년 연구의 所産인 五核丹· 竹鹽 등을 이용한 각종 난치병의 독특한 처방은 고금의 어느 의서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祕方들이라 하겠다.   근래에 와서는 서양에서도 동양철학을 깊이 연구하고 있고 또한 한방의학에 대해서도 크게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는 것이 전 세계적인 추세임을 볼 때 우리도 이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있어야 하리라 생각한다. 원래 나의 염원은 이 책을 모두 한글로 논술하여 많은 독자들에게 읽히도록 하고 싶었다.   이를 가친께도 건의해 보았으나 심오한 우주론을 한글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점이 많다고 하시어 한문체를 그대로 둔 채 되도록 내 나름대로 현대적인 토를 달아 쉽게 읽히기에 노력하였고, 단지 의약편 만은 가친께 상의를 드려 國 漢文 混用體로하여 독자들이 읽기 쉽게 노력하였다.   그러나 나 자신의 학문의 부족함으로 인하여 원고 정리상에 있어서 많은 오류가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江湖諸賢의 叱正과 海諒이 있기를 앙망할 뿐이다.  끝으로 가친께서는 宇宙와 人體와 藥理의 연관성에 대해서 좀더 깊고 자세한 설명을 가하고 또한 잊었던 기억을 되살려 이 책의 未備點을 보충, 보다 더 完壁에 가까운 醫書로 再著述해 보시겠다고 하니 그때 더 좋은 책으로 만들어 볼 것을 독자제현에 약속한다.                                                                                                                                         1980년  6월초에                                                                                                                                          不肖子 侖禹 謹識 * 위의 발문은 본인이 약 30년전 20대 후반에 인산 선생의 최초의 저서인 《宇宙와 神藥》에 대한 후기로 쓴 발문이다.   당시 선친의 한의학 사상과 의약론을 의철학적 관점에서 내 나름대로 객관적으로 써본 것인데, 당시에는 ‘不肖子’라고만 쓰고 내 이름을 밝히지 않았었다.   가친의 저술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감히 자식의 이름을 밝힌다는 것이 쑥스럽기도 하고 독자의 관점에서 자칫 객관성이 없다고 하지 않을까 염려되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나름대로 객관성을 갖고 쓸려고 노력하였고, 많은 세월이 흐른 후에 다시 읽어보는 발문이나  이때 조금 논급한 선친의 의철학사상에 관한 내용에 있어서는 지금도 생각이 크게 변한 바 없다.   이에 이 글을 접해보지 못한 회원님들의 일독을 위해 약간의 한글화 작업과 교정을 보아 그대로 올려놓는다! 후일 생각해보니 비록 선친에 관한 글이라도 작자의 이름을 밝히지 않으면 작자에 있어서 다른 이의 글로 오해받거나 도용되어 역사왜곡이 될 수도 있기에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이라도 이 점 명확히 하기 위해 본인의 이름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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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산 선생 저서 우주와 신약 발문
