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 태양보다 밝은 지혜 갖게 돼
그러면 거기에 있는 약성(藥性)을 우리가 이용하자는 거지.
그 무제한의 약성들을 버려두고 있는 것은 우리 힘이 모자라고 수완이 없고.
그러면 아무리 힘을 쓰려고 해도 능력이 없는 힘이, 힘이 될 수 없는 거요.
아무리 아는 건 귀신보다 더 안다고 해도 지금 좋은 매개체를 두고도
수완이 없으면 모르는 거라.
모르는 사람만 못하지. 그래서 나는 오늘까지 모르는 사람만 못하게 살기 때문에,
한평생을 밟혀 사는 이유가 뭐이냐?
세상을 안다는 자가 세상의 앞에 서 가지고 모르는 사람들을 이용한다면
그건 있을 수 없고,
죽을 적에 조용히 있다가 모든 경험담을 붓으로 남겨서 후세에 전하면
나 죽은 후에 영원한 세상이 오는데,
내가 살아서 짧은 세상에 날뛸 필요는 없어.
난 한세상에 아랫목에서 맥을 놓고 있다가 죽어도 짧은 세상은 보내고
긴 세상을 위해서는 나의 경험담을 남겨 놓는 것이 지구상에 사는 가족의 마음속에 밝아지는 지혜라.
그러면 우주에는 태양이 광명을 가지고 있고
모든 생물엔 마음에 광명을 가지고 있는데.
그 마음속에 있는 광명은, 지혜에서 나오는 광명은, 지구의 태양보다 밝은 건데.
그러면 우리 동족은 어디까지나 태양보다 밝은 지혜를 가질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으면 되는 거라.
그 비법(秘法)은 내가 죽기 전에 전하고 죽은 후엔 책으로 전하고,
알려 주면 되는 거라.
그래서 내가 죽은 후에 지구는 영원하게 행복한 인간이 살 거다.
오늘처럼 이렇게 비참하게 죽어 가는 걸 구할 수 없다는 건 인간의 지혜의 부족으로
이뤄지는 거라.
그러면 아메리카에 사는 교포의 지혜가 지구촌을 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고
푸대접을 받을 거냐 하면 그렇지 않아요.
나의 선배 되는 양반, 동지 되는 양반들이 하와이서 강낭 · 수수밭에서 비참하게 살다
가는 걸 나는 알고 있어요.
토이기[터어키]에서 그렇게 비참하게 살았는데 그분들이 서재필 박사가 구해 온 후에
미국서도 비참하게 살다 갔는데.
그 삼세(三世)는, 지금 손자들인데 지금 다 오십이 넘었으니 행복할 거라.
그러면 그 조상이 피땀을 흘리고 쓰라린 고생한 거름 덕이라고 봐야겠지.
아무리 조상을 모른다 해도 조상이 흩친 거름은 행복이 오는 거라.
그래서 나도 동족 앞에는 지금부터 다음에는 조상을 말하게 되는데,
조상이라면 조상의 행동이 뭐이냐? 내가 행복하고 조상의[내가 행복을 누리는 게
조상으로서의 올바른] 행동이 되느냐 하면 그게 아니야. 어찌 하든지 나는 가장
비참하더라도 후배들은 영원히 행복해야 된다.
그래서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도 인간대우 받은 일이 없어요.
내가 죽으면 영원히 대우받을 내가,
그 살아서 눈 깜빡 하는 그 시간이 그렇게 급하냐?
또 육신이라는 건 죽을 먹으나 밥을 먹으나 굶지 않고 넘어가면 살게 돼 있는데
그 생명을 유지하는 법이 각각으로,
남한테 못할 일도 하고, 남을 해치기도 하고, 세상에 욕먹기도 하고,
그러면서 행복한 것은 나는 행복으로 안다?
어디까지나 남을 도와서 남이 나보다 더 잘살게 하면,
그 사람들 힘이 내게 와서 다시 행복하게 해주면 행복해도 좋을 거요.
옛날 양반이 ‘출호이자 반호이’(出乎爾者反乎爾)니까.
내가 여러분을 도와 가지고 여러분이 행복한 후에 나의 불행을 그래도 보고 있진 않을
거니까.
그때의 내가 행복한 행복은, 그건 진정한 행복이라.
그런 일이라면 나도 피하지 않는 것이 뭣이냐?
옛날 양반들이, 예수님은 고생고생하다가 십자가를 진 일이 있고 석가모니는
고생고생하다가, 풀밭에서 고생하다가 비참하게 최후를 마친 일도 있는데,
그러면 내라고 해서 가장 행복한 인간이 된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내가 또 그런 일을 받아들일 리가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