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은 임금께 상주(上奏)를 아뢰는
장수의 결연함을 가슴속에 품지 않을 수 없고,
더불어,염궁문(念弓門)을 돌아나가는 솔바람 처럼
나의 몸과 정신이 청명해 주십사하는 바램을
원하지 않을 수 밖에 없고,
외람되지만,내 주위의 인연이 강건하고 행복하기를
바라는 소원 또한 가볍이 할 수가 없고,
행여, 이 초심(初心)의 조야(粗野)스런 경험이
스스로를 속박하는 자박(自縛)이 되거나,필자와 같은
초심자들의 경박한 호승심(好勝心:남한테 이기기를 좋아하는)을
자극하는 자료는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지울 수 가 없다.
일체의 감정의 이입(移入)이나,허구를 배제하는 글을
올리겠지만,행여 있을줄 모르는 필자의 미숙함을
제현(諸賢)들께서 질타(叱陀)와 더불어
취사선택을 잘 해주십사 하는 바램도 잊지않는다.
최대한 정확한 경험과 위증(僞證)의 가감(加減)을 줄일것이다.
앞으로 중간중간에 글을 통해 말씀올리겠지만,
이 변화의 시기에 정도(正道)를 걷지 아니하고,
'모난 나무로 둥근 구멍을 막으려는 것'과 같은 요망스럽고
괴이하고 지엽말단적인 사행심들이 일지않도록
회원여러분들의 몸과 마음들이 가을 쑥뜸을 맞이하는 겸허한
기회들이 되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필자가 자청한 면도 있겠지만,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시는 많은 회원님들께 숙연하지 않을 수
없다.지면을 통해 다시한번 고마움을 전한다.
특히 공사(公私)간에 다망(多忙)하심에도
수고를 아끼지 않으시는 주원장님께 송구할 따름이다.
기억에 남는 추안거(秋安居)가 되도록
스스로 잘 만드시기를 기원하며,
수요일 부터 시작되는 연재(連載)에 최선을 다할것을
약속드립니다.
鶴松 김 상경 拜書
*연재는 본 '회원공간란'과 '인산포럼의 해당란(인산경험방)'과
자료실의 '쑥뜸란'에 동영상및 사진으로 게재합니다.
참고로,필자는 B형(소음인)이고 ,봄에 한번 경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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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원식이 끝나고,원장님께서 정신적인 안정에 대한 배려 일지
몰라도 유난히 너털웃음을 지어보이셨다.
여전히 필자는 쓴웃음..
솔직히 뜸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지만,
30여년간 지속되어온 흉금(胸襟)의 치적(恥積)을 한올이나마 벗겨지는 순간을 맞이한다고 생각하니 솔직히 감개가 여미고,
조용히 눈물도 흘렸다.
사진을 찍을때 억지웃음도 지어보였지만, 손바닥으로 흐르는
내 슬픔의 땀은 쉽게 마르지 않았다.
자리를 파하고 회원님들께서 손수' 인산식 뜸장'을 만드셨다.
처음 하시는 분들도 계셨지만,횟수가 거듭될 수록 원래 의도했던
계란모양의 뜸장들이 제법 크게 만들어져 가고,소쿠리에 수북히
쌓여갔다.중간 중간에 원장님께서 기존의 '깔대기식'뜸장의
허(虛)와 단(短)을 '인산식'그것의 실(實)과장(長)으로 비교설명을
해 주셔서 처음 뜸장을 접해 보신 회원님들의 공부에 큰 도움이
되셨을 거라고 생각된다.(*인산식 뜸장법은 차후 사진이나 영상으로 소개될 것이지만,분쇄기와 구멍크기가 다른 체를 이용해 서너차례 많게는 대 여섯차레 쑥똥을 완전히 제거해서 최후에 자신의 손을
이용해 공을 토스하듯 계란모양으로 둥그스레 뜸장을 만드는 정통
인산식 뜸장법이며 깔대기식 뜸장법과는 火氣의 전달력이나,
흉터의 생성도등 여러면에서 비교를 불허한다.)
특히 불원천리 먼 걸음을 해 주신 '허정영님'의 정성에 심심한
고마움을 전합니다.
20여분이 족히 넘는 뜸장을 만드신 회원님의 익살에 약간은 살가움
마져도 느꼈다.그만큼 필자는 이 순간을 갈구했다.
도서관 너머로 하염없이 지는 노을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기간이
순간이 길어질 수록 이 순간이 가까워 짐을 몸으로 느껴왔던 것이다.