                          인산 선생 최초의 저서 우주와 신약 발문(跋文)   1. 작년에 某大學 전임강사로 있는 魯某 學兄이 나에게 이런 권유를 한 적이 있었다. “아버님의 그 깊은 철학사상과 신비의 의술을 책으로 저술케 하시면 좋지 않겠는가?” 하고.   이런 말은 家親의 다른 여러 제자분들 한테서도 누차 들어온 이야기였다. 나도 가친께 이러한 권유를 여러 번 드려보았으나 그때마다 아직은 발표할 단계가 아니라고 하시면서 응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가친의 연세가 70후로 접어들면서부터는 많이 노쇠해지셨고 기억력도 상당히 감퇴되셨다. 72년도 大韓畵報에 神宗哲學 易祕傳을 기획연재하실 때만해도 훌륭한 저서를 남기실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근래에 와서는 더욱 절실해졌다.   마침 가친의 제자 중에 道詵寺 교무과장으로 있는 朴某 학형이 아버님께서 책을 쓰시면 자기가 전적으로 책을 맡아 발간하겠다고 나섰다.   그리하여 나와 여러 사람들의 권유로 가친께서는 드디어 집필을 시작하셨다.   그런데 가친의 기억력이 많이 감퇴되어 우선 생각나시는 대로 원고를 써나가셨는데 잊어버린 내용도 상당히 많으셨다. 또 연로하신 관계로 남들처럼 조직적인 구성 체계를 잡지 못하신 채 글을 쓰신 거라 원고정리에 있어서 상당히 애로사항이 많았다. 나 자신도 시간에 쫓겨 가친의 원고를 맡겠다는 다른 분들한테 모두 넘겨주고 싶었으나 혹시나 그분들이 가친의 思想을 조금이라도 이해하지 못할 부분이 없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에서 결국 내가 원고를 맡아 정리하기로 하였다. 꾸준히 노력한 결과 두어 달 만에 원고를 정리하여 도선사 박형한테 넘겼다.   그러나 나 자신 韓醫學에는 원래 문외한이고 또한 宇宙論은 동양철학사상에 있어서의 매우 심오한 경지라 菲才淺學인 나로서는 가친의 원고를 정리하는 일이 매우 벅찬 일이었으므로 원고 정리상에 많은 오류가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2. 이 책은 가친께서 평생을 苦究하신 宇宙哲學과 韓醫學의 神祕方을 논술하신 것이다. 人身은 小宇宙體로서 大宇宙와 불가분의 관계이므로 먼저 대우주의 생성과정을 前篇에 설하셨고, 後篇에서는 이를 통한 한방치료법으로서 현대세계의 불치병인 각종 癌과 난치병인 中風· 糖尿· 癩病 ·癲癎 등의 神祕方을 설하셨다.   그러면 이 책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먼저 가친의 略歷(略傳)을 대략 소개한 후 책의 내용에 대해서도 조금 살펴보기로 하겠다.   가친께서는 8세시에 이미 祖父 밑에서 四書三經을 수학하셨고 그 뒤로는 중학 및 대학강의록을 혼자서 자습하셨다. 10세시부터 義州普通學校에서 수학하다가 그 뒤 1924년 16세시에 만주로 건너가 假名을 池乙龍으로 하여 독립운동에 투신, 장백현 모화산(모아산?)부대 대원으로 활약하셨다.   이때부터 파란만장한 가친의 路程이 시작되었다. 일본군경을 피해 다니며 보통학교 및 漢文私塾의 교사로, 때로는 농사꾼`노동자 등으로 활동하기도 하고, 때로는 걸인처럼 산과 들에서 風餐露宿하기를 多飯事처럼 하셨다.   말할 수 없는 역경 속에서도 오직 일념은 조국광복을 위하여 粉骨碎身 노력하시되 그런 중에서도 한의학 및 동양철학에 대하여도 깊이 연구하셨다. 원래 조부께서 儒學者이면서도 漢醫學에 밝으셨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그 영향을 많이 받으셨다.   그리하여 풍찬노숙하며 다니실 때도 집안에 전래되어오던 비방과 혼자서 자득한 신비의 치료법으로 많은 사람들을 병고에서 구해내고는 인사도 주고받을 겨를 없이 종적을 감추는 奇人의 행적을 수없이 남겼다고 한다.   그 뒤 계속 피신 도중 1933년 25세시에 국내파인 변창호 선생과 독립운동을 모의하다 철원경찰서 습격사건으로 인하여 被逮, 강원도 金化警察署에서 6개월간 모진 고문을 당한 뒤 춘천형무소로 옮겨져 2년간 옥고를 치르셨다.   그 뒤 춘천형무소에서 작업도중 탈출, 금강산을 거쳐 묘향산에 은신하고 있다가 1935년 27세시부터 한말의 巨儒 李華西의 연원인 義兵大將 柳毅庵의 문인 充齋 金斗運 선생을 모시고   1945년 해방시까지 독립운동 전개방안과 동지규합 등에 관하여 수시로 숙의하고 활동을 전개하는 한편 학문에 대한 연구토론도 게을리 하지 않으셨다.   8.15해방과 동시에 越南, 民世 安在鴻 선생, 維石 趙炳玉 박사, 尤史 金奎植 박사, 海公 申翼熙 선생 및 李承晩 대통령 등 여러 애국지사와 교유하며 국정을 논의하셨다. 