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강 감초탕과 죽염으로 3기초 위암극복
강재석 / 전 의령군 용덕면 부면장
나는 올해 예순한 살 난 사람이다. 나이가 들면 누구에게나 건강에 위기가 한 번쯤은 닥치듯이 나에게도 4년 전 위암이라는 죽음의 신이 찾아왔었다.
그 전에도 소화가 잘 안 되었는데 병원에선 뚜렷한 이유 없이 신경성 소화불량일 뿐이라 하였다. 별 치료방법을 찾지 못하고 소화가 안 될 때마다 위장약으로 그럭저럭 1년을 넘겨 왔었다.
그런데 하루는 살살 배가 뒤틀리더니 심하게 설사를 하였다. 가족들이나 나나 과식을 한 탓이려니 생각하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소화제를 복용하였으나 쉽게 통증이 가라앉지 않았다.
오히려 밥맛이 없고 매일매일 설사가 그칠 줄 모르더니 급기야 사흘째 되던 날에는 배가 끊어져 나갈 듯이 아팠다.
너무 고통이 심하여 "아이구 나 죽네"하며 배를 움켜쥐고 방안에서 나뒹굴었다. 그 길로 병원에 실려 갔다. 일주일간 입원하여 엑스레이 검사다, 시티(CT) 촬영이다, 조직검사다 하여 정밀검진을 받은 결과 위암 2기 말 3기 초라는 사형선고와도 같은 판정을 받았다.
그 후 부산과 마산의 큰 병원이란 데는 다 가보았지만 가는 곳마다 검사 결과는 역시 위암이었고 암세포가 위 전체에 퍼져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고 하였다.
검사한다고 이 병원 저 병원 입원하여 보낸 기간도 그럭저럭 3개월이 되었다. 극심한 복통으로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식사를 전혀 할 수 없었던 나는 그사이 수척해질 대로 수척해져 누가 보아도 죽음을 바로 눈앞에 둔 사람의 몰골이었다. 병원에선 이제 거의 가망이 없다는 식이었고 나도 죽을 각오를 하고 병원에서 퇴원, 집에 돌아왔다.
그런데 나에게 아직 천운이 남아 있었던지 서울에 사는 조카가 내가 위암에 걸려 심하게 고통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곤 죽염을 보내 왔다.
그때까지 나는 죽염을 모르고 있었지만 어릴 적에 배가 아프거나 소화가 안 될 때 집안 어른들이 준 소금을 먹고 나은 기억이 나 잠도 제대로 못 자게 괴롭히는 복통이라도 조금 덜어 보고자 하는 바람으로 죽염을 먹기 시작했다.
생강, 유근피, 감초, 밭마늘(구운 것)을 한데 넣어서 달인 물에 죽염을 타서 석 달에 걸쳐 500g을 먹었다. 죽염을 복용하면서 참으로 나 자신도 믿지 못할 정도의 신기한 일이 생겼다.
차츰차츰 그 극심했던 복통이 물러가더니 석 달 만에, 식사를 전혀 못했던 나는 죽은 물론 간간이 밥까지 먹을 수 있었다. 마치 하늘에 시커먼 비구름이 말끔히 걷히고 햇살이 내리비치는 듯하였다.
내가 거의 소생하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동네 사람들은 밥을 먹게 된 나의 모습을 보곤 기적이라고 모두들 놀라워 했다. 식사도 못하고 극심한 복통에 밤낮으로 배를 움켜잡고 웅크리고 있던 불과 석 달 전의 내 모습과 비교해 보면 하늘과 땅 만큼이나 차이가 나는 엄청난 변화였다.
너무 신기한 결과가 믿기지 않아 내가 진짜 암 환자였는지 확인하고자 서울 모 대학병원에서 다시 정밀검사를 받았다.
검사를 담당했던 고 아무개 박사는 부산과 마산 병원의 엑스레이 필름과 자신이 검사한 엑스레이 필름을 비교해 보더니 고개를 갸우뚱하였다. 예전의 필름은 암세포가 위 전체에 번진 걸로 촬영되어 있었으나 자기가 새로이 촬영한 필름은 암세포가 다 없어지고 본체만 조그맣게 남아 있었던 것이다.
고 박사는 암세포가 불과 몇 달 만에 줄어든 게 믿어지지 않았던지 암이 아닌 종양일 수도 있으니 조직검사를 해보고자 하였다.
그러나 조직검사 결과 역시 암이었다. 그렇게 많이 퍼진 암을 죽염이 몇 달 만에 삭여 낸 것이다. 그 후엔 병원에 가지 않고 죽염만 먹었다.
죽염을 복용한 지 3년이 지난 지금은 복통이나 소화불량이 한 번도 없고, 식욕이 젊은 사람 못지 않게 왕성하다. 체력도 강해져 이제는 내가 암환자라고 생각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