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영 조선일보 국제부 기자(hyyoon@chosun.com)
“악성 뇌종양 4기입니다. 가능한 모든 수단을 다 써도 생존확률은 2%입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음반 프로듀서로 일하던 에반 로스는 25세에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는 고심 끝에 절체절명의 결단을 내렸다.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거부한 것. 대신 2개의 줄기세포를 이식(移植)받으면서 화학요법과 침술 치료를 병행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화학요법과 줄기세포 이식으로 암세포를 제거하는 한편 침술의 도움으로 혹독한 화학요법의 온갖 부작용을 견뎌보기로 했다.
그런데 암세포가 사라졌다는 기적적인 통보를 받았다. 로스는 퇴원 직후 한의학과 침술 공부에 몰두, 지금은 로스앤젤레스의 시더스 사이나이 메디컬센터에서 정식 침구사이자 한의학 박사로 근무하고 있다. 서양의학만으로는 소생이 불가능한 암환자들에게 침술과 한약재 처방 등을 병행토록 하는 새 의술을 펼치고 있다. 최근엔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학과 듀크대학, MD 앤더슨 암센터 등 유수한 대학병원과 연구기관들로부터 암환자 치료 의뢰가 줄을 잇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 한의학이 암 등 각종 난치병 치료에서 유용한 보조수단으로 입지를 굳히고 있다. 미국 보건당국은 화학요법 치료를 받는 암환자들에게 구토증 등 부작용을 완화하는 방안으로 한방 치료를 공식 허가했다.
미국 내에서 실제로 이렇게 해서 효과를 보는 환자들의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근육암을 앓고 있는 코네티컷주(州)의 14세 소년 버크. 암 선고를 받기 이전부터 주삿바늘이라면 진저리를 쳐 병원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던 아이였다. 하지만 지난 1월부터 다리와 허리 부위의 통증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심해지자 침술 치료를 받았다. 결과는 진통제 모르핀을 맞는 것보다 통증이 쉽게 가라앉았고 진통 지속시간도 훨씬 길어졌다는 것이었다. 버크에게 침술 치료를 해준 이는 양의(洋醫) 윌리엄 젬스키(41) 박사. 그는 지난해 11월까지 300시간의 침술 교육을 이수, 시술 자격을 취득했다.
한편 2년 간 임신에 실패한 결혼사진 전문 촬영기사 재닛 클린저(40)씨는 3개월 동안 한 달에 두 번씩 침술 치료를 받으면서 한약재를 복용한 결과, 지금은 임신 28주째를 맞고 있다고 지난 3월 16일자 시애틀타임스지(紙)는 전했다. 시험관아기 수정에 들어가기 앞서 침술 치료를 받으면 수정성공률이 평균 26%에서 43%로 높아진다는 조사 결과에 따라 버지니아주 메이슨 메디컬센터의 경우, 시험관아기 수정을 시도하는 여성의 20~30%가 침술 치료를 병행하고 있다.
다른 난치병에서도 한의학의 적용범위가 차츰 넓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