그 뒤 정계에 뜻이 안맞아 시골로 내려가 鷄龍學院 및 漢文私塾의 강사로서 제자양성에 힘쓰기도 하고, 때로는 나무장사를 하며 世事를 잊고 지내기도 하셨다.   6.25 직전부터는 부산에서 한의원을 경영하셨고, 6.25후 다시 상경, 이대통령 등과 종유하며 국정을 논의하였으나 끝내는 이대통령 정부와 뜻이 안맞아 다시 하향, 경남 咸陽 智異山 부근에서 목물장수와 농사꾼으로 세사를 잊고 지내셨다.   4.19의거 이후 이대통령이 하야하자 다시 상경, 聖惠漢醫院의 원장으로서, 高麗漢方綜合病院의 고문으로서 계속 한의학연구와 치료에 몰두하셨고 때로는 한학을 전수하며 제자양성에 힘쓰기도 하면서 오늘에까지 이르셨다. 이 책은 이러한 역경 속을 지나온 뒤 70여년 만에 처음으로 내는 책이니만큼 매우 감회가 깊으시리라 생각된다.   3. 이 책의 특징은 다른 의서와는 달리 醫藥篇에 앞서 宇宙論을 설한 것이라 하겠다. 가친께서는 宇宙와 人體와 醫藥은 불가분의 관계이므로 모두를 함께 밝히지 않으면 훌륭한 의서가 될 수 없다고 하셨다. 나의 愚見으로 보아도 이 책은 의학뿐만 아니라 철학상에 있어서도 주목될만한 매우 독특한 저서라 여겨진다.   먼저 우주론의 일부를 살펴보면 가친께서는 太空· 太虛· 太極을 三素라 하고 太始· 太初 ·太一을 三要라 하여 三素三要之說로 우주의 本體를 설명하셨다. 이를 좀더 詳述해보면 다음과 같다.   太空은 즉 太始로서 理의 元祖이며, 數로는 零點이요, 冲漠無際하며 寂然不動하고 無氣無形, 無色無臭한 眞空의 상태이다. 시간적으로는 太虛에서 우주의 一劫之數인 十二萬九千六百年 이전의 세계이다.   太虛는 즉 太初로서 氣의 元祖이며, 數로는 零點五요, 兆朕無形하며 豁然貫通하고 有氣無形, 有色無臭한 外實內虛의 상태이다. 시간적으로는 太極에서 十二萬九千六百年 이전의 세계이다.   太極은 즉 太一로서 道의 元祖이며, 數로는 一이요, 循環無端하며 自然之有得이요, 有氣有形, 有色有臭한 混沌之中에 陰陽이 未分된 상태이다. 이는 곧 億兆世界의 化成之道며 萬物化生의 근본이다.   이상이 곧 가친의 宇宙論에 대한 일부를 略述해 본 것이다. 老子는 “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이라 하여 곧 一以前의 세계를 道라 하였고 그 도는 常無爲而無不爲요, 惟愰惟惚하여 惚兮恍兮! 其中有象하고, 恍兮惚兮! 其中有物이라 하여, 無에서 有는 나올 수 없다는 상식을 초월한 無, 곧 無爲는 후천적인 人爲를 거부한 더 본질적인 有爲의 전단계로서 그것이 道임을 설하였다. 그리하여 그의 道眼으로 관조해본 그 도의 모습을 오직 황홀하고 황홀할 뿐이라고 하면서 찬탄을 마지않았다.   가친께서는 노자의 도를 좀더 세분하여 0에서 1까지의 세계를 공간적, 시간적으로 더욱 치밀하게 분석하신 점이 매우 독특하가 하겠다.   그런데 列子의 본체론을 살펴보면 가친의 설과 매우 유사하다. 列子에 曰 “有太易, 有太初, 有太始, 有太素하니 太易者는 未見氣也요, 太初者는 氣之始也요, 太始者는 形之始也요, 太素者는 質之始也라. 氣形質而 具而未相離라. 故로 曰 混淪이니라.” 하였다.   그러나 가친의 본체론에서는 氣臭色形이 具而未相離를 曰太極이라 하고 또 열자와 달리 臭와 色을 설하신 것과 이를 “零(0)→ 零點五(0.5)→ 一(1)→ 二(2)···”로 전개되는 수리적 학설과 우주의 一劫之數를 설하여 우주론을 공간적, 시간적으로 詳論한 것은 매우 과학적인 일면을 지닌 학설이라 하겠다.   宋儒도 ‘無極而太極“이라 하고 태극이전의 0에까지의 세계를 상술하지 못했으며 또한 理氣에 입각한 우주론을 唱導했을 뿐이다.   그런데 가친의 ”論天堂地獄’장 등을 살펴보면 靈空과 靈界를 설하여 이 세계를 淸界와 濁界, 곧 천당과 지옥으로 분설하여 만물의 구성원을 色素라 하고, 그 색소를 합성시켜주는 것이 氣요, 기의 주인공이 靈이라 하였으며, 또한 心은 七神之靈이라 하여 性 靈 精 氣 神 魂 魄의 그림자라 하고 그 七神의 주인이며 核이 靈이라 하셨다.   이상 가친의 우주론을 약간 살펴보았는데 이는 동양철학상에 있어서도 매우 독특한 지위를 점하는 학설이라 하겠다. 4. 