흰색 츄리닝으로 갈아입고 내 자리에는 색깔도 고운 분홍색 타월이
깔여졌다.내 스스로도 언제 이렇게 말랐나 싶을 정도로 갈비살이
훤하게 들어났다.--스스로 자신의 시신(屍身)을 거둘 수 없음--
그것이 삶과 슬픔의 뿌리일지 모른다....
각설하고..
듬성듬성 제법 큰 뜸장도 보였지만,대개 15분에서 17분정도의
크기로 보여졌다.
은산철벽(銀山鐵壁)같이 원을 만들어 주신 회원님들의 호기심의
눈들이 필자에게는 무엇보다도 큰힘으로 다가와 처음 접하는
가을영구법의 낯설음을 많이 상쇄 시켜주셨다.
시작전에 필자의 다 아물지 않은 단전(丹田)환부에 다시한번,뜸장의 위치를 살펴주시고, 까막까막하게 먼 기억으로만 생각나는
중완(中脘)환부는 바로 그 위에 뜸을 놓으신 걸로 생각된다.
(*골상학적으로 중완부위는 상반신의 위치와 자신의 손마디의 길이간에 상위(相僞)가 생길 수도 있으니 반드시 두부분의 비교를 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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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밤11시.
처음에는 원장님께서 2~3분되는 뜸장을 2개로 올려놓으셨다.
중완(中脘)은 아문지가 오래되어 별 신경없이 받아들였는데,
단전(丹田)은 직전까지만 해도 아직 덜 아문상태라서 어떻게
반응할까 궁금했는데,중완과 마찬가지의 느낌이었다.
2~3분은 앞으로 다가올 큰 뜸장을 생각하니,그냥 따꼼한 정도였다.
갑자기 회원님들이 어술렁!
뭔가 큰 것이 올라오기는 올라오는 모양인데,필자의 생각으로는
단전부위가 좀더 더 탄것으로 보아 3분정도는 더 탄것 같다.
7~8분무렵 불기둥이 내려오면서 가슴부위에 깍지를 긴 손부분이
중완부위의 열기운으로 후끈후끈 땀범벅이다.
마침내 큰 열이 피부에 닿는순간 가슴팍을 쪼개들어오는 불기둥으로 호흡을 잠시 멈춘다음 짧게 들어마시고 길게 내쉬고를 차분하게
반복했다.한 순간 지나갔다고 생각했을때 다시 엄습하는 불기운이
수차례 반복되는 순간 이제는 단전부위의 파상공격이 시작된다.
짧게 짧게 반복되던 숨고르기를 용기를 내서 단전까지 보낸다고
생각하고 힘차게 들여마셨다.낙타가 사막을 건너는 듯한,
시각화(視覺化)를 최대한 지어내려고 했다.
일전에 지우스님께서 일러주신 호흡의 관법(觀法)이 이런것은
아니었을까 생각되었다.
중완 단전을 요동치는 파도모양으로 중완은 짧게 단전은 길게,
필자도 모르게 리듬을 타는것 같아 신기했다.
좀 긴장을 해서 그런지 겨드랑이에서는 땀이 흐르기 시작했고
오금주위는 흥건했다.
아직은 첫장이고 큰 물집이 생성되지 않아서인지 통증은 생각보다
전혀없었다.
옆에 계신 회원분께서 중완13~14분.단던은 15분정도라고 말씀하셧다.우리 주원장님, 언제 여유가 있으신가?ㅎㅎ
흥부뺨에 밥풀 붙이듯이 덥석 올려놓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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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례 큰 대란(大亂)(?)이 지나고 잠시 큰 붓으로 재를 쓰어내리는
동안 잠시 고개를 들어 환부를 보니 큰 행성들이 발갛게 부어오른분화구에 박혀 조금열어놓은 창가로 들리는 자동차 경적소리와
전열등의 반사빛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3번째는 엉치뼈와 발 뒷꿈치 부분의 찰과하는 느낌으로 약간은
불편한 느낌으로 다가왔는데 이미 격은 동족상잔의 난리(?)로
편안하게 받아들였다.
조금은 멋적지만 주위에 계신 회원분들의 칭찬에호흡조차도 약간은
힘에 부치는6번짼가 7번째에 드디어 휴식타임을 요청했다.
등 밑에 갈려있는 타월은 이미 땀이 범벅이 되어 싸늘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겨우 일어나 보니 이제 어른 엄지손가락 만한 크기의
물집들이 고개를 쳐들고 잉태하려고 부산을 떨고,집중포화에
먼저있던 환부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냉수로 입을 약간 축이고 허리를 돌려 엉치뼈 부분과 다리를
폈다오므렸다 하면서 심호흡을 하는 순간.