본서에서 또 醫藥篇을 살펴볼 때 현대세계에서 불치의 병으로 알려진 각종 癌病治療의 神藥과 천부의 병으로 알려진 癩病治療의 神祕方 및 眼盲者開眼法, 胎中化男· 化女法 등과 50여년 연구의 所産인 五核丹· 竹鹽 등을 이용한 각종 난치병의 독특한 처방은 고금의 어느 의서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祕方들이라 하겠다.   근래에 와서는 서양에서도 동양철학을 깊이 연구하고 있고 또한 한방의학에 대해서도 크게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는 것이 전 세계적인 추세임을 볼 때 우리도 이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있어야 하리라 생각한다. 원래 나의 염원은 이 책을 모두 한글로 논술하여 많은 독자들에게 읽히도록 하고 싶었다.   이를 가친께도 건의해 보았으나 심오한 우주론을 한글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점이 많다고 하시어 한문체를 그대로 둔 채 되도록 내 나름대로 현대적인 토를 달아 쉽게 읽히기에 노력하였고, 단지 의약편 만은 가친께 상의를 드려 國 漢文 混用體로하여 독자들이 읽기 쉽게 노력하였다.   그러나 나 자신의 학문의 부족함으로 인하여 원고 정리상에 있어서 많은 오류가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江湖諸賢의 叱正과 海諒이 있기를 앙망할 뿐이다.  끝으로 가친께서는 宇宙와 人體와 藥理의 연관성에 대해서 좀더 깊고 자세한 설명을 가하고 또한 잊었던 기억을 되살려 이 책의 未備點을 보충, 보다 더 完壁에 가까운 醫書로 再著述해 보시겠다고 하니 그때 더 좋은 책으로 만들어 볼 것을 독자제현에 약속한다.                                                                                                                                         1980년  6월초에                                                                                                                                          不肖子 侖禹 謹識 * 위의 발문은 본인이 약 30년전 20대 후반에 인산 선생의 최초의 저서인 《宇宙와 神藥》에 대한 후기로 쓴 발문이다.   당시 선친의 한의학 사상과 의약론을 의철학적 관점에서 내 나름대로 객관적으로 써본 것인데, 당시에는 ‘不肖子’라고만 쓰고 내 이름을 밝히지 않았었다.   가친의 저술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감히 자식의 이름을 밝힌다는 것이 쑥스럽기도 하고 독자의 관점에서 자칫 객관성이 없다고 하지 않을까 염려되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나름대로 객관성을 갖고 쓸려고 노력하였고, 많은 세월이 흐른 후에 다시 읽어보는 발문이나  이때 조금 논급한 선친의 의철학사상에 관한 내용에 있어서는 지금도 생각이 크게 변한 바 없다.   이에 이 글을 접해보지 못한 회원님들의 일독을 위해 약간의 한글화 작업과 교정을 보아 그대로 올려놓는다! 후일 생각해보니 비록 선친에 관한 글이라도 작자의 이름을 밝히지 않으면 작자에 있어서 다른 이의 글로 오해받거나 도용되어 역사왜곡이 될 수도 있기에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이라도 이 점 명확히 하기 위해 본인의 이름을 밝혔다!    
    인산학우주와신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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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산 선생 저서 우주와 신약 발문
                          인산 선생 최초의 저서 우주와 신약 발문(跋文)   1. 작년에 某大學 전임강사로 있는 魯某 學兄이 나에게 이런 권유를 한 적이 있었다. “아버님의 그 깊은 철학사상과 신비의 의술을 책으로 저술케 하시면 좋지 않겠는가?” 하고.   이런 말은 家親의 다른 여러 제자분들 한테서도 누차 들어온 이야기였다. 나도 가친께 이러한 권유를 여러 번 드려보았으나 그때마다 아직은 발표할 단계가 아니라고 하시면서 응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가친의 연세가 70후로 접어들면서부터는 많이 노쇠해지셨고 기억력도 상당히 감퇴되셨다. 72년도 大韓畵報에 神宗哲學 易祕傳을 기획연재하실 때만해도 훌륭한 저서를 남기실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근래에 와서는 더욱 절실해졌다.   마침 가친의 제자 중에 道詵寺 교무과장으로 있는 朴某 학형이 아버님께서 책을 쓰시면 자기가 전적으로 책을 맡아 발간하겠다고 나섰다.   그리하여 나와 여러 사람들의 권유로 가친께서는 드디어 집필을 시작하셨다.   그런데 가친의 기억력이 많이 감퇴되어 우선 생각나시는 대로 원고를 써나가셨는데 잊어버린 내용도 상당히 많으셨다. 또 연로하신 관계로 남들처럼 조직적인 구성 체계를 잡지 못하신 채 글을 쓰신 거라 원고정리에 있어서 상당히 애로사항이 많았다. 나 자신도 시간에 쫓겨 가친의 원고를 맡겠다는 다른 분들한테 모두 넘겨주고 싶었으나 혹시나 그분들이 가친의 思想을 조금이라도 이해하지 못할 부분이 없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에서 결국 내가 원고를 맡아 정리하기로 하였다. 꾸준히 노력한 결과 두어 달 만에 원고를 정리하여 도선사 박형한테 넘겼다.   그러나 나 자신 韓醫學에는 원래 문외한이고 또한 宇宙論은 동양철학사상에 있어서의 매우 심오한 경지라 菲才淺學인 나로서는 가친의 원고를 정리하는 일이 매우 벅찬 일이었으므로 원고 정리상에 많은 오류가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2. 이 책은 가친께서 평생을 苦究하신 宇宙哲學과 韓醫學의 神祕方을 논술하신 것이다. 人身은 小宇宙體로서 大宇宙와 불가분의 관계이므로 먼저 대우주의 생성과정을 前篇에 설하셨고, 後篇에서는 이를 통한 한방치료법으로서 현대세계의 불치병인 각종 癌과 난치병인 中風· 糖尿· 癩病 ·癲癎 등의 神祕方을 설하셨다.   그러면 이 책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먼저 가친의 略歷(略傳)을 대략 소개한 후 책의 내용에 대해서도 조금 살펴보기로 하겠다.   가친께서는 8세시에 이미 祖父 밑에서 四書三經을 수학하셨고 그 뒤로는 중학 및 대학강의록을 혼자서 자습하셨다. 10세시부터 義州普通學校에서 수학하다가 그 뒤 1924년 16세시에 만주로 건너가 假名을 池乙龍으로 하여 독립운동에 투신, 장백현 모화산(모아산?)부대 대원으로 활약하셨다.   이때부터 파란만장한 가친의 路程이 시작되었다. 일본군경을 피해 다니며 보통학교 및 漢文私塾의 교사로, 때로는 농사꾼`노동자 등으로 활동하기도 하고, 때로는 걸인처럼 산과 들에서 風餐露宿하기를 多飯事처럼 하셨다.   말할 수 없는 역경 속에서도 오직 일념은 조국광복을 위하여 粉骨碎身 노력하시되 그런 중에서도 한의학 및 동양철학에 대하여도 깊이 연구하셨다. 원래 조부께서 儒學者이면서도 漢醫學에 밝으셨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그 영향을 많이 받으셨다.   그리하여 풍찬노숙하며 다니실 때도 집안에 전래되어오던 비방과 혼자서 자득한 신비의 치료법으로 많은 사람들을 병고에서 구해내고는 인사도 주고받을 겨를 없이 종적을 감추는 奇人의 행적을 수없이 남겼다고 한다.   그 뒤 계속 피신 도중 1933년 25세시에 국내파인 변창호 선생과 독립운동을 모의하다 철원경찰서 습격사건으로 인하여 被逮, 강원도 金化警察署에서 6개월간 모진 고문을 당한 뒤 춘천형무소로 옮겨져 2년간 옥고를 치르셨다.   