뺑덕어멈 우리 주원장님"어서 누워용~~`!"ㅎㅎ
미워 할 수 없는 저 얼굴!
마침 옆에 앉아계신 회원분이 타월을 한번 털어주셔서
다시 뽀송한 기분으로 누울 수가 있었다.
시간은 바야흐로 새벽1시를 달려가고 있었다.
여전히 소쿠리에는 뜸장이 수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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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는 꽃들의 속절없음,노래하는 새들의 속절없음,살을 짓이기는
절구의 속절없음,삶은 대체 밀가루 반죽인가?
힘이 부치기 시작했던 새벽2시가 넘어서면서 문득 내가 받아들이는
고통에 대해 생각해 본다.
조상업보의 제1의 치적(恥積)은 나병(癩病)이요.제2는 탈모(脫毛)라 한다.그 만큼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영구법(*靈灸法-이는 할아버님께서 만드신 고유명사요.일반'뜸법'이라는 말과 비교해 보면
알수 있지를 않는가? 향후 언어사용의 각별한 주의를 요한다.) 이
업장소멸에는 없어서는 안되는 '유일'한 선택이며,(*9代祖의 顯神이배석하며 그 자리에서 피 시술자의 소신공양(燒身供養)으로,그
피시술자의 次代에서는 자기福 만큼 가져가는 아주 중요한 제사)
그 개인(피 시술자)에게는 一身의 성불화(成佛化-아니 어떤 소원
성취도 무관!)를 할 수 있는 소중한 자리이다.
그래서 여기서는 피 시술자는 물론 시술자또는 참관인들은
자신의 소신제(燒身祭)만큼이나,경건해야 하고 숙연함을 유지해야
하고, 일체의 희언(戱言:잡담)이나,잡기(雜技:예로써 흡연등..)등으
로 피 시술자의 정신을 흐려놓으면 그 당사자는 물론이거니와
그 9代祖에게도 씻을수 없는 대과(大過)를 짓게 됨을 유의하기를
바란다.
이미 아시는 분은 알겠지만, 필자도 이번에 처음겪는 일인지라,
2시가 넘어 3시가 가까워오면서 힘이부쳐 말을 제대로 할수 없는
상태에서 호흡도 제대로 할 수 없고 신경질도 나서 당장 때려
치우고 싶을 정도로 정신이 심란했다.
허나 이도 내가 받아들여야 하는 업보로 치부하고 2번째
휴식을 잠시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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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출근문제로 가신 회원분들도 계셨고,
늦게까지 '잠'으로서 필자를 응원하신(?)회원분들도 계셨지만,
주원장님께서 잠시 휴식을 청하신 이후부터 줄곧 자리를
지켜주시고 뜸장을 올려주신 유성영님의 노고에 뭐라고 할 수 없는 고마움을 느낀다.
2`3차례의 잠깐휴식동안에 조금씩 먹은 물말고는 아무것도 먹지않은상태에서 이렇게 날이 밝을정도로 버텨왔서 필자 스스로도
뿌듯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내 성영님도 가시고 잠깐 잠깐 눈을 붙이시는 원장님을 바라보며 뜸을 올려놓은 환부를 보니 이미 물집은 커다란 요새를 이룰 정도로 큼직큼직하게 잡혀있었고,붉은 실리콘 주머니에 뜨거운 물을
가득넣은 상태로 피부에 매몰되어 있는 느낌이 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절대로 통증이 몰려온다고 물집을 성급하게
짜 버리지 말라는 것이다.이는 한참을 쉬고 다음날에 다시 시작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물집 자체가 튼튼한 방어벽을 이루고 또한 오래 장기간 뜨면 물집자체가 딱딱하게 굳어져 알게모르게 저절로 떨어져 나가므로그러니 물집을 되도록 그냥 놔 두는게 낮다. 물집을 짜 버림으로써 오는 새로운 통증의 악순환을 막을수 있고,火氣의
집중화를 도모함으로써 환부에 효율적으로 쑥의 힘을 전달 시킬수
있기 때문이다.그래서 약간의 통증은 따르겠지만,되도록이면
물집은 그냥놔두고,정 참을수 없는 상태에서는 가장 큰 물집에 한 두개의 구멍만 내는 정도로 해야함.
우스께 소리지만,같은 뜸장크기에 흉터가 유난히 큰 것을 자랑하는
사람은 뜰때마다 물집을 짜 버리는 愚를 범하고 고통을 어리석게
받아들임을 自認하는 꼴이된다.--고집을 버리고 신중하게 배워야
할 부분이다.)