그 뒤 춘천형무소에서 작업도중 탈출, 금강산을 거쳐 묘향산에 은신하고 있다가 1935년 27세시부터 한말의 巨儒 李華西의 연원인 義兵大將 柳毅庵의 문인 充齋 金斗運 선생을 모시고   1945년 해방시까지 독립운동 전개방안과 동지규합 등에 관하여 수시로 숙의하고 활동을 전개하는 한편 학문에 대한 연구토론도 게을리 하지 않으셨다.   8.15해방과 동시에 越南, 民世 安在鴻 선생, 維石 趙炳玉 박사, 尤史 金奎植 박사, 海公 申翼熙 선생 및 李承晩 대통령 등 여러 애국지사와 교유하며 국정을 논의하셨다. 그 뒤 정계에 뜻이 안맞아 시골로 내려가 鷄龍學院 및 漢文私塾의 강사로서 제자양성에 힘쓰기도 하고, 때로는 나무장사를 하며 世事를 잊고 지내기도 하셨다.   6.25 직전부터는 부산에서 한의원을 경영하셨고, 6.25후 다시 상경, 이대통령 등과 종유하며 국정을 논의하였으나 끝내는 이대통령 정부와 뜻이 안맞아 다시 하향, 경남 咸陽 智異山 부근에서 목물장수와 농사꾼으로 세사를 잊고 지내셨다.   4.19의거 이후 이대통령이 하야하자 다시 상경, 聖惠漢醫院의 원장으로서, 高麗漢方綜合病院의 고문으로서 계속 한의학연구와 치료에 몰두하셨고 때로는 한학을 전수하며 제자양성에 힘쓰기도 하면서 오늘에까지 이르셨다. 이 책은 이러한 역경 속을 지나온 뒤 70여년 만에 처음으로 내는 책이니만큼 매우 감회가 깊으시리라 생각된다.   3. 이 책의 특징은 다른 의서와는 달리 醫藥篇에 앞서 宇宙論을 설한 것이라 하겠다. 가친께서는 宇宙와 人體와 醫藥은 불가분의 관계이므로 모두를 함께 밝히지 않으면 훌륭한 의서가 될 수 없다고 하셨다. 나의 愚見으로 보아도 이 책은 의학뿐만 아니라 철학상에 있어서도 주목될만한 매우 독특한 저서라 여겨진다.   먼저 우주론의 일부를 살펴보면 가친께서는 太空· 太虛· 太極을 三素라 하고 太始· 太初 ·太一을 三要라 하여 三素三要之說로 우주의 本體를 설명하셨다. 이를 좀더 詳述해보면 다음과 같다.   太空은 즉 太始로서 理의 元祖이며, 數로는 零點이요, 冲漠無際하며 寂然不動하고 無氣無形, 無色無臭한 眞空의 상태이다. 시간적으로는 太虛에서 우주의 一劫之數인 十二萬九千六百年 이전의 세계이다.   太虛는 즉 太初로서 氣의 元祖이며, 數로는 零點五요, 兆朕無形하며 豁然貫通하고 有氣無形, 有色無臭한 外實內虛의 상태이다. 시간적으로는 太極에서 十二萬九千六百年 이전의 세계이다.   太極은 즉 太一로서 道의 元祖이며, 數로는 一이요, 循環無端하며 自然之有得이요, 有氣有形, 有色有臭한 混沌之中에 陰陽이 未分된 상태이다. 이는 곧 億兆世界의 化成之道며 萬物化生의 근본이다.   이상이 곧 가친의 宇宙論에 대한 일부를 略述해 본 것이다. 老子는 “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이라 하여 곧 一以前의 세계를 道라 하였고 그 도는 常無爲而無不爲요, 惟愰惟惚하여 惚兮恍兮! 其中有象하고, 恍兮惚兮! 其中有物이라 하여, 無에서 有는 나올 수 없다는 상식을 초월한 無, 곧 無爲는 후천적인 人爲를 거부한 더 본질적인 有爲의 전단계로서 그것이 道임을 설하였다. 그리하여 그의 道眼으로 관조해본 그 도의 모습을 오직 황홀하고 황홀할 뿐이라고 하면서 찬탄을 마지않았다.   가친께서는 노자의 도를 좀더 세분하여 0에서 1까지의 세계를 공간적, 시간적으로 더욱 치밀하게 분석하신 점이 매우 독특하가 하겠다.   그런데 列子의 본체론을 살펴보면 가친의 설과 매우 유사하다. 列子에 曰 “有太易, 有太初, 有太始, 有太素하니 太易者는 未見氣也요, 太初者는 氣之始也요, 太始者는 形之始也요, 太素者는 質之始也라. 氣形質而 具而未相離라. 故로 曰 混淪이니라.” 하였다.   그러나 가친의 본체론에서는 氣臭色形이 具而未相離를 曰太極이라 하고 또 열자와 달리 臭와 色을 설하신 것과 이를 “零(0)→ 零點五(0.5)→ 一(1)→ 二(2)···”로 전개되는 수리적 학설과 우주의 一劫之數를 설하여 우주론을 공간적, 시간적으로 詳論한 것은 매우 과학적인 일면을 지닌 학설이라 하겠다.   宋儒도 ‘無極而太極“이라 하고 태극이전의 0에까지의 세계를 상술하지 못했으며 또한 理氣에 입각한 우주론을 唱導했을 뿐이다.   그런데 가친의 ”論天堂地獄’장 등을 살펴보면 靈空과 靈界를 설하여 이 세계를 淸界와 濁界, 곧 천당과 지옥으로 분설하여 만물의 구성원을 色素라 하고, 그 색소를 합성시켜주는 것이 氣요, 기의 주인공이 靈이라 하였으며, 또한 心은 七神之靈이라 하여 性 靈 精 氣 神 魂 魄의 그림자라 하고 그 七神의 주인이며 核이 靈이라 하셨다.   