처음에는 계속 뜸장을 올려놓으시는 주원장님을 의야하게 바라보았지만,설명을 듣고나니 한결 마음이 놓였다.
아침9시 무렵에는 잠깐 잠깐씩 졸음이 밀려와 눈을 감았지만,
물집주위의 고통으로 몸을 조금씩 크게 움직여졌고,물도 많이 먹혔다.
예민하게 반응했던 자동차 경적소리도 이제는 귀찮을 정도로 무덤덤해 졌다.조금후에 초제스님과 지우스님께서 오셔서 제법 훈훈할
정도로 뜸 상태를 유지했고 ,손수 올려주시는 큼직한 뜸은
아까의 새로운 통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지만 제법 통증이 지속되었다. 그러나 물집을 짜고 새로 시작하는 생살을 찟는듯한 느낌과는 전혀 달랐다.
새벽에 땀을 많이 흘렸지만,아침부터는 땀도 별로 나지않고 그져
훈훈하게 더울정도로 체온을 유지했고,팔다리의 모세혈관 까지
피가 순환하고 있음을 손가락 마디마디 느낄 수 있었다.
눈을 수시로 떴다 감았다 했지만,잠을 못자서 오는 눈꺼풀의 무거움은 하나도 없었고,오히려 한결 가벼워 왔다.
오후1시쯤이 되니 이제야 내 몸이 뜸불의 온도와 평형상태를 유지함을 느낄 수 있었고, 기계적으로 올려주시는 뜸장불 외에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고, 제법 방안을 둘러보는 여유까지 부렸다.
1시이후에는 뜸장의 크기가 조금 작아져 12분에서 14분까지 유지
하는 것 같았다.
3시에 일어나,맛있는 우유와 돌솥비빔밥을 먹었다.
장장 16시간의 길고긴 터널을 벗어났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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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도 잠시 언급했지만,
초장부터 15분정도의 큰 뜸으로 바로올라가서 단시일내 끝을
내 버리는 이런 뜸법은 일단 '민의약(民醫藥)합본집2'에
일명'주경화식'뜸법으로 소개되고 있고 뜸 동호회에서도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음을 안다.
허나 이 방법은 주경섭원장님 형제분께서 오랜 세월동안 직.간접으로 시술자로써, 혹은 피 시술자로써 경험으로 발전해 온것이며,
옛날 '최X춘씨'와 영구법에 대한 담론에서 옆에서 듣고 계시던
인산할아버님의 추인(追認)을 받은 확실한 방법이다.
"사돈~ 경섭이 방법이 맞아요..."
이 방법의 요체는 적절한 비유일지 모르지만 큰 도로를 미리 훤하게 닦아놓고 작은 자갈로 땅을 다져나가는,그러니까 큰 획을 그어놓고 세부사항을 그려나가는 숲과 나무를 동시에 볼 수 있는 장점이
탁월하다.
먼저 몸이 뜸불을 받아들이는 상태를 만들어 놓고, 그후부터 자기의 근기(根機)에 맞게 얼마든지 크기와 시간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초보자에게 경험자들이 소위 '근기에 맞게떠라' 하는데 이또한 말에 어폐(語弊)가 있다.
인산영구법의 최하한(最下限)은 5분이다.
그러니 5분이상뜸은 직성(直星)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든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입에 육두문자(肉頭文字)를 물고 뜨던
반드시 건너야 하는 강물이다.
허나 5분이상 부터는 초보이던 수년간 경험이 잇는 사람이건
몇분을 뜰수 있는지(근기)는 '떠가는 과정'에서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초보자도 뜸을 받아들일 수 있는 훌륭한 조건을 가지면 능히2~3일내에서도 10근 가량을 무리없이 소화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전제를 필요충분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이 방법이다.
초보는 초보이기 때문에 근기가 없어서 못 뜰꺼야 하는 고정관념을
사정없이 무너뜨려 버린다.
물론 이 고지에 이르기 까지 체력을 부담스러워 하시는 분들도 있지만,역설적으로 매일 조금씩 뜨고 물집을 짜고 새로 부풀어 오르는
고통을 감내하는 방법보다 오히려 체력 소모가 적다는 얘기가 된다.
자기보다 좀더 나은 방법이 있다면 마음을 열고 그 방법을 알려하는
넓은 아량과 지혜가 필요한 대목이다.
승기자염지(勝己者厭之)나 유치한 호승심(好勝心)의 발로는
그 유치한 자기고집에서 나온다.
물론 경험많으신 선배님께서는 오랜 자기만의 노하우들이
계시겠지만,처음 뜸을 시작하시는 분께는 정말 이방법을 권한다.
요즘 애들말로 "강추다!!!!"
특히나 주5일 근무를 시행하는 요즘 추세로 볼때 금요일에
시작해서 토요일 오후나 일요일 오전에 끝낼 수 있다면 사회생활도
크게 무리가 없고 뜸 기간도 지루하지 않게 끝낼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그러나 여전히 각자의 판단에 맡긴다.
현명한 선택들이 있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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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힘이들어, 가면(假眠)상태에서3~4시간은
잔 것 같다.
식사직후,환부부위가 좀 쓰라려 한 두군데 구멍만 좀 내고
참기로 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좀더 더 뜨고 환부주위가
덜 쓰라린 상태에서 그만두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저녁이 되어 태풍이 올 모양인지 하늘도 좀 흐리고 바람도 불었지만
9시부터 12시가까이, 지금 것 보다는 좀 작은 9분에서 11분에서
시간을 유지한 것 같다.
처음 환부부위가 열에 달구어 지는 몇장 사이에서는 통증이 있었지만,곧 전번의 평상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중완부위가 단전보다 좀 쓰라린 감이 있었다.
유원장님 이하 초제스님 지우스님 많은 회원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밤 12시무렵 5근을 다 채웠다.
별 무리 없었다. 힘이 훨씬 덜 듦을 느낀다.
다음날 아침식사후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사무실 옥상에서 벌려놓은 쑥과 체를 가지고 서둘러 철수했다.
함양에서 김 원장님께서 주신 쑥을 새로 쳤지만,
한 사람당 3근 정도 밖에 할당되지 않는 양만 확보했다.
오후늦게 날씨를 봐 가며 시작한게 오후4시30분 경이었다.
어제의 별로 기분 좋지못한 것도 있고 날씨도 흐려 솔직히 좀
미루고 싶었지만, 강행하기로 했다.
왠걸 ~
어제보다 작은 6~7분 가량으로 시작했는데
4장째 칼로 환부를 도려내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식은땀이 밀려오고, 엉치뼈와 발을 제대로 가눌수가 없었다.
정말 허리를 뒤로 빼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밀물과 썰물이 교차되듯 반복되는 통증!
입에서 어금니사이로 새어 나오는 통증을 지금 생각해 보니 어떻게
참았는지 모르겠다.
주원장님께서는 어제와야 할 통증이 지금 오는 중이라고 하셨다.
일전에 말한 쑥장과 몸의 평행상태!!
거짓말 같이 5번째 부터는 아프지가 않았다.
이후 8번째 부터는 회음부 주위에 묘한 희열감 마져 왔다.
구법을 시작한 후20여시간 만에 고지에 이른 것이다.
이후 에는 나중에 오신 회원분들과 담소를 나누면서 뜰 정도였다.
정말 기분이 좋았다.
날씨만 허락했다면,10근을 채 울 수 있었지만 아쉬웠다.
마지막 뜸장을 놓고 속으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너무 기뻤다.애서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우며 포토제닉을 했지만
마음은 이미 구름 속으로 두둥실...
시계를 보니 자정을 넘어 30분을 가리켰다.
8근 가량의 뜸을 첫날 15분정도,두번째 10분정도,세번째 6~7분을 유지하며,26~27시간에 완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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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쑥뜸기간 이었지만,
필자가 처음 부산에 내려올때,세운 명제는
이 '유치찬란'한 삶자체가
"떠 있음"의 운명이라는 것이다. 고로 삶은 더욱 낮게,낮게
'내려 와야'한다는 것이다.
설익은 판단으로 우리가 우리 자신이 불행하다고 여기는 것은
아직은 더 잃을 것이 있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불행을 말하지만,속으로는 희망에 매달린다.
그리고 덜 잃을것은 우리의 것이 아니고,세상의 것이라는 것이다.
새삼 이렇게 그동안 써 갈긴 글들을 생각하니 ,내가 쓰레기를 온통 저질러 놓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도량(道場)이라고 생각했던 곳을-엎치락 뒷치락-
정부(情夫,情婦)에의 이불속에서의 나 뒹구는 자세처럼
바로 내 정신과 삶과 사랑을 껴안고 엎어져 서로 목 조르는 모습으로..
정말 말과 글이 두려워 진다.ㅎㅎㅎ
정말 이렇게라도 쓰고 말하며 살아야 하는지..
그러나 애써 태연함은 잊지않고 살고싶다.
이제 첫 걸음이다.
제위(諸位)의 건투를 빌며...
오늘은 푹쉬고 내일은 '할아버님'께 큰 절이나 올려야 겠다.
.
.앙명인중천지일(昻明人中天地一)**