이상 가친의 우주론을 약간 살펴보았는데 이는 동양철학상에 있어서도 매우 독특한 지위를 점하는 학설이라 하겠다. 4. 본서에서 또 醫藥篇을 살펴볼 때 현대세계에서 불치의 병으로 알려진 각종 癌病治療의 神藥과 천부의 병으로 알려진 癩病治療의 神祕方 및 眼盲者開眼法, 胎中化男· 化女法 등과 50여년 연구의 所産인 五核丹· 竹鹽 등을 이용한 각종 난치병의 독특한 처방은 고금의 어느 의서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祕方들이라 하겠다.   근래에 와서는 서양에서도 동양철학을 깊이 연구하고 있고 또한 한방의학에 대해서도 크게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는 것이 전 세계적인 추세임을 볼 때 우리도 이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있어야 하리라 생각한다. 원래 나의 염원은 이 책을 모두 한글로 논술하여 많은 독자들에게 읽히도록 하고 싶었다.   이를 가친께도 건의해 보았으나 심오한 우주론을 한글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점이 많다고 하시어 한문체를 그대로 둔 채 되도록 내 나름대로 현대적인 토를 달아 쉽게 읽히기에 노력하였고, 단지 의약편 만은 가친께 상의를 드려 國 漢文 混用體로하여 독자들이 읽기 쉽게 노력하였다.   그러나 나 자신의 학문의 부족함으로 인하여 원고 정리상에 있어서 많은 오류가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江湖諸賢의 叱正과 海諒이 있기를 앙망할 뿐이다.  끝으로 가친께서는 宇宙와 人體와 藥理의 연관성에 대해서 좀더 깊고 자세한 설명을 가하고 또한 잊었던 기억을 되살려 이 책의 未備點을 보충, 보다 더 完壁에 가까운 醫書로 再著述해 보시겠다고 하니 그때 더 좋은 책으로 만들어 볼 것을 독자제현에 약속한다.                                                                                                                                         1980년  6월초에                                                                                                                                          不肖子 侖禹 謹識 * 위의 발문은 본인이 약 30년전 20대 후반에 인산 선생의 최초의 저서인 《宇宙와 神藥》에 대한 후기로 쓴 발문이다.   당시 선친의 한의학 사상과 의약론을 의철학적 관점에서 내 나름대로 객관적으로 써본 것인데, 당시에는 ‘不肖子’라고만 쓰고 내 이름을 밝히지 않았었다.   가친의 저술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감히 자식의 이름을 밝힌다는 것이 쑥스럽기도 하고 독자의 관점에서 자칫 객관성이 없다고 하지 않을까 염려되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나름대로 객관성을 갖고 쓸려고 노력하였고, 많은 세월이 흐른 후에 다시 읽어보는 발문이나  이때 조금 논급한 선친의 의철학사상에 관한 내용에 있어서는 지금도 생각이 크게 변한 바 없다.   이에 이 글을 접해보지 못한 회원님들의 일독을 위해 약간의 한글화 작업과 교정을 보아 그대로 올려놓는다! 후일 생각해보니 비록 선친에 관한 글이라도 작자의 이름을 밝히지 않으면 작자에 있어서 다른 이의 글로 오해받거나 도용되어 역사왜곡이 될 수도 있기에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이라도 이 점 명확히 하기 위해 본인의 이름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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